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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54화 (154/538)

154. 챕터25. 개발하다 (5)

일행은 고로에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인부들이 작업하는 걸 구경했다.

가마에선 멀리 떨어져 있어도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랐고. 가마 아래 부분에 이곳저곳 뚫려 있는 구멍에는 흙으로 구워낸 납작한 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위가 뚫린 관은 흡사 수로마냥 이어져 작은 도자기에 닿았고, 인부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도자기에 끼워진 지지대를 붙잡고 있었다.

“나온다!”

“닿지 않게 조심해라!”

일행이 구경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인부들은 목청을 높여가며 서로를 독려했고, 이윽고 가마의 구멍이 열리며 쇳물이 흘러나오기 시작.

누가 봐도 은빛을 형형하게 뿜어내는 쇳물은 차가운 공기와 부딪쳐 수증기를 만들어냈고, 인부들은 쇳물이 도자기에 반쯤 담기자 재깍 관을 막고 빈 도자기를 다시 끼웠다.

수증기를 계속 뿜어내고 있던 도자기는 인부들의 손에 들려 작업장으로 향했고, 연오랑이 항상 들고 다니는 장도와 똑같은 장도를 끼고 있던 갑사 또한 재빨리 발을 놀려 인부의 뒤를 쫓았다.

흡사 한편의 경극을 보듯, 인부들이 손을 놀리는 걸 살피던 연오랑.

그는 관리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히죽 미소를 날렸다.

“연은분리법이 확실히 효과가 있나 보네?”

“흐흐.”

“헤헤. 다 대감 덕분입니다.”

“당연한 말을.”

그는 실실 웃는 관리들의 칭찬을, 어깨를 으쓱거리며 흘려 넘겼다. 지금 쏟아져 나온 쇳물은 진짜로 은이었으니까.

동광석과 납광석에는 자연스레 은이 함유되어 있었는데, 이 시대엔 이걸 제대로 뽑아내는 기술이 미흡했다.

원래 역사에서 괜히 연은분리법이 효과를 본 게 아니고, 이로 인해 일본의 은생산량이 엄청나게 뛰지 않았나.

연오랑은 당연히 이걸 놓치지 않았고, 광산과 제련마을을 개발하면서 연은분리법에 대해서도 풀어냈다.

동,납과 은의 녹는점 차이를 이용해서 분리하는 건 크게 어려울 게 없고, 엄청난 기술이나 기구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 고로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할 수 있는 일이었지.

그리고 지금. 그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순간이다.

“흐음.”

‘나쁘지 않네?’

인부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간 연오랑은, 인부들이 주조틀에 은물을 담아 굳히는 걸 지켜봤다.

대략 손가락 두 개 크기 정도의 은괴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화李花문양을 음각으로 새겨 넣어서 그런지... 그냥 보기만 해도 꽤나 멋스럽게 보였다.

감히 위조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으니까.

그가 하동에서, 최고급 장신구를 만들면서 주조기술을 축적해 온 보람이 있다.

‘저걸 지금 써도 되겠지? 뭐. 허락 받았으니까.’

연오랑은 속으로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조선은 왕실 문양이라는 게 딱히 없고, 이화문양은 수백년 후에나 되어야 조선왕실 문양으로 정립되지 않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터라 그걸 미리 끌어왔고, 세종과 태종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허락했다.

적어도 은괴에 왕실 문양이 찍혀 있으면, 아무나 함부로 다루기 힘들 테니까.

“은이 얼마나 나오지?”

“대략 1푼에서 많으면 2푼 정도 나옵니다.”

“나머지는?”

“광석의 품위가 높아서 그런지, 동은 7할, 납은 6할 정도 나옵니다.”

“다른 곳과 비교하면 많이 나오는 편이지?”

“음...”

연오랑의 물음에 관리들은 서로 눈치를 뿌리며 의견을 나눴다.

동,납광석이라고 해도 전체가 다 동,납으로 이뤄진 게 아니니, 녹이다 보면 슬러그라 불리는 찌꺼기들이 빠져나오고 순수한 동,납으로 분리된다.

주요광물의 함유량에 따라서 품위가 결정되고, 품질이 좋은 광석과 나쁜 광석이 구분되는 거지.

다만 연오랑이라고 해서 이것까지 다 아는 건 아니지 않나.

잠깐의 눈치싸움을 깨고, 어느 관리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정확히 확신할 순 없으나, 제가 공야사에 일할 때에 비해선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기술의 문제야? 아니면 광맥의 문제야?”

“둘 다... 일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네. 계속 문헌화 작업을 해서 남겨두도록, 다른 광산과 철장에 적용해야 할 테니까.”

“옙!”

연오랑의 대답에 관리들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토대를 만든 게 연오랑이니, 그가 트집을 잡으면 어디까지 잡을지 누구도 모르지 않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 드는 게 당연했다.

“지금 중국에서 동괴를 수입하지? 동광석을 가져오는 건 아니고?”

“예.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흐음.”

연오랑은 머릿속에 동아시아 지도를 그리고선, 생각에 잠겼다.

이곳의 동광산을 열고 동을 캐내고 있지만, 여전히 조선은 동을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과의 거래가 끊어졌으니 당연히 중국에서 수입했고, 중국이 일본의 동을 가져와서 파는지, 중국광산에서 캐낸 동을 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문제라면...

“중국놈들은 이런 기술이 없잖아? 걔들도 동,납에서 은을 뽑아내긴 할 텐데... 우리만큼 많이 뽑아내진 못하겠지?”

“예...”

“글쎄요...”

이들이라고 중국 사정을 알겠는가. 연오랑의 혼잣말에 그저 자신 없는 대답을 흘려댔다.

“앞으로는 광석 채로 수입하자고 조정에 장계를 써서 올려봐. 강남상인을 통해서 일본의 광석을 수입하는 건 필수지. 내 이름을 넣어도 된다.”

“예!?”

“아... 알겠습니다.”

이름을 빌려준다는 말에, 관리들은 살짝 기겁하면서도 냉큼 반기는 기색을 보였다. 어찌 보면 공을 넘겨주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혹시 또 아나. 만약 수입한 광석에서 은을 추가로 뽑아낼 수 있으면 승차는 따 놓은 당상이다.

‘어차피 일본과 거래하게 되면 납과 동광석 채로 수입해야 할 테니까...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연오랑은 미래의 지식을 더듬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일본은 재련기술이 부족해서, 광석 채로 중국과 조선에 내다 팔았다. 다만 광석에 은 함유량이 높아서, 본래 광물가격보다 살짝 높은 가격에 팔았지.

연은분리법이 전래되기 전까지 계속 그래왔으니, 지금 역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게 분명.

그 거래선을 조선으로 끌어올 수만 있으면, 엎드려서 헤엄치는 것처럼 부가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또한 앞으로 왜관이 만들어지면, 이게 가장 큰 거래품목이 될 텐데... 미리 중국상인을 통해 연습해 보는 건 결코 나쁘지 않다.

은괴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난 후에는, 원래 목적인 동괴와 연괴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봤다.

과정이 다를 게 있나.

아무래도 산출량이 많다보니, 보다 두꺼운 괴를 만들어서 식혀놓고 있었다.

“어디로 가지?”

“대략 7할 정도는 한성으로 가고, 나머지 1할은 저희가 쓰고, 2할은 전국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행상을 통해 확인한 바, 대다수는 공작기업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좋군.”

연오랑은 관리의 대답에 절로 휘파람이 흘러나왔다. 계획대로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공작기업은 기존의 대장간을 전부 대체하는 건 물론이고, 가구 등을 만들던 소목장까지도 흡수하지 않았나.

공작기업은 진짜 장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필요했기에, 다른 기업보다도 설립과 전파가 꽤나 느렸다. 여러개의 현을 합쳐서 한곳 정도 있으면 다행이었지.

‘조정으로 흘러가는 건, 아무래도 화포를 만드는 데 쓰이겠군. 철제 화포는 죽었다 깨나도 못 만드니까.’

그는 아쉬움에 가볍게 혀를 찼다.

강철대포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만, 지금 기술력으로는 불가능 하니까.

그저 있는 화포를 재활용하고, 보다 나은 합금으로 만든 청동화포를 만드는 게 최선 아니냐.

이건 화력덕후인 세종이 직접 관여하고 있으니, 군기감에서 알아서 잘 처리하지 않을까.

“지방으로 흘러간 동괴는 유기그릇을 만드는데 쓰이겠지?”

“대다수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황동으로 만든 유기그릇은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유명했고, 지금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중국에 자신 있게 내다팔 수 있는 수출품 중 하나일 정도니, 공작기업에선 열심히 유기그릇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반대로 이곳에선 황동이나 청동합금으로 만들어서, 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각종 부품을 만들었지.

연오랑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가마를 살피고 작업장을 살피기를 반복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갑사들이 더욱 삼엄하게 경계를 하는 곳으로 당연히 은,금괴를 만드는 작업장이다.

“현황은?”

“여기 있습니다.”

말을 떼기 무섭게, 관리 중 한명이 재깍 보고서를 내밀었다.

‘오? 생각보다 적네?’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힐끔. 저 멀리 보이는 산세를 굽어봤다.

지나오면서 봤던 산은 하나같이 광맥을 품고 있지 않나. 금,은,동,납,철, 유연탄, 무연탄, 끝으로 어색하게 석회석광산이 자리 잡았지.

이름을 어렵게 지을 필요 있나. 무식하게 그냥 금산마을, 은산마을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흐음... 욕심낼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그는 보고서를 살피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은,금은 생각 외로 적게 채굴할뿐더러, 양도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 역사에선 명에게 은,금을 조공으로 바칠 일이 없지 않나.

그간 미약하게 운영했던 광산은 애매모호한 상태로 있었고, 각지에 퍼져 있던 광부,장인,광산업자들은 이곳으로 모여 전문화 및 학문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게... 지금 조선은 은,금을 캐봐야 딱히 써먹을 곳이 없다.

금,은 자체가 가진 가치가 있지만, 화폐로 써먹지 않는 이상 장신구 이상의 역할을 못하니까.

실제로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은,금괴는 조정으로 흘러들어가거나, 소수만 외부로 빠져나가 장신구가 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는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며, 상념을 이어나갔다.

조정신료들은 조선의 은,금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고, 연오랑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었다.

까닭인 즉. 원래 역사에서도 중국은 은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전세계의 은을 다 빨아먹지 않았나.

명이 망한 지금은 그 절차를 고스란히 밟아가며,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홍무제가 만들었던 지폐인 대명보초大明宝钞는 명이 망하면서 완전히 휴지조각이 된지 오래.

상인의 힘이 커지면서, 지방 곳곳에서 마제은을 주조해 완전히 화폐로서 자리 잡았으니... 조선의 은이 흘러들어가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게 될 거다.

고려말에 이미 이걸 경험했던 조정신료들 아니냐.

조선시장이 중국시장과 직접적으로 엮이면, 피똥 싸는 걸 몸으로 겪었으니... 은 반출의 결사반대를 외칠 수밖에.

나아가 은 유통을 공인하는 순간, 온 사방에서 밀채꾼이 날뛰기 시작할 텐데... 광산기업은 제대로 조직되지 않아서 공기업 비스무리한 걸로 시범적용하고 있지 않나.

이곳에서 예행연습을 끝마치기 전까지는 은,금광을 제대로 개발할 계획은 없었다.

‘적어도 뿌리 내리기 전에는 중국시장에 빨려 들어가선 안 되지. 하여간 쓸데없이 덩치만 커가지곤...’

연오랑은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중국시장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짜증을 눌렀다.

지금 의주에서 이뤄지는 무역거래는 따지고 보면 물물교환이나 다름없다. 서로 짐을 싸매고 가져와서 바꿔가는 형태라서, 거래가 무한정으로 커질 수가 없지.

헌데 만약 중국상인이 은을 풀어서 조선물산을 사고팔기 시작하면, 밑도끝도 없이 시장경제가 가속화될 텐데... 이건 지금 조선이 감당할 수가 없다.

각 지방의 기업이 성장하기도 전에, 은을 짱짱하게 비축한 의주상인들이 우월하게 성장할게 분명.

‘그럼 조정의 철퇴를 얻어맞게 될 거고, 열심히 굴리고 있는 시장경제라는 수레바퀴를 제 손으로 부수는 꼴이 될 거 아냐. 그래서는 안 되지.’

더불어 통제가 편한 물물교환을 통해 조선의 농상공업 전체가 연동되어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화폐의 필요성을 모두가 느끼기도 전에 유사화폐가 튀어나오면, 진짜 화폐발행은 또 다시 좌절될 거다.

‘지금껏 개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진짜 피눈물이 날 거야.’

그가 또 다시 침묵에 잠겨 보고서만 보고 있자, 관리들은 제발이 저려 눈치를 계속 살폈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아니. 문제없다. 생각보다 산출량이 적어서.”

“지금은 채광과 제련연습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광산마다 채광방법이 다르니,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있습니다.”

“음...”

이들은 자신들이 왜 이곳에 모두 모여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이곳은 민과 관이 합쳐진 광업연구소나 다름없고, 기술축적이 최우선이다.

조금 캐더라도 제대로 잘 캐는 방법을 찾아야지, 사람 갈아 넣으면서 많이 캐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윽고 모든 가마와 작업장을 살핀 후에, 일행은 제련마을의 외각에 위치한 다른 실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름 확 트인 대지 위엔 신형가옥이 이곳저곳에 박혀 있었고, 그 앞에는 이젠 익숙해진 자갈도로가 뚝뚝 끊어져 만들어져 있었다.

다만 특이하게도 코팅이라도 한 것 마냥, 나름 매끌매끌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고... 우중충하지만 어쨌든 색도 나름 다채로웠다.

그 뿐일까. 도로 옆 대지에도 뚝뚝 끊어진 담벼락이나 기둥, 주춧돌이 박혀 있었는데 이 또한 회색부터 밝은 검은색까지 다채로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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