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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56화 (156/538)

156. 챕터25. 개발하다 (7)

녀석은 조정관리가 용연현으로 파견되어 어떻게 일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는데, 미쳤다고 진짜 조정관리가 되겠는가.

지금 임시관리를 겸임하는 것도, 착호군에 속해 군역을 해결하기 위해서지 관직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저는 그냥 어르신이나 보필하면서 살렵니다. 어릴 적엔 그저 내금위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어르신 밑에서 지내는 게 편하더라구요.”

“...”

‘네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았다고...’

연오랑은 저게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헷갈려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흘기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마부들을 뒤로하고, 둘은 느긋하게 나아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마차를 보니 생각나서 말인데... 저것도 다 우리 목장에서 키우는 말들이지?”

“예. 물론이죠.”

“그럼 대마도에서 가져온 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냐?”

“제주에서 데려온 말들과 합사시켜서 잘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 용연목장에서 키우는 말을 다 합치면 거의 오백필 정도 될걸요?”

윤현은 묻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깨를 쫙 펴고 히죽거리며 자랑을 늘어놨다.

그간 잊고 있었는데, 대마도 토종마는 나름 번성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나 늘었어?”

“예. 원래 있던 녀석들하고, 하동의 축산기업에게 넘겨받은 말들도 있고, 제주와 북방에서 새로 구입한 말들도 있어서요. 미분 팔아서 꽤 짭짤하게 벌었잖아요? 그걸 여기저기 투자했죠.”

“오...”

“흐흐.”

연오랑은 녀석의 수완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유사msg인 미분은 어느덧 왕실에도 진상하고 있었고, 착호군을 통해 알음알음 퍼지지 않았나.

조선내지에서도 찾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돈주머니를 싸들고 다니는 의주의 중국상인들은 눈을 뒤집어 까고 덤벼들 정도였지.

그걸 이용해서 윤현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재산을 몇 배나 불려놓은 모양이다.

“근데, 원래 키우던 녀석들은 전마로 쓰려고 키운 녀석들 아냐? 같이 놔도 괜찮아? 한혈마 종마가 괜히 조랑말들에게 힘쓰면 곤란한데...”

“걱정 마시죠. 북방에서 들여온 품질 좋은 말들만 골라서 씨를 받고 있죠.”

윤현은 ‘에이. 날 못 믿습니까?’라고 힐난하듯, 슬쩍 눈을 흘기고선 냉큼 답을 던졌다.

“그리고 대마도말은 다 커도 덩치가 작잖아요? 광산에서 쓰기에 꽤 좋더라고요. 녀석들이 덩치는 작아도 끈기도 있고 나름 성질도 온순해서 말이죠. 나중에 광산기업이 많이 생겨나면, 분명 크게 쓰임이 있을 겁니다.”

“흐음... 제주의 토종말은 성질이 더럽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아닌가 보네?”

“글쎄요... 대마도말과 교접해서 그런지 몰라도, 망아지들은 별 탈 없던데요? 데려온 녀석들도 잘 적응하고 있구요.”

“그럼 됐다.”

윤현은 하동에 있을 시절부터 말을 기르지 않았나. 녀석이 전문가니, 굳이 더 물어볼 필요도 없다.

“장연현과 맞닿아 있는 산기슭에 목장을 만들어 놨는데, 보고 가시겠습니까?”

“아니. 나중에 가자.”

“옙!”

‘정선공주가 말 타는 걸 꽤 좋아하잖아? 나중에 같이 가는 게 좋겠다.’

연오랑은 궁 밖으로 처음 나와 본 정선공주를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정선공주가 그럴 성격은 아니지만... 혹시 또 아나. 이 촌구석에 틀어박힌 것 때문에, 속앓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운하처럼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있는 강을 따라 계속 나아갔고, 자갈도로 또한 강둑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걸 다 까는 것도 일이었을 텐데... 어째 잘 됐네?’

총길이를 생각하면, 한성에 깔린 자갈도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거리다.

“용케도 이걸 다 깔았네?”

“저희가 왜인포로를 추가로 꽤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그치들 먹여 살리려면 뭐라도 시켜야 해서 말이죠.”

배를 만들던 왜인포로는 미리 가로채지 않았나.

그들 말고도 용연현으로 이주하면서 추가로 더 받아냈는데, 윤현은 알뜰살뜰하게 써먹었나 보다.

“그래도 이 허허벌판에, 집 짓는 것만으로도 바빴을 텐데?”

“흐흐. 어르신이 이곳에 승려들을 죄다 모으지 않았습니까. 그들 따라서 온 사원노비가 한가득이고, 조정에서 보내준 관노도 있고, 개성과 평양에서 떠돌던 빈민들도 전부 이곳으로 데려왔죠. 전에 보고서를 보내드렸잖아요?”

“...”

그게 언제 적 일이냐.

연오랑은 착호군 일이 너무 많아서,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뭐. 기억나지 않을 정도면, 충분히 잘 풀려서 그런 거 아니겠어?’

그는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녀석의 불순한 눈빛을 흘려 넘겼다.

용연현은 황해도 서쪽에 위치해 있는 만큼.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아래로는 개성이 위로는 평양이 위치했다.

개성과 평양은 한성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보지 않았나.

최우선적으로 오물수거기업이자 인분비료기업이 만들어졌고, 도시의 미관과 위생상태가 나아지면서 빈민들은 은근슬쩍 밖으로 밀려났을 거다.

하지만 개성과 평양은 한성의 눈치를 보느라, 다른 종류의 기업설립이 늦어져서 빈민을 흡수하긴 힘들었을 테니...

윤현과 용연현감은 “저기 일꾼이 있다!”라고 외치며, 그들을 이 미개간지로 끌어 모아 정착시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지.

둘은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늘어놓으면서 계속 걸음을 옮겼고, 연오랑의 눈엔 꽤나 생경한 광경이 계속 펼쳐졌다.

이곳은 평야나 다름없어서 바다 건너의 수평선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는데, 이 너른 땅에 논 대신 온갖 나무들과 묘목들이 가득했기 때문.

그 과실수 밭 사이에는 딱 봐도 새로 지은 것 같은 기와집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는데, 저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분명 작업장일 거다.

‘거참... 역시 사람을 갈아 넣으면 안 되는 일이 없나보네.’

그가 계획하고 윤현이 실천에 옮기긴 했지만, 이렇게 잘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야... 제대로 키웠는데?”

“헤헤. 그렇죠? 벌써부터 나름 수확이 나고 있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이곳이 확실히 교통의 요지라니까요.”

윤현은 자랑을 숨기지 않고, 연신 자신이 벌여왔던 일을 열심히 풀어냈다.

어차피 이 근방에 논밭은 많고, 바로 밑의 개경 근처로만 가도 논이 넘쳐나지 않나.

연오랑은 굳이 여기까지, 다른 조선땅과 비슷하게 놔둘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 써먹어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낙점된 게 과실수였다.

이곳에는 능금, 배, 대추, 감, 포도, 복숭아, 매실, 살구 등을 길렀는데, 당연히 품종개량이 덜 된 야생종인터라 21세기에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지.

농업연구소라고 해야할지, 과실수연구소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여기저기에서 자생하는 과실수를 죄다 긁어모아서 열심히 개량하고 재배기술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수확물이 벌써 나왔어?”

“예. 이미 작년에 성과를 봤죠. 곡물만큼은 아니지만, 몇몇은 나름 오래가더라고요? 한성과 개경, 평양에 조금씩 팔아넘겼습니다.”

“오호!”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한반도에는 농사짓기 힘든 땅이 넘쳐나고, 그런 땅에서는 나무라도 심어서 수익을 뽑아내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생각해낸 게 과수원이었다. 과일은 실온에서도 은근히 보관기간이 긴 품종이 있으니까.

충분히 상품작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수확한 과일을 한성,개성,평양에 내다 팔정도면 그의 예상이 적중한 것 같다.

“의주까지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이번에 수확하면 배에 실어서 보내보려고요. 무른 과일은 쉽게 상하겠지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은 꽤 쏠쏠하게 팔리지 않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연오랑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 시대엔 과일을 전문적으로 내다 파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북방의 요동인이나 여진인이 조선산 과일을 먹어보기나 했겠냐.

상하기 전에 옮길 수만 있다면, 꽤나 훌륭한 돈벌이가 될 거다.

“쉽게 상하는 것들은?”

“그냥 저희들끼리 다 먹어버리거나, 과실주나 식초, 청으로 만들어서 모아뒀죠.”

“잘했다. 남은 거 있으면 잘 포장해서 왕실에 진상해라. 멋들어진 청자에 넣어서 말이야. 맛보고 나면 기술자들을 긁어모을 수 있게 도와줄걸?”

“그렇겠죠?”

“물론이지.”

“흐헤헤.”

“흐흐.”

둘은 음흉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악동처럼 웃어댔다.

조정은 전문가들을 긁어모아 한곳에 모아놓고 굴리면, 뭐가 됐든 효과가 나오는 걸 익히 경험하지 않았나.

이 또한 마찬가지이니, 굳이 연오랑과 윤현이 발품 팔지 않더라도, 조정이 대신해서 사람들을 구해줄 것 아닌가.

이게 바로 차도살인지계가 아닐까?

과실수연구소가 제 역할을 해내면 각 집안에서 한두그루씩 키워 자급자족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집약생산을 하는 진짜 과수원이 우후죽순 생겨날 거다.

‘이미 착호군이 지나간 곳에 과수원을 하나둘씩 만들었으니, 이제 이쪽으로도 눈을 돌리는 집안이 분명 생겨나겠지.’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는 과수원이 몇 곳 만들어져서 수익을 냈으니...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는 지역에선, 과수원기업이 생기고도 남을 거다.

둘은 용연포구로 계속 향하다가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했다.

포구를 구경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

자갈도로도 깔리지 않은 맨땅을 거침없이 달려가자, 어느덧 수평선과 함께 짠내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포말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해안가에 이르러선 파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대신 거무튀튀한 해안가가 햇빛을 유난히도 반사하며 빛무리를 뿌려댔다.

“오... 진짜 크게 만들었네?”

“헤헤. 잘 만들었죠? 하동에 만들었던 건,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그러네?”

연오랑은 해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염전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어댔다.

불쑥불쑥 솟아 있는 건물은 전부 소금창고일 게 분명.

빨리 보고 싶어서 냉큼 달라가자, 해안가를 따라 줄줄이 솟아 있는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정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들이 보였고... 그들 또한 둘을 발견한 걸까? 이야기를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하긴 호피장옷을 입고 있는 이가 뜬금없이 튀어나왔는데, 의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냐.

둘은 천천히 말을 몰아 정자로 향했고, 연오랑의 눈에 특이한 모습이 들어왔다.

흡사 불이라도 난 것 마냥, 정자 밑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저건 정자마루에 온돌구들방을 깔아놨을 게 분명.

‘요 녀석 보게? 저건 말만 해뒀던 건데?’

“저것도 만들었어?”

“예. 꽤나 운치 좋잖아요? 찬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엉덩이는 따뜻하게 덥히는 게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음...”

윤현은 자랑을 늘어놓으며, 소금창고 옆에 망루처럼 박혀 있는 정자들을 가리켰다.

겨울이 매섭도록 추운 북방식 가옥의 특징이 온돌이라면, 여름이 더운 남방식 가옥의 특징이 대청마루 아닌가.

저 정자는 둘을 섞어 놓은 거라서 북청별궁에도 지어놓지 않은 물건인데, 어째 여기서 보게 됐다.

정자에 가까워지자 서로는 서로를 알아봤고, 인부처럼 보이는 이들이 윤현을 알아보고 냉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음? 얘들은 뭐지?’

다만 연오랑은 쉬고 있던 이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옷차림은 염전인부처럼 보이는데... 흔한 마의가 아니라 나름 비싸 보이는 무명옷을 입고 있고, 어째 하는 짓은 한량이나 다름없지 않나.

이들이 누군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음...?”

“윤 별관. 어쩐 일로...?”

더불어 이들은 윤현을 편히 부르더니, 옆에 선 연오랑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게 아닌가.

입을 열지 않아도 ‘대체 이 덩치는 누구냐?’라는 표정이 역력했고... 몇몇은 곧장 혹시나 싶어서, 낯빛이 확 바뀌어 허둥거렸다.

윤현은 그런 그들을 보며, 히죽 웃으며 약올려줬다.

“용연군 대감이십니다.”

“허헙.”

“아...!”

소개하기 무섭게 연오랑이 말에서 훌쩍 내려서자, 이들은 황급히 옷차림을 바로하고선 그에게 다가와 입을 놀렸다.

원래도 용연군 작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부마까지 되지 않았나. 성깔이 더럽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괜히 잘못 찍혔다가 뭔 화를 당할지 모른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감! 소인은 평원군의 자제...”

“저는 여량군의 자제...”

‘아! 어쩐지...’

연오랑은 이들이 자랑스럽게 자신을 소개하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얘들이 뭐 믿고 이렇게 태평하나 했더니, 어째 죄다 공신자제들 아니냐.

그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자, 오해라도 한 걸까? 이들은 자세를 바로하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놀고 있는 게 아니고, 지금은 휴식 시간입니다.”

“맞습니다. 다른 인부들도 쉬고 있어서...”

이들은 변명하듯 열심히 입을 놀려댔다.

그도 그럴 것이, 괜히 트집 잡혔다가는 집안의 대사를 말아먹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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