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17화 (117/538)

117. 챕터20. 부서지다 (7)

“억!?”

검은 천으로 둘둘 감싼 팔뚝에 강철이 숨겨져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인지, 창을 내지른 호위는 헛기침을 내뱉었고.

연오랑은 오히려 역으로 힘을 잃은 창대를 휙! 끌어당겨, 균형을 잃고 엉거주춤하게 쓰러지는 호위병의 뒤통수에 장도를 박아 넣었다.

물러섰던 자리에서 다시금 잔걸음으로 돌진.

장도를 정심에 놓고 우악스럽게 파고들어 강맹한 일격을 선사.

호위병의 대도를 찍어 누르고, 휘릭! 쓰러진 호위를 걷어차며, 팔을 크게 벌리며 한손으로 허공에 수를 놓았다.

나비처럼 너풀너풀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장도를 피해 호위병들은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서자.

또 다시 사방에서 벌떼가 몰려와 그들의 등을 쑤셨다.

“크억.” 쿠쿵. “끙...” 풀썩. 연오랑이 호위대열에 파고들어 시선을 끌고 대열을 무너뜨리자, 그 틈만 노리고 있던 훈련대원들이 매섭게 일격을 날려 죄다 무너뜨린 것.

“...!”

“뭘 그렇게 놀라?”

연오랑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지휘동지를 보며 히죽 웃어줬고, 반대로 지휘동지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입을 열지 못했다.

지휘동지의 눈엔, 우당탕탕 부딪치더니 사방으로 피보라가 일었고, 그의 호위들이 죄다 땅에 쓰러진 것처럼 보였으니까.

“지휘동지라고? 그럼 성주는 도지휘사인가? 아니군. 거용관의 사령관이 도지휘사니, 지휘사쯤 되겠군.”

“...!”

뜬금없이 나타난 괴인이 옛 명나라 관직을 줄줄이 읊어대자, 지휘동지는 더더욱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맹수가죽갑옷을 입은 것도 경천동지할 일인데,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할 자들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명이 망한 지가 언젠데, 쥐꼬리만한 북직례에서 명의 관직을 그대로 쓰는 게 말이냐 되냐? 하여간 허풍은.”

연오랑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동안. 지휘동지의 호위병들은 속절없이 허물어졌고, 이윽고 남은 사람은 비단옷에 피가 잔뜩 묻은 지휘동지 뿐.

“자. 지휘동지 나리. 뒤지기 싫으면 지휘사가 어디 있는지 말해보실까?”

연오랑은 지휘동지 앞으로 성큼 다가와, 피를 닦지도 않은 강철장갑을 앞세워 지휘동지의 머리칼을 쥐어틀었다.

연오랑이 지휘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연조운과 연전위는 성벽을 따라 이동하면서 성문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성벽 위에 있던 경계병은 모두 처리해서 성벽 그림자에 파묻혀 누워 있었고, 군데군데 타오르던 화롯불을 모두 옮겨 한곳에 뭉쳐 놨다.

어딘가에서 성벽을 보고 있을 보권성 병사들도 뭔가 이상한 걸 알아차리겠지만, 그보단 밖에 있는 연대기병에 신호를 보내는 게 더 시급한 일.

화롯불을 한곳에 모아 환하게 불을 밝히자, 저 멀리 어둠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실제로 보였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느낀 건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어둠이 출렁거렸다.

“가자.”

“...”

둘이 이끄는 소대는 재빠르게 성벽 밑으로 내려가, 성문 근처에 있는 막사로 조용히 다가갔다.

보권성의 병사들이 생활하는 막사는 따로 있지만, 성문 근처에는 상하번으로 번을 도는 병사들이 취침하는 곳이 따로 있었다.

다만 윗선의 명령으로 보권성의 병력은 빠져나갔고, 빈자리를 채우려면 남은 병사를 더 빽빽하게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피곤에 절은 막사의 병사들은 죄다 골아 떨어져서, 코 고는 소리 밖에 나지 않았다.

“큭...” “컥...” 막사 앞을 지키던 병사들은 어둠에서 튀어나와 엄습하는 검은 칼날을 막지 못했고, 담벼락과 지붕 기와의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

“...”

잠깐의 소란스러움 후엔 피냄새가 묻은 정적이 흘렀고, 둘이 이끄는 훈련대원은 암순응한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살폈다.

정신없이 수화가 오가고, 훈련대원은 땅에 내려와 도둑처럼 살금살금 발을 올려 막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삐걱. 나무문이 비틀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탁하고 역한 냄새가 밀려온다.

씻지도 못한 병사들은 죽은 듯이 마구 나자빠져 자고 있었고, 훈련대원은 피 묻은 무기를 들고 각자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리곤 검은 칼날이 어둠을 가르며 중력에 이끌려 떨어졌고, “컥.” “끄억.” “헙...” “...” 자고 있던 병사들의 목덜미는 하나같이 쪼개져 막사에선 피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 끝냈습니다.”

“올라가자.”

오롯이 달빛에 의지한 탓에 번들거리는 훈련대원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

훈련대원들은 삐걱 거리는 나무 계단과 나무 바닥에 핏방울을 길게 수놓으며, 2층, 3층 누각을 점령해 침묵의 막사로 만들어줬다.

이윽고 막사 두 개를 모두 정리하곤, 다시금 막사의 외벽 그림자에 파묻혀 성문을 향해 다가갔다.

이쯤 되면 성문을 지키던 병사도 뭔가 이상한 걸 알아차렸을 터, 그럼에도 소란피우지 않고 훈련대원들은 잔걸음을 재촉했다.

‘열넷.’

‘저쪽부터.’

연조운과 연전위는 어스름한 달빛이 비출 때마다 서로 수화를 나눴고, 곧장 뒤따르던 소대원에게 전달.

쓰윽. 모두는 활을 꺼내 화살을 겨눴고, 쉐에엑! 두서없이 마구 쏴대기 무섭게 다시 독문무기를 꺼내들고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헉!” “적이다!” “어디야!” “누구냐!” 뜬금없이, 그것도 성 안에서 화살이 날아왔으니 당황한 게 분명.

엄호사격을 받으며 달려온 호랑이 떼를 보며, 횃불을 든 병사들은 기겁해 목청을 높였다.

쉐엑! 반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칼날을 엉거주춤하게 대도로 막아보지만, 휘릭. 어느새 옆구리를 파고든 직도가 흉갑의 아랫부분을 찢고 병사의 허리춤을 쑤시고 들어갔다.

“컥...” 휭! 병사 한명을 쓰러뜨린 연전위는 그대로 몸을 비틀어 뱀처럼 발을 밟았다.

옆으로 비켜섰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옆에서 짓이겨 오는 창날을 직도로 찍어 눌렀고.

거력을 이기지 못해 끌려온 병사의 어깨를 왼손의 직도로 찍어 눌렀다.

휙휙. 병사의 허리가 비틀리며 자세가 흐트러지기 무섭게, 어느새 반대편에서 날아온 오른손의 직도가 사선으로 스치고 지나가며 병사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놨다.

“흡!”

양 옆의 병사들을 쓰러뜨리기 무섭게, 연전위는 뒤를 노리는 매서운 살기를 느꼈지만.

“크헉!” 어느새 빛살처럼 날아든 창날이 병사의 뒷덜미를 쑤시고 사라졌다.

횃불의 불빛에 번들거리는 연조운의 얼굴이 살짝 보였고, 눈이 마주친 연전위는 감사의 눈인사와 함께 몸을 날렸다.

휭휭! 연조운의 창날은 연전위를 호위하듯, 용트림을 하며 꽃을 피워냈다.

본래 동일한 실력이라면 단병은 장병을 이기기 힘들고, 연조운은 자신의 특성을 개화해 창의 고수가 되지 않았나.

팔자를 그리며 어지럽게 움직이는 발걸음에 맞춰, 그의 창은 위 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렸고 빙글 돌아 매섭게 찔러올 때마다 적병들을 하나같이 몸에 구멍이 뚫려 허물어졌다.

푹푹푹. 장난치듯 날렵하고 가볍게 내지르는 창질이지만, 창날은 가볍지 않지.

그을음을 묻힌 검은 창날은 병사들의 사지 한곳을 스치며 구멍을 내거나 가르고 지나갔고, 하나같이 비명을 내지르며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 뒤를 이어 멧돼지처럼 돌진해 온 연전위가 바짝 붙어, 검파로 후려치고 검신으로 흉갑을 때리고, 철퇴마냥 큼직한 강철주먹으로 얼굴을 뭉개줬다.

훈련대원은 2인1조, 혹은 3인1조로 모여 능숙하게 차륜전을 펼쳐 적병을 모두 정리했다.

“버팀목을 제거한다.”

“너흰 횃불을 준비!”

성문에 있던 적병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나서도 바쁘게 손을 놀린다.

성문 앞에 깔린 시체를 옆으로 치우고, 개미처럼 성문에 달라붙어 낑낑거리며 성문에 붙은 걸목과 걸쇠를 제거했다.

그러는 동안 연전위 소대원들은 근처에 있던 화롯불을 가져와, 성문 근처 창고에서 창대와 부순 가구들로 기름을 묻혀 임시 횃불을 만들었다.

여긴 성 전체가 보급창고인 만큼, 조금만 돌아다녀도 온갖 게 다 있다.

성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자... 성 밖에선 작게 땅이 울리는 진동과 함께, 푸르륵 거리는 투레질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옵니다.”

훈련대는 성문 밖에서 비켜서서 환하게 횃불을 들고, 연대기병을 기다렸다.

연대기병은 흡사 자기 집에 오는 것 마냥 느긋하게 다가왔다.

빨리 돌격해봐야 뭐하겠는가.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괜히 한명이라도 낙마하거나 쓰러지면 줄줄이 전열이 무너진다.

중대별로 모인 연대 기병은 속속 성문을 통과했고, 그들은 하나같이 질린 눈을 하고서 피칠한 호랑이들을 힐끔거렸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라고 말하고 있다.

2연대장 유은지와 3연대장 이순몽은 특히나 그런 눈빛을 감추지 못했고, 횃불을 들고 다가오는 연전위를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다.

“허... 이게 되는 군?”

“적이 방심했습니다. 예상대로 수비병력이 적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둘은 말을 잇지 못하고, 피 묻은 무구를 정리하고 있는 훈련대원을 다시금 바라봤다.

이들은 그가 익숙히 알던 조선군이 아니다. 대체 연오랑이 뭔 수로 이런 괴물들을 키워낸 건지 모르겠다.

“사령관님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라고 하시더군요. 남구의 백성들을 회유하려면 수비병들을 너무 죽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

“병력수가 월등하니, 겁만 줘도 항복할 이들입니다.”

“알겠네.”

“그리하지.”

연전위는 강렬한 눈빛을 감추지 않고 목소리에 힘을 줬고, 둘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시원하게 싸우지 못해서 아쉽지만, 어차피 싸움은 이번이 끝이 아니지 않나.

굳이 피를 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데, 쓸데없이 원한을 만들 필요는 없지.

연대장을 필두로 소대장들은 하나같이 횃불을 건네받고, 무너진 둑에서 터져 나온 홍수처럼 도성을 휩쓸었다.

횃불 때문에 눈먼 화살에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단 연대 기병끼리 서로 싸우지 않는 게 더 우선이니까.

모두가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때.

연손찬이 이끄는 소대도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들은 올라왔던 성벽에서, 다른 훈련대원들과 반대쪽으로 이동하면서 성벽을 휩쓸었다.

횃불과 호롱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순찰병은 좋은 표적이나 다름없고, 어둠에 파묻혀 있던 훈련대원은 사정없이 화살맛을 보여줬지.

그렇게 한참을 성벽을 따라 돌자, 목표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연손찬의 수화에 따라 소대원들은 냉큼 그림자에 파묻혀 주저앉았고, 모두는 하나같이 저 멀리 어둠에 파묻혀 있는 내성과 성문을 바라봤다.

이윽고 성벽에 있던 화롯불이 움직이고, 잘 보이진 않지만 내성 근처에서도 횃불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걸 확인.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움직인다.”

“예.”

이들이 찾고 있던 목표물은 다름 아닌 화포.

원정군은 화포가 기병에게 어떤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익히 경험했지 않나.

재수 없게 하나라도 발사됐다가는, 연대 기병이 우수수 무너질 거다.

‘그건 정말 개죽음이지.’

연손찬은 그리 생각하며 재깍 손짓했고, “흡!” “끄응...” 훈련대원들은 성벽에 걸터앉아 있던 화포에 달라붙었다.

북평부 화포는 조선의 포가와 포대의 개념이 없어서, 그저 나무 뭉치와 돌 뭉치로 대충 받쳐놓은 형태였다.

당연히 꺼내기도 어렵지 않았지.

훈련대원들은 끙끙거리며 화포를 들어 올려서 성벽 밖으로 내던졌다.

쿵! 수백근이 넘는 청동덩어리가 땅에 부딪치자 성벽이 울리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이미 일은 터졌고, 수비병들도 뭔가 문제가 터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이런 잡스런 굉음에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연손찬 일행은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성벽을 따라 빙 돌며 모든 화포를 내던지고, 덤으로 경계병까지 썰어낸 후.

이제 하나둘씩 불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보권성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디가 화약창고 일까?”

“저기 아닐까요?”

창고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대충 찍을 수밖에 없다.

일행은 그나마 조선군의 화약고와 비슷한 전각과 개중에서 가장 큼지막한 전각을 찾아냈다.

“저기 홀로 덩그러니 떨어진 전각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저편에서 일단의 병사들이 움직이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화약고는 폭발할 위험이 있으니, 이 시대에도 다른 창고나 전각과 동떨어져 홀로 위치했다.

원정군도 그렇게 운용했으니, 나름 화기에 정통한 북평부도 비슷하지 않을까?

“가자.”

“예.”

뭐가 됐든 가서 확인하면 될 일.

연손찬과 훈련대원은 성벽을 내려가, 빠르게 화약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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