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챕터19. 무너지다 (1)
꾸욱. 연오랑은 허리를 비틀어 양손으로 쥔 창을 매섭게 내질렀다.
창날 밑에 달린 검은깃발이 찢어질 정도로 늘어지고, 거대한 화살처럼 날아간 창날은 몽골기병의 기창을 품고 스쳐갔다.
비틀린 손목의 움직임에 기창은 매섭게 회전.
몽골기병의 기창을 뱀처럼 껴안으며 파고들었고, 이내 몽골기병의 팔에 창날이 먼저 닿았다.
“컥.” 푸헉! 팔뚝에 구멍이 난 몽골기병의 기창이 힘을 잃어버리자, 연오랑은 그대로 올려쳐 기창을 날려버렸다.
퍼퍽. 같이 돌격해오던 몽골기병은 옆에서 뜬금없이 날아든 동료의 기창에 맞아 자세가 흐트러졌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돌격.
연오랑은 마주 스쳐가듯 몽골기병 옆에 바로 붙어, 머리 위로 기창을 역수로 잡고 콕콕 찔러댔다.
갑옷의 이음새를 뚫고 몽골기병의 목덜미에서 피가 터져 나오자, 그는 한손으로 기창의 끝을 잡고 힘차게 쳐올렸다.
휘익! “크헉!” 먼지구름도 쪼개버리는 강맹한 창날이 반원을 그리며 반대편으로 떨어졌고, 옆에서 달려오는 몽골전마의 머리를 후려쳤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전마는 기수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고.
“핫!”
‘옆에 셋.’
연오랑은 기합을 내지르며 냉큼 박차를 치고 옆으로 나아갔다.
정면에서 오는 공격을 모두 쳐냈으니, 옆이 훤하게 빈 상태.
허나 이건 오히려 그가 바라던 상황 아닌가.
그는 전마를 멈춰 세워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게 하고선, 허리를 비틀어 달려오는 몽골기병을 측면으로 마주하고.
지지대처럼 길게 쥔 왼손에 닿을 때까지, 창대 끝을 잡은 오른손을 힘껏 내질렀다.
손아귀에서 빙글 돌며 뻗어나간 기창은 포탄처럼 튀어나갔다.
퍽퍽퍽. 지지대로 삼아 잡고 있는 왼손. 좌우 위아래로 흔들리는 오른손의 움직임에 기창은 창날 그림자를 뿌려대며, 몽골기병의 기창을 피해 날아들었다.
“컥.” “헙.” “헛!” 자신들의 기창을 파고들며, 삼지창처럼 뻗어나간 일격에 몽골기병 셋이 연달아 신음을 흘리며 기창을 떨어뜨렸고.
“합!”
거친 박차에 찍힌 전마는 다시 엉덩이를 비틀어,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
연오랑은 중앙에 위치한 몽골기병을 그대로 들이받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혈마의 피를 이어받은 연오랑의 전마는 잔뜩 흥분해서, 자신과 몸을 부딪친 전마의 목덜미를 깨물 듯 위협했다.
흡사 포위망 안으로 연오랑이 알아서 뛰어든 꼴이지만, 그 한축이 무너지지 않았나.
순식간에 위치가 반전되자 몽골기병들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고, 제 때 반응하지 못한 그들을 연오랑은 봐주지 않았다.
“커컥!” “큽!” “컥.”
바로 옆에 붙은 몽골기병을 창대 끝에 달린 철추로 후려치고, 매섭게 내지른 창날은 반대편 옆에 있던 몽골기병의 목덜미를 베고 돌아왔다.
거력에 이끌려 제자리로 돌아온 기창은 다시금 머리위에서 빙글 회전해 정면을 향했고, 퍽퍽퍽! 빛살처럼 뻗어나간 일격이 연오랑을 감싸고 달려들던 몽골기병을 일시에 낙마시켰다.
경극 속 주인공마냥 유려하게 움직인다.
창날은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 마냥 비상하는 강철용으로 변해 허공을 뒤집었고. 그 때마다 혈화가 피어오르며 꽉 막혀 있던 시야가 점점 넓어진다.
일순간에 연오랑을 둘러쌓던 몽골기병이 모두 쓰러져, 땅에서 헤엄치며 허우적거렸다.
“무... 무슨!”
“어... 어떻게!?”
우당탕탕 한차례 부딪쳤을 뿐인데, 몽골기병 여덟이 일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나.
제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어본 몽골기병이라지만 이건 인외의 경지 아닌가.
놀라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사람 피를 잔뜩 머금은 백호가 노려보는 기분이 들어, 그들의 눈빛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로 물들었다.
“네 놈이 올란부르냐?”
“...!”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려서 일까?
화려한 깃발 밑에 있던 몽골기병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고, 연오랑은 말을 내뱉기 무섭게 들이닥쳤다.
토가바토르건, 10연대의 습격을 피해 도망친 백호장 올란부르건 무슨 상관이랴. 일단 때려잡으면 그만.
순식간에 들이닥치면서 또 다시 맹렬한 폭격을 날렸고, 올란부르의 친위기병들이 말 그대로 몸으로 앞을 가로 막았다.
전마와 전마가 부딪치고, 도검의 폭풍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연오랑은 자신이 탄 전마의 머리를 피해, 유려하게 기창을 휘둘렀다.
전마의 머리를 노리는 만곡도를 창날로 튕겨내고, 옆에서 짓이기는 기창은 몸을 비틀어 피하고, 반대편에서 날아드는 창날은 창대 끝으로 쳐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튕기기 무섭게, 기창은 풍차처럼 빙글 돌아 다시 처음 자세로 되돌아왔다.
똑같은 자세로 이어지는 강타.
허나 친위기병의 반응은 연오랑보다 한발 늦었다.
푹푹. 내지르는 기창의 창날에 전마의 머리가 쪼개지며 낙마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 진격.
“놈!”
“죽어라!”
옆을 비워놓고서 자신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연오랑을 향해, 드디어 기회를 잡은 친위대원이 매섭게 만곡도를 휘두르려 했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연오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쾅! 시야의 사각에서 튀어나온 호랑이가 친위기병을 물어뜯었다.
어느새 연오랑의 뒤를 따라온 기사대원이, 연오랑이 쳐내고 지나간 친위기병의 옆구리를 세차게 들이박아 넘어뜨렸다.
옆구리에 꽉 낀 기창으로 기창돌격을 감행.
전마건, 기수건 할 것 없이 일단 한방 콱. 먹여주고선,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처럼 몰려와 난도질을 감행했다.
가슴, 옆구리, 등에 창이 찔려 낙마하는 친위기병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흐합!” 연오랑은 올란부르의 앞을 막는 마지막 인마의 장벽을 향해 돌진.
캉캉! 친위기병들은 좌우를 쓸며 날아드는 기창을 튕겨내고, 몇몇은 말 옆구리에 매달리듯 기창을 피해 몸을 날렸다.
연오랑은 기창을 피한 친위기병을 무시하며 계속 질주했고, 퍽! 옆구리에 붙어 있던 친위기병은 뒤따르던 기사대원이 그대로 달려와 강철보호대로 감싼 무릎으로 들이받았다.
“죽어라!”
“...”
순식간에 인마의 껍질을 쪼개고 알맹이의 앞에 선 연오랑을 향해, 올란부르라 불린 이가 만곡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일생의 최후가 다가온 걸 직감이라도 한 듯, 투구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여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그 힘을 가득 담아 팔을 휘두르고, 반월을 그리며 풍압과 함께 날아든 만곡도.
캉! 연오랑은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만곡도를 시원하게 쳐 올렸다.
그래도 나름 백호장이자 부족장이라서 일까? 올란부르는 무너지지 않고, 치솟은 만곡도를 그대로 회수하며 오히려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려들었다.
연오랑의 사각을 잡으려고 신묘한 승마술을 뽐내며 다가왔지만, 연오랑은 피하지 않고 거칠게 들이받았다.
전마와 전마의 가슴이 부딪치고 서로 물어뜯으려고 애썼지만, 연오랑이 탄 전마의 덩치가 더 커서 오히려 올란부르의 전마가 밀리는 형세.
카캉! 서로 옆구리를 붙이고 달라붙은 둘은 매섭게 만곡도와 기창을 휘둘렀으나, 연오랑의 거력을 이기지 못한 올란부르가 먼저 무너졌다.
손아귀가 찢어지며 만곡도가 날아올랐고 “컥...” 튕겨나간 창날이 올란부르의 투구를 스치고 지나가자, 올란부르는 단발마의 비명만 내지르며 허물어졌다.
투구 한쪽이 길게 찢어져, 시뻘건 피와 뇌수가 뒤섞여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
퍼퍽! 쓰러지는 올란부르의 몸을 연오랑의 전마가 그대로 밟아 완전히 침몰시켰고, 연오랑은 올란부르를 받침대 삼아 다시금 몸을 날려 남은 친위기병들을 쓰러뜨렸다.
그때. 익숙한 조선말이 전장의 소음을 뚫고 밀려들어왔다.
“적장이 죽었다!”
“와아!”
‘토가바토르가 여기 있었나 보군?’
연오랑은 쓰러진 올란부르를 보며 울부짖는 친위기병의 목을 마저 썰어버리고선,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함성을 만끽했다.
토가바토르가 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전설장수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나.
어떤 녀석인지 모르겠다만, 누가 됐건 토가바토르의 친위대를 무너뜨리고 목을 취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끝났군.’
연오랑은 거친 숨을 토해내는 전마를 다독이며, 빠르게 주위를 훑어 내렸다.
기사대에 의해 다섯 조각으로 쪼개져버린 토가바토르의 예비대.
그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는지, 황급히 말을 몰아 전장을 이탈하려 했지만... 드디어 후위 전장에 도착한 4,7연대의 예비대가 그들을 포위하며 다가왔다.
“...”
“음...”
전장에서 살짝 떨어진 북쪽 산맥의 능선.
기사대가 갈아탄 예비마를 지키고 있던 기사대원 셋과 몽골갑옷을 입은 중년인 세명.
이들은 이제 마무리되는 전장을 보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알아챌 정도로 표정이 극명하게 달랐다.
기사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혹은 살짝 무심하듯 전장을 바라봤고, 몽골인들은 놀란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눈과 입을 크게 뜨고 있었다.
“토가바토르가 죽었나 보군.”
“저기. 이상한 깃발이 하나 더 있던데, 바툰도 죽은 거 같은데?”
“흐음.”
기사대원은 저 편, 개미처럼 바글거리는 전장을 굽어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반대로 몽골인들은 서로 눈빛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묵언의 대화를 이어갔다.
원정군은 흥안령 일대를 들쑤셨고, 항복하는 자는 그대로 받아주고 반항하는 이는 가차 없이 때려잡지 않았나.
재밌는 건, 자신들의 터전을 공격해 온 원정군보다, 인근에 터 잡은 몽골부락을 원수처럼 여기는 부락이 적지 않았다는 거다.
심지어 원정군에 적극 협력해서, 적대부락을 무너뜨릴 정도로 말이다.
지금 전장을 보며 놀라고 있는 나곤, 오트할 부족장이 그러했는데, 이 둘은 그간 토가바토르의 위세에 눌려 피눈물을 흘렸던 인물이었다.
그들이 모시던 천호장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많고 많은 군소부락으로 전락한 두 부락은 토가바토르에겐 맛있는 먹잇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저렇게 쉽게 죽을 줄이야.”
“끄음...”
‘이렇게나 격차가 컸던가...’
나곤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쓴물을 삼켰다.
그간 노심초사하며 전전긍긍했던 자신들의 처지가 허무해진다.
토가바토르가 죽길 바란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 회전 한 번으로 그냥 휩쓸려 죽을 줄은 몰랐다.
무시무시한 화포와 생경하지만 막강한 기병군단.
그간 멀리서 소문만 들어왔던 조선은 그들의 예상보다 더욱 무서웠다.
그런 조선군에 고개를 숙이고 복속했으니...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알 수가 없어서, 둘은 고민이 깊어졌다.
“차라리 조선에 항복하는 게 나을 거요. 북쪽은 지금 난장판이니까. 씹어 먹어도 모자랄 우량카이와 요동 놈들이 들개처럼 날뛰고 있소.”
“음...”
“...”
또 다른 몽골인. 비르잔의 말에, 두 부족장 모두 침음을 삼켰다.
주력이 전부 빠져나간 동몽골초원은 연합군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우량카이 3위는 거친 초원의 방식을 고수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로 끌고 가 자신의 부락민으로 만들고 있지.
요양파 요동군은 한술 더 뜬다.
이들은 우량카이 3위도 북원 잔당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앞으로 이 땅을 차지할 우량카이 3위도 견제해야 했다.
해서 부락민은 모조리 죽이고, 마을은 초토화시키고, 우물과 식수원은 오염시켜 썩은 물로 만들고, 초지를 불태우고, 애써 갈아놓은 논밭과 어설픈 관개시설을 모두 박살내고 있다.
예전 명나라가 했던 짓을 그대로 답습해서, 땅을 못 쓰게 만들고 있지.
비르잔은 우량카이 3위와 요동군을 피해, 북쪽의 동몽골초원에서부터 이곳까지 도망쳤다.
헌데 온 사방이 죄다 적군인데 도망쳐 봐야 어디로 갈까.
그나마 살길은 서쪽 초원으로 들어가는 건데... 원정을 마치고 돌아올 거대부족을 감당할 여력이 없고, 당장 먹고살 길도 막막했다.
해서 그나마 온건한 모습을 보이는 조선군에 냅다 고개를 숙이고 복속한 거지.
적어도 조선은 마구 죽이지 않고 포로를 잘 대접해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항복한 세 부족장은 조선군의 위력을 제대로 실감했고, 연오랑이 왜 자신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제대로 깨달았다.
까불면 죽는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각인시켜주고 있으니까.
이들의 복잡미묘한 심정과 상관없이, 전장은 슬슬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최후의 비수로 숨겨 놓은 토가바토르의 예비대는 기사대의 공격에 쓸려나갔다.
멋도 모르고 중군을 향해 달려들던 본대는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살길을 찾고 있었지만... 이미 독 안에 든 쥐 꼴이다.
완전히 포위망을 완성하고 좁혀온 4,7연대가 화살비를 먹여줄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토가바토르. 그리고 그를 도와주러 온 백호장 올란부르와 바툰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광기와 열기에 들끓던 전장이 차갑게 식었다.
포위망에 갇혀 있던 몽골기병들은 죄다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와아!!”
“승리다!”
동시에 승리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며, 산 능선에 숨어 있던 이들에게 닿았다.
“끝났군. 가지.”
“예.”
“알겠습니다.”
역관의 말에 부족장들은 재깍 몸을 날려 예비마들을 챙겼고, 기사대원과 함께 말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