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73화 (173/538)

173. 챕터27. 진격하다 (8)

함장들이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다른 회의실에서도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경원에서 올라온 1함대장 박무양. 의주에서 올라온 2함대장 박성양. 평난군 본대가 있는 길림에 있다가 돌아온 3함대장 이지실.

끝으로 호주절제사로 있다가, 지금은 정토군 사령관이 된 조연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박성양과 이지실은 원래 역사에서도 나름 수군 전문가였는데, 지금 역사에서도 비슷한 길을 밟았다.

원산으로 와서는 아예 신 기선군으로 적을 옮겼고, 이번에 처음으로 실전 임무에 투입됐다.

“오는 길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보고는 받았네. 우두바합. 고종박. 올돌납을 잡았다지?”

“예. 가호랍의 직속부하들이니 타격이 있을 겁니다.”

박성양의 보고에 조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앙탁자에 놓여 있던 지도에서 몇 개의 목각인형을 치웠다.

여진부락을 상징하는 목각인형은 아직도 지도에 많이 남아 있었지만, 반대로 그만큼이나 많은 목각인형이 쓰러져 한곳에 뭉쳐 있었다.

저게 다 조선군이 무너뜨리고 복속시킨 부락이니, 많아도 너무 많다.

“이곳은 올 때마다 포로가 늘어가는 것 같은데, 지금은 몇이나 모여 있습니까?”

“대략 6만명 정도일세.”

“허...”

“흡!”

조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답을 했지만, 함대장들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여진포로는 저게 끝이 아니니까.

목단강을 끼고, 1함대가 이동하는 경로에 위치한 곳.

발해의 첫 수도였던 동모산이자, 먼 미래에는 돈화라 불리는 곳에도 이와 같은 포로수용소? 개척도시?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파저강을 끼고, 2함대가 이동하는 경로에 위치한 곳.

먼 미래에는 통화라 불릴 지역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고, 이 두 곳에 모여 있는 여진포로가 대략 2만명쯤.

끝으로 길림 인근에 있는 본대가 억류하고 있는 포로가 또 몇 만이니... 그야말로 여진인을 싹싹 긁어모은 모양새다.

‘하지만... 해서여진의 본대마저 친다면, 포로가 또 다시 엄청나게 생길 것 아닌가.’

박성양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힘들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부사항은 조정에서 조율하고 있으니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능하다고 보고 있네. 그동안 의주에 쌓아 놨던 군량이 결코 적지 않으니까.”

“음...”

“끄흠.”

‘하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박성양과 이지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수군지휘관답게 지금껏 삼남지방에서 부임하다가 원산에서 훈련받았고, 북벌이 시작되자 신 기선군을 이끌고 조선반도를 빙 돌아서 의주에 도착한 두 사람 아니냐.

둘은 의주와 호주를 처음 와 봤고, 당연히 기겁했다.

발전하고 변화하는 조선의 최선두를 달리는 곳이니, 그들이 봐왔던 조선하고는 많이 달랐지.

특히나 압록강을 모태로 한 작은 지류에는 식량창고가 잔뜩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하나같이 중국에서 수입한 곡물이 쌓여 있었다.

이들이 직접 퍼서 여기까지 실어 날랐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째 강남의 미곡상만 배를 불리는 꼴이 아닌지...”

“그 또한 조정이 알아서 처리하지 않겠나. 더 이상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잊진 않았겠지?”

조연이 뜬금없이 날카로운 말투와 눈빛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이자.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원군 영감.”

“그렇습니다.”

“예. 맞습니다.”

세 사람은 화들짝 놀라 냉큼 머리를 조아렸다.

“자네들이 신 기선군으로 적을 옮긴 만큼, 예전처럼 조정의 일에 관심을 깊게 갖는 건 좋지 않아. 처신을 잘해야 할 걸세. 정치를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내려놓고, 조정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걸세.”

“...”

셋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조연은 왕실과 깊은 연이 있고, 골수 왕당파의 대표 중에 한명 아니냐. 그의 말을 결코 허투루 넘길 수가 없다.

또한 알게 모르게 군제개혁이 진행되고 있고, 기선군에도 그 물결이 파고들고 있었다.

군제개혁의 첫 번째 작업이자 가장 중요한 작업이 무관과 문관의 직책 혼용을 막는 것이고, 착호군에 속한 지휘관들이 완전히 정치와 담을 쌓고 야전지휘관이 된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신 기선군 또한 그 기조를 따라가야 하니, 이들도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렇게 스스로의 결정으로 무관의 길을 선택한 이상... 정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대는 건, 모두에게 찍히기 딱 좋은 행보지.

“보급품 목록은 정리 됐나?”

“예.”

괜히 입을 잘못 놀려서 가시방석에 앉아 있던 박성양.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보고서를 내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요청하신 식량 외에, 용연에서 가져온 골탄. 여진포로가 사용할 농기구의 쇠붙이 부품들. 본대가 쓸 화살촉과 편자, 기타 마구 수리부품과 강철 주괴를 가져왔습니다.”

“인력은?”

“호주에 있던 귀화교육당과 직업교육당의 관리가 함께 왔고, 그 외에 의주의 기업 집안에서 장인들을 보내왔습니다.”

“잘됐군.”

조연은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 전쟁을 하는 건지, 개척을 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만... 조연이 맡은 임무는 어찌됐건 이곳을 개발하고 사수하고, 포로를 관리하는 일 아니냐.

호주에서 이미 겪었던 일을 다시금 반복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어서, 어찌 보면 최적의 인사였지.

뒤이어 박무양의 보고가 이어졌고, 그는 조심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보급품목에 꼭 필요한 물건이 빠져 있었으니까.

“헌데... 석탄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경흥에서 가져온 물량은 본대가 쓰기에도 부족할 듯 싶은데...”

“자네들이 아는지 모르겠네만, 이곳뿐만 아니라 본대가 있는 곳에도 노천광산이 꽤 있더군. 지리감 관원들이 정토군 정찰대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찾아낸 곳이 여러 곳일세. 여진포로들을 풀어 광산개발을 함께 진행할 걸세.”

“예...”

“당장 개간지를 만드는 건 효과가 적을 테니, 다른 일에 먼저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데려온 장인 중에서 용연에서 온 광산기술자들이 적지 않던데... 이유가 있었군요.”

조연의 말에 모두는 놀람을 표했고, 특히나 박성양은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다.

골탄이야 여기저기에서 쓰이니 그렇다 쳐도, 광산기술자는 왜 데려왔나 싶었는데 이유가 따로 있었다.

‘역시... 괜한 걱정을 한 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자책하며 혀를 차고 말았다. 이것 하나만 봐도 조정은 여진포로를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짜둔 게 분명하니까.

“여기. 전황보고서와 다음 명령서일세. 함장들에게 잘 일러두도록.”

조연은 둘둘만 두루마리를 내밀었고, 셋은 냉큼 받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지금껏 수송함대가 격퇴한 여진무리가 셋이나 되네. 이젠 수송선에도 함포가 적재된 걸 알게 됐으니,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수송함대를 공략하긴 힘들 걸세.”

“예.”

“그렇습니다.”

“허나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주의하게. 저들 입장에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건 군량과 보급품이니, 죽기 살기로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옙!”

조연의 우려는 충분히 일리가 있고. 함대장들 모두 “내가 만약 해서여진이라면, 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할까?”라고 고민해 왔기에... 대답은 빠르고 단호했다.

교하. 지금 역사에선 용주라 명명된 곳에서 보급품 일부를 하역하고, 해가 뜨기 무섭게 평난군 본대로 출발한 2함대.

그들은 아침안개와 물안개를 뚫고 부지런히 강물을 거스르며 나아갔고, 해가 평원에 걸치기도 전에 목적지에 다다랐다.

송화강이 가로지르고 주변에는 울창한 삼림이 감싸고 있는 나름 비옥한 지역.

지금은 우라홍니라 불리나, 먼 미래에는 길림이라 불릴 지역에 도착했다.

“오... 여기도 똑같군요.”

“그러게 말이야.”

함장 이 대위와 갑판장 조 중위는 물안개 너머로 보이는 부둣가를 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이곳 또한 그들이 지금껏 거쳤던 다른 도시와 크게 다를 게 없었으니까. 아니다. 오히려 전장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이 제일 부산스럽고, 제일 변화가 빨랐다.

지난날 북정원정군에 비하면 평난군은 거의 3배정도 불어난 덩치를 가지고 있고, 당연히 착호보조군 또한 수가 불어나지 않았나.

그들의 지휘 하에 여진포로들은 노역인부가 되어 부두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선두에 선 함선에서부터 신호기가 줄줄이 이어지자.

“신호기가 올라옵니다.”

“음. 우린 본대로 가는군.”

둘은 함선번호와 화살표처럼 생긴 표식깃발을 읽고, 재깍 선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본대는 송화강가에 있는 우라홍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숙영지를 건설했고, 그 반대편에는 포로수용소 겸 도시를 만들고 있는 상태.

둘로 쪼개진 수송함대는 송화강의 작은 지류를 따라 반대편으로 향했고, 둘의 눈엔 흡사 수벽처럼 보이는 동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저만큼 올라왔군요?”

“그러게. 빨리도 올리는 군. 아무래도 포로가 많아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둘은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혀를 찼다.

본대의 숙영지는 착호군이 매번 짓던 숙영지가 아니라 진짜 요새. 그것도 모두에게 처음 선보이는 성형요새를 건설하고 있었으니까.

기선군도 흔한 조선인이니, 저렇게 생긴 성벽을 보며 “저게 뭐지?”라는 의문을 당연히 가질 수밖에.

이 성벽을 짓고 당사자인 여진포로들은,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저 채찍과 식량에 굴복해 손을 놀리고 있는 판국이었지.

언덕처럼 보이는 성벽을 지나쳐 강을 따라 들어가자, 강측 한편에서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거 선소 아닙니까?”

“그러게?”

원산에 있을 때, 매번 보던 선소 아니냐.

그걸 저기에 짓고 있는 걸로 봐서, 아예 이곳에서 배를 찍어낼 속셈인 듯 했다.

연오랑이 알까 모르겠다만... 원래 역사에서도 명나라는 길림에 조선소를 건설해 배를 만들어 요동에 뿌려댔는데, 어째 그걸 따라하고 있는 모양새다.

“거참... 저렇게까지 여유가 있는 걸까요?”

“난들 아나.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겠지.”

“흐음...”

둘은 놀라면서도 시큰둥한 대화를 이어갔고, 이내 성채어귀에 뻗어 있는 부둣가에 닿아 땅에 발을 디뎠다.

다만 이곳은 군진인터라 여진인 포로가 돌아다닐 수 없는 탓에, 선원들은 착호군과 함께 보급품을 하역하기 시작했다.

“늦지 않게 왔군요.”

“다행이군.”

흡사 강둑처럼 올라온 성벽에 올라, 저 멀리 보이는 부두를 살피고 있던 두 사람.

“저는 보급품을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라. 화약부터 살펴보고.”

“걱정 마시지요.”

황보인은 재깍 경례를 하고선, 연오랑 곁을 떠나 열심히 발을 놀렸다.

그가 떠나기 무섭게, 호위 겸 부관처럼 붙어 있던 연씨 삼총사 중 연전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의 수송함대를 봤을 테니... 저들이 이제 움직일까요?”

“글쎄다?”

“언제까지 버티고 있을 수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단언하듯 말하는 연전위를 향해, 연오랑은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을 우라홍니를 떠올리며 심드렁하게 답을 던졌다.

“우리가 하는 꼴을 보면 덤비지 않고 못 버틸 텐데... 오면 오는 대로 좋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좋은 거니까.”

“예...”

연씨 삼총사는 연오랑을 따라 평원 저편을 바라보며, 힘없는 대답을 던졌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 터라, 이젠 더 놀랄 일도 없는 모양이다.

원래 역사에서 해서여진은 하얼빈 북쪽 훌룬강 근처에서 살던 여진족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후. 오이라트가 북원을 집어삼키고 명을 때리기 시작할 때, 당연히 요동도 공격을 당했고 해서여진은 몽골군을 피해 송화강 유역으로 도망쳐 세력을 키웠다.

시간이 지나 해서여진은 여러개의 거대부락으로 쪼개져 끝내는 4개 거대부락으로 통합.

그 후 건주여진을 통합한 누르하치가 등장하고, 해서와 건주의 싸움에서 누르하치가 승리함에 따라 여진족이 하나가 되어 후금과 청나라가 등장한다.

지금 역사에서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명이 망하자, 우량카이 3위가 북원과 요동에서 독립해 세력을 키워나갔다.

북원이 흔들리고 있으니, 옛 요동3왕가의 후예인 우량카이 3위가 충분히 칸의 자리를 노릴 법 하잖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선 만만한 해서여진이 주요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원래 역사보다 수십년 빠르게 송화강 유역으로 이주했지.

그러나 이때에는 조선이 두려워 북쪽으로 이주한 이만주 일파가 먼저 자리 잡고 있었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영역을 넓혀나갔다.

문제는 연합군의 원정이 시작되고 요동과 우량카이 3위가 합심해 이만주를 두들겨 팰 때, 곁에 있던 해서여진 또한 같이 얻어맞았다는 것.

주요 목표였던 이만주가 견디다 못해 옛 건주위 지역으로 이주하고, 우량카이 3위가 몽골초원에 집중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인 셈이었지.

헌데 이번엔 이만주와 건주위 여진족을 썰어버린 조선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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