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챕터15. 논의하다 (2)
세종은 조정대신들을 상대할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업이라는 걸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기업내규라는 규칙과 사상을 알아야 하는데... 이건 자본유학에 기초하여 만들어져 있다.
유학과 결이 다른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하는 거지.
안 그래도 과로사하기 직전인 육조의 관리들은, 이걸 감당할 여력이 없다.
남은 건 그나마 싸게 먹히는 집현전을 확장하는 건데... 안 그래도 비대해진 집현전을 더 비대하게 만든다고 난리를 칠거다.
하지만 어쩔 건가. 이거 말곤 답이 없는데.
‘대신들의 반대를 이유 삼아 집현전 관리의 특권을 일부 제한하게 되면, 이 제한적인 제도를 앞으로 모든 관리에게 적용할 명분이자 초석이 되겠지.’
세종은 태종의 속내를 읽고, 가능성을 점쳐봤다.
“농사직설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느냐.”
“초판본은 나왔으나, 개량 중에 있습니다.”
“당장은 그거라도 전국에 뿌려야 하지 않겠느냐.”
“음...”
세종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 터라,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앞선 논의는 골치 아픈 일이 가득하지만, 이건 그나마 편하다.
이미 준비는 끝나있고, 사람을 보내 실행만 하면 되니까.
배봉마을과의 협력은, 그걸 탐탁지 않아하던 조정대신들조차도 입을 다물게 할 정도로 엄청났다.
가히 신농법, 농업혁명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지.
문제라면, 이걸 전국으로 뿌려 당장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또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그런데, 이 일에 전문가인 이들이 이미 존재한다.
“배봉마을...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세종은 태종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봉마을의 구성원이 서얼이라는 건, 태종 입장에선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지금은 서얼 따위에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
“예...”
세종은 답을 하면서도, 다시금 태종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배봉마을이 생긴 지가 언젠데, “이놈들을 어떻게 부려먹을까?”라고 고민을 안 해봤을까.
관리로 만들 순 없으니,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줘야하는데... 돈이 안 드는 방법은 역을 면해주는 거다.
“하여 역을 면해주고, 그들을 전국으로 보내 수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임시로 줄까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나?”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으나... 양전사업과 신농법이 자리 잡을 때까지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들이 보다 효과 좋은 이앙법을 완성하고, 성저십리 외곽을 돌며 토질조사를 했지?”
“예. 경기도 인근까지 완료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앙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아무데나 가서 땅 파고 강과 연결한다고, 수로가 되는 건 아니다.
물이 잘 빠지는 땅과 물이 안 빠지는 땅을 찾아야하고, 지대의 높이를 살펴야 하고, 보를 만들 입지도 따로 정해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해온 지금까지와 달리, 배봉마을의 청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기록하며 체계화 시켰다.
이것 자체가 기술이며 학문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여 하급관리들은 이론공부와 실전연습을 동시에 진행했고, 그로서 한성 인근의 토질조사를 완성했다.
“일단 경기도의 과전부터 정리하는 것이 어떠하느냐.”
“...”
태종의 제안에 세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정대신 중 일부는 아직도 이앙법의 효용성을 의심한다.
정확히 말하면. 효용성은 인정하지만, 그에 필요한 부수비용을 문제 삼는다.
“하는 건 좋은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거지.
그런데 과연, 자신의 땅이라 할 수 있는 과전에 이앙법을 하는 걸 받아들일까?
“가능하련지...”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느냐. 이미 한천(중랑천 상류)인근의 경작지와 적전籍田에서 이앙법을 시험하지 않았느냐? 효과는 어떠했느냐?”
“...”
두말할 필요가 있나. 당연히 대성공이다.
세종, 태종과 조정은 배봉마을이 수차를 만드는 걸 봤다.
그놈들이 만든 건 수차지만, 그 수차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은 저수지와 보를 만드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일부구간이긴 하지만, 무려 송계천의 물길을 정리하는 치수사업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오히려 조정의 방식보다 더 세련되고 발전됐지.
송계천이 수위가 높지 않고, 수량도 많지 않아서 가능했지만, 어찌됐건 성공한 건 성공한 거다.
이렇듯 관리들과 연구원들은 손수 손에 흙을 묻혀가며, 왕의 경작지라 할 수 있는 적전에 이앙법을 도입했다.
실패한들, 왕의 땅에서 실험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까.
초창기 적전은 왕이 농사의 모범을 보이고자 만든 의례용 땅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 다 잊어버리고 그냥 농사직설의 신농법 실험장으로 바뀌었다.
적전의례조차 오경五經의 예기禮記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지 않나.
지금의 조선 사상계는 성리학의 잘못된 점을 찾으려고 하면서, “이것도 잘못된 거 아냐? 깨부술까? 말까?” 이러고 있다.
그러니 적전에서 뭘 하든, “말싸움만 죽도록 하느니, 차라리 저렇게라도 써먹는 게 낫다. 저건 현실적으로 도움이라도 되지.”라고 결론 내렸지.
“음...”
세종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과전에서 어떻게 이앙법을 진행할 수 있을지 계산해 봤다.
나랏일 하는 관리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명분을 내세우면 밀어붙일 수 있다.
나아가 과전을 정리하면. 그간 알게 모르게 뜯겼던 땅을 회수하면서, 이걸 핑계 삼아 조정관리들을 휘두르고 양반사대부를 한 대 때려줄 수 있다.
또한 과전에서 성공을 거두면, 이앙법을 삼남지방으로 확장하는 걸 반대하는 목소리는 쏙 들어갈 텐데...
반대로, 실패하면 두 배로 역풍을 맞게 될 거다.
그러니 반드시 성공하려면, 어찌됐건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한다.
‘올해 겨울과 내년 봄 사이에, 이걸 다 할 수 있을 런지...’
“역시 인력이 문제더냐?”
“예. 신기술이 있다고 해도 치수사업은 결국 사람 손으로 해야 할 텐데... 농한기라 한들, 타 지역의 백성을 불러 역을 시키는 건 무리가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인력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
태종은 세종을 보며 히죽 미소를 지어보였고, 세종은 ‘뭐지? 뭘 놓쳤지?’라고 고민하다가... 답을 찾아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다면, 아예 상식 밖의 변수가 있다는 뜻.
조정에서도 무시하거나 범주에 놓지 않았던 걸 찾아내면 쉽다.
“... 왜인포로 입니까?”
“그렇다.”
태종은 그리 말을 하고선, 세종에게 서적 중 하나를 다시금 밀어 넣었다.
“이것만 익히면 당신도 왜어 전문가...?”
뭔 놈의 책 제목이 이따위인지 모르겠다.
이거 하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몽골어, 중국어, 여진어 편이 따로 있다.
“녀석이 만든 어학서다.”
“하...”
세종은 자기도 모르게 눈썹을 꿈틀거렸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 자식 보게.’
난장판을 쳐놓고 뒤처리는 자신에게 맡겨 뒀으면서, 뒤로는 이렇게 써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태종도 처음 연오랑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종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만명이 넘는 왜인포로를 한성 가까이에 두고, 그놈들을 일꾼으로 부려먹으라고?
조정대신들이 그걸 보고 가만히 있겠는가.
허나 연오랑은 오히려 “대체 뭐가 문제야? 왜 이렇게 쫄아?”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태종은 연오랑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세종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조선 땅에 한성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을까. 12사의 중앙군이 지키는 한성 옆에, 왜인포로를 잔뜩 모아두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느냐?”
“으음...”
물론 일리가 있긴 하다.
왜인포로는 수는 많지만 구심점이 아예 없다.
과장이 아니라, 연오랑이 대마도의 지배층을 다 죽여 놨으니까.
막말로 상현의 끝마을에 살던 왜인과 하현의 끝마을에 살던 왜인은 조선에 와서 처음 만났을 거다.
그냥 같은 말을 쓴다는 것 말고는, 동질감이 크지 않지.
워낙 험지에 살다보니 성질이 박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조선백성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다만 역시나. 먹고 사는 게 문제다.
그놈들을 한곳에 모아두면 식량부족현상이 일어날게 뻔해서, 각 지방에 분산격리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이걸 어떻게 해결하려고... 당장은 의창과 군자창에서 비축미를 끌어온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을 텐데...’
태종은 세종의 눈빛에 담긴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역시나 답을 이어갔다.
그도 똑같은 의문을 품었으니까.
“얼마 전부터 시전에 절인청어라는 물건이 풀린 걸 알고 있느냐?”
“예.”
한성에는 시장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어찌됐건 물건을 파는 상가가 존재했다.
훗날의 육의전이니 하는 것 따위는 전혀 아니고, 그냥 상가 건물만 나라에서 관리하고 그걸 임차해서 세금내고 장사하는 형태다.
그곳에서 요즘 최신 인기 품목이 바로 절인청어였고, 당연히 세종도 먹어봤다.
“그게 하동의 수산기업에서 온 걸 알고 있느냐?”
“예.”
뭔가 웃기지만, 지금 조선에서 특이하고 생경한 게 튀어나오면 보통 연오랑이 범인 아니냐.
“해안가 지역에서, 수산기업이 다수 생겨날 건 알고 있을 거고.”
“예.”
“...”
이건 세종이 더 잘 알고 있다.
양원경은 하동의 기업가청년들이 무슨 임무를 품고 전국으로 퍼졌는지 지켜봤으니까.
‘아... 마음을 굳히셨구나!’
세종은 태종의 속내를 읽어내고선,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유명무실했던 해금정책과 공도정책을 완전히 폐지한단다.
태종은 그간 제대로 품지 못했던, 해안가 집안을 통제하면서 밀어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지주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생경한 수산기업을 활성화 시키겠다는 뜻.
그들이 생산할 절인청어를 한성으로 가져오고, 또 해안가 인근지방에 계속 풀어서 식량난을 해소하겠다는 거다.
대신 남는 쌀을 의창에 집어넣어, 왜인포로의 식량과 임시직 관리의 녹봉으로 써먹고.
세종이 놀란 이유는... 방금 전까지는 논의의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태종이 제한적이지만 기업의 설립을 인정했기 때문.
지금의 양반관료체제에 대한 의심이 제대로 먹혀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거지.
‘연오랑... 그 자 때문인가?’
세종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지워냈다.
연오랑이 한소리 했다고 태종이 마음을 고쳐먹을 사람인가.
이미 스스로도 고심에 고심을 하고 있다가, 도화선에 불을 지핀 정도겠지.
그리고 세종의 생각이 맞았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어찌됐건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단순히 권력욕 때문이라고 볼 순 없다.
고작 그런 이유였다면, 그 후의 일이 설명이 안 되니까.
그는 새나라 조선을 위해서 정도전 일파도 제거하고, 외척도 제거하고, 공신도 제거하고, 세종의 앞날에 걸림돌이 될 온갖 위험요소를 다 처리했다.
왜? 자신은 이 새나라 조선의 기틀을 세울, 역사적 사명을 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원래 역사에서도 그랬던 인물이, 지금 역사에선 어떻겠는가.
운석핵꿀밤의 후폭풍을 처맞으며, 어떻게든 조선을 정상화 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심지어 왕위에 오를 당시에 자신이 세웠던 원칙마저, 운석핵꿀밤 이후에 바꿔버릴 정도로 열성적으로 임했다.
그래서 연오랑이 하는 짓을 유심히 지켜만 봤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제도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자신이 만든 나라가, 자신이 만든 오점에 의해 무너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흘려들을 헛소리가 아니라, 가능성이 충만하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 했다.”
연오랑의 말은 아직도 옛 사람으로 남아 있던 태종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나 된 중국이 없는 시대가 찾아왔고, 천명은 실종되었으며, 옛 가치가 무조건 정답이 아니고, 새로운 가치와 충돌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나아가 조선을 둘러싸고, 온 사방이 각자도생을 꿈꾸며 정신없이 날뛰고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은 변명이자 핑계에 불과하다.
한계를 벗어나 시야를 넓히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이미 코앞에, 잘 차려진 밥상처럼 놓여 있다.
저 생경한 반찬이 눈에 거슬리지만, 먹기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
지금 역사에서의 태종은, 유학의 이치를 지키다가 왕권, 중앙집권이 약화되고 부국강병에서 멀어지느니...
차라리 유학의 이치에서 벗어나더라도, 왕권,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하길 원했다.
그게 새로운 시대의 사명을 품은, 태종 자신이 나아갈 길이니까.
원래 역사에선 이런 선택지 자체가 없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역사에선, 이미 현실로 벌어져 태종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물론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겠지만, 그렇다고 뭐. 지금까지는 아니었던가.
하여 태종은 양반관료체제가 양반신분제로 변질되는 걸 막기로 마음먹었고, 그 첫 단추로 수산기업을 써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