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07화 (107/538)

107. 챕터19. 무너지다 (4)

“헌데... 복속한 몽골부락이 원정에 함께 하길 원하는 데, 어찌하시겠습니까?”

3연대장 이순몽이 대표해서 묻자, 몇몇 연대장이 눈을 반짝였다.

반대로 연오랑은 살짝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최정예병인 착호군을 다뤄본 연대장들 아닌가. 이들 눈에 찰만한 정예가 몇이나 될까?

“왜? 마음에 드는 인물이라도 있나?”

“그건 아니지만, 몽골기병을 쓰면 우리의 손해를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몇이나 되는데?”

“제 관할 하엔 이백여명입니다.” “저는 사백여명.” “저도 사백여명입니다.”

연오랑이 관심을 표하자. 이순몽, 5연대장 하경복, 10연대장 전흥이 냉큼 입을 놀렸다.

모든 연대가 몽골부락과 싸운 건 아니고, 순순히 항복하고 오히려 조선에 복속되려는 몽골부락도 있었다.

이 땅에서 자치권을 얻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조선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만큼 이 땅에서 살기가 팍팍했다는 거고, 반대로 말하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만곡도와 기창에 피를 묻혀 왔다는 뜻이지.

연오랑은 힐끔 사령관 김을화의 눈치를 살폈고, 그 또한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은 예전부터 이런 방법을 써왔잖아?

그게 여진족에서 몽골족으로 바뀐 것뿐이니, 거부감 따위는 없는 모양새다.

“걔들 다룰 수 있어? 난 몽골인이든, 조선인이든, 여진인이든, 신군율을 어기는 걸 싫어한다. 그놈들이 너희에게도 생경한 신군율을 쉽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 하냐?”

“죽기 싫어서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다른 부락과 달리 가진 게 없어서 말입니다.”

연오랑이 이순몽에게 미심쩍은 눈빛을 뿌리자, 동조했던 연대장들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댔다.

원정군은 전쟁포로를 노비로 삼아 주지 않는다.

세종과 태종은 양반사대부의 사노비마저 악착같이 뜯어내고 있는데, 미쳤다고 전쟁포로를 사노비로 풀어줄까.

걔들을 어떻게든 조선백성으로 만들려고,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거잖아?

또한 개별적으로 챙긴 전리품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일단 싹 회수해서 나중에 직급과 공훈별로 나눠줄 예정.

이걸 몽골족이 쉽게 받아들일지 걱정되는데, 어째 문제가 없나 보다.

“그들은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세가 약한 이들입니다. 허니 저희가 약간의 호의만 베풀어도 충분히 고개를 숙일 거라 사료됩니다.”

연오랑은 다시금 연대장들의 분위기를 살폈고, 다들 동조하는 걸 느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인원은 각 연대별로 찢어서 배속시키고, 인선은 사령관께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이순몽은 히죽 웃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머문 지 벌써 일주일이다. 삼일 안으로 최대한 정리하고 떠난다.”

“옙!”

“알겠습니다!”

다들 기운차게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

“저기 보시죠.”

“오...”

왕청과 왕민은 생경한 모습을 한 조선기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연산관에 있을 때 조선군을 보긴 했지만, 지금처럼 완전무장한 모습을 보진 못했으니까.

투구를 벗은 기병은 상투대신 웬 이상한 골무 같은 걸 머리에 쓰고 있었다.

거무튀튀한 마갑과 회색빛 털이 곱게 다듬어져 있는 낭피두정갑.

등에는 각궁을 매달고, 허리춤에는 장도가, 안장과 붙어 있는 등허리 쪽에는 전통이 누워있었다.

특별한 안장이라도 되는 걸까? 말 엉덩이 쪽에는 기창 두 개가 불쑥 솟아 있고, 반대편엔 철퇴와 도리깨를 닮은 편곤이 대롱대롱 걸쳐 있었다.

과할 정도로 무장을 하고 있는 터라, 저러고 제대로 달릴 수나 있을지 우려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위압감은 엄청나다.

저러고 있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수백, 수천명이니... 두 사람 뿐만 아니라, 산동에서 온 칼잡이들도 숨을 죽이고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산동상인 왕청은 주변을 둘러보며 피식 웃더니 조용히 입을 놀렸다.

“잘난 척 하던 놈들인데, 지금은 어지간히 눈치를 보는 모양입니다?”

“그래야지. 산동에서 저런 기병을 언제 봤겠어.”

“그건 그렇죠.”

둘은 기죽어 있는 낭인들을 보며 살포시 고개를 내저었다.

고개를 돌려 멀리 주위를 둘러보자, 말 그대로 가축의 홍수가 둘을 집어 삼켰다.

파림좌기에는 인근 모든 몽골부락이 모여 있었고, 그들이 데려온 가축 수만마리가 평원을 전부 채우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니까.

“어서 가죠.”

“그래. 늦으면 곤란하지.”

둘은 뒤따라오는 수많은 이들을 살피며, 황급히 발을 놀렸다.

왕청, 왕민을 비롯해 수십명의 산동, 요동상인들은 식량을 실은 수레를 끌고 파림좌기에 도착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냥 올 순 없는 노릇이니, 상단일꾼 말고도 호위들을 수십, 수백명씩 데리고 왔지.

중국은 워낙 땅이 넓고 사람도 많지 않나.

명나라가 멀쩡했던 시절에도 지방 호족들은 식객이나 문객을 거뒀고, 장원을 지킬 호위를 고용하곤 했다.

명이 없어진 지금은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져서, 이젠 흡사 봉건시대마냥 사병과 호위가 없는 장원이 더 드물게 됐지.

상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 내지를 돌아다니는 건, 곧 도적떼 혹은 도적떼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지방군벌, 지방세도가를 상대해야한다는 뜻.

약해보이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탓에, 낭인 칼잡이들을 대거 고용해서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이들이 아무리 칼잡이라고 해도, 중국에서 보기 힘든 기병군단 앞에서 누가 객기를 부릴까. 겁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가축떼를 뚫고 계속 나아면서, 어색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곳곳에 큼지막하게 세워놓은 간이천막에는 조선군복을 입은 이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고, 그들은 몽골인을 앞에 두고 뭔가를 묻고 또 적고 있었다.

옆엔 상투를 튼 이가 어색하게 앉아서 열심히 통역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요동에 살던 고려인처럼 보였다.

조선과 중국은 상투 트는 방식이 조금 달라서, 조선을 여러번 드나든 두 사람은 바로 알아차렸지.

“전에 봤던 그거겠죠?”

“그렇겠지.”

아마도 호구조사 및 직업조사를 하는 게 아닐까? 연산관에서도 고려인에게 저런 걸 하는 걸 봤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조선으로 전부 데려가는 게 맞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우릴 불렀겠지.”

둘은 이미 알고 왔음에도, 당최 믿기지가 않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포로를 저런 식으로 대접하고 다루는 건, 그들도 본적이 없으니까. 나아가 이런 식으로 이주 작업을 하는 것도 처음 봤다.

둘이 떨어져 살게 된 건, 명나라가 생이별을 시켜서 찢어놨기 때문 아닌가. 그땐 그냥 납치하듯 잡아서 왕민일가를 요동에 처박았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조선의 방식은 몇 배나 세련된 거지.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칼잡이들을 뒤로하고 수십명의 상인들이 줄줄이 건물 안으로 발을 옮겼다.

왕청, 왕민과 안면 있는 이들이 많았는데, 다들 연오랑에게 홀려서 길잡이를 지원했던 상인들이기 때문.

“장군.”

“장군님.”

이윽고 황보인과 역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에 있던 상인들 모두 재깍 고개를 숙이며 읍을 했다.

일전에도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더욱 부담스럽다.

조선군이 이렇게 파죽지세로 북원잔당을 쓸어버리고, 수만명의 포로를 사로잡을 줄은 몰랐으니까.

“일은 간단하네. 오면서 임시 숙영지에서 머물렀겠지?”

“예. 나리.”

“옙.”

다들 목청 높여 답을 이었다.

“대금은 몽골포로와 가축, 그리고 호주에서의 거래우선권을 줄 걸세. 알아들었나?”

“예.”

“...”

황보인은 긴말하지 않고 서류를 꺼내 나눠줬고, 상인들은 공손히 받아들고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이미 요동에서 가져온 식량을 임시 주둔지에 남겨두지 않았나.

그곳을 거쳐가며 몽골포로와 가축을 조선까지 옮겨주고, 그 대가로 포로 및 이권을 받는 거지.

중국 상인들이 칼잡이 호위들을 잔뜩 데려온 건, 혹시나 몽골포로들이 말썽을 부릴까봐 우려되서다.

지금 조선 사정상, 호송작업을 감당할 여력이 없지 않나. 그저 총괄할 관리를 파견해서 확인만 하는 것도 벅찬 수준이지.

해서 전리품을 넘기더라도, 중국 상인을 이용하는 게 여러모로 싸게 먹혔다.

‘음...’

‘끄응...’

침묵 속에서 상인들 간의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만 환청처럼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들 어떻게 하면 더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댔지만... 안타깝게도 조선군에게 더 뜯어먹을 건 없어보였고, 각자 알아서 이문을 챙겨야 할 것 같다.

“포로는 우리가 정해줄 걸세.”

“알겠습니다.”

동아시아에선 거창하게 노예무역이라는 건 따로 없지만, 그래도 사람을 사고파는 게 이상하지 않잖아?

다들 노비나 종, 노예 비슷한 신분계급이 있으니까.

“나가면 관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가서 확인하고 데려가도록. 만약 호송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황보인이 은근한 협박을 날리자, 상인들은 하나같이 재깍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앞으로 북방무역은 조선이 꽉 잡게 될 것 같은데, 미운털이 박히면 자신들만 손해다.

상인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져온 식량과 생필품을 조선군에게 팔았고, 조선군은 대충 계산해서 전리품을 넘겨줬다.

왕청과 왕민은 포로를 인계받고선, 재깍 눈을 돌려 파림좌기를 돌아다녔다.

원정군의 보조군은 거대한 수공업 공장과 크게 다를 게 없었고, 조선군은 몽골포로를 조사하기 무섭게 각기 다른 직업과 특기에 맞춰 분류했다.

안 그래도 바쁜데,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 나아가 부족단위로 모여 있는 몽골인들을 가족단위로 쪼개려는 계획이지.

여진족을 상대로 이미 써먹은 방법인 터라, 여기서도 적용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몽골인들은 입장에선 싫을 수도 있겠지만, 토가바토르의 부락이 떼죽음을 당한 걸 봤는데 어쩌겠어.

둘은 코를 찌르는 피냄새를 뒤로하고, 연신 발을 놀렸다.

평원 저편은 시뻘건 강이 흐를 정도로, 거대한 도축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조선 장인들과 그들의 지시를 받는 몽골인 가죽장인들 수백명이 한곳에 뭉쳐서, 죽은 전마를 처리하고 있었다.

고기는 따로 챙겨 훈제해서 식량으로 만들고, 구멍이 송송 뚫려 엉망이 된 거죽은 어떻게든 재활용해서 모피로 재생했다.

그 옆엔 파림좌기에서 수거한 온갖 가죽갑옷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창칼에 찔려 찢기고 조란탄에 맞아 구멍이 난 물건이 한 가득이다.

여기에 다른 몽골부락에서 수거한 갑옷도 한자리에 모아놔서, 간이천막 여러 개를 꽉 채울 정도로 쌓여 있었다.

“저기 보시죠. 형님.”

둘은 노점마냥 널려 있는 천막 근처에, 옹기종기 몰려 있는 몽골인을 바라봤다.

그들 앞엔 잿물과 기름, 염료를 섞어 거무튀튀한 염색통이 있었는데, 가져온 몽골갑옷을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듯 했다.

조선군의 갑옷은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웠지만, 짐승가죽이 아니면 대체적으로 검은빛을 띄고 있지 않나. 저들 또한 비슷한 색으로 맞추려는 게 아닐까?

“음... 조선에 복속한 몽골인인가?”

“그렇겠죠?”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지 얼마 안됐는지,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압록강의 호주에서도 여진족이 저러고 다니는 걸 보지 않았나.

조선은 복속한 이들을 죄다 저런 식으로 머리를 밀어버렸기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축장 겸, 가죽세공 공장을 둘러본 둘은 계속 발을 놀려, 갑옷을 입은 조선관리에게 다가갔다.

“나리. 여기...”

둘은 황보인에게 받은 문서를 건넸고, 관리는 미리 받은 명이 있기에 가볍게 살펴보곤 다시 돌려줬다.

“가축 대신 갑옷을 가지고 싶다고?”

“예.”

“어디에 쓰려고? 요동에서 몽골갑옷을 입고 다니면, 좋을 꼴을 못 볼 텐데?”

관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뿌리자, 둘은 오해를 살까 싶어서 재깍 입을 놀렸다.

“강남에서 처분하려 합니다. 그곳은 몽골갑옷이든 아니든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음...”

둘은 고개를 숙이고선, 슬그머니 눈동자만 올려 관리의 기색을 살폈다.

그간 동팔참을 통해 조선의 소금을 요동에 팔아 수익을 거뒀지만... 오면서 살펴본 바. 요양파 요동군이 황수의 염호에서 소금을 만들어 요동으로 가져오고 있었다.

소금장사는 이제 큰 이문을 보기 힘들어서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둘에게 걸려든 게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는 몽골갑옷이었다.

조선은 수거한 갑옷이 몽골이나 여진에게 들어가는 걸 경계했다. 해서 아예 이곳에서 전부 분해하여 마갑으로 만들거나 다른 가죽세공품으로 만들고 있었지.

허나 어차피 처분할 물건이면, 저 멀고먼 중국의 강남지방에 팔아넘기는 것도 괜찮은 선택 아닌가.

온갖 세력이 난립하는 그곳에 군수품을 팔면, 꽤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호주에서 한 번 더 검사할 걸세. 수량이 맞지 않으면 곤란해 질거야.”

“걱정 마시지요. 나리. 오늘만 거래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오갈 텐데 저희가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까.”

“흐음...”

관리는 계속 미간을 찌푸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인 황보인에게 대충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이 정도 했으면 됐다.' 싶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