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78화 (78/538)

78. 챕터14. 만나다 (3)

“왕권을 위협하는가?”라고 의심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국방세와 더불어 지금보다 더욱 빈틈없는 군역이 시행되길 바라고 있다.

벌써부터 시건방진 양반 사대부 집안에서, 양반 혈족이라는 핑계로 군역을 회피하려는 자들이 이따금씩 튀어나온다.

헌데 이들은 그들과 반대로 움직이며, 오히려 군역을 자랑스러워한다.

나아가 양반 사대부들도 어떻게든 자기 사노비를 챙기려고 노력하는데, 얘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면천시키고 양민으로 바꾸고 있다.

“역모를 꾀하거나, 무도한 사상과 행동을 일으켰는가? 라고 의심했다.

연오랑이 “나라를 뒤엎자!”라고 외친다고 한들, 그를 따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업과 자본유학을 뿌렸다지만, 구속력이 약하니까.

다들 그게 이득이니까 따르는 거지, 연오랑을 충성의 대상이자 매개체로 삼는 게 아니다.

또한 이런 짓을 하면서도 "나 잘났다. 봤냐? 나를 따르라!"라고 하기는커녕.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

더불어 조정과 관아에서 시키는 일은 곧잘 다 하고 있고.

자본유학이라는 생경한 걸 들고 나와 퍼트리고 있다. 하지만 이게 문제일까?

원래 역사라면, 원리원칙적인 근본유학자들이 “어디 이런 불쏘시개 같은 걸!”이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허나 갈기갈기 찢어진 지금 사상계는 “뭐야. 이런 괴상한 학문이 또 튀어나왔어? 이번엔 또 뭔 개소리를 하는 건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더군다나 자본유학은 기존 성리학과 조금 다르지만,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왕권을 강조하고 부국강병을 외친다.

자본유학이 말하는 상무호국尙武護國, 무자공국武資貢國, 보국안민, 위국헌신은 조정신료들이 말하는 수준보다 더욱 강력한 군제강화와 중앙집권을 요구하고 있다.

조정입장에선 꺼림칙해도, 태종 입장에선 쌍수를 들 상황이다.

“명성을 키워서 세력을 만들었는가?”라고 의심했다.

헌데 기업과 마찬가지다. 수틀리고 마음에 안 들면, 때려 치면 그만이다.

백성을 노비나 고려때 귀족의 하수인처럼 부렸나? 물론 돈에 얽매어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돈 문제만 벗어나면 자유롭다.

기업에선 백성들이 사원을 때려 치고, 가든지 말든지 강제하지 않는다.

벗어날 수 없는 땅에 얽매어 있는 상황보다 훨씬 자유롭다.

왕의 권위를 넘어서고, 조정대신의 권위를 넘어서는가? 그럴 리가 없다.

연오랑은 유명한 거지, 명성이 높고 권위가 높은 게 아니다.

세력을 키웠다 한들, 이미 조정에 깔린 계열보다 힘이 강한가? 이 또한 그럴 리가 없다.

자본유학은 소수학설이고, 기업은 조선팔도에 수없이 깔린 지주가문과 비교할 수도 없다.

이렇듯. 연오랑이 하는 짓은 분명히 조선팔도를 흔들고, 조정의 시책을 따르면서도 요리조리 줄타기 한다.

그러나 이런 단점을 상쇄하고 남을, 눈에 띌 정도의 긍정적인 결과 또한 도출했다.

이러니 태종은 선택을 미루고 지켜볼 수밖에.

문제는... 이 모든 일, 모든 결과물에 있어서 연오랑의 자리가 있냐는 거다.

뜬금없이 대마도 정벌에 참전한 것도, 태종 입장에선 환영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일이지.

“일을 이렇게 벌려 놓고서, 대체 대마도에 왜 가려는 거지?”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으니까.

연오랑이 대마도에 갔다 오자, 의문은 더 깊어졌다.

녀석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둘째 치고, 태종은 특전대에 남았던 이각 등의 삼인방에게 녀석이 바라는 게 뭔지 보고 받았다.

이런 엄청난 공을 세워 놓고서, 조정에 입조는커녕 그냥 대가 없는 품계만 받고 말겠다고?

대체 왜? 그럴 거면 참전을 왜 한 거지?

의문에 의문이 더해져서, “이런 해괴한 짓거리를 통해서 연오랑이 얻은 게 대체 뭔가?”라는 질문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당사자를 앞에 두고 직접 묻고 말았다.

“지금까지, 이 지랄을 떤 이유가 대체 뭐냐?”라고 말이다.

연오랑은 ‘드디어 올게 왔구나.’하는 심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곤 세상 무너진 것 마냥,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이 나라. 왕실이 우뚝 선 조선이 수백년, 천년이 지나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생경한 자본유학을 내세운 건 이게 옳은 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충심 가득한 모범답안이면서도, 매우 맹랑한 답안을 내뱉었다.

듣기에 참 좋은 말이다.

나는 내 이득이 아니라, 오롯이 왕실의 안정과 나라의 발전만 위한다는 말 아닌가.

“정도正道!? 정도라... 정도... 으하하하!”

그런데... 그의 뜬금없는 말에, 태종은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

쾅쾅쾅. 왕의 체면마저 내팽개치고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큰소리로 웃는 게 아닌가.

‘대체 뭔 일인가?’싶어서, 주위에 있던 호위와 내시가 슬쩍 살펴볼 정도였다.

‘좋아! 트리거가 먹힌 거 같은데?’

태종의 이런 정신 나간 모습에, 연오랑은 속으로 남몰래 ‘아싸’를 외쳤다.

천만다행이다. 그의 계획이 정확히 먹혀 들어갔다. 함정카드가 제대로 발동했다.

21세기 그는 모드에 “연오랑캐릭터”를 집어넣으면서,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캐릭터설명, 배경설정을 꽉꽉 채워 넣었다.

허나 게임은 현실이 되어, 알 수 없는 세상에 연오랑을 떨어뜨렸다.

텍스트로 적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태종과 맞물려 진짜 역사가 됐다.

21세기 그가 비록 억지지만, 어떻게든 말이 되게 하려고 얼마나 고심했던가.

“정도”라는 단어.

이건 그가 텍스트로 직접 박아 넣은 “대화”이니, 분명히 그의 조상들이 입 밖으로 내뱉은 단어이자, 명분일 거라고 믿었다.

이제 연씨의 마지막 후손인 연오랑이, 또 다시 “정도”를 입에 담는 순간.

그 단어가 태종의 머릿속을 뒤집어버릴, 트리거가 될 거라고 예측했던 거지.

연오랑의 계획은 잘 짜놓은 퍼즐같이 적중했다.

태종은 “정도”라는 말에, 순식간에 기억 속을 유영하기 시작.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과거의 편린을 끄집어냈다.

너무도 오래전.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시절.

위화도회군이 벌어질 때, 연천후는 서경(평양)을 지키고 있었다.

연씨가 비록 고려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지 않지만, 그 칼질 실력만큼은 진짜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역사에선, 개경에 가기 전에 먼저 뚫어야할 관문이 바로 연씨. 연천후였던 거지.

그가 이성계의 편을 들지, 최영 편을 들지에 따라서 역사가 바뀔 테니까.

다들 어떻게 하나 고민했으나,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싸우지도 않고 연천후가 태조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상황은 모두에게 혼란을 일으킬 만큼 대사건이었고, 그래서 태종 또한 절대 잊지 못하고 있었다.

훗날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는 공신들과 함께 술자리를 했고, 항상 어디 짱박혀서 보이지도 않던 연천후도 그 자리에 있었다.

태종 또한 은근슬쩍 끼어 있었고.

술자리라서 그랬을까? 태조는 평생 품어 왔던 의문을 술기운을 빌어 연천후에게 물어봤다.

“대체 그때 왜 막지 않았냐?”라고 말이다.

만약 막아섰더라면, 어쩌면 조선이 아니라 고려가 그대로 있을지도 모르잖아?

물론 21세기의 그가 박아 넣은 배경설정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만... 연천후의 대답은 놀랍게도 “그게 정도이기 때문이다.”였다.

조용히 구석탱이에서 듣고 있던 태종 입장에선... 그야말로 가슴에 돌이 쿵하고 떨어질 만큼, 감동을 준 이야기지.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이 역성혁명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흡사 면죄부이자 명분을 세워준 대답이자 행동이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왕자의 난이 있고 난 후.

태종 또한 아버지를 흉내 내듯, 공신들을 불러 술자리를 함께 했다.

연씨의 3대를 모두 기억하는 태종 입장에선, 당연히 연씨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바.

그래서 1등공신으로 박아도 부족하지 않을 연오진을, 등급 떨어지는 원종공신으로 삼아 지켜봤다.

하지만 연씨는 여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다.

연천후가 그랬던 것처럼. 그냥 자기 할 일만 하고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은둔생활 아닌 은둔생활을 했다.

팽 당한 처지로 내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아했기에... 태종 또한 술자리에 억지로 끌려나온 연오진에게, 똑같이 묻고 말았다.

“대체 그때 왜 막지 않았냐?”라고 말이다.

헌데 대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연천후가 그랬던 것처럼, “그게 정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형제들을 썰어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입장에선...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불안감과 회의감을 한방에 날려버릴, 금과옥조 같은 대답이었지.

그 후 연오진은 연오랑이 태어날 때가 되자, 낙향해서 하동에 머물렀다.

태종의 관심은 점점 시들해져갔다. 어쩔수가 없었다.

운석핵꿀밤의 후폭풍을 온몸으로 처맞아야 했으니까.

그런 기억을 아직도 품고 있는 태종에게, 마지막 연씨인 연오랑이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게 “정도”라고 말이다.

태종 입장에선 머릿속에 번개가 친 것 마냥, 소름이 확 치솟는 대답이지.

조선과 연씨와 태종 자신이 겪은 과거를 미루어보아, 지금. 새로운 역사의 분기점에 올라선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다.

“지금... 내가. 그리고 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냐? 네가 말하는 그 자본유학이야 말로 정도라는 거냐?”

태종은 슬쩍 역정을 내듯 주먹을 불끈 쥐었고, 연오랑은 냉큼 입을 놀렸다.

“아닙니다. 상왕전하께선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상황이 너무나도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젠 우리 조선이 스스로 서야할 상황이 오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말입니다.”

“...”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 된 중국이 없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습니까? 전례 없는 상황에 처했으니, 대응 또한 전례 없는 대응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태종은 연오랑의 대답을 관통하는 한마디를 떠올렸다.

어떤 면에선 태종을 도와주기도 했고, 어떤 면에선 태종을 괴롭히기도 했던 한마디.

“자주화...”

“...”

잠시 침묵한 태종을 보며,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댔다.

‘좋아. 좋아.’

분위기 좋다. 아주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이젠 그가 허무맹랑한 개소리를 지껄여도, 적어도 화를 내거나 귀를 닫고 무조건 부정하진 않을 것 같다.

‘자. 다음 선수 입장하시고.’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야 있나.

기세를 잡았을 때, 더욱 몰아쳐야하지 않겠나.

조금 있다가 먹이려고 했는데... 지금 써서, 태종의 머릿속을 아주 그냥 태풍 속으로 밀어 넣어야겠다.

그는 옆에 놓여 있던 서적 중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들이밀었다.

‘이거 한방이면, 태종도 말랑말랑하게 바뀔거란 말이지.’

“...?”

태종은 “뜬금없이 이건 뭐냐?”라는 눈으로 바라봤고, 연오랑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중국의 의서와 원나라 시절에 서역에서 건너온 의서, 삼한시절의 의서를 연구하면서 찾아냈습니다.”

물론 구라다. 이건 연오랑이 왜구, 죽어도 싼 나쁜놈들을 가둬놓고, 남몰래 인체실험을 통해서 완성한 물건이니까.

“...?”

태종은 “그래서 이게 뭐냐고.”라는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않았고, 연오랑은 긴장한 연기를 하며 심호흡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거창하게 꾸며야, 받는 사람도 거창하게 받아들일 것 아닌가.

“두창을 예방할 수 있는 방책이옵니다.”

“...!”

연오랑의 뜬금없는 말에, 태종은 얼음송이가 됐다.

그 대단한 태종조차도 제대로 말문이 막혀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두창을 막을 수 있다고?’

*****

“후후.” “흡흡.”

세종. 나이 23살. 왕이 된지 고작 1년차인 신참내기.

그는 왕의 체면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손발을 놀려 몸을 흔들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날리다가, 가볍게 몸을 비틀며 발을 놀려 자세를 바꾸기를 한참.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가 되자 움직임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팔다리를 마구 주물러댔다.

세종 또한 태조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게 맞는 모양이다.

풍채가 꽤 좋은 터라, 손발을 날리는 꼴이... 꽤 절도 있고 그럴싸했다.

누가 봤으면 기겁하고 놀랐겠지만, 이 야심한 밤에 창덕궁 후원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있었다. 그것도 세종을 보며 품평할 정도로 간이 부은 인간이.

“어떤가?”

“투로가 많이 좋아지셨군요.”

“그래?”

“예. 전보다 훨씬 나아보입니다.”

“그건 다행이군. 자네가 없는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세종은 만족스러운지 히죽 웃었고, 옆에서 맨손무술을 지켜보던 무관은 냉큼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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