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55화 (155/538)

155. 챕터25. 개발하다 (6)

‘오... 그럴싸한데?’

“잘하고 있네?”

“예! 대감께서 일러주신 대로 열심히 실험하고 있습니다.”

석회석 광산을 담당하는 관리는, 칭찬을 받아서인지 목청을 높여 담을 했다.

“가마부터 볼까?”

“넵! 이쪽으로 오시지요.”

관리는 냉큼 앞장서서 연오랑을 안내하며, 흙먼지를 뱉어가며 열심히 혀를 놀렸다.

이곳의 가마는 탑과 무덤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그 크기는 정말로 왕릉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한쪽에는 검은 돌이, 다른 한쪽에는 희고 우중충한 돌들이 잔뜩 쌓여서 인부들의 삽질에 들려 가마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괴상한 두 재료는 다름 아닌 석탄과 석회석으로, 석회석을 진짜 생석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 구워야 했기 때문.

“같은 석탄인데 헷갈리진 않지?”

“예. 이젠 생김새만 봐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관리는 대꾸하기 무섭게, 냉큼 달려가 유연탄인 역청탄과 무연탄을 가져와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옆에 놓고 햇빛에 비춰 꼼꼼히 살펴보니,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음... 나도 알아볼 정도면, 장인들은 더 쉽게 알아보겠네.’

코크스 만들기도 부족한 역청탄을 이런 데에 쓸 수 있나. 다행이도 헷갈릴 일은 없어 보인다.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업을 구경했다.

조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석회를 사용해 왔었다.

당장 한성에 궁궐을 새로 짓고 성을 쌓을 때도 석회를 사용했고, 무덤을 만들 때도 꼭 들어가는 물건이 석회였지.

다만 부정기적인 별공別貢으로 충당했는데, 원료 채득의 용이성, 땔감의 풍부한 공급, 운반의 편의성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

그래서 왕실과 조정에서나 쓰고, 민간에선 흔히 쓰지 못한 물건이었다.

허나 연오랑은 이곳에서 그 관념을 깨트리고, 대여섯걸음 앞선 기술로 나아갔다.

고온으로 구울수록 질 좋은 생석회가 나오기 마련이니, 땔감은 석탄으로 대체했다.

지금껏 사용하던 아궁이 형태의 원시적인 가마를 석회전용가마로 대체해, 보다 빠르고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바꾸었다.

끝으로 기존의 석회인 유회油灰, 수회水灰, 삼물회三物灰를 넘어서 보다 다루기 편한 생석회를 연구했다.

집중한 건 역시나 삼물회 혹은 삼합토라 불리는 물건.

이건 석회, 모래, 황토나 점토를 섞어 만드는 데, 현대 시멘트의 원시적인 형태라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잖아? 값도 제일 싸게 먹히고 말이다.

해서 이 삼물회에 온갖 부수재료를 다 넣어가면서, 방습, 방수, 접착성을 높이는 연구를 진행.

원래의 유회와 수회에도 들기름, 여물, 찹쌀풀, 느릅나무껍질 등을 넣어서 섞고 있는 바, 최대한 돈이 안 드는 재료를 찾고 있는 중이지.

“흐음...”

연오랑은 흡사 시멘트 도로처럼 생긴 생석회 도로를 이리저리 밟아가며 입을 열었다.

“문제는 없어?”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아서 제대로 확인을 못했는데, 올해가 지나면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완전히 부서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갈도로 위에 배합비율을 달리해 도포한 석회도로들을 살폈다.

‘하여간... 한반도가 괜히 똥땅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이게 뭔 고생인가 싶어서, 속으로 쓴웃음과 함께 욕이 절로 나온다.

그냥 도로를 대충 깔면 얼마나 좋을까만... 한반도의 기후는 상상을 초월하지 않나.

여름에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물은 땅에 스며들고, 땅은 물을 머금고 있다가 겨울이 되면 속에서부터 얼어붙어 부풀어 오른다.

더욱이 여름과 겨울의 연교차가 너무 심하다보니, 21세기의 콘크리트로 만든 도로조차도 쪼개지기 일 수.

이걸 대비하기 위해선, 1미터 이상 땅을 파고들어가 지반층에 큰 돌을 쌓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쌓아야 했다.

그 후에 다시 흙을 덮어 미세구멍을 막고, 마지막으로 자갈도로를 깔고 단단히 다져야 그나마 유지가 가능했다.

이걸 꼼꼼하게 다 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할지 가늠되겠는가.

작금에 이르러 괜히 자갈도로를 까는 전문가가 생긴 게 아니고, 조정신료들이 괜히 넌더리를 치는 게 아니지.

‘하지만 이 석회도로가 완성되면, 이제 한성내부에도 포장도로를 깔 수 있게 되겠지. 아주 볼 만 하겠네.’

연오랑은 아무도 모르게 히죽 입고리를 들어올렸다.

자갈도로야 뭐 소음도 있고, 자갈도 튀고, 워낙 이질적이라서 육조거리에 까는 일에 군말이 많았지만, 이 석회도로는 차원이 다른 물건 아니냐.

석회도로를 받아들이게 되면, 어수선하고 복잡한 한성내부를 깔끔하게 재건축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앞으로는 민가가 도로를 파먹는 일은 없어지겠지.

‘불 한번 잘못나면, 궁궐마저 다 태워먹을 초가집도 싹 정리하고 말이야.’

원래 역사에서도 이런 대화재의 위험이 여러번 있었으니, 미리미리 조치해두면 금상첨화다.

더불어 조선 사람들이 상상도 못한 신문물이 한성에 깔리게 되면, 조선팔도에서 죄다 “우리도 석회도로를 깔아 달라!”라고 아우성치지 않을까?

‘그럼... 크게 보면 전국에서 건설, 석회, 탄광, 채광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연오랑은 막연히 희망찬 미래를 품어봤다.

“기둥을 세우는 건 어때?”

“이음새를 메우는 데에는 기존의 유회나 수회에 버금갈 정도로 효과가 있지만... 삼물회만으로는 지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끄응...”

‘하긴 무리였나.’

철근과 콘크리트의 조합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지만... 이 시대에 미쳤다고, 비싼 철을 건물 짓는데 쓸 수가 있나.

당연히 생석회만으로 건물을 짓는 건 불가능했고, 안에 돌로 쌓은 지지대를 심어놔도 1층 높이를 넘어가면 지탱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저건 그래도 잘 달라붙은 거 같은데?”

연오랑이 미심쩍어서 우중충한 회색빛을 품은 담벼락을 가리키자.

“음... 저건 사실 황토를 덧붙이는 것처럼, 얇게 여러번 펴 바른 거라서...”

관리는 괜히 자기가 민망해서, 쥐구멍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을 했다.

‘그래도 저게 어디냐. 도포하면 깔끔하겠네.’

연오랑은 21세기의 시멘트 벽을 연상케 하는 담벼락을 보며, 힘내라는 듯 관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줬다.

이런 식으로 민간에서 석회가 건축재료로 널리 쓰이기만 해도, 충분히 효용이 있을 테니까. 목재건축이 주류를 이룬 조선건축에 있어서, 나름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긴 곳은, 겉으로 봐선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그저 북방식 신식가옥이 여러 채 있었고, 그 옆에는 가마터처럼 보이는 작업장이 엉뚱하게 붙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작업장 옆에, 아까 봤던 석탄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는 점.

“석탄은 어때? 이젠 다들 익숙해졌어? 내가 북방에서 쓸 거라고 난방용 난로와 화로를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말이야.”

“물론입니다! 이미 여러 종류로 만들어 놨습니다.”

“흐흐. 꽤 좋더군요. 저희가 이미 써먹고 있습니다.”

연오랑의 우려가 무색하게, 관리들은 체면도 잊고 엄지척을 하며 히죽히죽 웃어댔다.

조선이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던 석탄을 들먹이는데도, 어째 망설임이나 거부감은커녕 흔쾌히 반기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예. 확실히 장작에 비해 편하더군요. 물론 연기 냄새가 조금 고약하긴 한데, 이것도 익숙해지니까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고...”

“그렇습니다. 화로위에 절인생선을 구워 먹으니까 풍미가 꽤 좋던데요?”

흥에 취했는지 관리 중 한명이 예의도 잊고 실없는 소리를 내던졌고, 그는 다른 관리들의 눈총을 받으며 얼른 고개를 숙이며 뒤로 숨었다.

‘흐응. 출발이 좋은데?’

연오랑은 예상외의 반응에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 조선은 온돌문화가 정착되긴 했으나 집 전체를 온돌로 만드는 게 아니고, 쪽구들이라고 해서 집의 일부에만 온돌을 까는 형태였다.

보통은 치료용이나 요양용, 혹은 손님맞이용으로 쓰는 형태랄까?

허나 16세기 말부터 소빙하기가 찾아오면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집 전체에 온돌을 까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시절이 이렇다보니 입식문화가 당연한 거라서, 조선하면 떠오르는 좌식 문화조차 지금은 낯선 상황.

왕실인사들이 괜히 북청별궁을 신기해하고 좋아했겠는가. 생경한 북방식 가옥도 가옥이지만, 그 안에 여러 형태의 온돌을 만들어놓은 것도 한몫 했다.

연오랑은 여기서 미래를 훌쩍 뛰어넘어, 석탄을 난방용, 취사용으로 사용하길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야 산림개발도 제대로 안됐고, 온돌 보급도 적어서 나무가 넘쳐나지만... 조선중후기에 가면 하도 나무를 베어가서 죄다 민둥산이 돼버리지 않나.

미래를 생각하면, 그리고 편의성과 기업설립, 육상교통망을 키우려면 탄광을 많이 만들어서 보급하는 게 최선.

문제라면... 아무 생각 없이 석탄을 온돌아궁이에 넣고 사용하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골로 가기 딱 좋지 않나.

이에 대한 해결책만 찾아낸다면,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이 없다.

“민간 백성들의 거부감은 없을 거란 말이지?”

“물론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지 몰라도, 한번 사용하고 나면 다들 반기게 될 겁니다. 북직례와 산서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는 물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중국도 쓰는데 저희라고 못 쓸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좋아. 일단은 탄광 개발에 대해서 계속 연구해 보라고. 아. 이곳에서 교육받는 이들 중에서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온 사람들이 꽤 있나?”

“그렇습니다만...?”

연오랑이 뜬금없이 묻자, 다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냐?’라는 듯 바라봤다.

그가 출신지를 따져서 대우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 않나. 오히려 해코지를 할 가능성이 높은 터라, 다들 입을 조심했다.

“별건 아니고, 그쪽 산간지역에 탄광과 석회석이 많이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제대로 배워가야, 나중에 기업을 만들 수 있을 거 아냐. 제대로 공부시키라고.”

“아... 옙!”

“걱정 마시지요!”

연오랑이 오해를 풀어주자, 그제야 다들 히죽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그는 게임 미디블워를 통해서, 한반도 땅에 묻혀 있는 광물자원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 않나. 미리 알려주고 가면, 그치들이 알아서 잘 뒤지고 다니지 않을까?

이곳에는 광장鑛長은 물론이고 관상감 소속 지관까지 파견 나와서, 광맥을 찾는 일마저도 학문화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제련마을을 꼼꼼히 살펴보자 어느덧 점심에 가까워졌고, 연오랑은 관리들과 함께 가볍게 식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아예 눌러 사는 사람도 많지만, 꽤나 많은 인원이 용연포구에 거주하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식당 비슷한 주막이 여럿 생겨났는데,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챙기지 않아도, 이제 슬슬 틀을 깨고 새로운 것들을 알아서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다들 편한 걸 찾다보면, 이것저것 하기 마련인가 보다.

강과 연결된 마을 어귀로 다시 되돌아가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펼쳐졌다.

어째 한성에서 유행하는 물건이 여기에도 있는 게 아닌가.

“운송마차네?”

“네. 어르신. 이곳뿐만 아니라, 은산마을을 비롯한 모든 광산마을에도 운송마차가 들어섰습니다. 어차피 용연현은 땅이 남아도는데, 굳이 산속에서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연오랑은 윤현의 대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용연현은 용연포구 일대와 광산일대만 사람이 모여 살았다.

까닭이야 별거 있나. 용연포구는 연오랑이 직접 청사진을 그려서 만들고 있는 신도시고, 앞으로 조선에 세워지고, 재건축될 수많은 도시들의 기준이 될 곳 아닌가.

당연히 사람들을 잔뜩 끌어 모아 거주시켜서 틀을 만드는 게 중요해서, 띄엄띄엄 마을이 만들어지는 걸 일부러 막았다.

지금껏 불길한 땅으로 여겨지던 이 땅에, 몰래 들어와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도 없었으니 큰 문제도 없었고.

“저거 누가 운영 하냐?”

“헤헤. 접니다.”

“돈독이 제대로 올랐고만?”

“에이. 제 주머니가 곧 어르신 주머니 아닙니까. 다 어르신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죠.”

윤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양을 떨어댔고, 연오랑은 피식 웃고 말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윤현과 윤현의 아버지 윤동은 원래부터 연씨집안의 가솔 아니었나.

지금도 상황은 비슷했고, 워낙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왔으니... 굳이 따지면 연오랑의 오른팔이자, 연씨 집안의 집사쯤 될 거다.

‘생각해보면... 이 녀석은 무관이 아니라 문관으로 나가야 했던 거 아냐?’

연오랑은 실실 웃는 윤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고배운 게 죄다 그의 기괴한 행각이니, 녀석은 자연스럽게 칼질과 자본유학을 익혀왔다.

그럼에도 녀석이 연오랑을 대신해서 굴리는 사업체가 한둘이 아니고, 나아가 임시관리로서 용연현을 꽤나 잘 이끌어가고 있는 걸 봐서는...

칼질보다 목민관으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내 밑에서 잘 배워서 그런 건가?’

생각해보니 그의 옆에 찰떡같이 붙어서 전부 배웠으니, 기업운영에 관해서는 조선 제일의 전문가 아니냐.

이 정도도 못하면 그게 더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연오랑은 속으로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면서도, 은근히 떠봤다.

“요새 관리를 많이 뽑는데, 너는 조정에 입조할 생각이 없는 거냐?”

“에엑?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이십니까! 저를 일지옥으로 보내시려구요?”

윤현은 손을 내저으며 완강히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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