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01화 (101/538)

101. 챕터18. 부딪치다 (5)

그러니 몽골기병은 점점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화살을 날리려하면 저쪽도 똑같이 화살을 날려대니,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는데... 방어무장은 원정군이 더 충실하지 않나.

화살에 맞아 쓰러지는 비율은 몽골기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큽...”

“뒤로 빠져!”

물론 원정군이라고 무적은 아니니, 서로 화살을 쏴대면 맞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

나아가 기병 중 일부만 마갑을 껴입은 터라, 사람은 멀쩡해도 전마가 다치는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간을 계속 보는 군.”

“예.”

최윤덕은 7연대, 4연대를 상대로 계속 화살공격만 날리고 있는 몽골기병을 유심히 살폈다.

몽골기병은 하늘 위에서 보면 팔자를 그리듯, 계속 먼지구름을 피워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틈을 보이는 것처럼 한곳을 비웠다가, 다시 반대편으로 이동해 우르르 화살을 쏴대고 또 이동하기를 반복.

원정군의 약점이 어디인지 살피는 모양새였는데, 어째 잘 안 먹혀서 답답한 모양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간을 볼 때마다 손해만 보고 있으니까.

“그래도 확실히 생각 없는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예. 꽤 버티는 군요.”

지금껏 부딪쳤던 몽골부족과 달리, 생각 외로 잘 버티는 걸 보면... 저 녀석은 파림좌기를 중심으로, 자신의 영지를 확장하려 했던 게 분명하다.

별 볼일 없는 잡졸이었다면 철벽같은 원정군을 보고서 사기가 떨어져 무너지거나, 반대로 조바심에 못 이겨서 들이쳤어야 하니까.

둘 모두 아닌 걸로 보아, 녀석이 나름 정련시킨 정예라는 뜻이지.

“언제까지 계속 버틸 수는 없을 테니... 1대대 1,2중대를 좌군으로, 2대대 1,2중대를 우군으로 합류시켜라.”

“옙!”

저쪽이 관심이 없으면, 이쪽에서 관심을 보여주는 수밖에.

‘후... 흡.’

최윤덕은 심호흡을 하며,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긴장감에 입안이 바싹 말랐지만, 애써 티내지 않고 늠름한 모습을 고수했다.

아니다.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사실 그라고 지금과 같은 기병전투를 경험해 봤을까.

몇 되지도 않는 여진족들을 두들겨 패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원정을 오면서 꾸준히 기병연대를 운용하며 경험치를 쌓아왔지만, 지금은 진짜 제대로 된 적과 맞붙는 상황 아닌가.

지휘관들은 매일 밤마다 연오랑에게 끌려가 강평 및 토의,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헛짓거리가 아니었던 게 증명됐다.

장군들 중에는 “거참. 누가 누굴 가르친다고...”라고 아니꼽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을 걸?

지금 최윤덕의 심정이 그랬으니까.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열심히 토의했던 게, 혼란스러운 그의 머릿속을 명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좌우군은 중군을 두고 양익을 이루며 비스듬하게 전진배치 되어 있었는데, 지원군이 도착하자 삼군 간의 간격이 보다 벌어졌다.

달리 말하면 보다 넓게 포진했다는 뜻이고, 몽골군 또한 원정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망치와 모루는 고래로부터 내려온 유서 깊고, 훌륭한 전술 아닌가.

보다 줄어든 중군으로 버티고 있는 사이, 양익이 넓게 퍼져 포위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걸려들까?’

최윤덕은 초조함을 애써 억누르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기창을 쥔 손이 가볍게 떨렸다.

‘걸려들 거다.’

주문을 외우듯 기도를 하듯, 중얼거려본다.

꿍꿍이를 숨기고 원정을 가지 않고 버틴 토가바토르다.

경기병 만으로 같은 경기병인 몽골부족을 압도할 수 없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터...

분명히 중기병을 숨겨놓고, 사냥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이제 꺼내야 하지 않을까?

철벽처럼 굳건하게 밀고 오는 조선기병이 포위망을 완성하면, 중기병을 꺼내기도 전에 짜부 되어 찌그러질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전장이 점점 파림좌기 쪽으로 옮겨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몽골기병이 먼저 끈기를 잃고 말았다.

여기서 승부를 내지 못하면 아예 도시 안에서 싸워야 할 판국이니까.

뿌우웅! 몽골군 특유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먼지구름이 한층 더 부풀어 올랐다.

“장군! 옵니다.”

“신호를 보내도록.”

“옙!”

최윤덕의 명에 주변에 있던 연락병이 바쁘게 말을 몰고 사라졌다.

몽골기병의 움직임이 부산스러워지자, 기병을 보병마냥 천천히 운용하던 좌군과 우군의 움직임도 부산스러워졌다.

퍼러럭! 소대깃발과 중대깃발이 흔들리며 재정렬 명령이 떨어지고, 둥둥둥! 조선군 북소리가 소대원들의 귀를 때렸다.

“오는군요.”

“와야지. 별수 있나. 다만 어디로 치고 들어올지가 문제인데...”

조비형은 먼지구름 너머를 굽어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도 최윤덕과 같이 토의를 함께 했는데, 지금 명령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있나.

다만 놈들이 얇아진 중군으로 치고 들어오지 않고, 전력을 다해 좌우군의 양날개 중 하나를 칠 수도 있다.

이러면 당연히 반대쪽 날개가 몽골기병의 뒤를 쳐버릴 테니,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반대로 뒤를 맞기 전에 한쪽 날개를 먼저 부수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르지.

“소대별로 분열해서 각 제대간의 거리를 더 벌려. 돌파를 시도하면 역으로 돌파한다. 달릴 준비를 해라.”

“옙!”

연락병 역할을 맡은 특전대원들은 빠르게 흩어져 각 소대장에게 명을 전달했다.

둥둥둥! 다시금 북소리가 터지고, 삑삑! 소대장들의 입에서 날카로운 음색의 피리소리가 이어졌다.

훈련교관들이 매일 같이 입에 달고 사는 호각소리에, 소대원들은 쿵쾅거리던 심장이 오히려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지겹도록 했던 훈련과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

물론 지금은 생사를 다투는 순간이지만, 상황자체는 익숙하지.

좌군과 우군은 보다 큰 포위망을 형성하며 길게 늘어졌고, 보병처럼 천천히 움직이던 모습에서 벗어나 드디어 기병답게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것보다, 그냥 멈춰서 쏘는 게 더 정확하고 멀리 날아가지 않나.

해서 스웜전술을 역공하며 화살비만 날려댔는데, 이젠 기병 대 기병으로 맞붙어야 할 시간이 왔다.

작은 원을 그리듯 좌우로 움직이면서, 전마의 피를 끓이기 시작.

그렇게 원정군이 좌우로 길게 늘어져 꿈틀거리자, 드디어 몽골기병의 질주가 시작됐다.

“온다! 겁먹지 마라!”

소대장의 명에 소대원들은 흔들리는 시선을 애써 고정시키며, 연신 허리를 움직였다.

흡사 예열을 하듯 잔뜩 당겨진 고무줄처럼 튀어나갈 때만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그 순간이 도래했다.

둥둥! 삐익! 북소리와 함께 호각소리가 울려 퍼지자, 달려오는 몽골기병을 향해 좌군 전체가 비틀려 튀어나갔다.

“돌격!”

쉐에엑! 서로가 쏴대던 화살비가 한차례 스쳐나가기 무섭게, 소대원들은 냉큼 투창을 뽑아들고 박차를 가했다.

3인 1조로 묶인 기병들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붙어 앞으로 튀어나갔다.

저기 침을 흘리듯, 혹은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몽골기병의 얼굴이 점점 커지고.

둥둥! 심장 고동소리를 맞춰주는 북소리가, 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왔다.

“투척!”

몽골기병의 악취가 흙먼지와 함께 밀려오자, 소대원들은 손에 든 투창을 일제히 집어 던졌다.

말을 타고 있는 상태에서 얼마나 제대로 던질 수 있겠냐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집어던진 투창 아닌가.

애꿎은 땅에 떨어진 게 반수가 넘지만, 나머지 반수는 몽골기병에게 틀어박혔다.

맞고 죽은 이가 몇이나 될 줄 모르나 어찌됐건 맞긴 맞았고, 뜬금없는 투창세례에 선두의 일부가 콕 꼬꾸라졌다.

토가바토르가 이 병력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좁은 땅에서 아무리 뽑아내봐야 한계는 명확하지.

어찌됐건 경기병은 경기병 아니냐. 몽골식 가죽갑옷을 껴입어도, 마갑까지 껴입을 순 없다.

콰쾅! 투창 공격으로 몽골기병의 선두 전열을 대충 어지럽히자, 선두전열은 속도를 늦춰 옆으로 빠졌고.

투창기병 뒤에서 따라오던, 마갑으로 똘똘 감싼 기병소대 등장.

마갑 기병은 전마의 심장이 터질 정도로 속도를 높여선, 빈 자리를 메꾸며 선두로 튀어나왔다.

기병 돌격이라고 해서, 발이 부딪칠 정도로 빽빽하게 붙어서 움직일 수 없다.

서로 적당히 간격을 두고, 흡사 물고기 떼처럼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인 기병운용방식 아닌가.

좌군은 듬성듬성한 그 덩어리를 톱니날처럼 팍 뜯어먹고선, 상리에 벗어날 정도로 똘똘 뭉쳐서 밀고 들어갔다.

“흡!”

“옆에!”

소대원은 동료의 외침에, 자신을 향해 만곡도를 휘두르려 하는 몽골기병에게 냅다 기창을 집어 던졌다.

맞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냐. 시간만 벌면 그만.

뭉툭한 박차에 찔린 전마는 순간 가속을 하듯, 뒷발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운 좋게도 기창은 만곡도에 부딪쳐 튕겨나갔다.

그 틈에 새로운 기창을 뽑아든 소대원이 몽골기병에게 기창을 내지르려는 찰나.

어느새 다가온 동료가 기창을 내질러 몽골 전마의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쾅! 절로 앞으로 꼬꾸라지는 몽골기병.

소대원은 손목을 가볍게 빙글 돌려, 기창을 역수로 잡고 몽골기병을 내리찍었다.

“컥!”

“옆에 또 온다!”

“내가 맡는다!”

비명소리가 터지기 무섭게 위험이 다가왔고, 셋으로 똘똘 뭉친 기병은 계속해서 차륜전을 하듯 서로의 등을 받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날아오는 만곡도는 옆을 받쳐주는 동료가 기창을 내질러 튕겨내고, 손이 들려 훤하게 드러난 몽골기병의 가슴팍에 기창을 쑤셔 넣었다.

쾅! 적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다음 적을 맞이한다.

쓰러져 꿈틀거리는 몽골전마를 피해 옆으로 이동하자, 역시나 다른 몽골기병이 같은 기창을 쓸어오고.

소대원은 흠칫 놀라 기창을 마주 휘둘렀다.

쾅쾅! 위 아래로 매섭게 찔러오는 기창은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튕겨나갔고, 이번에도 역시나 멀리 떨어진 몽골기병보다 바로 옆 동료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쥐고 있던 기창을 거세게 휘둘러 몽골전마의 옆구리를 때렸으니까.

또 다시 멈칫 한 사이. 이번엔 반대편에 있던 동료가 투창을 집어던져 몽골기병의 얼굴을 쪼갰다.

연오랑 사냥창이라 불리는 이 투창은 애매하게 쓸 만해서,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나름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물건 아니냐.

“끄악!”

갈고리 날에 얼굴가죽이 찢겨나간 몽골기병의 비명소리는, 쾅! 어느새 정신을 차린 소대원의 육탄공격에 사그라졌다.

“밀어붙여라!”

“겁먹지 마라! 헐벗은 놈들 따위에게 우리가 질 것 같으냐!”

온 사방이 붉게 물든 창검의 합창소리로 가득했지만, 삑삑! 소대장이 외치는 목소리와 호각소리는 소음을 뚫고 귓가로 파고들었다.

“정렬!”

“정렬!”

선두를 와장창 무너뜨린 소대는 펄럭이는 검은 깃발에 맞춰 다시금 뭉쳤다.

3인 1조로 뭉치고, 다시 그 뒤로 3조가 뭉치며 작은 삼각형을 이루며 배치를 완료하고 다시금 돌격.

아무리 사방으로 포위를 당했어도, 어차피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은 선으로 이뤄진 테두리 아닌가.

몽골군과 조선군이 한 덩어리로 뭉쳐서 난전을 펼치고 있는데, 하늘에서 화살 공격을 퍼 부울 순 없을 테니까.

소대원들은 서로의 등을 받치며, 다시금 몽골기병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조선기병은 쐐기꼴을 하고, 밀려들어오는 몽골기병의 파도 속에 흡수됐다.

하지만 전장 상황이 묘해졌다.

기병은 보병처럼 제자리에서 난투를 벌이지 않으니, 처음 맞부딪친 순간을 제외하곤 서로 스치고 지나가야 한다.

그 후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병의 기동력을 이용한 술래잡기가 이어져야지.

허나 몽골기병은 비집고 들어온 조선기병을 스쳐 보내지 않고, 오히려 붙잡고 늘어졌다.

이건 질주의 충격력과 돌파력을 스스로 저버린 꼴 아닌가.

이런 난전이 조선기병에게 유리한 건 당연한 사실.

마갑과 전신갑옷. 온갖 무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중기병이 경기병과 정면으로 맞붙은 꼴 아니냐.

잘게 쪼개진 소대는 몽골기병의 머릿수에 파묻히기는커녕... 오히려 인마의 바다를 헤엄치며, 뱃속에 들어간 회충처럼 마구 꿈틀거렸다.

문제는 이 회충들이 숙주를 다 먹어버릴 정도로 숫자가 많다는 거지.

“붙잡혔군.”

“우군도 마찬가지인 듯싶습니다.”

조비형은 엉망이 된 전장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와 예비대는 전장에서 그나마 높은 지대를 찾아 자리 잡았고, 소대전열 뒤로 빠져서 어깨가 시큰하도록 화살만 날리고 있었다.

몽골기병은 당장이라도 돌진해서 좌군과 우군을 뚫고 돌파할 것처럼 보였는데... 어째 좌군과 우군을 일부러 붙들고 난전으로 몰아갔다.

헌데 이런 의도가 무색하게, 소대와 맞부딪친 몽골기병은 물에 소금이 녹듯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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