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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51화 (151/538)

151. 챕터25. 개발하다 (2)

“뭐 어찌됐건, 그래도 여진어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그대도 보지 않았나. 그건 걱정 말게. 다들 여진어 뿐만 아니라, 범어와 왜어, 중국어도 열심히 익히고 있으니까.”

‘하긴 군종승들이 일을 잘하긴 했지.’

“예. 그렇지요.”

연오랑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효령대군이 태종과 세종에게도 명을 받은 내용 아닌가.

중요성에 대해서는 그도 깊이 공감한터라, 연오랑의 잔소리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하고 있었다.

“아. 참. 현충사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꽤 좋아했을 것 같은데...”

“자네 말이 맞네. 다들 좋아하더군.”

“역시.”

‘과연... 채찍과 함께 당근을 줘야한단 말이지. 더불어 앞으로 골치 아플 일들도 한꺼번에 해결되겠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고, 효령대군은 낚시꾼마냥 밀고 당기기에 선수인 그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현충사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는 제각각 다르지만, 불교계 입장에서는 나름 큰 성과였다.

원래 역사에서, 딱 지금 시절의 장례, 제사방법은 불교식, 유교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민간 백성들은 여전히 불교식 화장을 선호했고, 양반사대부나 유학을 익히는 집안에선 유학식 매장으로 치르길 바랐지. 그 후에는 흔히 말하는 삼년상 같은 장례절차를 밟았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이 상례제도가 꽤나 비틀렸다.

운석핵꿀밤의 여파로 주자가례가 의심받으니, 당연히 상례 또한 의심받기 마련.

이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확신할 수 없으니 어쩌겠나. 역시나 편한 쪽으로 바뀌기 마련 아닌가.

해서 불교식과 유학식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섞이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문제가 불거진 건 태조의 장례 문제였고, 지금은 현충사의 건립으로 방점을 찍었다.

현충사는 따지고 보면, 현대의 봉헌당과 크게 다를 게 없잖아? 이는 불교식임에도 전례 없던 방식이고, 무려 왕실에서 제사를 지내준다고 하지 않았나.

새로운 불교식 상례가 공인받은 것과 마찬가지니, 앞으로 민간에선 봉안당에 유골을 봉안하는 방식이 거침없이 퍼져나갈 거다.

‘그럼 사찰을 함부로 건들지도 못할 거고... 괜히 무덤 때문에 싸움이 날 일도 줄어들겠지.’

연오랑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지금 시절에는 아직 가부장적인 권위질서가 퍼지지 않아서, 흔히 말하는 선산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생겨나지 않았다.

이는 장자계승으로 내려오는 혈족이 중시되면서, 집안의 묘소를 한곳에 모으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풍습이니까. 이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무덤문제로 엄청나게 싸워댔지.

물론 매장을 하려는 이들도 있겠지만, 앞으론 이게 주류가 되지 않을 건 분명하다.

더불어 저잣거리 아이들도 효에 대해선 알고 있는데, 부모의 유골이 모셔진 사찰의 봉안당에서 행패를 부릴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양반이건 뭐건 할 것 없이 난리가 날 거다.

‘잘 돼야 할 텐데 말이야.’

연오랑은 ‘자신이 과연 겪을 수 있을까?’ 싶은 먼 미래를 그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렇게 불교를 새롭게 자리 잡게 만들려는 까닭은, 동아시아에 조선의 영향력을 키우려는 속셈도 있지만... 서쪽에서부터 밀고 들어올 유럽의 카톨릭 때문.

이미 대항해시대는 시작됐으니, 언제가 됐건 분명히 유럽은 동아시아에 당도하게 될 거고... 종교문제로 온 사방이 난장판이 되지 않나.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은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한편, 제도적으로 종교를 보호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는 건, 카톨릭이 밀고 들어와도 조선불교를 대하는 것처럼 동일한 통제방침을 가지고 대응하길 원하는 거지.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훤히 보이는 일이잖아?’

연오랑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고.

‘안 그래도 별스런 일을 벌이는 녀석이, 왜 이렇게 불교에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군.’

효령대군 또한 동상이몽을 꿈꾸며 생각에 잠겼다.

*****

‘흐음.’

연오랑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곤, 죽은 듯이 자고 있는 정선공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첫눈 맞은 강아지마냥 신나서, 오는 내내 말을 타고 돌아다녔으니 여독이 남기 마련.

그녀는 번데기마냥, 미동도 없이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죽은 줄 알았을 거다.

연오랑은 공주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후... 좋군.”

뼈가 시릴 정도로 상쾌한 바닷바람이 잠을 깨웠고, 눈을 시원하게 만드는 바다가 동공을 가득 채웠다.

이 땅은 황무지나 다름없이 버려져 있었고, 아무 곳에나 자리 잡으면 자기 땅 아니냐.

‘미래에 이런 전망 좋은 곳을 사려면 얼마나 들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실없는 상상을 던지고선, 피식 웃고 말았다.

콘도나 리조트처럼 마냥, 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뒤에는 산을 끼고 있는 전망 좋은 부지에 대저택을 지어놨지 않나.

미래에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힘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곳은 무인지에 황무지이니, 용연군에 오르면서 공신전功臣田으로 날름 받아 챙길 수 있었지만... 훗날을 생각해서 제값주고 사들였지.

물론 그래봐야 푼돈이었고, 땅값보다 저택 만드느라 돈이 더 많이 들었다.

그는 새로 만든 티가 역력한 한증막과 욕탕을 즐기며 몸을 씻고선, 냉큼 저택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르신!”

“아침부터 어쩐 일이냐?”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침은 무슨 아침입니까. 밤에 뭐했기에. 흐흐.”

하동에 있을 시절부터, 연오랑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였던 소년. 이젠 훌쩍 커서 소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윤현은, 연오랑을 보기 무섭게 음흉한 미소를 날려댔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재깍 읽고선, 연오랑은 꿀밤을 먹여줬다.

“왜 왔냐?”

“왜 왔기는요. 어제 오기 무섭게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안내를 해드려야죠.”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고?”

“헤헤.”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녀석은 그저 실없이 웃기만 했다.

윤현은 용연현으로 이주하기 무섭게 혼인하여 애아빠가 됐고, 지금은 착호군에 속해 현감을 도와주며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용연현은 사람이 살지 않던 땅이었고, 하동의 장인들, 연씨마을 주민들, 왜인포로들이 이주하면서 항구도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그 후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했어도 근본이 그러하니... 조정에서 현감을 보냈어도 사실상 연오랑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해서 윤현은 조정관리가 아닌 착호군 소속 임시관리가 되어 현감을 도와주고 있었다.

“현감은?”

“일하느라 바쁩니다. 점심쯤에 들리지 않을까요?”

“음...”

호피장옷을 걸쳐 입은 연오랑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훌쩍 말에 올라탔고, 윤현 또한 냉큼 말에 올라탔다.

“어디부터 보시겠습니까?”

“광산부터 보자. 지금 일하고 있냐?”

“해가 뜨기 무섭게 일하고 있습니다.”

“가자.”

“옙!”

윤현은 냉큼 연오랑을 이끌고 달려 나갔다.

용연현은 바다 밑에서 치솟아 생겨난 땅이고, 21세기의 그가 모드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많은 광맥이 파묻혀 있었다.

그 광맥이 죄다 동산처럼 부풀어 올라, 용연현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었지.

허나 맨땅에 나무가 절로 자랄 수 없는 노릇.

광맥이 숨겨 있는 동산에는 이주민들이 심어 놓은 묘목들이 솜털마냥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멀리서 볼 때도 그 모습이 꽤나 웃겼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더 웃겼다. 그래도 이름 모를 야생화와 잡풀이 많이 자라서, 황폐해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랄까?

“비가 와서 산사태가 일어난 적은 없었지?”

“음... 저희가 자리 잡고 난 후에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무너질 만한 곳은 예전에 다 무너져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하긴.”

연오랑은 충분히 그럴 듯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금기마저도 죄다 빠져나갈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 오래전부터 민둥산으로 있었으니, 무너질 곳은 다 무너져서 지금 상태가 되었을 거다.

항구에서 벗어나 한참을 이동해 이름 모를 동산을 마주했다.

산세는 누가 찍어낸 것 마냥 일정하게 이어져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질 정도다.

‘거참... 내가 만들었어도 신기하긴 하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냐?”

“무얼 말입니까?”

“저 산들.”

연오랑은 푸른 하늘을 가리며, 일정한 간격으로 물결치고 있는 산세를 가리켰다.

“음... 뭐. 죄다 엇비슷하게 생겨서 특색이 없지만, 그래도 나름 멋지지 않습니까? 나중에 숲이 울창해지고 나면 정말 병풍처럼 용연포구를 감싸게 되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길도 나기 편하게 산세가 끊어져 있으니, 문제 될 것도 없구요.”

“그런가...”

뭐가 됐건 좋게 생각하면 그만 아니냐.

연오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윤현을 따라 계속 산을 향해 나아가자, 저편에서 흰연기와 검은연기가 번갈아 피어오르는 곳이 보였다. 아마 저기가 제련소가 있는 곳일 테다.

‘광산을 보고난 후에, 저길 가봐야겠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

‘호오? 꽤나 잘 만들었는데?’

연오랑은 눈앞을 가득 채우는 인파와 벽돌집,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수레와 마차를 살폈다.

이곳은 연오랑이 특별히 챙겼던 유연탄 탄광 아니냐. 검은 가루를 풀풀 날리는 이들이, 각자 자기 일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딱 봐도 외지인처럼 보이는, 그것도 호피옷을 입고 나타난 이들이 등장해서 일까?

저편에서 개량관복 위에 긴 가죽장포를 입은 철장관이 재깍 달려왔다.

여긴 한성도 아니니 눈치를 볼 사람도 없고, 이곳 사람들은 연오랑의 색채가 잔뜩 묻지 않았나.

소매폭과 바지통이 좁은 개량한복을 입는 이들이 대다수인터라, 관리마저도 관복을 개량해서 입고 있는 모양이다.

“윤현! 어쩐 일인가?”

“인사드리게. 용연군 대감이시네.”

“허헙!”

소문만 무성한 연오랑이 등장해서 일까? 그는 서류와 나무로 만든 서류받침대를 어정쩡하게 겨드랑이에 끼워 넣고선 냉큼 허리를 굽혔다.

도착하기 무섭게 집에 틀어박혀 잠을 청했으니, 관리들이 모르는 게 당연지사.

연오랑의 풍채를 보고서, 차마 말은 못하지만 ‘과연 소문만큼 거구로구나!’라고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안내를 해주겠나? 이곳을 내가 만든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대감.”

철장관으로 임명받아 이곳으로 파견되었지만, 오히려 윤현과 마을 장인들에게 일을 새로 배운 관리 아니냐.

용연현의 모든 것에 대해 연오랑이 초안을 잡은 걸 알고 있는 터라, 그는 재깍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

“저기는...”

관리는 흡사 감사라도 받는 것 마냥 열심히 입을 놀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연오랑이 비록 광산일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들은 풍문이 있지 않나.

구멍이 숭숭 뚫린 지식이라도, 21세기의 지식을 15세기와 비교할 수 없는 법.

이곳 탄광은 그의 기억 속 탄광과 기계를 그대로 따와 만들었으니, 조선 장인들이 다들 까무러치게 놀랄 수밖에.

“선로는 어때? 다들 만족하나?”

“물론입니다. 어찌 이런 생각을 다하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그는 질문이 터지기 무섭게,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었다.

꽤나 묘한 표정을 짓는 걸로 보아, 연오랑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모양이다.

‘하긴, 이 시대에 광산선로가 있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연오랑은 탄광 입구에서부터 시작해서, 창고를 향해 어지럽게 이어져 있는 선로를 보며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선로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엔 홈이 파인 나무 바퀴가 달린 운반용 수레가 올려있었고, 말이 선로를 따라 수레를 끌고 움직이고 있었다.

무식하게 인력으로 옮기거나 손수레로 옮기는 것보단, 이게 몇 배는 효율이 좋지 않나.

어찌 보면 별다를 것도 없는 발명이지만, 이곳에 오기 전엔 이런 걸 본적도 없었으니... 관리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자네는 이곳만 관리하나? 다른 광산에서도 다들 만족하나 보지?”

“두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관리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냐는 양, 손을 마구 흔들며 부인했다.

“그리고 저기는...”

광부들은 ‘누군데 저렇게 관리가 쩔쩔 매고 있나?’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날려댔고... 연오랑은 대충 인사를 받아주며 갱도 입구를 살폈다.

‘음. 꽤나 잘 만들었는데?’

사실 연오랑은 착호군 일이 바빠서, 보고만 받았지 용연현에 한번도 못 오지 않았나.

시킨 대로 잘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석탄은 이미 송나라 때부터 널리 쓰던 물건이니, 조선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이걸 난방, 취사용으로만 사용하는 터라, “그냥 장작을 쓰면 되지 굳이 이게 필요하나?”라는 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더불어 석탄을 채굴하는 비용, 운송비용들을 생각하면 영 비효율적이라서, 괜히 백성들만 고생시키는 꼴.

해서 조정에선 석탄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더불어 기타 금속광산을 개발하는 것도 고역 아니냐.

지금껏 조선은 필요한 광물을 염철법 및 산철읍에 관영철광업장인 철장鐵場을 개설해서 공역을 통해 채취해 왔다.

염철법은 백성들이 알아서 철을 생산에 조정에 바치는 제도니 당연히 사철이 주류를 이뤘고. 철장 또한 어설픈 광산을 파서 광석을 캐내는 행태를 극복하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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