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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39화 (139/538)

139. 챕터23. 정리하다 (7)

더불어 행색만 봐도 북평군인게 티가 났다.

중국은 땅덩이가 크고 사람이 많은 만큼, 온갖 갑옷을 다 써먹었지 않나.

찰갑의 변형판인 명광개, 몽골식 가죽갑옷, 조선과 유사한 두정갑 등을 두서없이 마구 입었는데, 특이하게도 비갑을 되게 좋아해서 어떤 갑옷이든 위에 껴입었다.

손목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거무튀튀한 찰갑을 겉에 껴입었으니, 누가 봐도 티가 났지.

북평군만 있을까.

저쪽 한편에는 아직 염색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검은색이 얼룩덜룩하게 묻은 말가죽갑옷을 입은 이들이 떼로 뭉쳐 있었다.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이들도 하는 짓은 똑같았다.

이들도 군가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데, 여긴 몽골어 억양이 흘러나오고 있다.

“소문처럼 정말 엄청나게 붙잡았나 보군?”

“그러게 말일세.”

역시 눈으로 봐야 제대로 느껴진다.

이 시대는 항복한 포로가 전향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나. 북평군, 몽골군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진짜 엄청난 승전을 거듭한 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원정군이 출정할 땐 만삼천여명 정도 됐는데, 회군할 땐 오히려 수가 불어서 이만에 가까웠으니까.

물론 반수 이상은 착호보조군에 속해 있지만, 그래도 전투부대로 편성된 이들이 삼천을 넘었지.

북진토군에서 온 중대장들은 곧장 원정군 중대장들과 만나 교류를 시작했고, 연대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은 원정군 지휘막사로 걸음을 옮겼다.

“오...!”

“과연.”

일석일조에 달라지는 게 사람이라지만, 어쩜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같이 조정에서 일하고 안면이 있던 이들이, 흉폭한 맹수마냥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는 걸 보며... 최운을 비롯한 노신들은 속으로 감탄을 이어갔다.

“고생하셨소.”

“하하. 별말씀을...”

김을화는 최운의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맞이했고, 다른 이들 모두 연대장들과 해후를 이어갔다.

삼한시대의 역사를 통틀어 단 한번도 없었던 원정을 성공하고 왔는데, 할 말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꽃을 피웠고, 이내 분위기가 사그라지자. 특전대 소대장들이 우르르 들어와 큼지막한 지도를 가져와 중앙탁자에 올려놓았다.

새로 만들어진 지도는 전보다 더욱 자세해져서, 산맥과 강줄기, 부락뿐만 아니라, 어설프지만 여진족이 활동하는 길 까지도 표현되어 있었다.

피를 볼 시간이 찾아오자.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분위기가 달궈지고, 윤평이 꾸벅 인사하고선 입을 열었다.

“특전 1대대장 윤평이라 합니다. 다들 아시고 계실 테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이만주 일당과 옛 건주위 소속 여진부락을 정리하는 겁니다.”

“드디어!”

“때가 됐구나.”

윤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장들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동조를 표했다.

원래 역사에서 이만주 부락은 태조의 부하 중 하나로, 먼터무 부락과 쌍벽을 이루며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명이 요동으로 진출하자. 여진족들은 조선파와 명나라파로 분열되었고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지.

모두가 그렇듯 이만주 부락도 조선과 명 사이를 줄타기 하며 고민했고, 결국 명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조선파의 수장이 먼터무라면, 명나라파의 수장은 이만주라 할 수 있었고, 당연히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이후. 이만주 일파는 아예 동북면에서 건주위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명의 후원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이만주 혈족과 연왕이 혈연으로 맺어졌을 정도니, 여진족 사이에서의 위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더불어 사이 안 좋던 먼터무마저 잘 꼬드겨서, 조선을 버리고 명으로 넘어가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세력을 키우던 이만주는 더욱 세력을 키우기 위해 북쪽 해서위 방면으로 진출.

큰 야심만큼 나름의 능력으로 세력을 키웠으나... 북원잔당과 우량카이 3위의 공격을 받고 개박살 났다.

이만주 일파는 쫓겨 오듯 다시 건주위로 돌아왔고, 여기서도 역시나 세력을 키우려고 발버둥치며 조선 변경을 어지럽혔다.

결국 참지 못한 조선이 명의 눈치를 싹 살피고선, 때를 잡아 이만주를 공격.

그 결과. 허무하게 이만주가 사망하며 끝을 맺었다.

이 시절이 바로 세종이 4군을 개척하려고 준비하던 때였고, 그 작업의 가장 큰 장애물이 이만주 일파였지.

지금 역사에선, 이만주의 행보는 다르면서도 비슷했다.

건주위로 근거지를 옮긴 것까진 같았는데, 후원자가 되어줄 연왕과 명이 박살나서 사라져버렸다.

건주위 자체가 해체 되어버렸는데, 그간 티격태격하던 먼터무 일파가 가만히 있었겠는가. 당연히 피를 부르는 싸움이 이어졌고, 조선 또한 배신자의 대표인 이만주를 좋게 봤을 리가 있나.

눈치를 볼 명나라도 없으니, 조선은 “내부 사정만 안정되면, 넌 죽은 목숨이다.”라며 사정없이 눈을 부라렸다.

결국 이만주 일파는 견디지 못하고 북쪽으로 근거지를 옮겨, 원래 역사에서처럼 힘을 키웠으나... 이번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요동과 우량카이 3위는 북원잔당을 밀어내기로 마음먹었고,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마저 끌어들였는데... 눈에 거슬리는 이만주 일파를 가만 놔뒀겠는가.

원정이 시작되기 몇해전부터 이만주 일파를 압박했고, 이들은 울면서 다시 건주위 방면으로 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원래 역사에서와 비슷한 최후가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작전계획은 간단합니다. 북정원정군은 파저강을 따라 동진해, 이만주 일파가 장악한 우라산성兀刺山城으로 나아가고, 북진토군은 압록강을 따라 동진한 후. 북진하여 우라산성의 후방을 막아 여진부락의 퇴로를 차단하는 겁니다.”

“...”

“연대별로 작전목표가 정해져 있으니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고, 북정원정군 사령부 본대는 후방에서 진군하면서 여진포로를 접수하고 후처리를 하게 될 겁니다.”

윤평은 큼지막한 지도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계속 작전을 설명해갔다.

작전은 사실 별거 없었다.

우라산성, 오녀산성이라 불리던 곳은 고구려 때부터 유명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져 여진족만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이곳을 향해 동,서에서 동시에 밀고와 포위해서 끝장내겠다는 거지.

윤평이 연대장들에게 작은 작전지도를 넘겨주며, 계속 설명을 이어갈 때.

연오랑과 공녕군 이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회의장에 들어와, 잠자코 듣고 있었다.

다들 열기를 뿜어내며 토의하는 중이라서, 둘이 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원정군에 외국인포로가 너무 많아지지 않았나.

이들을 조선화 시키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고, 이제 조선을 코앞에 두자 더욱 바빠졌다. 어쨌든 원정군과 발을 맞춰야 했으니까.

옛 몽골군이나 북평군처럼 굴어서야 제대로 돌아가기나 하겠냐. 이건 연오랑이 직접 개입해서 손을 써야했지.

그리고 이 동화작업에 의외로 쏠쏠한 효과를 보고 있는 게, 바로 군가였다.

연오랑이 현대 한국군 군가를 변형해서 착호군에 보급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훗날을 대비해 조선말을 쉽게 익힐 수 있게 하려고 한 것.

출신과 소속은 다르지만 다들 군인들 아니냐.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는 녀석들인데, 다 같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있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법이지.

아무튼. 회의의 열기가 조금씩 잦아들자, 하나둘씩 회의장 한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연오랑을 발견하고 시선이 집중됐다.

북정원정군 연대장들은 의례 있을 연오랑의 잔소리를 기다렸고, 북진토군의 노장들은 감격스러운 눈빛과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개중에는 ‘과연 연씨 핏줄이 어디가지 않는 구나!’라며 감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다들 작전계획은 잘 알아들었을 테니, 덧붙일 말은 없다. 허나 반드시 기억해라.”

묘한 침묵 속에서 연오랑의 음성이 퍼져나갔고, 모두는 홀린 듯 그의 입에 집중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위엄과 무게가 잔뜩 담겨 있지만, 이미 증명을 해냈는데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을까.

다들 눈을 번뜩이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활짝 열었다.

“이 일에 상왕전하와 주상전하의 관심이 지대하고, 모든 여진족의 눈길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이번 토벌을 통해 만천하에 조선의 위상을 알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걸 똑똑히 인지하도록.”

“옛!”

“알겠습니다.”

모두는 하나같이 목청을 높였고, 연오랑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또한 지금껏 조선군의 방식은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다.”

그는 특히나 주의하라는 듯, 북진토군 소속 연대장들을 하나하나 굽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북정원정군은 이제 조선군 방식이 아닌 착호군 방식에 더욱 익숙해졌으니, 이들은 사고 칠 가능성이 적으니까.

“전공과 전과는 여진족의 목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정확한 작전시간과 완벽한 작전성과로만 결정된다. 쓸데없이 여진인 몇 명 더 죽인다고 공이 커지는 게 아님을 반드시 명심하도록. 이는 신군율에 명시된 내용이니, 지키지 않는 이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자, 잠시 침묵이 감돌며 침만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가 퍼져갔다.

이 시대에 전공을 세우고 증명하는 방법은, 오롯이 적군의 목을 벤 걸 보여주는 것 밖에 없지 않나.

병졸들이 괜히 목을 잘라 와서 보이는 게 아니고, 그것도 무거워 코와 귀를 잘라가서 보이는 게 아니다.

어찌 보면 이건 이 시대의 기본상식과도 같은 건데, 연오랑은 그 상식을 무너뜨리고 벗어나게 만든 것.

“똑똑히 알아들었나? 제 때. 제 위치에서, 계획된 작전을 시행하는 것만이 전공과 전과로 기록된다는 걸 잊지 말도록. 다시 말하지만! 목표부락에 포함되지 않는 여진부락을 쳐서 작전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알겠습니다.”

“예...”

연오랑은 머릿속에 쑤셔 넣을 심산인지, 북진토군 소속 연대장들을 한명한명씩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연오랑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이들이지만... 별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다들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연오랑이 이렇게 다짐을 계속 받아내는 건, 말 그대로 이번 작전이 여진족을 완전히 흔들어 북방의 정세를 뒤바꿔버릴 걸 알기 때문.

조금이라도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 건주위 지역의 온갖 여진부락을 다 상대하게 되면... 골치 아파진다.

승리야 당연히 조선군이 차지하겠지만, 이제 다시 내정을 돌릴 시간에 쓸데없이 북방에서 싸우고 있어야 할 테니까.

긴 원정길의 피로를 지워내며 다시금 전투의 피를 끓이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북진토군과 발을 맞춰야 하니, 북정원정군은 때를 기다렸다가 진군을 시작.

외국인 포로를 흡수하면서 더욱 머릿수가 많아진 연대는, 대대별로 쪼개져 파죽지세로 동진을 시작했다.

사실. 이 시절 여진족은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옛 금나라를 세웠던 유서 깊고 거대한 부족들은, 이미 오래전에 중국본토로 다 넘어갔다.

무려 왕릉까지 중국본토로 옮겨버릴 정도였으니, 이 땅에 남아 있던 이들은 중국본토로 가지 못한 겉절이 같은 부족들이었지.

그리고 그렇게 나름의 문명을 일궜던 이들은, 다시 되돌아오지도 못하고 중국에 동화되거나 몽골의 공격에 다 죽었다.

그 때도 이 땅은 변방취급이었던 거지.

그 후. 원의 치하에 들어서자 여진족은 다시금 밟혔다.

몽골은 나름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을 경계하는 게 당연했으니, 이들이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까 싶으면 사정없이 밟아대며 씨를 말려댔지.

원과 함께 움직이던 고려도 마찬가지.

조금이라도 까불어대면 계속 밟아댔고, 고려의 후신인 조선도 마찬가지의 자세를 취했다.

그 고난의 시절이 끝난 지 고작 한세대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시절 여진족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마적떼처럼 구는 귀찮은 놈들이었지.

명나라가 이들을 정리할 수 없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다만 이것저것 주판을 두들겨 봤을 때. 정리하는 데 들어가는 돈보다, 그냥 이간질시키며 부리는 게 더 싸게 먹힌다고 생각한 거다.

더불어 요동에서 동진하는 것에, 발작을 일으키는 조선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한 거고.

조선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들 또한 여진족들을 밟아버리고 싶지만, 명이 사정없이 눈을 부라리며 “요동으로 넘어오면 뒤진다.”라고 경고하고 있는데, 쉽사리 여진족을 박멸할 수 있을까.

그러니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이렇듯 오묘한 정세에 맞물려 여진족은 명맥을 이어갔지만... 생산력과 기술력이 미비하기 때문에 크고 싶어도 제대로 클 수가 없다.

몽골초원 정도로 힘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과 조선에 생필품을 수입하지 않고서는 덩치 자체를 불리기가 힘들다.

그럼 무역을 해주지 않으면, 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조선과 요동을 약탈하는 수밖에 없잖아?

명은 이걸 이용해서 여진족에게 감투를 내려주고, 조공권과 무역권을 허락해 이이제이의 방법을 쓴 거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상황이 달라졌다.

요동이 중국본토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자기들 먹고 살기도 바쁘잖아? 여진족에게 후하게 조공 답례품을 내어줄 수가 없지.

이러면 당연히 여진족은 조선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른바 친조선파 여진족 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더불어 공무역이 무너졌으니 조공 또한 없어진 거나 다름없고, 누구의 강제도 받지 않고 여진족은 개나소나 자유롭게 거래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예전처럼 무역권을 담보로 이이제이 방책을 쓸 수조차 없고, 어느 한부락이 무역권을 미끼로 다른 부락을 흡수해서 세를 불리는 것도 힘들어진 거지.

그 결과. 지금 여진족의 형세는 두각을 나타내는 독보적인 부락이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역사에서보다 더욱 사분오열되어 온갖 잡다한 부족이 난립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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