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99화 (99/538)

99. 챕터18. 부딪치다 (3)

쾅!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저 멀리 거목들 사이로 힐끔 보이는 마을에서 먼지구름이 확 피어올랐다.

“진격 신호를 보내라.”

“옙!”

대대장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삐이익! 날카로운 명적소리가 피어오르자.

소대별로 뭉쳐서 얇게 퍼져 있던 원정군이, 고함소리와 울음소리로 난장판이 된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이곳은 반농반목이 가능한 땅인 터라, 마을 주위로는 아직 씨를 뿌리지 않은 밭이 한가득.

몽골인들이 열심히 일궜을 땅을 마구잡이로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마을 포위하며 달려오는 조선기병을 맞이해준 건, 마을을 둘러싼 목책을 박살내는 대장군전.

쾅! 굉음과 함께 떨어진 대장군전은 사람 키 만큼 되는 목책을 박살냈다.

몇몇은 목책을 맞아 함께 산화해 사방으로 파편을 뿌리고.

오탄은 목책 옆의 가옥에 틀어박히거나, 그냥 땅에 맞아 허리가 부러져 우당탕탕 굴러갔다.

쉐에엑! 비산하는 나무토막 사이로 하늘이 까맣게 물들었다가 맑아졌다.

목표를 정하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쏘아댄 화살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목책 너머로 쏟아졌다.

“1소대. 2소대! 목책을 부셔라!”

“옙!”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활을 회수한 기병들이 무너지지 않은 목책으로 달려들었다.

엄호사격이 계속 이어지자, 난데없이 두들겨 맞은 몽골 부락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고.

기병소대는 순식간에 목책에 달라붙어, 사방으로 갈고리 밧줄을 내던졌다.

“당겨!”

“이랴!”

수십필의 기마 앞발이 허공을 박찼고, 히히힝! 전마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지끈. 목책이 뽑혀져 나와 질질 끌려갔다.

조선기병이라고 몽골기병의 공성방법을 못 따라할 건 없잖아?

자신들의 방식으로 공격당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겠지만, 조선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살을 날려댔다.

“중대 돌격!”

“돌격!”

빠진 이처럼 목책이 군데군데 구멍 나자, 사방에서 벌떼처럼 밀려온 조선기병들이 마을로 돌입했다.

편곤을 앞세운 기병을 향해 황망한 눈빛을 숨기지 못한 몽골인이 활을 들어 대항하려 했지만, 쉐엑! 어느새 뒤따르던 기병이 화살을 쏘아내 몽골인을 무너뜨렸다.

만곡도를 들고 튀어나온 이들, 기창을 들고 튀어나온 이들. 그냥 맨손으로 튀어나와 소리치는 이들.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조선기병은 자비심 따윈 없는 우악스런 공격을 선사했다.

쾅! 가까이 다가온 몽골인을 전마의 가슴으로 들이받고, 기창을 내질러 옆에서 함께 쓰러지는 이의 목덜미에 꽂아 넣었다.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1,2소대의 뒤론, 뒤따르는 소대가 계속해서 곡사로 화살을 쏘아대며 장애물을 치워냈다.

콰지직. 가속을 받은 전마는 땅이건 시체건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몽골인이건 가리지 않고 짓이겨댔고, 기병들은 열심히 훈련한 대로 편곤을 휘둘러댔다.

역시 보병을 상대할 땐 편곤만큼 좋은 무기가 없지 않나.

대마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뚝배기 학살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음!”

3중대장 성승 또한 거침없이 편곤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은 포위되어 사방으로 공격받고 있었고, 모든 곳에서 조선기병이 날뛰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기를 든 자는 죽이고, 항복하는 자는 살린다.

간단명료한 무식한 명령 아닌가.

조선기병들은 그간 미친 듯이 굴렀던 설움을 풀 듯, 살풀이를 벌였고 성승 또한 마찬가지였다.

포격으로 마을 중심부는 쑥대밭이 되어버렸으니, 저 먼지구름이 가득한 곳에 이 부락의 주요 인사들이 널브러져 있지 않을까?

성승은 중대를 이끌고, 잔챙이들은 무시하고서 곧장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느닷없는 기습을 받은 탓일까.

몽골인 대다수는 말에 오르지도 못하고 쓰러졌고, 가까스로 말에 올라 도주하려는 이들은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고 주저앉았다.

성승은 사방으로 날리는 화살의 비호를 받으며, 계속해서 나아갔고... 드디어 제대로 된 상대가 나타났다.

흙먼지를 잔뜩 먹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빳빳한 말가죽으로 만든 몽골식 갑옷을 입은 이들이다.

인사는 역시나 화살비.

몽골병사는 머뭇거리지 않고 화살을 쐈고, 성승은 전마의 목덜미에 몸을 바짝 낮추고 계속 달려 나갔다.

서로 매섭게 달리고 있는 탓인지 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고, 성승은 냉큼 편곤을 쳐올려 휘둘렀다.

휭! 매서운 칼바람과 함께 몽골 전마의 머리가 부서졌고, 성승은 망설임 없이 편곤을 놔버리곤 기창을 뽑아들었다.

기병이 무서운 건, 다양한 무기를 잔뜩 짊어지고 다닐 수 있기 때문 아닌가.

말안장에 걸어놓은 기창을 뽑아, 순식간에 손목을 비틀어 역수로 잡고 내리찍었다.

“크으...”

몽골어를 못 알아듣지만, 비명은 다 똑같지 않나.

기마와 함께 쓰러진 몽골병사는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퍽. 쓰러진 병사를 전마의 옆구리로 밀쳐 밟아버렸고, 옆에서 몽골군 특유의 만곡도를 휘두르는 몽골병사에게 기창을 내지르려는 찰나.

콰쾅! 그보다 먼저 달려든 건, 어느새 사방에서 밀려온 조선기병들.

중대원 중 한명이 성승을 노리던 몽골기병의 옆구리에 기창을 쑤셔 박았다.

이들 또한 편곤을 집어넣고 기창을 휘둘렀는데, 하나같이 비슷한 방식으로 매섭게 기창을 찔러댔다.

휭. 휘두르는 방향과 휙! 매섭게 내지르는 방향이 모두 같으니, 이런 기병난전에 어울리지 않게 간격이 촘촘했던 거지.

확실히 집체교육을 받은 성과가 나타났다.

이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뭉쳐서, 한명의 몽골기병을 향해 서너명의 조선기병이 달라붙어 기창을 박아 넣고 있었다.

강철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처럼 움직인다.

몽골기병의 기창을 한명이 막자, 그 옆에 있던 중대원이 기창을 내질러 움직임을 봉쇄하고, 반대편에 있던 중대원이 기창을 피해 몸을 비틀던 몽골기병의 허벅지에 기창을 박아넣었다.

“크억!” 후학! 갑옷을 뚫고 들어간 창날에, 피가 묻어나오기 무섭게 몽골기병은 비명을 내질렀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중대원 한명은 전마를 바짝 붙어 몸으로 밀어붙였다.

몽골기병이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치며 자세가 흐트러지자, 숨통을 끊어줄 마지막 일격이 날아온다.

어느 틈에 옆에 나란히 위치한 중대원이 기창을 연거푸 쏟아내 몽골기병을 낙마시켰다.

“끄억!” “크헉!” “헙...!”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이어졌는데, 하나같이 몽골어로 외치는 신음이다.

차륜전을 하듯 기창의 파도가 연거푸 이어지고.

벌떼처럼 우르르 몰려와서, 일제히 전마와 몽골기병에게 기창을 쑤셔 넣거나.

누군가는 황망한 표정을 한 몽골기병의 얼굴을 과녁삼아, 바로 코앞에서 화살을 쏴댔다.

백명의 중대원은 삼십여명의 몽골기병을 포위해 순식간에 난도질 해버렸다.

“히이익!”

그 모습을 봤는지 달려오던 몇몇 몽골기병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도주하려 했지만...

콰쾅! 반대편 가옥을 훑고 튀어나온 다른 중대기병이 따라붙더니, 사정없이 편곤을 내리쳐 짓밟아 버렸다.

어느 몽골기병은 묘기를 부리듯, 편곤을 피해 몸을 빙글 돌려 말배를 붙잡고 거꾸로 달라붙었지만.

어느새 다가왔는지. 또 다른 중대원이 휘두른 공격이 날아왔다.

옆구리로 들이쳐 땅을 긁으며 튀어 오른 편곤이, 거꾸로 매달린 몽골기병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데구그르.. 말 다리에 껴서 몽골기병이 쓰러지자, 옆에 있던 다른 몽골기병들 또한 자세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고.

“쏴!”

쉐에엑! 어느새 반대편 집을 털고 튀어나온 소대가 일제히 화살을 날려 몽골기병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중대원들이 쓰러진 몽골기병을 확인사살하고 재정렬을 하려던 찰나.

“우라하!”

“코구가다!”

저편에서 또 다른 몽골기병 백여명이 결집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헌데 그들을 반긴 건 조선군의 화살이 아니라, 뜬금없이 하늘에서 날아온 굉음.

콰콰쾅! 화기대가 쏜 철환이 몽골기병을 휩쓸고 지나갔다.

주먹보다 조금 큰 철환이지만, 화약의 힘을 듬뿍 받은 철환은 아닌가.

퍼퍽! 재수도 없지. 얼굴에 철환을 맞은 몽골기병은 그대로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쓰러졌고, 힘을 잃지 않은 철환은 뒤따르던 몽골기병의 팔을 두 동강 냈다.

아직도 힘을 잃지 않아 땅을 통통 튕기며 날아간 철환은, 그 뒤를 따르던 몽골기마의 가슴팍에 박혔다.

퍽! 소리와 함께 전마의 가슴팍은 움푹 파였고, 전마는 절로 앞무릎이 굽혀지며 기수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졌다.

나머지 철환도 마찬가지의 위력을 뽐낸다.

정통으로 맞지 않아도, 철환은 땅을 튕기며 날아올라 몽골기병들을 우르르 치고 튕겨나갔다.

“크억!” “끄어억!”

고작 열 개의 철환이지만. 포격은 몽골기병의 돌격을 한방에 돈좌시켜버렸고, 뿌연 먼지구름과 함께 비명소리만 이어졌다.

“쏴!”

이미 반항조차 못하는 상태 아닌가.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허우적거리는 몽골기병에게, 정렬을 마친 중대는 화살비를 먹여줬다.

그때. “적장을 잡았다!” “와아아!”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성승이 가려던 마을 중심부에서부터 조선기병들의 환호소리가 퍼져나갔다.

조선말을 못 알아들어도 무슨 뜻인지 아는 걸까?

차마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던 몽골인들, 그리고 노예로 잡혀온 요동인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반대로 집밖으로 나와서 무기를 들고 있던 몽골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만... 조선기병은 아랑곳하지 않게 계속해서 피를 뿌리며 휩쓸고 다녔다.

부락의 핵심인사들은 살려 놔봐야 거추장스럽지 않나.

무기를 든 몽골병사들은 모조리 땅으로 돌려보내줬다.

3연대는 각자 맡은 구역을 차근차근 겉에서부터 갉아먹으며 좁혀왔고, 성승이 이끄는 3중대도 중심부로 계속해서 밀고 들어갔다.

대장군전 뿐만 아니라 철환도 마구잡이로 쏴댔는지, 중심부로 가면 갈수록 구멍이 뻥뻥 뚫린 집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마구 쏴댄 철환에, 정통으로 맞은 몽골병사도 있는 모양이다.

한곳에 뭉쳐 쓰러져 있는 몽골병사들의 복부에는,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니까.

그렇게 계속해서 앞을 헤치고 나아가자, 모두의 환호를 받고 있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만만하게 몽골병사의 목을 잘라 기창에 꽂아놨는데... 잘린 머리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걸로 보아, 집에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모양이다.

다만 저걸 들고 있는 사람이 문제다.

“연대장님!?”

“하하하!”

이순몽은 자신이 연대장이라는 걸 잊어먹기라도 했는지, 두정갑에 시뻘건 피를 잔뜩 묻혀놓고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화기대와 보조중대를 대대장에게 맡겨놓고, 결국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시원하게 기병돌격을 했나 보다.

“이놈이 웅가라고 하더군. 모두가 볼 수 있게, 한바퀴 돌고 와라.”

“옙!”

시원하게 몸을 풀어서 그런지, 중대장 중 하나는 피 묻은 얼굴을 닦지도 않고 시원하게 웃어댔다.

쉐엑! 하늘을 뚫고 날아온 짧은 화살이 날아온다.

몽골기병은 갑옷이 펄럭이도록 정신없이 채찍질을 했지만, 보다 빠르게 날아온 화살이 말 옆구리에 우수수 틀어박혔다.

히히힝! “커컥.” 옆구리가 뚫린 전마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굽혀지며 땅을 굴렀고, 몽골병사 또한 허리가 부러지는 충격을 느끼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끄으...”

말허리에 깔려 발버둥치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긴 그림자가 먼지구름과 함께 다가왔다.

“너흰... 누구냐.”

입가에 피를 뱉어내며 말을 토해내 보지만, 먹빛 갑옷을 입은 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거냐?”

“나도 몽골말은 모르는데.”

“뭐 어때. 일단 데려가면 되겠지.”

말을 받은 이는 열심히 달려온 대지를 굽어봤다.

저쪽에 하나. 저쪽에 또 하나.

평원 저편에 점점이 먼지구름과 붉은 기운이 깔려 있었는데, 모두가 도망치던 몽골기병이 죽은 흔적들이다.

“이놈이 마지막인 거 같은데?”

“맞아.”

몽골병사의 생사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1연대에 파견된 특전대원들은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몽골병사의 신음소리가 점점 줄어들자,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쓰러진 전마를 치우고, 전마에 실려 있던 짐을 챙기고, 몽골병사를 완전히 나체로 만들어선, 꽁꽁 묶어 예비마에 짐짝처럼 실었다.

저렇게 실린 인간짐짝이 총 일곱. 이쪽에서 떠돌던 몽골기병을 전부 사로잡았다.

낙마하면서 재수 없게 목이 부러진 한명만 빼고.

“편전은 모두 회수했지?”

대답대신 특전대원은 히죽 웃으며, 말에서 뽑아낸 피 묻은 화살을 흔들었다.

“갑옷은 어때?”

특전대원은 먼지를 털어낸 몽골식 가죽갑옷의 내피를 살피고, 냄새를 맡아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확신에 찬 표정이다.

“이음새나 내피의 헤진 흔적이나... 이거 최근에 만든 갑옷 같은데? 다른 것도 다 그렇고.”

“역시...”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가자.”

이윽고 정리가 모두 끝나자, 바람처럼 왔던 기병들은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