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챕터27. 진격하다 (1)
문제라면 지금처럼 기존의 하위부서 혹은 신설부서가 죄다 독립부서로 떨어져 나오게 생겼다는 점.
“각 부서의 휘하에 두기에는 너무 커졌지요?”
“예. 공조의 산택사에 품기에는 너무 커졌습니다.”
공조참판 황상은 두툼한 보고서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건설당은 영조사에, 공업당은 공야사를 어떻게든 확장하고 키우면 얼추 끼워 맞출 수 있는데... 산택사는 불가능했다.
“산림당, 항만당은 산택사를 훌쩍 넘을 정도로 커졌는데, 이걸 품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더욱이 항만당은 역참과도 이어진 터라 더욱 그러하지요.”
“맞습니다. 더불어 함선을 담당하는 전함당은 사수감의 영역을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호조참판 목진공이 황상의 말에 양념을 뿌렸다.
“흐음...”
“그 부분은 확실한데...”
착호군이 원산과 함길도에 머물면서 찍어낸 함선이 몇 척이며, 새로 만든 포구가 몇 개인가.
천지개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터라, 삼남지방의 조선기업을 다 합쳐야 함길도 해안도시와 원산에 비견될 만 했다.
“또한 산택사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호조의 사재감에 포함하기도 힘듭니다.”
이어지는 목진공의 발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조정은 공물이나 찔끔찔끔 받고 “너희가 알아서 잘 추려서, 위로 잘 올려 보내기나 해.”라는 식으로, 방임 아닌 방임을 취해왔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부 조정이 관리하다보니, 그 업무량이 폭주한 건 당연한 일.
나아가 조선내지를 도는 물동량이 예전에 비해 몇배, 아니 열배 이상 뛰었는데, 이걸 지금처럼 느슨하게 관리할 수 있나.
그랬다간 또 꼼수를 쓰며 사익을 취하려는 기업집안과 지방관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지금까진 착호군이 조정의 업무를 대신해서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지만, 언제까지고 착호군에게 맡겨둘 순 없지.
이런저런 논의를 계속 이어갔고, 이윽고 병조참판 최사강이 입을 열었다.
“판군사대와 체신당은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특히나 체신당은 역참과 연관이 크지 않습니까? 판군사대는 무선사에, 체신당은 승여사에 이관하는 어떨까 싶소만...?”
무선사의 업무 중엔 무관의 처벌 및 인사가 있었고, 승여사엔 우편 업무가 있었으니 얼추 말이 되긴 했으나...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인수부윤 성억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지금껏 태종-세종-연오랑 사이의 연락관을 담당하지 않았나.
발이 불타도록 조선팔도를 돌아다녀서 일까? 냉랭함이 몸에서 풍겨 나올 정도로 살이 쪽 빠져서, 눈빛이 유독 날카롭게 느껴졌다.
“군문에 관해서는 주상전하와 상왕전하의 뜻이 따로 있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아도 될 거요. 병조에선 다른 부서로 이관할 속아문만 논의하면 될 듯하오.”
“음.”
“하긴.”
모두는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성억이 직접 이곳까지 온 건 연오랑을 만나기 위해서이고, 착호군을 만든 연오랑이라면 분명 군제개혁에 직접 손을 쓰고 있다는 뜻 아니겠나.
결과가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6조체제의 변화에 비견될 정도로, 군제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거다.
*****
대신들이 자신을 안주삼아 씹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오랑은 저쪽 산세에 걸쳐 있는 흙더미를 보며 연신 웃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하하! 저거 봐라.”
“... 웃기십니까?”
“너는 안 웃기냐?”
“푸훕. 웃깁니다.”
“헤헤.”
연오랑이 가자미눈을 하고 힐끔 쳐다보자, 이젠 소년티가 물씬 나는 아이들이 드디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이를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잘 모았다니까?’
그는 함께 웃고 있는 소년들을 보며 헤실헤실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그의 모습이 요상해서 일까?
그나마 나이가 있는 청년이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냥.”
“...”
실없는 대답에, “또 이상한 생각을 한 게 분명하다.”라고 말하듯, 정찬손은 건방지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 미래의 꼰대 자식이...’
“아악!”
물론 연오랑은 그 시건방진 모습을 참지 못하고 꿀밤을 먹여줬지.
원래 역사에서 정찬손은 세종이 한글을 반포할 때. “백성들은 멍청해서 글을 알려준다고 한들 바뀔게 없다.”라고 말했다가 세종에게 쌍욕을 처먹었던 인물 아니냐.
허나 지금 역사에선 그런 골수 유학자가 되긴 커녕, 운석핵꿀밤 세대의 대표주자인 만큼 개혁적인 성격이 무척 강했다.
그가 끌어오기 전부터 그러했으니, 함께 데리고 다니고 나서부턴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이 녀석들 미래도 완전히 바뀐 거고 말이야.’
연오랑은 정찬손 뒤로 줄줄이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금 히죽 웃고 말았다.
그는 세종의 부하들에게 손을 쓸 생각도 안했고, 그럴만한 능력도 못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나.
기억을 더듬어 게임캐릭터로 구현된 위인들을 찾아내고, 동네에서 신동이라고 소문난 아이들을 긁어모았다.
무려 용연군이 직접 데려가 수학시키겠다는데, 이걸 반대할 부모가 있을 리가.
그 결과. 예전에 합류한 이순지와 박강 이외에, 천재로 소문난 최항, 조선궁궐을 죄다 만든 건축천재 박자청의 손자 박현. 권근의 아들인 권준이 함께했다.
권근은 유명한 성리학자였지만, 운석핵꿀밤의 여파를 정통으로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본래 역사보다 빠르게 세상을 떠난 상황.
그의 아들인 권제는 당연히 근본성리학자의 굴레를 벗어 던진 지 오래고, 원래 역사에서 유서 깊은 골수 유학자가 됐어야 할 권준 또한 지금은 철없는 꼬맹이에 불과했다.
더불어 구치관, 윤사윤, 정수충, 강맹경, 박원형 등의 꼬맹이들을 모을 수 있었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째 세조시대에 활약하는 녀석들이 잔뜩 아니냐.
지금 역사에서 세조가 튀어나올 일은 없지만, 어쨌든 한가닥 할 녀석이 죄다 한자리에 모여 있던 거지.
녀석들은 착호군 내의 많은 조직들을 거치면서, 실전학문. 잡학을 자유롭게 배우며 익히고 있었다.
“놀리러 가자.”
“히히! 옙!”
“아싸! 우리가 이겼다!”
꼬마들은 활짝 웃음꽃이 피었고, 연오랑은 동네 꼬마대장이라도 된 것 마냥 애들을 끌고 앞서 나아갔다.
이내 도착한 곳은 각각 경사가 조금씩 다른 흙무더기들.
자연구릉으로 보기에는 인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고, 당연히 착호군이 열심히 땅을 파서 쌓아올린 흙무더기였다.
그 흙무더기를 열심히 오르는 이들이 있었는데, 서서 오르긴 커녕 양팔로 기어오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다른 한쪽에선 말을 몰고 올라갔다가 힘에 부쳐서, 거의 굴러 떨어지듯 황급히 내려오는 이들이 또 부지기수.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난장판이다.
연오랑 일행이 다가가자, 저편에서 흙을 잔뜩 묻힌 이순몽과 유은지가 성큼 다가왔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옷 밖으로 느껴질 정도로 열기를 뿜어내는 걸로 보아... 이들 또한 저 흙더미를 오르느라 개고생을 한 게 분명했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냐? 저거 못 올라간다고 했지?”
“맞아요! 저거 계산하는 데 얼마나 어려웠는데.”
“암암. 우리가 만들었는데, 잘못됐을 리가 있나.”
“끄응...”
연오랑의 빈정거림에 이순지와 아이들이 양념을 마구 뿌리자, 이순몽과 유은지는 할 말이 없어서 얼굴만 계속 붉어졌다.
“앞으로 되도 않는 헛소리는 그만하고, 너희는 말이나 타라. 무식한 것들아.”
“대감!”
“그래도 애들 앞에서...”
그의 신랄한 발언에 둘은 발짝을 일으켰지만... 연오랑의 싸늘한 눈빛에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연오랑의 말을 안 믿고 개기다가, 이 사단이 난 것 아니냐.
“니들 때문에 쓸데없이 땅 파고 고생한 군병들이 한둘이냐?”
“음...”
“저희만 그런 게 아닌데...”
둘은 나이도 체면도 잃어버리고,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 앓으며 변명을 토해냈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했다.
앞으로 조선의 강역이 쭉쭉 넓어질 터, 연오랑 입장에서 연주는 변경이 아니라 내지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당장 쓸모도 없는 성벽 따윈 관심도 없었는데,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
다만 이 넓은 연주를 감싸는 성벽을 건설하는 건 절대 불가이니, 분지지형인 연주의 협곡 출입로 근처에만 성채를 쌓는 걸로 결정 내렸다.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앞으로의 전쟁은 대포가 주류가 될 테니, 연오랑은 당연히 대對포병요새. 보방요새라고도 불리고, 성형요새라고도 불리는 성채를 쌓으려고 했다.
성형星形이라는 말답게, 성채를 별모양으로 만들어서 사각을 완전히 없애고, 포탄의 피해를 적게 받기 위해서 낮고 두툼한 흙성벽으로 둘러친 형상을 한 성채.
유럽의 르네상스시기에 시작되어, 근대까지도 요긴하게 써먹은 물건이지.
다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연오랑의 주장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였다.
성벽은 자고로 수직으로 높고 곧게 쌓는 게 정통인데, 흙비탈로 쌓은 성벽이 웬 말인가.
괴상하게 생긴 별모양이야 화망의 사각을 없애주니 그렇다 쳐도, 저 낮은 흙비탈은 아무리 봐도 무리였던 것.
연오랑은 “그럼 니들이 한번 기어올라보든가.”라고 말하곤, 성채를 만들어서 실험했다.
경사각이 45도만 되도 사람이 걸어 오르는 건 더럽게 힘든데, 네발을 가진 말이 오르는 게 쉬울 리가 있나.
아무리 말해도 이해를 못한 탓에 성벽 높이를 4,5미터까지 올려놨더니, 죽었다가 깨나도 여긴 걸어서 못 올라갔다.
더불어 그 위에서 활과 화포, 조린탄까지 쏴대기 시작하면, 오르는 족족 다 죽는 거지.
그 결과. 이순몽과 유은지는 상상 속에서 골백번은 더 죽는 걸로 끝을 맺었다.
꼬맹이들이 만세를 부르며 좋아한 건, 이 똑똑한 녀석들이 열심히 계산해서 성형요새를 설계했기 때문.
도시계획을 할 때도 수학, 집을 지을 때도, 배를 만들 때도, 성벽을 만들 때도, 하다못해 화포를 쏠 때도 수학 아니냐.
착호군의 대다수는 억지로라도 산학을 열심히 익혀야 했고, 머리가 말랑말랑한 꼬맹이들이 이순몽과 유은지와 같은 무관들의 산학실력을 앞지르는 건 당연한 수순.
둘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시뻘게 진 건, 이런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성벽을 지을 거다. 불만 없지?”
“예...”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 아니겠습니까! 하하! 흙비탈의 높이만 조금 더 올리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기병전문가인 이순몽과 유은지와 반대로, 최윤덕과 김종서는 연오랑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나.
둘은 쌤통이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이순몽과 유은지를 약올려댔다.
“너희가 보기엔 어떠냐. 이게 기존 성벽보다 더 싸게 먹힐 거 같아?”
“음... 엇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축성난이도는 더욱 떨어질 것 같습니다.”
“일반 인부들이야 편해지겠지만, 대신 설계가 복잡한 만큼 완성하는 데 더 오래 걸리고, 준비기간이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최윤덕과 김종서는 냉큼 답을 하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칭찬을 바라는 아이들에게 함박웃음을 날려줬다.
“음... 이게 더 쉽단 말이지?”
“적어도 돌무더기에 깔릴 일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음...”
‘하긴.’
지금의 성벽은 기중기로 열심히 돌을 들어 올려 쌓아올리는 방식이니, 성형요새가 건설하기에는 더 편하고 안전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강 상류에 쌓고 있는 수벽과 크게 다를 게 없잖아?’
연오랑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수벽은 강둑이고, 시대상 자재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래처럼 콘크리트로 만드는 대신 돌과 흙으로 완만한 둑을 쌓지 않았나.
설계가 다를 뿐, 만드는 방식은 거의 동일할 거다.
“대감. 허면 저 성채는 완성하실 겁니까?”
“그래도 하나 정도는 지어봐야 하지 않겠어? 너희가 필요하다며.”
“음...”
연오랑이 슬쩍 눈을 흘기자, 둘은 물론이고 뒤에 있던 이순몽과 유은지마저도 할 말이 없어서 머리만 긁적였다.
연주를 개척할 초창기에는 혹시나 싶은 여진족의 공격을 우려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여진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말대로 “집짓기도 바빠 죽겠는데, 굳이 품이 많이 들어가는 성채를 지금 지어야 해?”라는 의견은 모든 지휘관들에게 전염됐지.
“제대로 지어봐야 시행착오를 거칠 테니까. 일단 하나는 지어보자고. 우리가 떠나도 이곳에 군대가 주둔할 곳이 필요하잖아? 군숙영지로 삼아서 지어보면 되겠지. 저긴 안에 우물도 있고, 뒤엔 산을 걸치고 있으니 입지가 좋잖아? 괜히 두 번 고생하지 말자고.”
“예.”
“알겠습니다.”
연오랑의 빠른 결정에 모두는 동의했고, 이윽고 모두는 이순몽과 유은지가 열심히 기어올랐던 미완성 성채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안 믿어도 연오랑은 믿었기에, 성채 안에는 벌써부터 각종 건물들이 완성되어 늠름하게 서있던 바.
이젠 회칠도 완전히 다 마른 중앙건물 중에 하나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회의실은 황량하긴 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고, 역시나 이곳에도 중앙 탁자 위엔 정확히 이어붙인 거대한 지도가 놓여 있었다.
아예 조선내지는 나와 있지도 않고,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요동과 만주를 표시해 놓은 지도이니... 이 지도의 목적은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요동에서 온 사신은 잘 가고 있겠지?”
“예. 지금쯤이면 정주에 도착했을 겁니다.”
“흐음.”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정주는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이니, 사신일행은 압록강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거다.
연오랑은 상석에 앉아, 최윤덕의 간단한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