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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12화 (112/538)

112. 챕터20. 부서지다 (2)

북평부는 칼간을 북원잔당을 지원하는 불온세력으로 보고 있어서, 지금껏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웃긴 건... 북평부의 상인들이 칼간에 와서 꾸준히 거래해왔는데도, 그 자세를 고수했다는 거지.

어찌됐건 보복을 마음먹은 북평부가 북진하면, 칼간 상인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다.

‘후...’

김을화는 자신이 명을 내렸음에도, 정녕 믿기지가 않아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칼간은 둘째 치고, 살아생전 중국 본토를 공격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몽골부락과 함께 할 줄이야? 정말... 세상 참 요지경이다.

“시간이 촉박한데... 문제는 없겠나?”

“지리감 소속 임시관원이 진공로에 남지 않았습니까. 흥안령 일대는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시일만 맞춘다면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김을화는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리감을 책임지는 이회에 대해서 잘 알았고, 그가 노구를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온 이유와 열망도 잘 알고 있다.

그라면 충분히 몽골초원의 지도를 만들면서, 이주민을 데려갈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다.

“이들의 화포는 어떤가?”

“당장 써먹긴 힘들고, 그냥 본국으로 가져가는 게 좋겠습니다.”

“역시...”

이곳엔 화포가 30문이나 있었다. 허나 안 쓴지 오래 되서 거미줄만 잔뜩 끼어 있었지.

김을화는 화기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간 경험을 통해 그가 지금껏 봐왔던 화포와 야전화포가 확연히 다른 건 알고 있었다. 생긴 건 비슷해도, 운용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보다 성능이 개량되고 최대한 통일되어서, 집어넣는 화약의 양, 철환, 철령전 마저 기준에 맞춰 정해져 있는데... 성능이 미심쩍은 중국 화포를 굳이 쓸 필요는 없지.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게. 요동군이 이제 곧 도착할 테니, 우리가 먼저 이곳을 정리하고 거용관으로 가야할 걸세.”

“예. 걱정 마시지요.”

“그나저나...”

“음...”

김을화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린 걸까? 황보인 또한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흘렸다.

“장성을 잘 넘을 수 있을지 걱정되십니까?”

“그것도 그렇고, 계획대로 잘 될지 모르겠네.”

“어련히 잘 하시지 않겠습니까? 제 아무리 북평부라도, 벌써 우리의 움직임을 읽진 못했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칼간 주위를 싹 청소해서 끌고 오지 않았나.

거용관에 진군하기 전까진, 칼간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중국으로 흘러가지 않을 거다.

‘장성을 넘는다. 과연 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지는군.’

김을화는 말없이 저편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연산산맥을 바라봤다.

연오랑은 5개 연대를 이끌고 장성을 넘었는데, 과연 어디까지 갔을지 궁금해졌다.

“아버님. 여기 계셨습니까.”

“왔느냐.”

왠지 모르게, 하루 아침에 나이를 십년은 더 먹은 것처럼 보이는 장구보.

그는 무너진 성벽 위에 올라, 정신없이 돌아가는 칼간을 물끄러미 내려 봤다.

며칠 전의 싸움은 꿈결처럼 잊어버리고, 도시는 부산스럽고 활기차 보였다.

아무리 칼간이 무역도시라 하더라도 그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그는 차마 조선군에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버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조선군에 저항한다고 한들 남는 게 뭐란 말인가? 조선군이 정녕 그들 뜻대로 움직인다면, 이미 칼간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상황이다.

‘벌써 이십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잊지 못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돌려 회한을 담은 눈으로... 도시 너머 산맥에 파묻혀 있을, 거용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천벌을 받았다곤 하나, 명 황실이 그와 그의 가문에게 성은을 내려준 건 분명한 사실.

황제군에 속해 연왕과 싸웠고, 가문이 멸족해 아들 한명만 살아남은 그에겐... 간판을 바꿔 끼웠다고 해도 북평은 여전히 배신자이자 원수였지.

나아가 명이 망한 이후로 지금껏 칼간을 압박해왔던 북평부를 생각하면, 조선군이 거용관을 친다는 말에 격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가능할까?’

천하제일웅관이라 불리며, 이미 천년도 더 전부터 유명했던 성채이자 관문인데... 과연 그곳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머릿속으론 이미 수천번이나 무너뜨렸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바라만 보지 않았나.

장구보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의용병은 모이더냐?”

“예. 그들이야 돈을 쫓아 움직이는 이들이니... 각자 제 살길을 찾는 모양입니다. 한술 더 뜨는 이들은 북평부에 한방 먹여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구요.”

“으음...”

장구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이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선택지에,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글쎄요...”

장구보의 아들 장영은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린 시절에 북평에서 도주하듯 쫓겨나 칼간에서 자라온 녀석 입장에선... 이 땅을 떠난다는 게 좋으면서도 싫은 알쏭달쏭한 심정이었다.

그는 중국인도 몽골인도 아닌 채로 살아왔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으니까.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조선이라고 한들, 딱히 달라질 건 없었지.

“저들이 가문을 보존해 주고, 땅을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곳에서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며 가슴 졸이며 사는 것보단, 낯설긴 하지만 조선땅에서 편하게 사는 게...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요.”

“흐음.”

저게 오롯이 녀석의 생각만은 아닐 터... 명이 망한 이후 칼간에서 자라온 녀석 또래의 2세대들은, 다들 엇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다.

말과 문화가 다른 조선에서 상인으로 살아가는 건 힘들지 모르나, 그게 안 되면 지금처럼 목장이나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겠는가.

또 한편으론... 상인 자제들은 나름 공부를 한 녀석들이니, 조정에 입조해 입신양명을 꿈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이든, 조선이든 이 시대 청년들의 꿈은 관리가 되는 거니까.

“...”

“...”

장구보와 장영은 말없이 성벽 밖을 계속 바라봤고, 성 밖으로 줄줄이 떠나가는 가축 떼가 눈을 어지럽혔다.

반대로 초원 저편에선 일단의 기병들이 계속해서 칼간으로 오고 있었고.

“산서 상인들은 어찌되었느냐?”

“그게 꽤 웃기게 됐습니다.”

장영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칼간 상인들마저 산서로 떠나는 와중에도, 산서상인들 일부는 티끌만한 이문조차 놓치기 싫어서 떠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 탐욕의 끝은 절망이었고, 그들은 그대로 조선군에 사로잡혀 오도가도 못 하고 있었지.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 그들을 데려갈 사람이 칼간으로 찾아왔다.

“조선이 산동과 요동상인을 이곳까지 불러들였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니, 몸값을 받고 산동상인에게 넘겼다고 하더군요.”

“허...”

장구보는 자꾸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자, 그저 헛웃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몸값을 받아내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고작 일개 상인을 두고 조선이 나서서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

“산동상인은 좋아했겠군.”

“예. 산서와 산동이 경쟁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산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산동이 더욱더 흔들려 하겠지요.”

“음...”

산서는 오래전부터 북방무역에 있어서, 산동과 경쟁하는 사이였다. 산서가 몽골초원과 이어진다면, 산동은 동북의 요동,조선과 이어졌지.

허나 운석핵꿀밤으로 중국이 쪼개지고, 산동이 북평부와 으르렁거리는 동안 산서는 북평부에 붙어 열심히 꿀을 빨아왔지.

그들에게 한방 먹이는 일을 산동상인들이 마다할 리가 없다.

“헌데... 어째서 조선이 거용관을 치려는 걸까요?”

“글쎄다.”

사실 장구보 또한 이게 의문스러웠다. 아니다. 장구보 뿐만 아니라 칼간의 상회주들 모두가 그러했다.

거용관을 치는 게, 대체 조선에 무슨 이득이 된단 말인가?

“아...!”

“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동안, 둘의 눈에 생경한 먼지구름과 인마의 떼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조선군이 허풍을 떤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 멀리, 요동의 깃발을 세운 일단의 군세가 발 빠르게 칼간으로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음...”

“허!”

“과연. 과연!”

칼간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구릉을 끼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선군 영채와 칼간을 지켜보던 이들.

바투한을 비롯한 천호장들은 물고기 떼 마냥,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인마의 떼를 보며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선군의 제안을 생각 없이 넙죽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

흥안령 일대를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그 자신에 비하면 미흡하지만... 어찌됐건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토가바토르를 하루아침에 멸절시켜버린 조선군이다.

만호장이라 하나 실제로는 오천호장쯤 되는 바투한 입장에선, 강맹한 조선군을 경계하는 게 인지상정.

당연히 사정을 먼저 살피고자 했고, 조선군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

혹시나 함정을 판 게 아닐까 우려하면서, 바투한은 일단의 병사를 조선군에 딸려 보냈고... 시간이 흘러 지금.

함정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음에도, 이렇게 선발대와 함께 칼간 근처에서 모여 또 다시 살피고 있었다.

“정말로 거용관을 치는 모양이군. 요동군까지 왔다라...”

“흐음...”

하나같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일로 인해 초원의 정세가 흔들리게 될 테니까.

몽골부락은 초원에서 생산할 수 없는, 면직물이나 식량, 약재등의 중국의 물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칼간을 내버려뒀고, 원래 역사에선 명나라가 마시馬市를 지렛대 삼아서 북원과 오이라트를 조종할 수 있었지.

허나 명이 망했으니 이제 알아서 구해야 할 상황 아닌가. 구할 수 없다면 빼앗는 수밖에.

해서 몽골부락은 끊임없이 중국과 요동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바로 밑에 있는 산서의 태원을 연례행사처럼 두들겨 패면서 덩치를 불려왔지.

하지만 이제 거용관이 무너지면, 산서뿐만 아니라 북직례와의 길이 열리게 된다.

“헌데 멀리 떨어진 조선이 어째서 거용관을 노리는 걸까요?”

“글쎄...”

바투한을 비롯한 다른 천호장들 모두 이걸 고민해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음험한 의도가 숨어 있을지 모르지만, 나쁠 건 없잖아?

거용관이 무너지면, 통통하게 살이 찌고 먹음직스럽게 익은 북직례가 코앞에 놓일 테니까.

“저렇게 진심이라면... 우리만 부른 게 아니겠군요.”

“그렇겠지.”

바투한은 조용히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보르와 투가보르는 어떻게 움직일지...?”

“그들은 상도를 지킬 것이다.”

“음...”

이들은 조선군을 통해서, 또 중부초원을 떠도는 부락에게서 소식을 입수했고, 요동군이 상도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상도 인근을 근거지로 둔 만호장 타보르와 투가보르는, 이곳에 신경 쓰기보단 요동군을 막는 게 더 우선일 거다.

“자가탄과 휴르사리도 움직일까요?”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을까. 원정은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인데, 카라코룸을 쉽게 버릴 리가 없다.”

“흐음...”

바투한은 부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맹렬히 머리를 굴려댔다.

오래전에 티무르 제국으로 피신했던 부냐시리가 아룩타이의 도움을 받아 칸이 되었으나, 북원의 재건은 요원했다.

티무르가 죽고 난 후 티무르 제국은 쪼개졌고, 서방 칸국은 몽골초원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운석핵꿀밤으로 명도 망해버렸지.

결국 북원잔당과 오이라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역량만 끌어 모아 끊임없이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나아가 우량카이 3위의 처분을 놓고 아룩타이와 부냐시리의 관계 또한 악화되자, 안 그래도 분열됐던 몽골부락은 더욱더 분열하고 말았다.

심지어 바투한처럼 항명출신 만호장까지 초원의 패권에 도전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더 이상 이런 소모전을 감당치 못한 북원잔당과 오이라트는, 일단 손을 잡고 중국을 먼저 패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서북부를 먹고 나서 덩치를 키운 후에, 다시 한판 붙자는 거지.

하지만 반대로 바투한이나 토가바토르 같이, 원정을 떠나 비어 있는 초지를 집어 삼키려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해서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부냐시리는 만호장 자가탄을, 아룩타이는 휴르사리를 남겨뒀지.

‘허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있나.’

섬서와 몽골초원을 이어서 둘 다 키우겠다는 건데... 바로 옆에 오이라트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연결고리는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바투한은 이 틈에 산서를 치면서 힘을 키우려 했지만, 조선군의 등장으로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거지.

“헌데... 우량카이의 기세가 매서운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거대 몽골부락은 조선군이나 요동군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찌됐건 회군하게 될 테니, 다른 부락이 뜯어 먹히든 어쩌든 바투한 입장에선 상관없는 일이지.

허나 우량카이는 회군하지 않고 초원에 눌러 앉을 작정 아닌가. 그놈들이 힘을 키우는 건, 직접적인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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