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32화 (132/538)

132. 챕터22. 숨고르다 (8)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대략 3할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허...!”

“3할이나.”

3할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기업이 공인된 지 고작 2년 밖에 안 지났다.

이 추세라면 잡직관원들이 다 사라지는 데는, 몇 해 걸리지도 않을 것 같다.

“관리가 철저한 군기감 등과 기업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도화서 등을 제외한 모든 속아문에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특히나 선공감, 사옹원, 사복시, 사수감司水監의 이탈이 눈에 띕니다.”

“허허...”

“사복시와 사수감에서 이탈이 일어나면 위험하지 않소.”

“맞습니다. 이는 군사와 관계된 일인데 어찌... 그들은 관원으로서의 충심도 없는 것인가!”

몇몇 대신들이 목청을 높였으나, 그냥 아우성일 뿐이었다.

잡직으로 부리면서 대우를 제대로 안 해주고, 충성만 하라고 하면 누가 하겠냐.

그들은 유학을 공부한 사대부들도 아니니, 공염불에 불과하지.

“특정 기업과 관계된 곳이구려.”

누군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은 세종에게 힐끔 옮겨졌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사수감은 선박의 수리와 운송을 담당하는 부서인데, 이 시기에 사재감과 병합됐다가 세조 때에 전함사로 분리되게 된다.

지금 역사에선 의주에서 무역이 시작되자, 사수감이 오히려 확장되어 독립부서로 유지되고 있었지.

아무튼. 선공감은 건설기업, 사옹원은 자기기업, 사복시는 축산기업, 사수감은 수산기업과 조선기업과 연계되어 있지 않나.

이 모든 건 연오랑이 특히 관심을 갖는 기업이니, 당연히 세종과도 뭔가 통하는 게 있을 거다.

묘한 분위기를 몰아내며, 다시 세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공물이나 공역에 영향이 있나?”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남고 있습니다.”

“...?”

세종과 이지실의 대화에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하는 사람이 줄었는데, 조정에 들어오는 물품에는 문제가 없다고?

“각 기업은 사원들의 공물을 대납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공물로 보내고도 남은 물품이 민간으로 풀리고 있습니다.”

“질이 떨어지진 않소?”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대량으로 만들어 그 중에서 골라서 보내고 있어서, 전보다 품질이 더 나아진 경우가 많습니다.”

“크흠.”

대신 중 한명이 트집을 잡아보려 했지만, 어째 실패한 것 같다.

“사복시와 사수감도 그러한가?”

“멀리 나가보진 못하고 인천군과 부평도호부, 개성 예성포구의 조선기업을 가서 확인해 봤으나... 송구스럽게도 사수감이 관장하던 선소보다 나았고, 장인의 처지 또한 나았습니다.”

“끄응.”

“흠.”

조정에 있을 때보다, 대우를 더 좋게 해주고 있다는 말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선박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고작 몇해만에 그렇게 쉽게 자리 잡을 수가 있소?”

“용연군 대감이 운영하는 조선기업이 기술과 운영방침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음...”

연오랑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동의 조선기업은 조선 제일의, 15세기치곤 나름 최첨단 선소를 가지고 있었고, 이걸 그대로 용연현으로 옮겨왔다.

이곳에서 조정에서 파견 나온 사수감의 관원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으니,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인력과 재원은 해결했어도 자재는 무슨 수로 충당하고 있소이까?”

“착호군이 개척하면서 생긴 목재가 한가득이고, 경기도의 제재기업과 연계해서 수로를 통해 옮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흠. 가능한 일이겠군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중맹선급 배를 신형어선으로 개조하고, 그걸 운용하는 일은 한두푼으로 될 일이 아니다.

조선기업은 여러 집안이 힘을 합쳐 만들거나, 나름 재산과 인맥이 빵빵한 집안만 도전할 수 있는 바.

제재기업과 연계하고, 수로를 이용해 옮기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거다.

더불어 부수적으로 한성의 서강포구, 마포포구, 노량포구 등이 재정비 되는 효과도 있었고.

“또한 모든 조선기업이 같은 운영방침과 기업내규를 따르고 있으니, 지방의 조선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지실은 흡사 조선기업의 대변인마냥 대신들의 모든 반론을 무력화시켰고, 다들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사복시는?”

세종이 주제를 바꿔 묻자, 사복시를 속아문으로 두고 있는 병조판서 조말생이 냉큼 보고서를 뒤적이며 입을 열었다.

“축산기업과 사설목장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는 중이라서, 군마나 짐마의 수요는 모두 충당하고도 남습니다. 다만 관리가 허술한 지방의 사복시 목장 중에서 기업에 팔리거나, 농지로 바뀐 곳이 여럿 있습니다.”

“흐음...”

“음...”

사복시의 관리소홀과 높은 노동강도는 이미 여러차례 문제가 제기되어 왔지만, 군마의 직접수급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조정에선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결책이라면 그저 더 많은 돈을 쑤셔 넣는 것뿐인데, 조정 사정상 마냥 그게 쉬운 건 아니었지.

“목마장이 농지로 바뀐다고 했는데... 그럼 무섭게 불어난 축산기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 거요? 조선팔도에 없던 땅이 새로 생기진 않았을 텐데...?”

“아니다. 없던 땅이 생겨났지.”

세종이 중간에 끼어들어 답을 대신해줬고, 조말생은 감사의 표시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선 말을 이어 붙였다.

“예. 전하 말씀이 옳습니다. 착호군이 개척한 광대한 미개척지가 있고, 민간에서도 착호군의 예를 본받아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소. 용연군 대감이 있던 하동에서도 목마장을 농지로 쓰기 힘든 산중턱에 만들지 않았소? 그걸 보고 배운 모양이오.”

“끄응.”

“흠... 미개척지라...”

“산중턱에 만들어진 목장이라...”

뭔가 상식에 안 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산이 송곳마냥 무조건 위로만 솟아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산맥과 산맥에는 분명히 사람이 살고, 짐승이 머물만한 공간이 충분히 있었다. 다만 맹수4종세트 때문에, 지금껏 외각만 깔짝깔짝 건드리며 다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지.

또한 말이 무조건 평원과 초원에서만 잘 자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산이든 논이든 초원이든 말은 어디서든 크기 마련이고, 품종개량이 미흡한 이 시대의 말은 죄다 거기서 거기다.

평원에서 자란 말보다 장거리주파능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반대로 산에서 자란 말은 험지적응능력이 더 뛰어났다.

“허면 해결책은 있나?”

“가장 선결될 사안은 잡직관원을 속량하는 것이고, 멀리 보면 잡직의 품계를 올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허나 그러한들 이탈은 막을 수 없으니... 호주의 귀화교육당과 직업교육당의 예를 본받는 게 좋겠습니다.”

“흠.”

“직업교육당이라...”

조말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조판서는 뒷목을 잡았고, 회의실 귀퉁이 한편에 앉아 있던 호조관리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보고서를 들쳐보며 뭔가를 정리하는 게 아닌가.

“속량문제는...”

세종은 호조관리들을 힐끔 보고선, 다음 문제로 먼저 넘어갔다.

“잡직품계를 정비하는 일은 보다 심도 깊게 논의해야 될 일이니 다음에 하도록 하고... 직업교육당의 예를 준용한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앞으로는 조정이 필요한 관원을 수급하기 힘들어질 게 자명한 일입니다. 직업교육당의 예를 비춰보아, 처음부터 조정이 주도해서 교육시키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허허...”

“음.”

“대신 그렇게 교육받은 인원은 일정기간 동안 조정에서 일하게끔 강제해야겠지요.”

“그렇게 관리생활을 마친 이들은 민간으로 퍼지겠군.”

“예.”

미래를 읽은 세종의 말에 조말생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조말생의 폭탄발언에, 다들 머리를 감싸고 고민을 시작.

대신들조차 뒤에 앉아 있던 소속 관리들과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금껏 조선 역사에 없던, 전혀 다른 방식의 관리채용이 논의되고 있으니까.

“이게 정녕 가능하겠소?”

“냉정하게 말해서,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 아니오? 배봉마을이 어떻게 커진 건지 잊었소? 각 기업은 어떻소? 이미 실력을 가진 이를 채용하긴 하나, 기업에서도 각자 교육을 시켜 장인을 키우고 있소.”

“하긴 애초에 기업자체가 용연군과 배봉마을 등에서 교육받아 만들어진 곳이긴 하지.”

"그건 그렇구려..."

관리의 임용은 이미 완성된 인재를 뽑아 쓰는 거지, 조정이 인재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또한 지금껏 조선의 기술전수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도제방식이었지만, 연오랑은 오래전에 이 통념을 깨부수고 집체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나.

기업은 모두 이 방법을 쓰고 있고, 이미 의주와 호주에서 쓰고 있는데, 낯선 방식이라고 해서 굳이 조정에서 멀리할 필요는 없다. 과거시험을 없애버리자는 것도 아니니까.

모두의 동의를 얻어 논의는 급물살을 탔고, 이윽고 세종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호조판서 정역에게 집중됐다.

말이야 언제나 많은 법이고, 정작 중요한 건 실천 아닌가.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속량과 직업교육당의 신설이 가능하겠나?”

“예... 충분히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여기.”

정역은 세종에게 재깍 보고서를 내밀었고, 대신들에게도 먹물이 아직 마르지도 않은 보고서를 줄줄이 돌렸다.

호조관리들이 뭐하나 했더니, 이걸 계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속량한다는 말은 그냥 부려먹던 이들에게 녹봉을 줘야한다는 뜻. 물론 이제 양민이 된 이들에게 세금을 걷겠지만, 엄청난 지출이 발생할 거다.

‘같은 신분이었던 잡직관원이 속량되는 걸 보면, 다른 관노들도 자극받을 터... 나쁘지 않다.’

기존 신분제를 흔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세종은, 보고서를 읽으며 속마음을 숨겼다.

잡직관원 말고도 관노비는 많고 많으니, 어떤 식으로든 동요가 있지 않을까? 그걸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예년과 비교해 올해 세수는 3배나 증가했습니다. 그중 반수는 의주에서 무역을 통해 얻은 수익과 원정의 대가로 중국상인에게 받은 대금이나, 조선내지에서만 세수가 1.5배가 증가했습니다. 속량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

“과연..!”

세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대신들은 반색하면서 환호했다.

역시 돈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모두를 기쁘게 하는 법.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조정입장에선, 말 그대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길 일이지.

허나 세종은 그리 반기지 않는지, 살짝 심드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많이도 아니고 고작 성저십리와 경기도의 과전에서만 양전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정도라?”

“예...”

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걸까? 다들 들뜬 기색을 억누르며 입을 다물었다.

“과전을 정리하는 일에 말이 많았는데, 결국은 이런 결과가 나왔군.”

“...”

다들 할 말이 없어 벙어리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왜인포로를 한성으로 끌어오는 일부터, 다른 땅도 아닌 과전을 정비한다는 일까지.

이 일에 조정신료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지만, 세종은 어떻게든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그 과정에서 과전을 불법점유 및 취득한 양반집안 몇몇이 박살나고 재산을 몰수당했지. 그런데 이제 세수가 늘었다고 좋아하고 있으니, 세종 입장에선 씁쓸할 수밖에.

“허면 삼남지방에서 이앙법을 전파하는 일에 반대하는 의견은 더 이상 없겠지?”

“물론입니다.”

“예!”

세종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모두는 일심동체로 입을 열었다.

이미 성과를 보였는데, 여기다대고 또 딴지를 걸 수 있나. 명분은 이제 완전히 세종에게 넘어갔다.

“좋다. 잡직관원은 모두 속량하는 걸로 결정하고, 잡직품계와 직업교육당 신설은 다시 논의해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예. 뜻대로 하시지요.”

“다시 삼남지방의 양전사업을 논의해보지. 고려인들을 처리할 방안은 준비됐나?”

“예.”

이조판서 허지는 냉큼 몸을 놀려 보고서를 찾아 세종에게 건네고, 다른 대신들 또한 수북이 쌓인 보고서를 뒤적였다.

“고려인들의 호적정리는 8할 이상 진행된 상태입니다. 다만 고려인과 함께 귀화한 여진인들의 정리는 6할 정도인데, 지금도 꾸준히 호주로 오고 있어서 시간은 더 필요할 걸로 보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그 과정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여진인은 계속 귀화하고 있으니까. 신입관리가 충원되면, 그 일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겠군.”

“예... 준비해 놓겠습니다.”

흡사 힐난하는 것처럼 들리는 세종의 말에, 허지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계속하게.”

“크큼. 내지에서 추수가 시작되면 고려인 이주가 시작할 예정이고, 수는 대략 4만정도 입니다. 직업교육당과 귀화교육당에서 교육을 마치고, 또 이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고려인들이 속속 기업에 채용되고 있는데, 그 수가 대략 만여명 정도로 예상됩니다.”

“...”

“전에 귀화한 여진인들은 교육에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올해에 내지로 들이기는 어려울 듯 보입니다. 다만 착호군과 함께라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착호군도 호주와 똑같은 교육과정을 진행할 수 있고, 아무리 여진인이라 한들 창칼이 넘쳐나는 착호군에서 까불 수는 없다.

오히려 거기서 교육받은 이들이 더 고분고분할지도?

세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중 3만은 전라도로 1만은 착호군으로 보냅니다. 경기도에 머물고 있는 왜인포로와 관리들, 양전사업을 위해 전라도에 파견 나가 있는 관리들을 통해 농지정리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먼저 시행될 지역은 모두 정해졌나?”

“예.”

허지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한다고 지금껏 잠도 못자고 일을 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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