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53화 (153/538)

153. 챕터25. 개발하다 (4)

연오랑은 당연히 현대의 용광로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그래도 대충은 어림잡아 아는 지식이 있었고, 이곳에 떨어진 이후로 별의 별 걸 다 만들어봤잖아?

내열벽돌은 이 시대엔 최고급 도자기와 크게 다를 게 없었고, 토법고로의 크기와 구조에 대해선 이미 하동에서 가마를 만들 때 연구해 봤지.

그 결과 탄생한 물건이 바로 이 거대한 탑.

속이 뚫려 있는 원통형의 탑. 탑의 중간에는 공기를 주입할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아래 부분에도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 거대한 풀무와 연결되어 있었다.

풀무 또한 인력이 아닌 노새가 끄는 장치였는데, 꼭 누워있는 풍차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

나선형으로 이어진 경사가 낮은 계단이 탑 옆에 붙어 있었고, 인부들은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 철광석, 코크스, 석회를 던져 넣었다.

“다들 익숙해진 모양이네?”

“물론입니다.”

관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목청을 높였다.

이런 형태의 가마를 처음 보는 건 당연한 거고, 이 시대엔 이렇게 많은 철장鐵匠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도 낯선 일이다.

설령 확장을 거듭한 군기감조차, 이곳 제련마을보다 몇 배나 규모가 작았으니... 이들은 자신들이 꾸려가고 있음에도 놀라기 일 수였다.

멀찌감치 떨어져 옹기종기 앉아서 고로를 살피던 인부들. 그들은 연오랑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꼭 노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저렇게 팔팔 끓고 있는 고로를 그냥 놔두고, 하루 이틀은 계속 녹여야 진짜 철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나. 쉬는 게 아니라 나름 일하는 중이지.

연오랑은 어색하게 웃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선, 다른 고로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번 고로도 역시나 강철을 만들고 있는 중인지, 연신 쇳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옆이 트인 거대한 창고에는 날붙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장인들은 망치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만 날붙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부수는 중이었지.

‘설마 저거 재활용하는 건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 어디서 온 거지?”

“의주와 호주에서 온 물건입니다. 갑사들에게서 회수한 것도 있고, 전리품 및 중국에서 들여온 물건도 있습니다.”

“그래?”

눈치 빠른 관리 중 하나가, 연오랑의 물음을 읽어내고선 냉큼 답을 던져줬다.

호주에서 북진토군의 무기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나.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무기가 분해되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다.

무기류에 쓰이는 철은 이미 나름 품질이 좋아서, 의주와 호주에서 직접 재활용해도 충분하지만... 어째 이곳으로 넘어오는 물량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저런 창고가 또 있나?”

“옆의 3개 창고 모두 여기저기서 가져온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입니다.”

“호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 큰 창고에 죄다 무기가 쌓여 있으면... 정말로 엄청나게 긁어모았나 보다. 물론 대다수는 원정군이 긁어모은 것이겠지만.

“굳이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가져온 걸 보면... 그렇게 품질 차이가 나냐?”

“두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무기에 쓰이는 강철은 신가마에서 만든 철이 최고입니다.”

칭찬을 받아서 일까? 관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자랑을 늘어놨다.

철은 탄소함유량으로 선철, 강철 등으로 구분되지 않나.

강에서 긁어모은 사철가루든, 채광한 철광석이든, 뭐가됐든 일단 녹이고 뭉쳐서 원재료 주괴를 만들고, 그걸 열심히 담금질하면 강철이 되는 거지.

일반 철제농기구도 명검을 만들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얼마든지 튼튼한 강철제 농기구를 만들 수 있었다.

다만 돈도 안 되는 데, 누가 이런 짓을 하겠냐. 괜히 무기가 튼튼하고 비싼 게 아니지.

하지만 이 코크스를 통해 만들어낸 원재료 주괴는 시작점부터 달랐다.

대충 강철의 품질을 100이라 치고, 50정도짜리의 기존 원재료 주괴를 열심히 담금질해서 100에 가깝게 만든다면.

토법고로에서 나오는 원재료 주괴는 70~90정도였고, 여기에 담금질이 추가 되면 140에 가까운 강철이 나온 달까?

물론 21세기의 합금강이나 강철과 비교하면 코웃음이 절로 나오지만, 이 시대엔 이 정도만 뽑아내도 동아시아 최강의 품질일 거다.

더 중요한 건, 이런 고품질의 강철주괴를 한 번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저 고로 하나가 아무리 못해도 동네 대장간 수십개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니, 이 시대엔 충분히 대량생산이라 부를 만하지.

‘문제라면 코크스를 여기서만 뽑아낼 수 있다는 점?’

한반도 땅에는 무연탄만 가득하고, 유연탄은 요동과 만주에 가야 찾을 수 있지 않나.

21세기의 그가 용연현에 박아 넣은 매장량이 많긴 하지만, 언제가 됐든 떨어질 테니... 북방으로 나가는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생산 현황은?”

“여기 있습니다.”

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서를 내밀었다.

“여기...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충 계산해도 이곳의 생산량이 전라도 철장의 전체 생산량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물론 품질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 생산한 물량은 어떻게 쓰고 있지?”

“반수는 강철주괴로 만들어 평안도로 보내고 있습니다. 남은 반수는 전국으로 흘러가고, 마지막 남은 반수는 저희가 쓰고 있습니다.”

칭찬을 들어서 일까? 다른 관리가 재깍 다른 보고서를 내밀며, 입을 놀렸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강철주괴는 의주에 신설된 별군기감으로 보내서, 갑사들의 무장교체에 사용되고 있었다.

군기감은 사실상 조병창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한성의 군기감으로는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어서, 의주에 별군기감을 새로 만들었다.

구성원은 착호보조군, 민간 장인들이었는데, 공작기업을 설립하려는 각 기업집안들은 어떻게든 장인들을 끌어 모아 별군기감에 밀어 넣었다.

조정에선 기술자가 생겨서 좋고, 기업집안과 장인은 신기술을 배우고 익혀서 좋은, 모두가 만족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지.

‘으흠. 계획대로 잘 움직이고 있네.’

연오랑은 보고서를 빠르게 읽어나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무기를 직접 만들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이런 정책을 취했다. 이게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의도한 일이니까.

이곳만 기술이 쭉쭉 발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전국에 산재한 철장과 민간대장간 또한 양질의 원재료를 가지고 놀다보면 제련기술이 늘기 마련.

공작기업을 보다 늘리기 위해선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고, 이렇게 좋은 연습재료를 줘서 장인들을 육성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공작기업의 설립에 보다 적극적인 삼남지방의 집안에선, 아예 자식들을 이곳으로 보내서 교육시키고 있었지.

“좋군.”

“옙!”

“감사합니다!”

다시 터진 칭찬에 모두는 몸을 배배 꼬았고, 또 칭찬을 들을 욕심인지 냉큼 다른 곳으로 연오랑을 안내했다.

고로 근처에는 십여개의 대장간이 뭉쳐있었는데, 그곳에선 연신 망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땀이 쏟아질 것 같은 열기가 건물 밖으로 뿜어 나오고, 연오랑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는 이들을 바라봤다.

이들의 작업은 민간 대장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장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 흡사 칸막이처럼 구역이 나뉜 장업장에는 장인들 세넷이 모여서 합동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부다 문헌으로 남기고 있지?”

“물론입니다!”

혹시나 싶어서 묻자, 관리는 ‘당연한 말을 왜 하냐?’라는 눈빛을 뿌리며 목청을 높였다.

이곳에서도 역시나 체계화, 학문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선 오히려 이걸 안하면 더 문제가 됐다.

저들 장인들은 각자가 조금씩 변수를 줘가며 보다 나은 제련법, 담금질법, 합금제련법을 실험하고 생산하고 있는데... 학문화 작업을 하지 않을 거면, 뭐 하러 이 짓을 하겠는가.

‘역시 진리는 공돌이와 시간, 돈이군.’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작업장을 계속 구경하고 있자, 과연... 이곳이 조선 제일의 대장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작 2년밖에 안 지났는데,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장인이 튀어나왔을까.

‘없던 장인이 갑자기 생기진 않았을 테니... 원래 역사에선 다들 땅이나 파먹고 있었던 걸까?’

문뜩 이런 생각이 들어, 괜히 혀끝이 씁쓸해졌다.

저들 중에선 이제 막 망치를 잡아본 이들도 부지기수겠지만, 그래도 숙련된 장인이 예상보다 많지 않나.

괜히 끌려가 노역하기 싫어서, 일부러 기술을 숨기고 그저 그런 농부로 살다가 생을 마쳤을 걸 생각하면... 속이 답답해왔다.

그의 표정에 따라서 관리들 또한 낯빛이 바뀌기 마련.

다들 ‘뭐가 잘못된 게 있나? 표정이 왜 저래?’라고 눈빛을 날려댔다.

‘뭐... 바뀌고 있으면 된 거지.’

연오랑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상념을 날려 보냈다.

“다른 건?”

“저기로 가보시겠습니까?”

“호오...”

그는 관리가 안내한 작업장을 보며, 다시금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이곳은 조선의 대장간에서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원시적이긴 하지만 뭐랄까... 진짜 제대로 된 수공업공장이자, 공작기업을 보는 것 같다.

장인들은 녹여온 쇳물을 가져와 흙으로 만든 틀에 넣어, 이런저런 형상의 강철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분업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어서, 첫 번째 과정에서 만든 제품은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 다듬어지기를 반복.

마지막에 이르자, 장인들은 연신 숫돌로 마감질을 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냈다.

연오랑과 일행은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다가가, 물기를 머금어 번들번들한 빛깔을 뿌리고 있는 완성품을 집어 들었다.

“마차 부품이네?”

“아시는 군요?”

“모를 리가 있나. 내가 만들었는데.”

“... 과연!”

그가 피식 웃으며 심드렁하게 답하자, 관리 중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째 연오랑이 한 번에 알아볼지 몰랐던 모양이다.

‘여기서 부품을 다 만들어서 공급하나 보네.’

그간 만들어낸 신문물이 어디 한두 개냐. 하다못해 농기구인 훌테, 족발식 탈곡기, 풍구 등에도 자잘한 금속 부품이 들어간다.

이곳에서 생산된 철은 원재료 자체의 품질이 월등하니, 주조로 찍어내도 강철에 버금가는 성능을 뽐내지 않나.

동네대장간에서도 물론 부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강철을 만들려면 주조가 아닌 단조로 담금질을 해야 하는데... 이래서야 수지타산이 나오겠는가.

나아가 차라리 무기류를 만드는 게 편하지, 이렇게 작고 복잡한 부품을 단조로 만드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더불어 연오랑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규격화,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동네대장간에서 대충 눈대중으로 만든 물건을 끼워 넣는 건 어불성설이지.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건가?”

“예. 호주로 가져온 마차가 한두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다시 개조하는 터라, 수요가 적지 않습니다.”

“하긴.”

이건 연오랑이 더 잘 아는 사실 아니냐. 한두대가 뭐냐. 수백, 수천대에 가까울 거다.

계속 걸음을 옮기며, 고로 마다 연결된 작업장을 계속 살펴봤다.

이곳은 말 그대로 거대한 수공업 부품 공장 아니냐.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못이군.”

“알아보시는 군요?”

“내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에엡...”

그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자, 청년관리는 괜히 겁먹고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꽤나 극적인 표정을 짓는 관리를 보며 연오랑은 피식 웃고선, 물통에 들어가 식고 있는 못을 꺼내 살폈다.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네?’

“단조로 만든 못과 비교하면 어때?”

“거의 엇비슷합니다.”

“호오...”

다시금 절로 휘파람이 터져 나왔다.

21세기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게 못이지만, 이 시대의 못은 죄다 망치로 두들겨 만드는 물건 아니냐.

이 조그만 물건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해야하는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찍어내서 대량생산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지.

“잘 팔려?”

“물론입니다. 행상들이 아주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음...”

하긴 균일 품질, 균일 규격의 물건을 선호하는 건 당연한 말일테다.

그만큼 못은 나름 귀한 물건이고, 집지을 때 괜히 나무로 짜깁기해서 조립하는 게 아니니까.

수공업 공장을 전부 구경한 후엔, 다른 고로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고로의 크기가 보다 작고 납작하다는 점? 이건 탑과 무덤의 어딘가 쯤에 위치한 특이한 가마였다.

“동과 납을 녹이는 가마입니다.”

“음.”

관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내밀었고, 연오랑은 또 다시 표로 정리된 서류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의외일 수도 있고 당연한 걸 수도 있는데, 이곳에선 동,철,납 순으로 생산량이 많았다.

세 금속 모두 쓰임새가 다양한 물건이고, 조선에는 동광산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당연히 동광산의 생산량이 압도적일 수밖에.

다만 이곳엔 무장을 한 갑사들이 서성거리고 있다는 게 특이했다.

“쟤들은?”

“아무래도 은이 나오지 않습니까. 혹시 몰라서 지키고 있습니다. 한성에서 직접 파견된 인원입니다.”

“음...”

연오랑은 어설프게 군례를 날리는 갑사들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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