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챕터24. 쉬어가다 (6)
“저건 뭔가? 전에 왔을 땐 없었는데...?”
“착호군이 창설될 때부터 만들던 곳 일세. 우린 그냥 현충사라고 부르고 있네. 본래 왕릉터 중 하나로 예정되어 있던 곳인데, 상왕전하께서 현충사를 짓도록 명하셨지.”
“현충사?”
“음...?”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고, 청년관리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입을 놀렸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현충사는 참으로 특이했으니까.
“뭐하는 곳인가? 보아하니 관청 같은데... 일반적인 관청은 아닌 것 같고?”
“군병을 위한 묘소이자, 제사를 지내는 곳이네. 개선식 때에 아마 저길 들리게 될 걸세.”
“허헙?”
“지금 군병이라고 했나? 장군이 아니고?”
“그렇네. 군병일세. 이번이 처음이라서 정확한 건 나도 모르겠군.”
다들 청년관리의 말에 살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조선은 물론이고, 이 시대에 일반 백성들을 나라에서 직접 대우해주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연오랑이 주장해서 밀어붙인 일이지.
미래의 현충원을 본떠서 만든 현충사의 필요성과 효용성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걸 지금 조선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였는데... 원정이 계획되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착호군은 사냥과 개간작업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수만명이 몰려다니는 실전훈련을 했다.
당연히 이런저런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릇.
나아가 원정을 떠나 전쟁터로 향하면, 사상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상할 수도 없었다.
헌데 착호군은 정식 군대도 아닐뿐더러, 정치적으로는 애매모호하고 위태위태한 위치에 있었고, 구성원은 나름 잘나가는 집안의 자제들 아니냐.
이들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가는 누가 착호군에 오려할까. 나아가 폭주할 게 분명할 이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찾다가 걸려든 게, 연오랑이 주장했던 현충사였다.
조선은 중국처럼 관우 사당인 관제묘를 마구 세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왕실차원에서 옛 명장들, 혹은 삼한시절부터 내려온 옛 현왕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곤 했었다.
현충사의 본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만, 조정신료들은 이러한 관념의 연장선이라 인식했지.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현충사의 건립이 결정됐고, 만들어지고 나니 다들 나름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양반사대부와 지방호족은 왕실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주니, 억울함이 오히려 가문의 영광이 된 상황 아닌가.
왕실과 조정은 재정의 큰 지출이나 정치적 양보 없이 착호군을 유지하고 개혁작업을 진행할 수 있어서 만족.
불교계는 불교식 장례와 제사방식을 인정받고, 더불어 연오랑이 주장했던 봉안당의 기준을 설정할 수 있어서 흡족.
실제로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이들은 무관과 군병들 아니냐.
이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높아지기를, 현충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기대했다.
시작점은 꼬였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땐 꽤나 잘 풀린 상황이었지.
일행은 길게 늘어진 현충사의 담벼락, 그리고 그 위로 불쑥 솟아 있는 5층 석탑을 바라보며, 청년관리의 설명을 경청했다.
안쪽에서 궁인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는 걸로 보아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숙위군이 지키고 있어서 차마 들어가진 못했다. 아마 개선식 준비를 하는 게 아닐까?
“그럼 착호군은 무조건 현충사에 봉안되는 건가?”
“그건 아닌 걸로 알고 있네. 화장한 유골을 가져왔으니, 각 집안에서 가져갈세. 다만 이름은 남겠지.”
“그게 어딘가!”
“물론일세.”
자기가 착호군도 아니면서, 몇몇 이들이 흥분해서 목청을 높여댔다.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준다는 말에, 확실히 끔뻑 넘어간 모양이다.
“음... 착호군만 현충사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걸세. 그랬다가는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청년관리도 확신할 수 없어 말을 흐렸지만, 다들 고개를 내저으며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추측했다.
정식 군대도 아닌 착호군만 우대하는 게 말이 되나.
애초에 현충사의 명분자체가 이른바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건데, 북변과 남변에서 개고생하는 무관과 정병을 무시했다가는... 사기가 말이 아닐 거다.
“앞으로는 사상한 정병 모두가 현충사에 봉헌되지 않겠나?”
“예조에서 이런저런 규칙을 만들고 있는 모양인데...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흐음. 이것도 나름 시끌시끌하겠군?”
“그렇지 않겠나? 정병은 출신이 다양한데...”
꽤나 진지하면서도 재밌는 주제인 만큼, 일행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만약 현충사에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전사한 이들을 봉안하면, 이 또한 나름의 충격으로 다가올 테니까.
헌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이들도 있었다.
“설마 종묘와 사직도 현충사로 옮겨 올까?”
“그럴 리가 있겠나.”
“혹시 모르지 않나. 따지고 보면 성격이 비슷하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이 문제는 쉽게 언급할 수 없는 문제라서, 다들 목소리를 줄이고선 조심스럽게 입을 놀렸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
여기에 선농당이라 하여, 사직과 비슷하나 살짝 격이 낮은 제단이 하나 더 있었다.
조선은 극한의 농본주의를 추구한 만큼, 사직을 종묘만큼이나 높게 취급해왔으니... 보통 나라라 하면 종묘사직을 하나로 묶어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일 정도였지.
다만 지금 역사에선, 사정이 살짝 달라졌다.
아무리 농사가 근본이라고 한들, 전부다 유교식 제사에 중국전설 속의 신들을 모시는 사당 아닌가.
운석핵꿀밤이 떨어진 이후부터는 종묘를 사직보다 더 우위에 놓으려는 시도가 이어져왔고, 원래역사보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추구하던 태종은 이에 앞장서 왔다.
세종은 이 기조를 더욱 충실히 밀어붙였다.
극한의 농본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과 기업, 상공업을 키우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사직을 높여주는 건 모순 아닌가.
그렇다고 마냥 깔아뭉갤 수도 없으니, 종묘 밑에 사직이 올 수 있도록 은근히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여기에 만약 현충사의 권위가 올라가 사직의 발끝까지라도 갈 수 있다면? 이 또한 큰 변화가 일어날 거다.
일행은 열심히 발을 놀렸고, 현충사를 지나 완전히 성저십리에 들어서자 다시금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황금들녘을 지나왔지만, 여긴 뭐랄까... 깔끔한 황금들녘이라고 해야 할까?
시원하게 쭉 뻗어 있는 흙도로가 이어져 있고,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열을 맞춰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니, 포구에서 만나 합류하게 된 지방출신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청년관리를 바라봤다.
“이건 뭔가?”
“나무를 왜 이렇게 띄엄띄엄 심어놓은 건가?”
“달구지와 마차가 많이 돌아다니지 않나. 논두렁이 빠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서 말일세. 도로 경계에 나무를 심어놨는데 효과가 꽤 좋더군.”
“아...”
“그럴지도.”
허나 아직 농지정리가 되지 않은 곳에서 올라온 이들은,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아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보게.”
이앙법이 시행되는 수전水田은 당연히 주변보다 지대가 낮지 않나. 그렇다보니 논두렁이 위로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이게 한성과 이어지는 도로와 연결되니 살짝 문제가 생겼다.
농기구와 달구지가 돌아다니기 편하게 논두렁을 넓게 만들었는데... 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이게 길인지, 논두렁인지 헷갈려 했던 것.
“그런 일도 있군...?”
“하긴 들어보니, 그럴 법도 하군.”
기존의 논두렁은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청년관리가 말한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다.
더불어 너무 정리를 잘 해놓으니 논이 죄다 똑같이 생겨서, “이게 내 논인가?”살짝 헷갈릴 정도였고, 나름의 표식이 절실해졌다.
더 큰 문제는 자갈도로로 포장한 도로라면 상관없지만, 포장도로는 극히 일부 아닌가. 농사꾼의 욕심을 못 버리고, 자꾸 도로를 파먹어 자기 땅을 넓히려고 했던 것.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매일매일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로를 파먹었다고 벌을 내리기도 애매했으니까.
이런 이유가 모두 합쳐져서 만들어진 게 가로수였고,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에겐 당연히 특이하게 보일 수밖에.
“아마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실시되면 따라하지 않겠나? 착호군이 지나간 지역에선 비슷할 텐데?”
청년관리가 묻자, 가평에서부터 함께 배를 타고 온 이들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고, 똑같은 해결책을 내놨으니까.
어쩌면 착호군의 해결책이 조정에 이식된 걸지도 모른다.
나무그늘에 숨어 가을햇살을 피해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이젠 흙도로가 아닌 자갈도로가 등장.
교차로 옆으로 쭉 이어지는 가로수는 자갈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고, 일행은 자박자박 자갈 가는 소리를 내며 연신 발을 옮겼다.
이윽고 생경한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마을에 도착.
대부분의 가옥이 2층이었는데, 궁궐의 전각만큼이나 크고 생김새도 제각각이었다.
한성의 판잣집이 아니고서야, 조선의 가옥은 집, 마당, 담벼락이 기본 세트로 묶여 있지 않나.
헌데 여긴 엄청나게 큰 하나의 집에, 수십개의 방, 하나의 공동마당을 만들어 놨으니 놀랄 수밖에.
이건 아무리 봐도 집이 아니라, 흡사 군진의 숙소처럼 생겼다.
“여기가 자네가 말한 관사인가?”
“관사는 저 뒤쪽에 있고, 여긴 과거에 합격한 이들이 교육을 받는 곳이 될 걸세. 사실 이것도 관사 건물로 지어진 건데, 조정에서 임시로 빌렸네.”
“오...”
청년관리와 안면이 있는 이가 묻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금 마을을 바라봤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놀라울 따름이다.
온갖 기업이 설립되고, 배봉연구소의 주도하에 성저십리에 새로운 형태의 마을이 건설되지 않았나.
한성에 터 잡은 집안 중에선, 여기서 돈 냄새가 나는 걸 맡은 이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한성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게 뻔하니, 숙박을 하든 채류를 하든 주거공간이 부족해질 게 분명.
이들이 선택한 게 바로, 미래의 임대업과 흡사한 숙박기업이었다.
한성에는 객주나 주점이 작게나마 있고, 이미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관사가 있으니까.
이걸 그대로 베껴서, 일반 백성들에게 제공하려고 했던 거지.
다만 완공 후 제대로 돈을 벌기도 전에 과거가 시행되자, 조정에선 임시로 이러한 건물들을 빌려 과거합격자를 교육시키는 장소로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거참... 저렇게 지어놓으니, 기존의 법으로는 통제하기도 어렵겠군?”
“그러게 말일세. 저게 99칸짜리 고래등 같은 집과 다를 게 뭔가.”
“하지만 99칸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저렇게 높이 지어놨으니, 더 애매해지겠지.”
법으로 100칸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게 규정되어 있고,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지칭하는 말로 방의 개수와는 차이가 있지 않나.
이런 새로운 형태의 건물은 칸과 방의 개수가 괴리감이 크니, 분명 이걸 놓고도 법을 바꿔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마을 어귀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곁다리로 껴서 함께 왔던 이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고 가평출신들만 남았다.
그리고 때마침. 히히힝! 말울음소리와 함께 자갈 갈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저기 저편에서 달려온 역마차에서, 관복을 입은 관원들이 우르르 마차에서 내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저게 자네가 말한 역마차인가?”
“맞네.”
말로만 들었던 역마차 아닌가.
신도시가 건설되고 관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자, 자연스레 배봉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역마차도 함께 퍼져갔다.
처음에만 특이했지 이젠 한성 주민들 모두 익숙해진 상황이고, 편한 건 편한 거지 않나. 자연스레 신도시에는 역마차가 끼어들어, 한성과 마을을 연결하고 있었다.
“타 봐도 되나?”
“돈을 조금 내면 탈 수 있긴 한데... 도성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볼 게 없을 텐데?”
“그래도 사람이 없을 때, 구경하는 게 낫지!”
“맞네. 안 그래도 엄청나게 밀려들 텐데, 미리 가서 구경하고 과거를 준비하는 게 낫지!”
청년관리야 매일 같이 드나들던 곳이니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지만, 가평출신은 그게 아니지 않나.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소맷자락을 잡아 당겼다.
“알았네. 가세. 가.”
청년관리는 친우들의 어리광을 결국 이기지 못하고, 짐을 풀기도 전에 역마차부터 타게 됐다.
*****
시간이 흘러 과거시험 날이 다가오자, 전국에서 사람들은 몰려왔다.
수천명이 넘는 과거응시생들. 그들을 시종하는 하인들. 개선식을 구경하러 온 백성들.
이틈에 한몫 잡으려고 뭐든 챙겨서 온 행상들과 재인들. 어쩌면 앞으로 자기가 가게 될 착호군을 미리 보기 위해서 온 양반,지방호족 자제들 등등.
그야말로 한성과 성저십리는 사람으로 미어터질 지경이었고, 드디어 소문만 무성하던 북정원정군과 북진토군도 한성에 도착했다.
인원만 3만명에 가까운데, 그들이 끌고 온 말과 군수물자가 얼마나 많을까.
당연히 도성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었고, 성저십리 외각의 목장들은 순식간에 숙영지로 변모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개선식.
군병도 너무 많고 구경꾼도 너무 많은데, 한자리에 모여서 뭘 할 수나 있나.
해서 선택된 방식은 다름 아닌 군사퍼레이드.
숙영 중이던 말목장에서부터 출발해서, 도성 밖을 천천히 거닐어 동대문에서 말머리를 돌려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