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챕터25. 개발하다 (3)
이러니 제대로 된 갱도 및 갱도 활용방법이 발전할 리가 있나.
서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높게,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갱도. 그 갱도 벽에 딱딱 줄을 맞춰 박혀 있는 지지대들.
중간에 깔린 갱도선로와 갱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빼낼 배수로까지.
처음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만들어 놓고 보니 그 생산량은 일전의 주먹구구식의 방식과 비교할 수 없었다.
비록 이곳 광산하나만 담당하지만, 철장관은 나름 위치가 있는 자리이니... 관리는 자신의 공과를 높여준 신문물을 찬양할 수밖에.
“광부들은? 취련군吹鍊軍 출신인가?”
“취련군도 있고, 전국 각지에서 나름 경력 있는 이들만 뽑아 이주시켰습니다. 지금은 외지에서 온 이들도 있고, 호주에서 오는 귀화인도 있습니다.”
“잘됐군.”
취련군은 철장에 속해서 군역이나 공역을 대신해, 철을 비롯한 금속을 생산해 바치는 백성들이었다.
조정은 이곳이 황무지인 줄 알고 연오랑에게 냉큼 팔아넘겼는데, 알고 보니 광산이 빼곡하게 박힌 곳 아닌가.
산을 조금만 파 들어가도 질 좋은 광맥이 즐비한데... 이걸 그냥 버려둘 수는 없었고, 연오랑 또한 그냥 놔둘 생각이 아니었다.
문제라면 조정은 광산을 민간에 풀어줄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지금처럼 어설프게 운영하는 것도 애매하지 않나.
그 결과. 조정이 직접 기업의 형태로 운용하는 광산기업이 만들어졌다. 물론 전국적으로 시행된 건 아니고, 용연현에서 시범운용중이지.
굳이 따지자면 미래의 공기업과 비슷한 형태랄까? 그래서 조정의 힘을 이용해 전국의 장인들을 다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다들 어때? 만족하고 있나?”
연오랑이 은근슬쩍 목소리를 줄여 묻자.
“물론입니다. 대감. 전보다 처우가 훨씬 나아진 걸, 모두가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관리 또한 냉큼 목소리를 죽이고, 광부들의 행색을 가리키며 답을 했다.
단단히 고정해 쓴 나무안전모, 질긴 돼지가죽으로 만든 장갑, 앞코에 징을 박아 넣은 가죽단화까지.
어디서 이런 작업복을 입어볼 수 있겠나.
차려입은 옷이나, 힘들지만 그래도 좋아 보이는 혈색으로 보아... 나름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별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네.’
공기업이라지만 기업내규에 따라 운영되니, 이들을 예전처럼 천민이나 노역인으로 마구 부릴 수 없는 노릇.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게 된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지금은 속으로 만세를 부르고 있을 거다.
갱도와 광부들 상태, 창고와 석탄 보관상태를 모두 살핀 후엔, 다시 말에 올라타 마차를 뒤쫓았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짐마차 위엔, 검은 돌멩이마냥 은은한 광택을 뿌리는 석탄이 잔뜩 실려 있었다.
산을 내려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짐마차가 도착한 곳은, 검은 연기가 여러 갈래로 찢어져 풀풀 치솟는 곳이었다.
‘허... 진짜 이게 구현되네?’
흡사 칼로 베어낸 것 마냥 반듯하게 이어져 있는 강줄기와, 그 강줄기 한곳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집과 흙탑들을 보며, 연오랑은 혀를 내둘렀다.
산세를 봤을 때도 놀랐는데, 강줄기를 보고 나니... 과연 게임 속 지형이 제대로 구현됐다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천연보루가 세워진 강이 어디 있겠는가. 이건 강보다는 운하에 더 가까워서 누가 봐도 이상함을 느낄 법 하건만... 따지고 보면 용연현 전체가 이미 비상식적이지 않나.
사정을 아는 연오랑만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이런저런 상념을 하는 동안 마을에 도착.
이곳은 담장도 없었고, 거대한 벽돌과 흙무덤, 큼지막한 창고건물이 띄엄띄엄 박혀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조선 사람이 여길 봤으면, “뭔 무덤을 이렇게 만들어놨어? 왕릉이라도 되는 건가?”라고 중얼거렸을 거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이 이어졌다.
연오랑과 윤현이 등장하자, 철장감은 화들짝 놀라 안내하면서 줄줄이 설명을 늘어놨다.
“저게 골탄骨炭을 만드는 가마입니다.”
“음...”
연오랑은 흡사 왕릉마냥, 큼지막한 무덤형태의 가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골탄이라 불리는 물건. 미래에는 코크스라 불리는 물건을 만드는 마을이자 기업, 연구소였다.
코크스는 유연탄을 숯처럼 만들어서, 고탄소화 시킨 물건 아니냐.
나무를 태워서 숯이나 목탄을 만드는 것처럼, 석탄을 태우면 코크스가 만들어지는 거지.
“잘 만들어졌네.”
“다 대감 덕분 아니겠습니까. 미리 초안을 그려주시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흐응.”
연오랑은 관리의 공치사를 마다하지 않고, 그저 히죽 웃고 말았다.
이 시대엔 석탄은 물론이고 무연탄과 유연탄을 딱히 구별하지도 못하는데, 코크스를 만드는 방법을 알 리가 있나. 당연히 연오랑이 알려준 거지.
다만 알려준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들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결국은 해내고 말았다.
‘하긴 발상과 개념이 어려운거지, 기술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연오랑은 홀로 조용히 생각을 되새겼다.
숯을 만드는 가마, 송연松煙먹을 만드는 가마는 이미 조선에 존재하고, 자기기업을 만들겠다고 하동에서 온갖 가마를 다 만들어보지 않았나.
이 또한 가마의 일종이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저런 기술을 짜깁기해서 만든 작품이지.
“음...”
가까이 다가가 가마를 빙글 돌며 자세히 살피고선, 시선을 가마 꼭대기로 옮겨봤다.
가마 꼭대기에 우산살처럼 동관이 여러갈래로 찢어져 박혀 있었고, 그 관을 따라서 검은 연기가 작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확실히 유황냄새가 나기는 한데... 생각보다 안 독한데?’
그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봤지만, 격하거나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악취가 흘러나오진 않고 있었다.
석탄에는 각종 유기화합물과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나. 기화되면서 피어나오는 연기에는 이게 다 섞여 있는데... 생각 외로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맞아?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거나 기절하는 경우는 없었어?”
“지금까진 없었습니다. 대감께서 말씀하신대로 골탄을 만드는 동안에는 가마에 접근을 금하고, 적당히 휴식을 반복해 왔습니다.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연오랑이 호랑이 같은 안광을 피워내며 매섭게 바라보자, 관리는 냉큼 고개를 내리깔고 바삐 혀를 놀렸다.
연오랑에 대한 소문은 무섭기 짝이 없지 않나.
제대로 안됐다고 머리통이 깨질까봐 두려워, 관리는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를 흔들어대며 연신 부인했다.
“좋아.”
윤현이 바로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관리가 거짓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인부들에게만 대충 물어봐도, 술술 답을 할 거다.
바짝 긴장한 관리를 뒤로하고, 연오랑은 어설프지만 나름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관을 살펴봤다.
사실 가마를 만드는 것보다 동관을 만드는 게 더 힘들었다.
애초에 이렇게 긴 동관을 만들어 본 적도, 이걸 이어 붙여 접합하는 것도 처음해보는 일 아닌가.
하지만 어쨌든 성공했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동관을 따라 급속냉각된 검은 연기는, 동관의 배출구에서 검은색 물을 뚝뚝 토해내고 있었다.
그 밑엔 작은 옹기를 하나씩 받혀서 검은 물을 모아뒀지.
‘이게 되긴 되네?’
연오랑은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곤, 끈적끈적한 점액질 검은물이 떨어지는 걸 바라봤다.
21세기엔 이 배출가스를 흡사 천연가스마냥 난방용, 공업용으로 재사용하지만... 15세기엔 불가능한 이야기고, 그 정도로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어차피 날아갈 연기를 조금이나마 액화시켜서, 타르 비슷한 물건을 얻어내면 족하지.
“탄역청은 얼마나 나오지?”
“어음... 한번 태울 때마다 작은 항아리 하나 분량은 직접 나오고, 골탄을 꺼내고 난 부산물에선 큰 항아리 하나 분량 정도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관리는 보고서를 뒤적이곤, 재깍 입을 놀렸다.
조선에는 원유와 흡사한 역청이 나오진 않지만, 역청에 대해서 모르는 건 아니지 않나.
송진으로 대표되는 목타르木tar는 이미 사용하는 중이니,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원시적인 콜타르Coaltar에 대해서 익숙해지는 건 어려운 게 아니지.
저렇게 액화시킨 타르 말고, 가마 밑바닥에는 온갖 부산물이 다 섞인 타르가 또 저장되고 있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어.”
관리는 자랑하듯 입을 놀렸고, 일행은 가마를 떠나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초거대 가마는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만들어져 있었고, 그 가마 곁에는 하나같이 큼지막한 창고와 인부 숙소가 붙어 있었다.
열심히 만든 코크스와 타르는 각각 창고에 저장되었다가, 코크스는 제련마을로, 타르는 용연포구의 조선기업으로 넘어가는 상황이었지.
“보고서는 잘 작성하고 있지?”
“물론입니다. 매일매일 일지를 작성해서, 책자로 만들어 한달마다 연구소와 조정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네. 네 임무가 막중하다는 걸 잊지 마라. 앞으로 조선팔도에는 이와 유사한 가마가 만들어질 건데... 그때 되서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겠지?”
“옙!”
칭찬과 경고를 동시에 날리는 연오랑을 보며, 관리를 몸을 바로하고선 목청을 높였다.
열 개의 가마를 모두 확인한 후엔, 인부들과 관리들의 안도의 인사를 뒤로하고 다시 말을 달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골탄을 잔뜩 실은 마차를 뒤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고, 강가를 따라 이어진 포장도로에 몸을 날렸다.
부산스럽게 귀를 때리는 자갈소리에 맞춰 입도 놀려본다.
“여긴 포장을 했네?”
“아무래도 짐마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요. 대규모 물량은 배로 옮기는데, 보통은 마차로 옮기는 편입니다. 익숙해지니까 이게 더 편하더라구요.”
“흐음.”
‘그럴 듯 하네.’
연오랑은 골탄을 잔뜩 실은 사두마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맨땅을 달렸으면 아마 코크스가 다 튕겨 나오지 않았을까?
경치 구경을 하듯 계속 나아갔고, 이윽고 뒤로 병풍처럼 늘어진 동산 여섯 개와 앞에는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그 크기가 짐작되는데, 저건 마을이 아니라 거의 작은 도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오... 이곳도 특이하게 생겼네.’
연오랑은 기대에 부응하는 제련마을을 보며,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골탄마을이 무덤을 떠올리게 했다면, 제련마을은 탑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골탄마을보다 훨씬 많은 건물과 창고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고, 그 중간중간에는 흡사 2~3층 석탑마냥 큼지막한 원통뿔형태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마을은 역시나 강을 끼고 있는 탓에, 큼지막한 부두에는 돛을 접어둔 맹선 몇척이 머리를 기대고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 연오랑이 순시를 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개량관복을 입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서 기다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이대도 죄다 제각각이고, 관복의 색이나 관복의 형태도 제각각인 걸로 보아... 확실히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곳엔 조정에서 파견한 공야사, 군기감, 사수감, 선공감 소속 관원들, 배봉연구소를 본떠서 새롭게 만든 용연연구소 연구원들.
공작기업을 설립하기 위해 기술을 배우러 온 양반,지방호족의 자제들이 전부 뒤섞여 있었으니까.
나름 직위와 신분이 있는 이들은, 소문만 무성했던 연오랑을 보기 위해서 저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윤현!”
“용연군 대감이시네.”
“대감!”
“처음 뵙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말에서 내리기 무섭게 죄다 고개를 조아리며 연오랑을 반겼다.
몇몇 이들은 놀란 표정, 혹은 감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더 심한 이들은 선망 어린 눈동자를 감추지 못하고, 예법도 잊고 연오랑을 뚫어져라 보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오랑은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장본인 아니냐. 운석핵꿀밤 세대에 속하는 청년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지.
주인공병에 걸린 연오랑이 이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법.
그는 시원하게 손을 흔들어주며 모두에게 인사를 날려줬고, 다들 작게 환성을 내질렀다.
모두는 열심히 입을 놀리며 연오랑의 환심을 사려했고, 연오랑은 누군지도 모르지만 웃는 낯으로 반겨줬다.
물론 속으론 ‘니들 집안이 어떤지 관심도 없어. 인마.’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한차례 난리법석을 일으키고선, 정식 관리들만 남아 연오랑을 이끌었다.
“가마부터 볼까?”
“옙!”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고서를 잔뜩 챙긴 관리들이 재깍 몸을 날렸다.
연오랑을 보며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며,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인부를 지나쳐 도착한 곳은... 멀리서 봤을 때도 한눈에 들어왔던 거대한 탑이다.
“오... 진짜 잘 만들었네?”
“모두 대감 덕택입니다!”
“그렇습니다!”
연오랑의 칭찬에 다들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고리가 귀에 걸렸다. 그들 자신이 생각해도 대단하니까.
‘이야. 토법고로를 이렇게 크게 만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니까?’
연오랑 또한 마찬가지. 먼 미래에 태어날 마오쩌둥에게 감사의 인사를 속으로 날려줬다.
20세기 중국의 이른바 대약진시절. 마오쩌둥은 선진 공업국을 꿈꾸며 강철생산량을 늘리기로 마음먹었고, 전국에 토법고로를 만들어 강제 할당량을 부과했다.
물론 당연히 개삽질이었고, 이로 인해 중국인 수천만명이 굶어죽었지. 현대제철소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토법고로가 웬 말이냐.
하지만 15세기인 지금은 토법고로가 오히려 최신기술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