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챕터14. 만나다 (5)
“그나저나. 무관들 사이에서 정인지... 아니군. 연오랑 운동법이 유행한다고 하던데, 자네도 배웠나? 함께 다녔으니 직접 배웠겠지? 연씨비기라고 해서 아끼진 않았을 것 같은데?”
“예.”
양원경은 개처럼 구르던 어사 김숙자를 떠올리며, 고된 기억을 슬그머니 끄집어냈다.
영규, 영명 형제는 김숙자를 무턱대고 체벌하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천금을 주고 배워갈 운동법을 알려줬지.
다만 일평생 몸을 제대로 써 본적이 없던 김숙자니, 매일 같이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양원경은 김숙자가 한달여간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지켜봤기에, 연오랑 운동법이 정말로 비전이자, 세종 말처럼 학문의 일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렇군.”
“예. 지금껏 저희가 배운 것보다 훨씬 체계가 잡힌 건 분명합니다. 헌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냈냐?’라고 바라보자, 세종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진 집현전의 하급관리들만 양생법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젠 다른 관리들과 무관들도 관심을 가져서 말이지. 어떻게 할까 고민해봤네. 아. 그리고 정인지와 배봉마을의 자제들이 이번엔 부인운동법을 알려주더군. 들어봤나?”
“...”
양원경은 그건 들어보지 못한 터라,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연오랑은 팔벌려뛰기, 팔굽혀펴기, 턱걸이, 크런치, 스쿼드, 플랭크 등의 맨손운동과 도수체조, 스트레칭을 양생과 정력에 좋은 운동이라고 구라치고 뿌렸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몸이 건강해지면 오래 살겠지.
근육 늘어나고 힘이 좋아지면 정력도 좋아지잖아?
이렇게 운동해서 땀을 쫙 빼고 나면, 냄새나고 찝찝해서라도 열심히 씻게 될 거다.
연오랑은 혹시나 싶어서 “이렇게 땀을 흘려 탁기를 빼고 나면, 씻어서 깔끔하게 제거해야 양생에 효과가 있다.”라며,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소리를 덧붙였다.
이걸 실제로 믿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태종이 사우나까지 만들어놨으니... 세종은 열심히 운동하고, 사우나에서 땀 좀 빼고, 나와서 식혜 한잔 때리면, 그게 극락이 아니고 뭐겠는가.
연오랑의 세종 체질개선, 건강유지 작전은 나름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아무튼. 대마도에서 돌아온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젠 여성을 공략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정인지와 배봉마을 청년들은 도성의 부인들에게 요가를 알려줬다.
애를 잘 낳고, 미모와 몸매를 가꾸고, 장수할 수 있는 비전의 부인운동법이라고 구라치고 뿌리기 시작했다.
왕실에선 이미 운동하는 세종을 보고 있었으니, 도성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부인운동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장수와 정력. 이건 21세기에도 먹히는 컨셉이지만, 의학기술이 미흡한 15세기에는 더욱 끔뻑 먹히지.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여자들도 아름답길 바라고, 나이 먹어도 곱기를 바란다.
이 원초적인 욕망을 긁어줄, 돈도 안 드는 방법이 튀어나왔는데, 이걸 누가 거부할까.
몸이 조금 고생해도, 그 대가는 너무나 달다.
해서 도성 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갔지.
예법에 맞지 않고 전례가 없는 해괴한 운동법이지만, 왕실에서도 은근슬쩍 환영했다.
어찌됐건 간에, 장수와 정력이라니? 왕실의 후사를 든든하게 해줄 방법 아니냐?
조정대신들이 여기다가 딴지를 걸면, “너 지금 왕실의 대가 끊어져도 괜찮다고 말하는 거냐?”라고 두들겨 맞고, 종묘사직을 모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그래서 부인부터 궁녀들까지 다들 익히고 있네. 아바마마께서 만드신 목욕탕과 한증막을 전각마다 지어도 모자랄 상황이지. 그런데... 이거 남자가 해도 괜찮은 건가?”
“예? 저도 잘...”
“음.”
“크게 보면 양생법과 다르지 않으니,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원경은 세종이 시범을 보이듯, 몸을 굽혔다가 피는 걸 반복하는 걸 보며,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그런가? 정인지 녀석에게 물어봐야겠군. 이거 하다보면 은근히 몸이 풀리는 것 같아서 말일세.”
“예.”
“아무튼... 그간 외유하느라 고생했네. 양위사. 편히 쉬게.”
“알겠습니다.”
양원경은 냉큼 고개를 숙이고선, 세종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랬단 말이지...’
세종은 바람에 땀을 식히며, 양원경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곱씹었다.
“...”
그리곤 태종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최 모르겠군. 이 자식은 대체 뭔 생각이지?’
어사 김숙자를 이용해 월권을 행한 건 분명한데, 이걸 최대한 조용히 처리한 걸 보면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런데 또. 조정의 시책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군.”
세종이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사박사박.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잔불과 함께 나타난 건, 태종과 웬 서적을 가득 든 내시들.
태종을 알아본 세종은 재깍 몸가짐을 바로하고, 냉큼 인사를 건넸다.
“운동을 했더냐?”
“예. 아바마마.”
“잘했다.”
태종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세종은 타고난 몸뚱이만 믿고 막 살지 않았나.
아버지인 태종 입장에선 세자가 되고 왕이 되자, 건강을 챙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허나 왕은 칼을 쓰는 사람이지, 칼이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잔소리를 하고 말았고, 세종은 속뜻을 알아듣고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뜬금없이 왜 이 야심한 밤에 혼자 찾아왔습니까?’라는 속내를 품고 바라보자.
태종은 내시들에게 일을 시키고선 냉큼 정자에 올라앉았다.
내시들을 등잔불을 여러개 피워 어둠을 몰아냈고, 그 옆에는 서적을 비롯한 물건을 쌓아놓고선 냉큼 자리를 비켜줬다.
“...”
세종은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껏 자신에게 일을 다 맡겨두고, 밖을 나돌아 다녔던 태종 아닌가.
그가 이 시간에 찾아온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태종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쓱. 서적 한권을 밀어 넣었다.
세종도 몇 번 봤고, 조정신료와 지방 유학자들 사이에서 나름 화제가 되고 있는 책. 자본유학론이다.
‘음...’
그 자신에게 편두통을 앓게 한, 연오랑의 작품 아니냐.
세종은 태종이 내민 자본유학론을 쓱쓱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자본유학.’
생경한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봐줄만한 책이지.
운석핵꿀밤 이후. 중국에선 온갖 잡스런 사상이 다 튀어나왔고, 그 개소리를 엮은 서적이 사방팔방 퍼졌다.
이미 오래전에 유학에 흡수되어버린, 춘추전국시대의 온갖 사상을 다시 부활시켜 앞세운 변형성리학이 나왔다.
과한 경우에는 성리학과 도교, 불교를 섞은 사교 비슷한 사상도 나왔다.
이미 섞여 있는데, 어떻게 더 섞었는지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지.
그나마 중국에 비하면 조선은 얌전한 편인데, 이쪽도 만만치 않게 웃기다.
중국이 옛 사상을 끄집어내서 조합하는 걸 즐겨했다면, 조선은 자주화를 외치며 기존에 없던 주장과 사상을 성리학에 결합하곤 했으니까.
그런 허무맹랑한 개소리 모음집에 비하면, 자본유학은 그래도 읽어볼 만하다.
이건 적어도, 철저히 현실에만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니까.
서적성애자인 세종은 대군시절부터 온갖 사상서를 읽어봤기에, 이런 한줄평을 내릴 수 있었다.
“알겠지만, 보물 애물단지 녀석이 쓴 책이다.”
“...”
태종의 헛웃음에 맞춰, 세종 또한 쓴웃음을 지었다.
보물 애물단지. 연오랑을 표현하기에는... 딱 어울린다.
그래도 똑똑한 미친놈에서 한 단계 오른 평가니, 연오랑이 들었으면 좋아 했으려나?
“읽어 보았느냐?”
“예.”
“어찌 보았느냐?”
“음... 이건 학문이 아닙니다. 이건...”
세종은 뭐라 딱 정의할 수가 없어서 말을 흐리다가... 그나마 어울리는 단어를 끄집어냈다.
“굳이 따지자면,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통치방법론, 통치지침서... 위정과 치세를 위한 조언이자 목표쯤... 될 것 같습니다.”
“옳게 보았다.”
태종은 자신 또한 그런 생각을 했던지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문은 실현가능성, 증명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일관된 논리적인 흐름이 있어야 한다.
기起에서부터 논리와 체계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승전결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자본유학에는 이 기승전결의 구조가 허술하다.
결은 완벽할 정도로 확고한데, 기승전의 연결고리가 약하다고 할까?
나아가 자본유학론에서 말하는 실사구시, 조선유학, 잡학근본 같은 세부 주장은, 하나로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제각각 따로 놀았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긴 되는데, 큰 틀에서 보면 “이게 이거하고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논리구조가 치밀하지 않은 거지.
하여 세종이 자본유학을 읽으며 느낀 건... 평범하게 기라는 전제조건을 설정하고 쌓아올린 논리체계가 아니라, 거꾸로 결을 먼저 완성해놓고 기승전을 끼워 맞춘 것 같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종의 생각이 정답이다.
15세기 이후에 튀어나올 온갖 사상을 결론에 놓고, 그걸 지금 시대가 소화시킬 수 있게, 유학의 이치를 뽑아 덮어씌운 거니까.
“그렇담... 마음에 들지 않더냐?”
“...”
태종의 물음에 세종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모순된 두 마음이 충돌했고... 결국 침묵을 깨고 항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러하다.”
태종은 세종의 대답의 마음에 드는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대답이다.
자기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학문을 논하는 유학자로서의 세종과 현실을 논하는 통치자. 왕으로서 세종이 충돌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자본유학의 이 애매한 성질은 단점이자 장점이 됐다.
유학이 아니면서 유학의 껍데기를 쓰고 있어서, 각 계열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한둘쯤은 품고 있다.
조정신료들이 배봉마을에서 쏟아지는 결과물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인 건,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닮은 부분이 제각각 있었기 때문.
지극히 현실적인 것도 장점이다.
무미건조한 과정과 결과만 나열되어 있으니, 누구든 가져가다 써먹고 덮어씌우면 보다 나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최종 결과물이 왕권강화와 부국강병을 말하고 있으니, 왕으로서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지금은 학자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왕과 왕이 현실을 논하는 자리 아닌가.
그러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둘 사이엔 가벼운 침묵이 감돌았고, 태종은 물끄러미 자본유학론을 바라보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종두법에 충격을 받았던 태종.
그는 체면도 잊어버리고 침을 튀기며 연오랑을 닦달했고, 연오랑은 빼곡하게 적힌 표를 설명하며 종두법의 원리, 방법과 그 시행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태종은 연오랑의 계획대로 심리적 거부감을 한층 줄였고, 보다 적극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왕과 신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의 학자 대 학자로서 한판 붙어보자는 거다.
“전례에 없던 대응. 그게 무얼 뜻하는 것이냐?”
허나 연오랑은 태종의 물음에 물음으로 답했다.
그것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멀고 깊은 질문을 던졌다.
태종이 들춰보고 싶지 않은 역린이자 암운을 건드려 본다.
“지금의 양반관료체제가 앞으로 백년, 이백년 후에 어찌 될 거라 보십니까?”
“...”
뜬금없는 물음에, 태종은 잠시 입을 다물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조선이 밀어붙이는 양반관료체제.
이건 쉽게 말해서, 관리만이 권력자요 기득권층이라 선언하는 거다.
고려 때와는 달리. 너희의 신분이 어떻든, 부귀가 어떻든, 너희 집안의 역사가 어떻든 관계없다.
과거에 합격한 관리 앞에서는 죄다 머리를 처박으라는 거지.
향리, 호족등의 지방세력은 이래서 반발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이미 조선이 건국된 순간. 대세는 조선이고, 고려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아니. 우리 먹을 건 조금 남겨달라고요! 그렇게 꼭 다 빼앗아가야만 했냐!”라고 아우성치는 거지.
조정은 “꼬아? 꼬우면 니들도 과거봐서 관리가 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라고 말하는 거고.
“과거시험은 더럽게 어렵고, 관리는 쥐꼬리만큼 뽑고, 우리한테만 제약을 걸면서, 우리보고 전부 거기에 매달리라고?”
“그러게? 유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그러냐? 능력도 없는 놈이 관리가 되려고? 꿈도 꾸지 마라.” 이러는 거지.
원래 역사에서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됐고, 발버둥치던 지방호족들도 결국에는 유학자가 되어 양반관료체제로 흡수되어 갔다. 아니면 계속 향리로 머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