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00화 (100/538)

100. 챕터18. 부딪치다 (4)

1연대에 배속된 특전대원들은 1연대의 눈이 되어 사방팔방을 싸돌아다녔고, 이들은 하나같이 몽골부락을 찾아내거나 정찰 중인 몽골기병을 사냥해 사로잡았다.

반쯤 죽은 상태로 사로잡은 이들을 모두 데려와 취조를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상치 않은 정보가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이놈들 갑옷이 하나같이 통일되어 있었는데, 그냥 예전에 입던 갑옷을 다시 꺼내 입은 게 아니었다.

이건 누군가 대량으로 가죽갑옷을 만들어 뿌렸다는 뜻이다.

“천호장 토가바토르가 떠나지 않은 게 확실한 모양입니다.”

“음...”

1연대장. 최윤덕은 특전대원과 수색중대원들이 긁어 온 소식을 종합하며 신음을 흘렸다.

몽골군 체제는 만호, 천호, 백호로 이어졌고, 만호는 일만호의 부락민을 거느린 영주이자 장군이었다.

천호장은 대략 천명정도의 병사를 공출할 수 있었는데, 유목민족 특성상 병사를 끌어 모으면 얼마든지 더 늘릴 수 있었지.

“천호장쯤 되는데, 왜 원정을 떠나지 않았을까?”

“글쎄요...”

최윤덕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그 속을 누가 알겠나. 중국땅을 차지하는 것 보다 자기 영지를 지키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

운석핵꿀밤으로 명이 망한 이후. 명에 투항했던 몽골 부족은 전부 봉기를 일으켰다.

사실 봉기라고 해도 특별히 거창할 건 없었다.

어차피 명은 만리장성 너머를 직접통치할 수 없었고, 기존 천호장등의 몽골귀족을 그대로 명의 관리로 임명해 간접통치를 했으니까.

원에서 명으로 소속을 옮긴지 한세대도 지나지 않았으니, 명이 망하자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간 거지.

원래 역사에서도 15세기 후반은 되어야, 갈기갈기 찢어진 몽골부족이 대충 합쳐져서 6부족 연맹이 탄생한다.

지금은 안 그래도 자기들끼리 싸우기 바쁜 시절인데, 항명출신 몽골부족까지 싸움에 끼어들면서 난장판이 두 배로 커진 상태.

반대로 원정군은 그만큼 쉬운 싸움만 하면서, 몽골부족을 때려잡을 수 있었는데... 드디어 큼지막한 덩어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우량카이 3위가 소규모 국지전을 벌이며 기만책을 썼지만... 몇 달 동안 전쟁준비를 했는데, 흥안령 너머로 소문이 흘러들어가는 걸 막을 수 있나.

다만 세를 규합하고, 남은 부족을 하나로 뭉칠 만한 거대 부족은 모두 중국원정을 떠났다.

원정에 참여하지 못한 부족은 그만큼 잔챙이거나,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터...

후자인 토가바토르는 나름 분홍빛 미래를 그려봤을 테지만, 뜬금없이 조선군이 쳐들어 올 줄은 몰랐겠지.

“음...”

‘이놈만 치우면, 한동안 앞을 가로막을 세력은 없을 것 같은데...’

어설프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지도를 보며, 최윤덕을 생각을 이어갔다.

원정군은 길잡이들의 정보를 취합해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고, 특전대를 뿌려 주요산맥, 강줄기, 옛 고읍의 위치를 확인하며 지도의 정확성을 더했다.

여기에 원정군 연대가 진군하면서, 지리감 소속 지도제작자들이 보다 완벽한 지도를 만들어가는 식이었지.

해서 최윤덕 앞에 놓인 지도는 어설프지만, 충분히 쓸 만 했다.

‘사령부는 한참 뒤에 있으니, 당장 부르긴 힘들 터...’

연오랑이 이끄는 사령부의 전투병과를 빌리면 좋겠지만... 그쪽은 각 연대가 털어오는 몽골부락민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거다.

그가 이끄는 1연대 또한 부락 하나를 초토화시켜서, 근 오백명에 가까운 포로와 수천두의 가축을 사령부로 보내지 않았나.

대부분의 연대가 성과를 냈을 테니, 거긴 거기대로 정신없지 않을까?

“가까이 있는 연대가 어디지?”

“김효성 장군이 이끄는 7연대와, 조비형 장군의 4연대입니다.”

대대장은 지도의 두 곳을 짚으며 답했다.

“음... 이곳. 홍산으로 집결한다.”

“알겠습니다!”

*****

“토가바토르라... 아는 거 있나?”

“원의 천호장이었다가 명의 지휘첨사指揮僉事로 임명됐던 용톤의 아들이라고 하더군요.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새파랗게 어린 아이랍니다.”

“큭...”

4연대장 조비형은 대대장의 대답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아직 세상경험이 없는 녀석이니 격장지계에 쉽게 빠질 거라 말하는 것 같은데... 지금 북정원정군 또한 새파랗게 어린 녀석의 손에 들려 있지 않나.

“용연군 대감쯤 되는 인물일지도 모르지.”

“음... 그랬다면 녀석이 고작 천호장에 머물고 있겠습니까? 이미 파림좌기巴林左旗를 넘어서 영역을 확장했겠지요.”

‘하긴...’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조비형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맞는 말이니까.

그는 평생을 무관으로 생활하며 북변, 삼남을 가리지 않고 기선군과 영진군을 조련해 왔다.

그런 그조차 연오랑의 척호군을 보며 매번 같이 감탄하는데, 그와 같은 인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랬다면 이미 세력을 이루고도 남았을 거다.

“과연 계획대로 나올지가 문제인데...”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들도 소식은 들었을 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저들일 테니까요. 이미 약을 잔뜩 올려놨으니, 이번에는 끝장을 보려 할 겁니다.”

“흐음...”

조비형은 황토와 낮은 구릉, 붉은 기운이 잔뜩 서린 돌산들을 굽어봤다.

괜히 이곳을 적봉 혹은 홍산이라 부르는 게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몇 번 가볍게 부딪쳤던, 몽골기병이 뿌린 피 때문일지도 모르고.

조선땅에선 볼 수 없는 붉은 황무지는 조비형의 안구에 낱낱이 틀어박히며,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무관이 되어 전례 없는 막강한 정병을 이끌고 원정을 나왔는데, 이보다 더 큰 영광과 감격이 있을까.

매일 같이 낯선 땅을 밟고 있음에도, 이 감정은 사라지질 않았다.

조비형 또한 원과 명에 눌려 살았던 시대를 겪은 인물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요와 금의 중심지였던 곳이라...’

이 황무지 산맥 옆으로 노합하(라오하 강)가 흐르는데, 이 물줄기의 종착지가 바로 파림좌기다.

파림좌기는 요나라의 수도였던 상경임황부가 있었고, 금나라가 들어서면서 북경임황로가 되었을 정도로, 나름 역사가 있는 대도시였지.

허나 몽골이 침공하면서 개박살이 났고, 이후 명이 들어서면서 견제를 심하게 받은 터라... 지금은 그냥 그저 그런 도시이자 고을이 됐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 아닌가.

입지는 나름 괜찮은 터라, 스스로 천호장이라 주장하는 토가바토르가 이곳을 버리고 중국원정을 떠나지 않은 듯싶다.

“배치를 완료했습니다.”

“좋아.”

조비형은 상념을 잡고,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전군 전진.”

“충성!”

대대장, 중대장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먼지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최윤덕의 지원요청을 받은 4연대와 7연대는 곧장 홍산 근처로 모여 파림좌기로 나아갔다.

조선군은 모든 몽골부락을 다 정리할 수 없고, 도망친 몽골인은 토가바토르에게 조선군의 침공을 알렸다.

어쩌면 우량카이3위, 요동군의 대대적인 공격소식이 전해졌을 지도 모르고.

다만 너무 늦게 소식을 접했고, 반대로 조선군의 이동속도는 상상외로 빨랐다.

뒤처리 따위는 전부 사령부에 맡기고, 완편된 기병연대는 전투-행군만 지속하면서 흥안령을 쓸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토가바토르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버리고 떠나기는 이미 너무 늦었고, 뒷감당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파종을 할 시기인데, 이 시기를 놓치면 올해는 쫄쫄 굶어야 한다.

그럼 애써 긁어모은 부족이, 파도를 맞은 모래성처럼 흩어질 게 아닌가.

먼 옛날 몽골이 침공했을 때. 금나라 시절 성벽과 도시는 다 파괴해놨고, 그 후 복원도 안 했으니... 수성전은 꿈도 꿀 수 없다.

나아가 지금 싸우지 않으면 조선군이 얼마나 더 충원될지 모른다.

당장 눈앞에 등장한 삼천기병도 막막한데,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 그땐 아예 싸워보지도 못할 거다.

결국 토가바토르는 울며 겨자 먹기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지.

“전장이 좁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크...”

최윤덕은 대대장의 물음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지막한 구릉과 황토빛 대지, 길게 늘어지는 강과 씨를 뿌리지도 못한 밭들.

생경하게 생긴 나무들과 시야를 가로막는 산세가 없는, 눈이 시원할 정도로 탁 트인 대지.

조선에서 볼 수 없는 풍경 아닌가.

그런데도 전장이 좁지 않을까 걱정을 하다니... 벌써 이곳 땅에 적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 최윤덕은 마음 한편에 대대장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지.’

순수한 기병끼리 부딪치는 전장은 수십키로를 넘나드니, 지금 이곳 평원은 좁은 전장이 맞다.

파림좌기는 흥안령 산맥에 껴 있는 분지에 세워진 도시다.

동쪽은 노합하의 물줄기가, 서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파림좌기가 있고, 남쪽과 북쪽은 산맥이다.

몽골기병이 크게 우회해서 후방을 치는 공격을 할 수가 없지.

나아가 원정군은 오롯이 기병만 있으니, 딱히 전방과 후방이라는 구별도 애매하니...

만약 몽골기병이 군을 쪼개서, 양동작전을 하면 오히려 이득이다.

“우리에겐 나쁠 거 없지 않나.”

“예.”

둘은 히죽 미소를 함께 지었다.

전장이 좁은 건 전혀 나쁠 게 없다.

기병의 기동력을 살려서 마구 휘몰아칠 필요 없이, 원정군이 차근차근 파림좌기를 압박하며 진군하면 알아서 튀어나올 테니까.

바로 지금처럼.

“장군! 적이 움직입니다.”

“수는?”

“깃발의 수로 보아 대략 이천정도 되어 보입니다.”

‘예상대로군?’

천호장이 뽑아낼 수 있는 병력에, 여기저기에서 도망쳐온 피난민에, 부족민 중에서 싸울 줄 아는 이들을 골라 뽑으면 그 정도 될 거다.

여긴 몽골인과 한족이 같이 살았고, 땅이 쓸 만한 만큼 반농반목 생활을 한다.

저 위쪽의 몽골초원처럼, 모든 부족민이 전부 말 타고 싸우는 병사가 아니지.

물론 병사의 비율이 중국,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긴 하지만... 이천정도면 뽑아낼 만큼 다 뽑아낸 숫자일 거다.

“우군과 좌군 모두 전진한다.”

“옙!”

김효성이 이끄는 7연대가 우군, 조비형이 이끄는 4연대가 좌군. 최윤덕이 이끄는 1연대가 중군을 이뤘다.

기병임에도 흡사 보병 전열을 만든 것처럼, 세 개의 덩어리로 쪼개져 크게 그린 부채꼴을 만들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쏴!”

쉐세섹! 하늘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가, 밝아졌다를 반복했다.

몽골기병이 쏘아대는 화살이 조선기병을 향해 날아들고, 조선기병 또한 맞대응을 하듯 화살을 날려댔다.

‘후...흡.’

조비형은 심호흡을 하며, 저기 아른거리는 몽골기병을 보며 손에 힘을 줬다.

편전을 쏘려면 총열 역할을 하는 통아가 있어야 했고, 이건 기병이 쓰기에는 은근히 거슬리는 물건이었다.

무기를 교체하려면, 덜렁거리는 통아를 치웠다가 다시 빼서 손에 끼우길 반복해야 하니까.

정찰기병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격전을 앞두고선 보통 삼가는 편이지.

하지만 어려서부터 활쏘기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비형 아닌가.

조선제일명궁을 꿈꾸는 그에겐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그는 매에 빙의한 것 마냥 시선을 집중해, 얼굴 형태만 보이는 몽골기병을 겨냥해 애기살을 날렸다.

‘맞았군.’

쉐에엑! 순식간에 사라진 편전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저 멀리서 몽골기병이 휘청거리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힐끔 주위를 살피자, 굳이 그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잘하고 있다.

‘놀랍구나.’

속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착호군은 정규군을 상대로 싸운 게 이번이 처음인데, 두려움이나 어설픈 모습 없이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름 여진족과 싸워본 그가, 딱히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완벽하다.

‘용연군 대감이 자신한 이유가 있었군.’

원정군을 연대별로 쪼개서 계속 훈련시키고 실전에 투입할 때.

다들 “이 정도 숫자로 될까? 대병으로 움직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래도 몽골군인데?”하는 의구심이 들긴 했었다.

허나 의심했던 조비형이 부끄러울 정도로, 다들 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착호군이 우스갯소리로 “몽골군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건 아니잖아?”라고 했던 건, 허풍이 아니라 자신감의 발로였다.

제 역할을 못한 건, 오히려 조정에서 파견한 자신이다.

‘풋내기들에게 질 순 없는 노릇.’

조비형은 아무도 모르게, 다시금 각오를 다졌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체력을 배분하면서 쏴라!”

소대깃발을 휘날리며, 소대장들은 먼지를 먹어가며 연신 목청을 높여댔다.

몽골기병에겐 안타깝게 됐지만, 이곳 좁은 전장은 그들이 좋아하는 스웜전술. 우르르 몰려와서 화살 쏘고 튀어서 유인하는 전술을 쓸 수가 없다.

원정군이 유인을 왜 당하겠는가. 그냥 우직하게 밀고 가면 파림좌기에 닿을 거다.

나아가 조선기병도 몽골기병과 똑같이 기사를 할 줄 알고, 기병의 숫자는 원정군이 더 많고, 몽골활과 조선활이 크게 다르지도 않잖아?

어쩌면 조선의 각궁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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