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93화 (93/538)

93. 챕터17. 나아가다 (3)

저게 만약 적이라면, 그야말로 꼬치가 되지 않을까?

기사대 전용갑옷 옆구리에 웬 이상한 게 달려 있다 했더니, 저렇게 창을 지탱하라고 부착해 놓았나 보다.

“집체훈련이 끝난 후엔, 저걸 집중적 배워야 할 거다. 용연군 대감께선 기사대의 꽃이 기창돌격이라 하셨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

“...”

훈련장을 가볍게 돌아서, 다시 제자리에 정렬하는 기사대를 보며... 이징옥은 대답도 못하고 입을 살짝 벌렸다.

저렇게 큰 창을 가지고 돌격하는 건 처음 본 터라, 그 강렬한 충격에 말문이 막혔나 보다.

*****

21세기도 그렇지만, 15세기에는 전쟁의 전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병사를 집결시키고, 병량을 모으고, 군수물자를 모으는 작업은 티가 날 수밖에 없지.

하여 정보를 혼란시키기 위해 헛소문을 뿌리는 작업을 병행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선이 요동과 우량카이 3위를 쳐들어간다는 헛소문이 퍼졌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고려인과 식량, 가축을 강화의 대가로 준다고 알려졌지.

지금의 중국은 이 작업을 다 처리할 수 없어서, 상인들에게 하도급을 맡겼다.

헌데 연산관에 식량을 가지고 온 상인들은, 조선군을 맞닥뜨리고 나자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원정군이 맞긴 맞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요동과 우량카이 3위를 치러 온 것 같진 않은 거지.

산동상인 왕청과 요동상인 왕민도 그러했다.

홍무제는 요동을 차지하고, 중국본토에서 백성들을 뜯어와 이주시켰다.

한 집안이었던 두 사촌도 그런 이유로 떨어져 지냈고, 시간이 흘러 둘 다 상인으로 성장해 함께하게 됐지.

다만 운석핵꿀밤 이후로 산동과 요동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고, 당연히 상인 간의 거래선도 단단해졌다.

후발주자로 시작한 둘은 이 틈을 비집고 가기 힘들었고, 눈을 돌려 조선에 집중했다.

해서 나름 의주에 거래선을 만들고, 이번 원정에 대한 소문을 수집했는데...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 거지.

끝으로 연산관에 식량을 운반하고선 완전히 확신했다.

조선군은 요동을 치러 온 게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군과 관계를 맺는 게,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잖아?

“그래서. 그 미분이라는 게, 원정군에서 흘러나왔단 말이지?”

“예. 형님. 엄청 특별한 물건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없던 물건 아닙니까? 강남 상인이 푸는 육두구나 후추까진 아니어도, 이곳에선 충분히 먹힐 만한 물건이죠.”

“그건 그렇지. 특히나 소금도 섞여 있는 것 같던데.”

“그럼요.”

둘은 호주에서 풀린 미분을 맛봤고, 요동과 몽골, 여진에게 팔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상품이라 믿었다.

그럼 당연히 원정군의 핵심권력과 줄을 이어야 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다.

넙죽넙죽 뇌물을 받았던 의주목사가 줄줄이 날아간 탓일까?

조선군은 예전과 달리 뇌물을 준다고 쉽게 넘어오지 않았고, 착호군은 더욱 심했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뇌물을 먹이려다가, 오히려 두들겨 맞고 쫓겨난 상인도 꽤 됐으니까.

거기에 중국 또한 전투병과를 이끄는 장군의 입김이 강했기에, 대부분은 착호군 사령관이나 연대장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의주와 호주 사정에 밝은 둘은 달랐다.

진짜 실권자는 군수사령관이라는 특이한 직책에 오른 인물이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조선왕자가 보조병과에 속해 있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그리하여 둘은 사정사정해서, 뇌물이 아닌 대놓고 건네주는 선물을 통해 안면을 텄고.

그 줄을 타고 올라가 만난 인물이 바로 황보인이었다.

“후... 떨리는 군. 그 군수사령관이라는 자가 꽤나 어리다지?”

“그렇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소문이 마구 섞여 있어서 믿긴 힘들지만... 아무튼 평범한 인물은 아닌 것 같더군요.”

“그건 그렇겠지.”

“아무튼 이번에 꼭 거래를 터서, 한몫 단단히 챙겨봅시다. 형님. 우리가 평생 뒷줄에 있을 수는 없지 않소?”

“그래. 맞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했는데, 뭐라도 얻어가야 하지 않겠나.

둘은 각오를 다졌고, 이윽고 황보인을 만나 군진 가운데 위치한 막사로 향했다.

동팔참을 넘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어렵지도 않았다.

역참이라고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그냥 천산산맥을 뚫고 지나가는 산길에 불과했으니까.

관리되지 않은 조선의 산길에 비교하면, 차라리 이쪽이 더 사정이 나은 편이지.

다만 버려진 역참에 고려인이 머물 숙소를 짓느라 일주일이나 걸렸다.

그냥 돌파했다면 이삼일 안에 연산관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손망실한 마차는 한 대. 다쳐서 패사한 말이 3필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네.”

역시 강원도 산을 타넘으며 돌아다닌 보람이 있다.

마차를 부셔먹지 않고 온전히 가져온 걸 보면, 확실히 보조군 소속 마부들의 실력도 일취월장한 모양이다.

당연히 연오랑이 열심히 개량한 마차가, 기존 마차보다 훨씬 좋아서 그런 것도 있고.

“고려인 분류는?”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이젠 다들 이골이 났죠.”

“흐음.”

연오랑은 만족스런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보조병과인 특수기술군은 기업출신의 기술 장인이 모여 있고, 기업가청년들이 이들을 통솔했다.

왜냐고? 이들은 태종이 긁어모은 온갖 사람들에게 직업교육을 시켜, 기업사원으로 만들었으니까.

더불어 착호군에 끌려온 붓쟁이들을 교육시켜 행정능력을 키웠고, 이 행정병과로 착호군과 착호군을 호종하는 수만명의 보조인원을 통솔했지.

즉. 고려인을 관리하는 건, 원래 하던 일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뭐가 어려울까.

정말로 흠잡을 것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고려인들이 조금 당황했지.

고향, 출신, 특기, 적성, 직업 등을 꼬치꼬치 캐물어서 분류했고, 이들을 모아서 앞으로의 계획까지 친절하게 일러줬으니까.

그냥 가족끼리 가서 평안하게 농사나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고려인 말고 다른 이들도 왔나?”

“많지는 않지만 더러 있습니다. 계획대로 전부 받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말. 다만 이곳 지리에 밝은 이들은 따로 빼서, 정보를 추려 내봐.”

“옙.”

황보인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연산관 동쪽 지역은 고려인, 한족, 여진족, 몽골족을 가리지 않고 혼잡하게 마을이 섞여있었다.

요동은 이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어서, 그냥 세금이나 조금씩 뜯어가는 수준이었는데...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이들은 그대로 강도로 변신해서 상인과 요동마을을 약탈해댔다.

당연히 보복이 이어졌고, 이런 세월이 지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지는 게 불을 보듯 뻔하지.

해서 고려인 말고도, 이 근방에 있던 마을이 통째로 귀화하겠다고 몰려온 거지.

공짜노예들이 계속 불어나는 거니, 연오랑 입장에선 최고의 상황 아니냐. 가리지 않고 다 받았다.

첩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조선내지에 박아 넣을 건데, 첩자가 뭔 수로 소식을 알리겠어.

“연대는 어디까지 갔나?”

“아마 지금쯤이면 본계 일대에 있을 겁니다. 일주일이면 계획대로 태자하太子河와 혼하浑河상류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나쁘지 않네.’

연오랑은 머릿속으로 요동지도를 그려봤다.

고려인을 받고 호주로 보내는 작업을 하려면, 연산관에서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머물러야 했다.

이 시간을 그냥 날려버릴 수 없으니, 연대별로 쪼개서 내보냈다.

연대장급의 지휘관들은 다들 네임드 인물이니 능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편된 일천 기병을 이끌어 본 적이 드물잖나.

기병연대가 어떤 능력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정찰-기동-포위-섬멸로 이어지는 실전훈련을 해봐야지.

해서 동쪽으로 뿔뿔이 뻗어나가 여진부락을 파악하고, 옛 고성을 찾고, 주둔지로 쓸만한 곳을 찾으며 어설프게나마 지도를 만들고 있다.

일천기병이면 여진부족이 감히 덤비지도 못할 테니, 딱히 위험할 것도 없을 테고.

“돌아오게 되면 특전대 3개 중대를 호주에 남길 거다. 원정기간 동안 여진부락을 찾아다니면서 거래하고, 동태를 파악해 지도를 완성해라. 적어도 파저강 일대까지는 확인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특전대장 이정호는 재깍 고개를 끄덕였다.

“행호. 군종승들은 어떠냐? 잘 적응하고 있냐?”

“특별한 건 없으나... 기마에 익숙하지 않은 승려가 대다수이니, 교관과 훈련시간을 늘려주셨으면 합니다.”

군종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행호는 머뭇거림 없이 답을 했다.

그는 대자암의 주지승으로. 용연현에 모여 조선불교 공의회에 참석했고, 몇번 만나본 연오랑이 어떤 인물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허례허식 따윈 없는 인물 아니냐.

지금 물음이 떠보는 게 아니라, 진짜로 고충을 묻는 걸 아는 터라.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나 다를까. 연오랑은 가볍게 허락했다.

“그리고... 저희가 입을 갑옷도 필요합니다.”

행호의 말에 다른 부대장들이 살짝 놀란 눈치를 보였지만, 그는 부끄러움 없이 하답을 기다렸다.

지금까지야 승복만 입고 다녀도 상관없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부처님을 외친다고 화살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건, 여말선초 때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사냥한 가죽과 요동상인이 가져온 물건이 있으니... 군수대에서 만들어서 보급해라.”

“알겠습니다.”

군수대장의 대답에, 행호는 안도의 미소를 숨기지 않고 “아미타불”을 외쳤다.

‘나름 잘 적응하고 있나보네. 하긴 군종승이 실수하면 난리피울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지.’

연오랑은 행호의 처지를 아는 터라, 그저 히죽 웃어줬다.

원정군에 군종승을 포함시킬 때도, 조정은 나름 시끌시끌했다.

골수 유학자들은 “땡중 놈들이 군대에 끌려가다니 잘됐구나.”라는 반응이었고, 사정을 조금 아는 이들은 “군종승? 그게 원정군에 왜 필요하지?”라고 의심했다.

세종과 태종은 “조선불교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데, 빨리 결정내리라고 압박하는 건가?”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연오랑은 순수한 마음에서 군종승을 끌고 왔다.

21세기 군대에 괜히 군종사제가 있겠냐.

15세기는 21세기에 비해서 감정적으로 무딘 시대지만, 그래도 사람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선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법이다.

더욱이 고려인을 비롯해 이민족을 다독이는데, 벌써 즉효약 수준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않나.

착호군에 유학을 공부한 녀석들이 많이 있지만... 다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을 찾게 될 거다.

더불어 전투 중 사망하게 되면, 승려가 장례를 치러주는 것과 그냥 땅에 묻는 건 느낌이 다르잖아?

얘들 사기진작 및 보존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거다.

‘여기서 공을 세우고 나면, 꼰대 같은 놈들도 입을 다물겠지.’

연오랑은 조선불교 공의회를 놓고 딴지를 걸었던 조정관리들을 떠올리며, 군종승들이 제발 한방 먹여주기를 바랐다.

“요동성에 도착하고 나면, 인근에 작은 사찰을 만들 생각이다. 그곳에 남을 사람을 미리 추려 놔라.”

“...?”

‘뜬금없이 요동땅에 조선 승려가 왜 사찰을 만들까?’싶은데... 연오랑이 생각 없이 명하진 않았을 터, 행호는 반문하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아직 송환되지 못한 고려인이 있을 테니 위무하고, 어지간하면 전부 조선으로 되돌려 보낼 방법을 찾아봐라. 돈이 필요할 테니, 호주를 오가는 요동상인을 통해 지원할 거다.”

“예.”

“너희만 있으면 일이 안 돌아갈 거고... 조정관리와 착호군 임시관리가 함께 갈 거다.”

“...”

“일처리는 그들이 알아서 할 터, 승려들은 요동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일에 집중하도록. 기왕이면 몽골인과 여진인에게 불법을 강연하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역시... 이래서 외국어를 배우라고 한 걸까?’

행호는 이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 걸 알고서, 속으로 조심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첩자로 쓰겠다는 건데... 처신을 잘해야 뒤탈이 없을 거다.

군종대를 시작으로, 기사대, 판군사대, 훈련대, 군의대, 보급대, 군수대, 화기대, 치중대, 식수대 등에게 명령을 내리는 회의가 끝나고.

황보인이 조용히 다가와, 기다리던 이들이 도착했다고 일러왔다.

막사 한편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왕청과 왕민.

둘은 원정군이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게 조선이라서 다른 건지, 원정군이 특별한 건지 모르겠다만.., 콕 집어서 말하긴 힘든데, 하여튼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이 분위기를 만든 게 바로 연오랑이니, 그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들어오게.”

“옙!” “예. 장군님.”

둘은 황보인에게 넙죽 인사를 하고선, 막사 안으로 들어가 다시금 넙죽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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