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69화 (169/538)

169. 챕터27. 진격하다 (4)

“결국은 심양파가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되겠군?”

“예. 아무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이 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차피 무역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사실상 땅 밖에 없는데...”

“요동은 옛 명나라의 종주라고 자처하지 못하니, 북방 땅을 자기 영토라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자기 땅이 아닌데, 주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모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놨고, 연신 토의하며 의견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요동에서 무얼 뜯어내든, 그건 조정에서 알아서 결정할 일.

짝짝. 연오랑은 가볍게 박수를 쳐서 모두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요동이 어떻게 움직이든 간에, 어차피 옛 해서위 여진을 정리하는 걸로 작전을 세워놨으니 우린 그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다.”

“옙!”

연주에 머물기 시작할 때부터 열심히 짜 맞춘 작전 아니냐. 중앙 탁자에 놓인 지도가 그걸 증명한다.

“기선군 2개 연대를 보급부대로 활용할 거다. 여유는 되지?”

“물론입니다. 소형수송선은 이미 경흥에 준비해 놨으니, 곧장 군수물자를 싣고 올라올 수 있습니다.”

연오랑의 눈빛을 받은 박무양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였다.

중맹선 크기의 신형 소형수송선은 대략 50명 정도가 탑승할 수 있는데, 군수물자를 실으면 20명 정도 타는 게 최대였다.

가볍게 계산하면 이번 원정에 소형수송선을 100척 가까이 동원할 수 있는데, 지금 준비된 건 대략 40척 정도.

남은 기선군은 앞으로 강을 따라 만들어질 하역장과 부두에, 성채와 보루를 쌓고 지키는 일을 담당하면 될 거다.

“평주에 나가 있는 특전대와 착호군을 불러오고, 원산의 예비대를 평주로 올려 보낸다.”

“알겠습니다. 헌데, 여진인 예비대도 올려 보냅니까?”

이정호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연오랑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박무양에게 옮겨졌다.

“걔들이 원산에서 훈련 받은 지 얼마나 됐지?”

“가장 먼저 온 이들은 1개 연대쯤 되고, 착호군 4기와 함께 왔으니 일년이 넘었습니다. 그 후에는 두서없이 합류하고 있는 중입니다. 동북면 쪽은 큰 분란 없이 흡수되는 부락이 많아서, 제가 오기 직전에도 또 1개 대대병력이 내려왔습니다.”

“음...”

‘일년이면 훈련은 얼추 다 받았을 테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줘서, 야인여진들을 압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보급선단에 끼워서 1년차 여진 예비대를 불러와라. 이곳 연대에 배속시켜서 실전경험을 시켜야겠다.”

“알겠습니다.”

연대장들 모두는 흥겨운 미소를 지었고, 오직 황보인만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들 자기 부하가 늘어나니 좋아했지만, 그들을 먹여 살릴 황보인은 일거리가 더 늘어났으니까.

“정주에서 올라올 정토군은 몇이나 되지?”

“5개 기병연대에, 보급을 맡을 기선군 4개 연대입니다.”

“음...”

연오랑은 압록강과 정주 일대를 표시한 지도를 살피며, 장난감마냥 작은 나무배를 강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지금 북방에 몰려 있는 조선의 군대는 퍽 괴상한 상태였다.

정주에 머물고 있는 혼성군은 정토군이라 명명됐는데, 이들은 평안도 토관, 중앙군 갑사, 본래 정병이었으나 신입 갑사로 지원한 이들, 착호군이 뒤섞여 있었다.

연주에 머물고 있는 혼성군은 평난군이라 명명됐는데, 이쪽은 더욱 복잡했다. 원정 때부터 합류한 중국인, 몽골인, 여진인까지 섞여 있었으니까.

물론 항왜출신도 몇몇 있지만, 이들은 끼워 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소수였다.

번외지만, 이 두 임시부대에 전과 달리 “북北”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은 건, 이미 이 북방을 조선땅이라고 선언한 것과 다를 게 없지.

아무튼. 이 병력을 모두 합치면 보조병과를 빼고 중기병군단이 삼만 가까이 되니, 그야말로 조선의 북부지방 기병을 싹싹 긁어모은 거나 마찬가지.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청난 양의 보급품과 군수물자가 필요했고, 육상으로 옮기다가는... 가는 길에 다 까먹을 게 분명해서,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이동계획을 늘어놓고 나서, 연오랑은 모두를 한명씩 굽어보고선 입을 열었다.

“조정의 명이 떨어지는 즉시 움직일 거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놓도록.”

“옙!”

“지난날 우리 손으로 옛 건주위 여진부족을 해체시켰다. 옛 모련위 여진부족은 알아서 해체되고 있지. 이제 남은 건 해서위 여진부족 뿐이다.”

“...!”

모두는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정벌.”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그려갔다.

“해서위 여진부족마저 해체시키면, 이제 북쪽변경을 어지럽힐 세력은 없어질 터! 사서에 남을 대업에 동참하는 걸 영광으로 알고, 다시금 각오를 단단히 다지도록.”

“옙!”

“알겠습니다!”

모두는 회의실이 떠나가도록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시선을 따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 먼 곳에선 이름 모를 산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은 높고 맑고, 나지막한 산세는 병풍처럼 이어지니...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가득해서, 여기가 전쟁터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 재밌었다. 강 중사. 뭐하나?”

“그냥 구경 중입니다. 정 소위님.”

“매일 똑같은 풍경인데, 구경할 게 있나?”

“그래도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 먼 북방은 조선땅과 완전히 다른 세상인 줄 알았는데, 별로 다른 것도 없지 않습니까?”

“흐음...”

정 소위라 불린 청년은 연오랑의 추종자 중 한명 쯤 되는 걸까? 말끔하게 밀어버린 턱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놀랍긴 놀라운 일이지. 기선군인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건 그렇지요.”

강 중사라 불린 사내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두만강 너머의 저 먼 북쪽에는 눈 덮인 설원과 설산만 있거나, 아니면 드넓고 황량한 초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째 함길도의 산맥보다 더 얌전해 보였다.

그걸 떠나서... 막연히 내지라고 생각했던 이 낯선 땅을, 배타고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뭐 하시다가 오셨습니까?”

사내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핀 정 소위를 보며 묻자, 그는 허공에서 손을 빙빙 돌리며 웃어댔다.

“타륜을 잡다가 왔지. 자네도 해보는 게 어때?”

“저는 나중에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타륜을 조종해봐야 얼마나 하겠습니까.”

사내는 폭이 얼마 되지도 않는 강을 가리키며,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타륜은 자고로 휙휙 돌려서 방향을 바꿔야 제 맛인데, 이렇게 좁은 강에서 타륜을 잡아봐야 뭐 얼마나 돌릴 수 있을까.

“그래도 연습해 보는 게 좋아.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도 타륜을 돌릴 줄 알아야지. 혹시 알아? 자네가 나중에 항해사나 조타병이 될지?”

“예... 뭐. 그건 그렇지요.”

등 떠미는 청년을 보며, 사내는 멋쩍은 미소만 흘려댔다.

머릿속엔 어느새 다른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

‘타륜이라...’

원산에 오기 전까지는 살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신형선박과 그 선박에 달려 있는 괴이한 물건.

키 대신 달려 있는 바퀴모양의 물건을 떠올리며, 사내는 잠시 옛 기억에 젖어들었다.

연오랑은 원산에 도착한 후.

계획했던 대로 신형선박을 만드는 한편, 기선군을 개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바로 수군착호군을 끌어오는 동시에 기선군 갑사를 모집한 것.

당연한 말이지만, 연오랑이 조정의 입을 빌려 공표하기 무섭게 태풍이 불어 닥쳤다.

본래 갑사는 무과가 아닌 취재를 통해 뽑히는 무관의 일종으로, 중앙군의 핵심이자 도성숙위군이었다.

물론 착호군이 창설되면서, 갑사 또한 변화했다.

중앙군 12사에서 다시 원래의 10위로 회귀했지만. 그 수는 엄청나게 불어나서, 원래 역사에 비하면 거의 2배정도가 됐지.

주업무와 소속조차 변해서, 이들은 도성을 수비하는 게 아니라 착호군이나 의주,호주가 있는 서북면 혹은 경원과 경흥의 동북면으로 파견 나가서 실전형 야전무관으로 거듭났다.

오죽했으면 도성으로 발령 나면, 휴가기간이라고 생각하는 갑사가 대다수였겠나.

이렇듯 갑사는 당연히 중앙군 육군무관을 말하는 건데, 뜬금없이 수군갑사가 튀어나왔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더군다나 조선,수산기업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신량역천인 취급을 받던 수군의 신분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수군호 자체가 흔들리지 않았나.

존폐 위기를 논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조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할 정도로 수군호의 해체가 심화되고 있던 상황.

이 와중에 하급관리지만 어쨌든 무관의 일종인 갑사에, 배만 탈줄 알면 맨 몸뚱이만 있어도 자격조건을 충족하니... 수군호에 속해 있던 기선군병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원산을 비롯한 함길도로 이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음에도, 무려 만여명에 가까운 지원자가 쇄도했다.

지금 기선군의 총병력이 대략 5만명 정도 되는데, 그 중 1/5가 달려왔다는 건 그만큼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는 거지.

그렇게 모인 기선군은 전례 없던 훈련을 받는 건 물론, 일년 중 3개월 이상을 동해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야했다.

간당간당한 주머니 사정을 비춰볼 때, 수군갑사에게 녹봉을 주기 위해선 신설된 기선군 부대유지비를 자급자족해야 하지 않나.

이들이 퍼 올린 해산물을 열심히 팔아서 녹봉으로 삼은 거지.

물론 이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기업의 공인이 있기 전까지 조선은 농본주의 사회였고, 수군호에 속한 기선군은 농부이면서 군역 때만 배를 타는 게 대다수였다.

조선,수산기업이 생긴 후에는 농사를 때려 치고, 일년 내내 고깃배만 탔고.

이러니 훈련을 안 하고 고기를 잡는 건, 그들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오히려 훈련이었다.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으니까.

연오랑이 기존의 맹선을 개조해서, 여러 형태의 신형 선박을 만들지 않았나.

서양범선을 만들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겪는 동시에, 첨저선과 평저선을 섞은 과도기적인 형태의 선박도 여럿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타륜과 같은, 전례 없던 신문물과 신기술이 마구 들어갔지.

갑판과 선창을 완전히 분리하고, 선수와 선미에 망루와 누각을 세우는 경우도 있고, 선체를 높게 만들어 선벽을 높이 세우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개량된 동차를 장착한 신형함포까지 달았다.

역풍을 받아도 나아갈 수 있는 삼각돛이라든가, 한 개의 돛대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두,세개의 돛대가 달린 경우라든가. 등등.

하여간 크기는 엇비슷할지 몰라도, 기존에 타던 맹선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배 아니냐.

배워야 할 게 한,두개가 아니었고, 함선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는 이상,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모든 선원은 만능일꾼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연오랑조차 해군 훈련법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는 점.

기선군병 뿐만 아니라 수군에 일가견이 있는 장군들마저도, 맨땅에 헤딩해가면서 신형선박의 운용법을 익혀 나갔다.

여기에 추가로, 착호군과 마찬가지로 무기술 집체교육까지 받아야 했으니...

기선군병들은 훈련 대신 차라리 고기 잡는 게 더 낫다고, 아우성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

함포장인 정 소위가 타륜을 잡고 놀다가 온 것도, 함포병인 강 중사에게 타륜을 잡아보라고 권유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헌데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한들, 이렇게 까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여진인들이 전부 북쪽으로 도망갔을까요?”

“그랬을 리가 있나. 북방은 원래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을 걸?”

정 소위는 답을 하면서도, 자기도 정확히 몰라서 말을 흐렸다.

그가 비록 평양출신이지만, 두만강 너머의 여진족에 대해서 뭐 얼마나 알겠나.

그냥 집안에 있을 적에,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전부다.

그저 지금껏 오면서 제대로 된 마을하나를 본적이 없으니, “원래 사람이 안 사나보군.”하고 짐작하는 거지.

“뭐. 어찌됐건 사람은 없고 땅은 넓으니 좋은 거 아냐? 전역하고 나면 여기에 축산기업을 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어때? 자네도 이주해볼 생각이 있나?”

“여긴 너무 추워서 싫습니다. 저는 이미 동래에서 원산으로 이주하지 않았습니까.”

강 중사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수군갑사로 뽑혀서 원산으로 이사 온 지 몇해 되지도 않았고, 겨우 적응하고 땅을 사서 정착했는데... 이 먼 곳까지 뭐 하러 오겠나.

“에이. 그래도 여기서 돼지를 키우면 엄청나게 잘 클거 같은데? 내가 돼지농장을 해봐서 잘 안단 말이지.”

“그거 돼지농장이 아니라 사실 사냥개농장 아닙니까? 사냥개가 더 많은 걸로 아는데...”

“그건 그냥 취미로 키우는 거고.”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강 중사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으면서, 실없이 웃고 있는 부잣집 도련님을 보며 쓴웃음을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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