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89화 (89/538)

89. 챕터16. 건너다 (5)

농담이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일거리가 산처럼 쌓여가고, 과로로 코피 터지고 졸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다들 “이러다간 진짜 일하다 죽겠구나.”싶어서, 예전의 일처리 방식을 때려 치고, 연오랑 방식으로 갈아탄 거지.

그런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나자 나름 관록이 생겨서,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일 정도가 됐다.

“해서... 전투식량은 4개월분까지 만들었는데. 어찌할까요?”

“4개월이라.”

‘충분할 것 같기도 하고, 부족할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

그는 황보인이 샘플로 내민 전투식량을 살펴보다가, 결국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더 만들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 부족한 건 요동에서 최대한 뜯어내는 수밖에.

‘거긴 밀이 있으니까. 밀가루라도 뜯어내야겠네.’

“그만 만들고 배급해라. 이제 곧 출정이니까.”

“휴우. 드디어 가는 군요.”

넌더리가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황보인을 보며, 연오랑은 피식 웃고 말았다.

원정군 지휘관들은 “이런 정예병을 이끌고 원정을 간다니! 꿈에서나 바라던 일이 이뤄졌구나!”라고 방방 뛰며 좋아했지만...

뒤에서 치열하게 숫자와 싸우던 황보인 입장에선, “전쟁은 진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구나. 까딱 잘못하면 나라가 거덜 나겠는데?”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단순 무식하게 계산하면... 완편된 중기병 한명을 꾸리려면, 기병과 기병이 타는 말 하나, 무기 및 개인장구를 싣는 말 둘, 식량을 싣는 말 셋. 예비용 말 넷.

여기에 추가로 보조병 하나까지 붙는 경우도 있다.

건초 빼고 곡물로 계산할 경우. 말은 대충 사람보다 3배를 먹으니까, 기병 한명이 하루에 거의 13~15인분을 소모한다.

전투 없이 한달 행군만으로, 일반 장정의 일년치 식량이 날아가는 거지.

오롯이 곡물군량만 계산해도 이 정도인데, 여기에 온갖 부수적인 보급품이 끼어들면... 아우. 상상하기도 싫다.

“얼굴 풀어라. 네가 그런다고 원정을 안갈 것도 아니고, 투자한 만큼 뽑아내면 되는 거 아냐? 전쟁도 다 돈이다.”

“예... 전쟁은 돈이 맞죠.”

그는 자기가 앞장서서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요동, 몽골, 우량카이 3위를 뜯어내서, 어떻게든 손해를 벌충하겠다고 다짐했다.

돈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자, 황보인은 냉큼 입을 놀렸다.

훌륭한 재원이 될 물건이 떠올랐기 때문.

“그런데, 대감께서 만든 미분味粉 있지 않습니까?”

미분은 다시마가루, 건버섯가루, 구운 소금을 섞어 만든 유사msg이자, 조미료다.

태종조차도 마음에 들어서, 왕실에서 왕창 가져간 물건 아니냐.

원래 조선군은 청국장 비슷한 걸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는데... 이건 부피와 냄새 문제 때문에 원정에 사용하기 힘들었고, 연오랑은 그 대체제로 미분을 가져왔지.

이건 라면스프처럼, 대충 조금만 뿌려도 맛이 살아나니까.

“그게 왜?”

“민간에 조금 풀렸는데, 반응이 뜨거워서 말입니다. 여진인들이 미분 한주머니에 가죽 열장을 내놓을 정도라서...”

“그래?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게... 상인들이 저한테 물어봐서 말입니다.”

‘이 자식들이...’

착호군 먹으라고 조금 나눠줬더니, 그걸 또 냉큼 내다 판 모양이다.

상인들은 착호군에서 나온 물건인줄 알고, 황보인까지 타고 올라갔고.

“유성에게 말해 놓으마. 다만 그거 엄청 비싼 거라서 많이 풀지도 못해. 설마... 너 그거 팔아서 군자금으로 쓰려는 거냐?”

“...”

정곡을 찔렸는지, 황보인은 입을 다물었다.

‘음...’

하긴 15세기에 유사msg를 싫어할 리가 있나. 당연한 반응이긴 한데... 이건 아직 대량생산이 힘들다.

다시마 양식도 그렇고 버섯 재배도 쉬운 게 아니라서, 하동과 용연현, 배봉연구소의 도움을 받은 몇몇 기업만 재배에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이걸 황보인이 왜 신경 써? 연오랑은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줬다.

“내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왜 네 주머니로 넣으려는 거냐? 이만큼 준 것도 내가 엄청 손해 본 거 몰라? 조정에 세금으로 내는 양이 얼만데.”

“예...”

“그래도 잘 팔린다고 하니... 요동에 가면 팔아서 챙길 만큼 챙겨보지.”

“예! 알겠습니다.”

“산동에서 이번에 보낸 보급품 목록은?”

황보인은 냉큼 고개를 숙이고선, 다른 보고서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대부분 쌀이고, 밀과 잡곡 약간, 무기류를 보내왔습니다.”

‘이야. 세종 형이 알차게 볶아 먹었네. 무기까지 보낼 줄이야.’

산동은 조선을 꼬드기기 위해서 이미 여러 차례 지원을 해줬는데, 세종은 마지막까지 또 뜯어낸 모양이다.

“무기 상태는 어때?”

“그냥 그렇습니다.”

황보인은 이제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심드렁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착호군이 창설되자, 연오랑은 개개인이 가져온 무기류를 싹 수거해서 녹여버리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 새로 만들어 보급했다.

지금 조선은 무기류에 대한 통일기준이 없어서, 심지어 같은 소속끼리도 미묘하게 길이와 형태가 다른 무기를 사용했으니까.

이래서야 보급과 유지보수. 나아가 “연오랑 무기술”의 집체교육을 어떻게 하겠냐.

이건 21세기 칼덕후 연오랑의 전문분야니,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깔끔하게 표와 도면, 설계도를 제작했다. 지금 쓰는 무기부터, 지금껏 없던 무기까지.

제련방법, 날의 길이와 무게, 폭, 커팅방법, 재질까지 상세하게 정해놨으니. 만드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편할 수밖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좋고 편한 건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태종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내가 이래서 착호군 만드는 걸 찬성했다니까? 뭐? 저 어린 녀석에게 대업을 맡길 수 없어? 봐라. 이 자식들아. 연씨비기가 괜히 연씨비기냐?”이러면서 연오랑을 칭찬했고.

세종은 한술 더 떠서, “뭐야. 착호군만 좋은 걸 쓰네? 걔들은 정규군도 아닌데 이래서야 되냐? 이거 전군 기준으로 통일하고 일괄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외쳤다.

물론 조정대신들은 “안 그래도 돈 나갈 곳이 천지인데, 그거에 집중하다가는 곳간이 거덜 납니다!”라고 만류했지.

결국 통일기준만 전국으로 뿌리고, 지방관아에서 각자 알아서 바꾸는 걸로 일단락 지었다.

“화살도 별로야?”

“예. 저희가 쓰는 화살대하고 길이가 달라서 촉만 빼서 써야할 것 같습니다. 가는 도중에 애들 굴려서, 알아서 화살을 만들라고 하지요?”

연오랑의 나쁜 물이 제대로 들었나보다.

진짜 행보관이 된 것 마냥, 황보인은 병사들이 쉬는 꼴을 못 봐주는 모양이다.

“음... 산동에서 보낸 무기는 그냥 다 녹여서 농기구로 써먹자. 고려인들 밀려오면 분명히 부족할 테니까. 지금 당장 착호군 중에서 개인장구가 부실한 녀석은 없지?”

“예.”

맹수소탕작업을 진행하면서, 착호군은 야금야금 자기 무장을 맞춰나가지 않았나.

무장이 부실하긴커녕 과해서, 합류한 토관에게 조금씩 팔아넘길 정도다.

“원정군에 합류할 특수기술군 명단과 보조군수품 현황은?”

“여기 있습니다.”

역시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황보인은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준비를 끝마쳐 놨나보다.

조선뿐만 아니라 15세기 군대는 대부분 병종의 구분이 흐릿하고, 권한과 임무가 명확하지 않고, 직접 싸우는 전투병과가 아니면 약간 천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보급, 군수분야였고, 조선도 이게 중요한 걸 알면서도 “거긴 전술,전략 능력이 없는 이들이 가는 곳 아냐?”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지.

이래서 착호군의 지휘관이던 연오랑이 “군수사령관.”이라는 희한한 직책을 만들어 자리에 오르자.

다들 “뭐지? 왜 갑자기 뒤로 빠지는 거야? 이번에도 공을 양보하는 건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무튼. 착호군 창설당시부터 연오랑은 21세기의 병과를 본 따서, 조선군에 없던 이런저런 병과를 만들어 시범적용 했다.

헌데 조선내지를 개발하려고 만든 보조군이 신의 한수가 됐네? 조선은 제대로 된 군사 원정작전을 해본 적이 없잖아?

대마도 정벌이야 배타고 하루거리에 위치한 섬을 공략하는 거고, 지금 원정은 요동을 넘어 몽골 초원까지 가야할 판국 아니냐.

무구를 수리할 대장장이, 갑옷을 수리할 가죽세공장인, 부상자를 담당할 군의관, 말을 관리할 수의.

편자와 같은 마구를 관리할 목자, 진지 구축을 위한 건설기술자, 보다 확대된 화포병을 지원할 화기대, 식수 및 식량을 담당할 치중대 등등.

이건 작은 마을이나 도시 하나가, 군대의 뒤를 쫓아 따라다니는 꼴 아닌가.

시간이 촉박한 조정은 두손두발 다 들었고, 착호군을 굴리면서 전문가가 된 연오랑에게 고삐가 넘어가게 됐지.

“인선은 좋네. 이제 호주 건설을 도와주는 일에서 손 떼고, 출정준비를 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

“...”

“...”

이징옥 형제는 차마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판군사 막사 입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괜히 부끄럽고 찔려서 그런 걸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병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신들을 보며 뒷담화를 까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는 토관들은 “쟤들 왜 저러고 벌을 서고 있냐?”라는 눈빛을 뿌렸고.

착호군 출신은 “불쌍하게 됐네. 고생 좀 하겠구나.”라는 안쓰러운 눈빛을 뿌려댔으니까.

“후...”

더불어 둘 때문에 괜히 불려 와서 혼나게 될 인물. 김종서 또한 이징옥 형제를 매섭게 노려보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대체 뭔 쪽팔림인가.

나름 고위직인 그가 일반 병사처럼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 민망할 따름이다.

그렇게 대기하고 있는데, 더욱 낯 뜨거운 상황이 펼쳐졌다.

“종서 장군. 여기서 뭐하십니까?”

“용연군 대감을 기다리고 있네.”

“음...”

조정에 있을 때는 한직에 있다가, 착호군에 들어가 무예실력만으로 급부상해서, 기사대라는 희한한 부대의 지휘관이 된 인물.

한선후는 이징옥 형제를 슬그머니 살피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 챘는지 가볍게 웃어줬다.

“된통 걸리셨군요.”

“그러게 말일세.”

나름 조정물을 먹은 김종서인데,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있나.

이번 기회에 토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의도니... 그 뜻을 따라줘야지 별 수 있나.

“선후. 뭐하고 있나...? 종서 장군이 여긴 어쩐 일로?”

“...”

방금 전까지 말을 타다 온 걸까? 갑옷에 먼지를 잔뜩 묻힌 무관이 등장하자, 김종서의 얼굴을 다시금 가볍게 구겨졌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져서 애써 화제를 돌려봤다.

“특전대장. 오늘도 정찰을 다녀왔습니까?”

“예. 호주 근처에는 이제 여진 부락이 없더군요. 다 귀화했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 듯합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귀찮은 일이 줄었으니 확실히 다행은 다행이다.

김종서는 속닥거리면서 귓속말을 나누는 둘을 애써 무시하며, 상념을 이어갔다.

‘이제 두만강 인근도 정리를 하는 걸까?’

호주의 건설로 압록강 하류 인근은 얼추 정리가 됐으니, 다음 수순은 두만강 인근 아니겠는가.

김종서는 지금껏 함길도에서 근무해 왔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과연 두만강 근처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이곳 호주처럼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까?

‘조선에 우호적인 부족이 많으니 쉽게 될 것 같기도 한데... 한편으론 지금의 정책에 반발하는 이들이 생겨날지도 모르겠군.’

김종서가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를 벌 세워뒀던 인물이, 드디어 막사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앳된 모습이 살짝 남아 있지만, 강단 있는 눈빛을 뿌리고 있는 청년.

태종의 핏줄을 이었지만 외탁하여, 호리호리한 몸을 두터운 호피갑옷으로 감싸고 있는 청년. 태종의 서자인 공녕군恭寧君 이인이다.

“다들 들어오게. 판군사께서 오셨네.”

“예. 대감.”

김종서가 재깍 몸을 놀렸고, 이인은 다른 둘 모두 따라 들어오라고 눈짓했다.

물론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징옥 형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

막사 천막을 젖히고 들어가자, 미리 도착해 있던 연오랑이 넷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지.”

“예.”

모두가 착석하자, 특전대장이라 불린 이정호를 보며 연오랑이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갔다 왔냐?”

“봉황성鳳凰城까지 확인했습니다. 여진부락은 보이지 않았고, 일전에 명의 치소로 사용됐던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동팔참東八站이 그래도 남아 있나 보군.”

“예. 조금만 보수하면 임시로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팔참 주변에서 일전에 말씀하신 옛 성터의 흔적도 확인했습니다.”

이곳 압록강 북쪽에 위치한 천산산맥, 용강산맥 일대는 고구려,발해 시절에 지어놓은 수많은 성채가 존재했다.

다만 버려진지 너무 오래 되서, 요,금,원,명을 거치면서 방치되었다가 복원되었다가를 반복하며 대부분 잊혀져갔다.

이곳에 정주민족이 터잡고 살았으면 성터를 어떻게든 되살려서 써먹었겠지만... 유목민족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보니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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