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35화 (135/538)

135. 챕터23. 정리하다 (3)

“또한 박수무당들 중에서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에서 일하는 이들이 꽤 되는 걸로 안다. 그러니 조선팔도에 퍼져 있는 박수무당을 모아 살피면, 의서에 나와 있지 않은 민간요법을 찾을지도 모르지.”

동서활인원은 한성의 빈민구제를 위해 만든 의료원 같은 곳으로, 이곳엔 박수무당과 승려가 공역을 대신해 일을 하곤 했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아 통합하고 분류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그들의 쓰임이 결정 나겠지.”

“...!”

“깊고 깊어 그 맥을 찾을 수도 없는 불교조차 하나로 모으고 있는데, 그보다 못한 박수무당인데 못할 게 뭔가.”

‘아... 뜻을 굳히셨구나.’

반문도 못하게 말을 쏟아내는 세종을 보며, 맹사성은 속에서 나오는 말을 꾹 눌러 담았다.

세종은 이번 일을 단순히 종두법에 국한된 게 아니라, 중앙집권화의 방편으로 접근하고 있었으니까.

박수무당은 우연히 신내림을 받은 이들 말고도, 각 지방에 대를 이어 거주하면서 세습화되어 물려내려온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분명 양반사대부도 지방호족도 아니면서, 알게 모르게 민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지.

허나 백성들이 왕실과 조정을 믿고 우선시해야지, 박수무당의 말에 흔들리면 되겠나.

알게 모르게 민간 백성들의 머릿속에 퍼져 있는 영향력마저, 쓸어오겠다는 거다.

“하오나... 그리 쉽게 되겠습니까.”

맹사성은 조심스레 그리 반문했다.

“돈 벌게 해주세요.” “몸 건강히 살게 해주세요.” 등등의 현세 구복적인 신앙을 어떻게 억누를 수 있을까.

이건 괴력난신을 멀리한다는 유학자들조차, 떨쳐내지 못한 욕심이자 의식 아닌가.

“어려울 게 무엇인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

허나 그의 반문을 세종은 단호히 잘라냈다.

“빈자리는 조선불교가 채울 것이다. 현세 구복을 굳이 근본도, 체계도 없는 잡신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지 않나. 조상을 믿든, 부처를 믿든, 하늘에 빌든, 아니면 자신을 믿든, 굳이 무당을 통하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 백성들이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돕는 게 조정이 할 일이다.”

“아...!”

“더불어 이 작업을 통해 백성들을 현혹하고, 갈취한 가짜 박수무당들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기대되는 군. 박수무당들끼리 모이면, 서로가 모시는 신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재밌지 않겠는가.”

“...”

뭐라 말하기 힘든 오묘한 미소를 짓는 세종을 보며, 맹사성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즉흥적인 게 아니었구나!’

맹사성은 그간 쪼개져 있던 조각 중 하나를 찾아내고선,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연오랑의 주장과 태종,세종의 동조로 인해서, 뜬금없이 불교계가 통합작업을 거치며 조선불교가 튀어나오고 있지 않나.

조선불교 공의회가 시작될 때부터, 세종은 이럴 작정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일사천리로 계획을 늘어놓을 수가 없지.

맹사성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그려봤다.

‘위험하지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일정한 집단이나 규율이 없어 통제도 불가능한 박수무당보다는, 덩치는 크지만 차라리 하나로 묶인 불교계가 더 쉽다고 본 것.

문제라면, 불교계를 그렇게 살려놓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하는 건데...

‘어차피 불교는 지울 수도 없고, 이미 엎지러진 물 아닌가.’

맹사성은 그리 생각하면서 세종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조선불교 공의회가 시작되면서 기존에 고수하던 억불정책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조정이 손 놓을 생각은 절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매의 눈으로 살피면서, 불교계를 이용할 계획이다.

그것도 단순무식하게 승려들을 불러 노역이나 시키는 게 아니라, 보다 세련되게 정치,문화적으로 이용하려는 거지.

‘이미 개덕사를 통해 증명되었으니...’

호주에 만들어진 개덕사는 무려 조정이 만든 사찰인데, 이전의 조정분위기를 생각하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머리 좋은 맹사성조차, 불교를 이용해서 여진족들을 교화시키고 포교 및 귀화시키려는 생각은 감히 떠올려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를 보라.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보란 듯이 성과가 나오고 있지 않나.

해서 요동에 영향력을 투사하고, 그 과정을 가속화시키기 위해서 호주에 거대사찰이라 할 수 있는 개덕사를 지은 거지.

그러니... 앞으론 불교계가 조정에 영향력을 끼칠 순 없지만, 민간에는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을 게 분명.

이는 양날의 검이니 충분히 경계하는 동시에, 그만큼 관리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거다.

“이 일은 접종하기 전에 시작해야 할 테니, 판서들에게 일러 처리하라고 할 것이다. 그대는 오롯이 강화도의 일에만 집중하도록.”

“예... 그럼 강화에서의 결과가 나오면, 그 후의 접종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맹사성은 박수무당과 관련된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지, 냉큼 보고서 한편을 가리키며 물었다.

조선팔도 전역에 접종을 시행해야 할 텐데, 이 방법을 놓고서 의원끼리도 의견이 갈렸기 때문.

“음...”

세종이 봐도 애매해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떤 방법을 택해도 말이 나오게 생겼다.

양반들부터 실시하면 “양반만 사람이고, 다른 백성은 사람도 아니냐?”라는 말이 나올 거다. 반대를 선택해도 마찬가지.

한성에서부터 실시하면 “한성만 사람이고, 지방은 사람도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가장 시끄럽지 않은 방법은, 조선팔도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하는 겁니다.”

“하지만 오래 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겠지.”

“예...”

결국 돈 문제 아닌가.

‘허나... 지금 상황에선 차라리 무리하더라도 돈을 쓰는 게 낫다. 어차피 올해 겨울이나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일 아닌가. 여유는 있다.’

세종은 호조가 올린 보고서를 꺼내 읽으며,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안 그래도 조선팔도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는데, 괜히 분란거리를 만들어서 좋은 흐름을 나쁜 흐름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려면... 의원이 문제 겠군.”

“예. 우두에 걸린 소는 충분히 있고, 전파가 어렵지 않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어차피 이번 별시에 의과醫科를 치를 테니, 총원을 추가로 더 늘리도록 하지. 모든 현에 의원을 파견하려면 몇이나 필요한가?”

“헙...!”

맹사성은 대책 없이 지르는 세종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내뱉었지만... 답을 종용하는 눈빛을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무리 못해도 사백명은 충원해야 할 텐데... 무리가 아닐런지요.”

“어차피 각 현에는 의과에 합격하진 않았으나, 민간의원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그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쭉정이를 걸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운이 좋으면 그들만의 비전의술을 찾을 수도 있겠지.”

“예.”

맹사성은 일리가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

뭐 하나 할 줄 아는 이들을 모아서 뒤지다 보면, 그간 알지 못하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을 지금껏 무수히 경험했다.

민간의원들 사이에서도 분명. 조정의 의원들조차 모르는 비전의술이 한두가지쯤은 있을 거다.

“그렇게 제대로 교육받은 의원이 모든 현에 상주하면, 백성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가깝게는 귀화교육당, 멀게는 성균관까지.

조정이 주도하는 집단교육은 어차피 하려던 일 아닌가.

그저 그 규모가 많이 커진 거니, 명분상으론 딱히 문제될 건 없다.

“다만 재정이 문제인데... 일단은 교육부터 시키면서 생각해보도록 하지. 자질이 부족한 이들도 있을 테니까.”

“예...”

“마마를 물리치는 일인데, 돈 때문에 못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만약 시끄럽게 구는 집안이 있다면, 적몰을 해서라도 보충하면 되는 일이다.”

“...!”

‘허허...’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게 하지 않는 걸 보며, 맹사성은 다시금 세종의 단호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지.’

물론 이 생각도 같이 들어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종두법과 의과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모두 풀어놓고 나자, 세종은 ‘더 할말이 남았나?’하는 눈을 숨기지 않았고.

맹사성은 다시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운 모습인 터라, 오히려 세종이 더 의아할 정도다.

“하옵고...”

“또 무엇인가?”

“정선공주님의 혼사는 어찌되는 것입니까?”

“문제라도 있나?”

세종의 눈빛이 살짝 날카롭게 변하는 것 같자, 맹사성은 냉큼 자세를 바로하고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북정원정군이 회군하면 그 뒤처리와, 개선식, 별시, 고려인 이주까지 함께 진행될 텐데... 미리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돌려 말하긴 했지만... 앞으로 관리들이 미친 듯이 구르게 될 텐데, 괜히 피곤하게 나중에 알려주지 말고 미리미리 알려달라는 뜻.

세종 또한 냉큼 알아듣고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아바마마께서 곧 돌아오실 테니, 하명을 받아 처리하면 될 거다.”

“알겠습니다.”

맹사성은 세종의 시원한 대답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나중에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어졌으니까. 자신에게 총대를 넘겼던 대신들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집현전을 나온 세종은 곧장 궁궐로 걸음을 옮겼다.

맹사성이 정선공주의 이야기를 꺼내서 일까? 세종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혼인하지 않은 공주와 옹주, 왕자들은 궁궐 내에 각자의 작은 궁에 살고 있었고, 정선공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나 세종을 반긴 건, 정선공주가 아니라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숙위군이다.

“전하!”

“...?”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알아차린 걸까? 숙위군은 냉큼 입을 놀렸다.

“공주자가께선 외유를 나가셨습니다.”

“또 말을 타러 갔나?”

“...”

세종의 물음에, 숙위군은 괜히 자기가 부끄러워서 그저 고개만 푹 숙였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이, 세종이 먼저 답을 찾아냈으니까.

이 시절엔 여자가 말을 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지. 오히려 가마가 고위관리만 탈 수 있는 물건이었다.

또한 요즘엔 말 값이 떨어지고 말 자체가 많아지면서, 일반 양민 중에서도 말을 소유하는 사람이 야금야금 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선공주는 이 범주에 넣기에 민망할 정도로, 밖을 많이 나돌아 다녀서 문제였다. 이동하려고 말을 타는 게 아니라, 무관마냥 말 타는 걸 즐겨했으니까.

“어디로 갔는가?”

“그... 살곶이 목장을 돌아본 다음에, 북청별궁에 들린다고 했습니다.”

“북청별궁이라...”

역시나 오늘 같은 일이 한두번이 아닌 걸까? 세종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봉마을이 용마산속에 만든 북방가옥은, 지금 북청별궁이라 불리고 있었다.

무려 태종과 세종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번 들리던 곳이니, 당연히 왕실인사들도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특히나 실험을 한답시고, 조선에 없던 온갖 건물을 지어놨으니... 어찌 보면 별천지 같은 곳이지.

하지만 왕후와 후궁을 비롯해 왕실인사들이 하도 드나드는 데, 배봉연구원들이 마음 편히 갈 수나 있나.

그냥 왕실에 헌납하고, 대신 다른 땅을 받아 목장연구소를 새로 만들었다.

“언제 돌아오는지 아는가?”

“송구하옵니다.”

“아니다.”

‘후우...’

세종은 이미 대답을 예상했는지, 손을 휙휙 내젓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북청별궁으로 갈 것이다. 채비하라.”

“예!”

바로 코앞을 가는 데, 굳이 거창하게 갈 필요 있나.

괜히 소란스럽지 않게 환복까지 마친 세종은, 겸사복 무관들만 대동하고서 단촐하게 움직였다.

도성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사박사박 소리 나는 자갈도로가 세종을 맞이했다.

성저십리는 농지정리사업이 시행된 첫 번째 지역이었고, 당연히 네모반듯하게 만들어진 전답들 사이로 꽤나 큼직한 논두렁이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무수한 마을백성들의 요청으로, 자갈도로가 몇몇 만들어졌다.

물론 성저십리 밖으로 이어지지도 못했고, 그 수가 몇 개 되진 않지만... 중요한 건, 이제는 관리든 백성들이든 슬슬 자갈도로의 편리함에 대해서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지.

한성에서 살던 관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답답함을 느끼게 될 거다.

세종 일행은 빠르게 성문을 지나쳐 북청별궁으로 나아갔고, 흔들리는 말 위에서도 세종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용연군과 혼맥으로 엮이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이 문제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깔끔한 해답이 보이질 않았으니까.

원래 역사에서 정선공주는 꽤나 비참한 인생을 살았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불화가 극심할 때 태어나서, 막내딸임에도 불구하고 큰 관심을 받지 못하며 자랐다.

혼사를 할 때는 태종이 외척을 썰어댈 때라서, 제대로 된 남편감을 구하기 어려워 부마간탁제까지 실시할 정도였지.

허나 그렇게 만난 남편도 딱히 품행이 좋지 못했다.

상을 치르는 정선공주를 외면하고 외도를 일삼았고, 공주는 마음고생을 하다가 어린나이에 결국 요절하고 말았지.

지금 역사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으나... 태종이 혼사를 논할 때부터 역사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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