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78화 (178/538)

178. 챕터28. 차지하다 (5)

‘조선군이라...’

사내는 시끄러운 장내 속에서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갔다.

자고로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전조가 있어야 하는 바.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전쟁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전쟁이 터지긴 터질 것 같은데... 언제 터질지 몰랐다.

조선군의 척후대라 할 수 있는 무장상단은, 상행을 빌미로 수년전부터 헤집고 돌아다닌 터라 이젠 다들 무덤덤해졌다. 그들이 딱히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었고.

더불어 몇해전부터 조선군은 북쪽변방에 몰려 있었고, 수많은 물자들은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엄청나게 이동하고 있었다.

개척이 계속되고 있어서 의주와 호주는 불야성과 다를 게 없고, 수많은 선박은 끝도 없이 압록강을 오르내리니...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저게 군수물자를 옮기는 건지, 개척물자를 옮기는 건지 파악하기 어려웠지.

사실 그 두 개가 확연히 차이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더불어 동북면 방면은 우량카이 3위가 정보를 취득하기에는 너무 먼 곳 아니냐.

안 그래도 해서여진이 뭉쳐서 난장판을 피우고 있는데, 저 먼 동쪽 끝에서 조선군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

사정이 이러하니, 우량카이 3위는 자다가 뺨을 맞은 격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군의 진군이 느린 건지 빠른 건지 애매하지만... 어찌됐건 한방 먹었군.’

이미 사단이 났는데, 옛일을 더듬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나.

사내는 속으로 내뱉은 푸념을 접고서, 일갈을 내질렀다.

“그만!”

“...!”

“조선군을 이끄는 대장군이 백호장군이라고 하던데, 맞나?”

여진과 몽골에게는 백호장군이라고 더 잘 알려진 연오랑. 사내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예.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백호장군이라...”

“그 자라면...”

정찰병의 대답에 맞춰 다시금 몇몇 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는데, 표정은 죄다 제각각이었다.

‘백호장군이라...’

사내 역시 마찬가지. 자기도 모르게 껄끄러운 미소가 얼굴에 자리 잡았다.

거용관이 무너진 건 우량카이3위와 몽골에게도 놀랄 일이었으니, 사정을 알아보고 조사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건... 약관도 되지 않은 이가 무려 장군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녀석이 오래전에 대마도를 죄다 불태워버린 장본인이라는 점.

아무리 신분과 무용이 중시되는 시대라지만, 약관을 겨우 넘은 인물이 총사령관이 되는 경우가 어디 흔하던가.

분명 뭔가 가닥이 있으니 임명됐을 텐데...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과거 우량카이 3위와 대립하던 토가바토르와 그 일당들을 일순간에 쓸어버리고, 끝내 거용관을 무너뜨렸던 녀석이... 지금은 해서여진을 죄다 작살내고, 자신들과 맞닥뜨리게 됐으니까.

그리고 이들에게는 연오랑이 부담스러운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연오랑 그 자가, 진정 금주 연천호의 후손이 맞나?”

“예. 확실합니다.”

“얼마 전에 부마가 되었다고 하니... 맞을 겁니다.”

“음...”

아까의 표정이 껄끄러움이었다면, 이번엔 모두의 얼굴에 살짝 두려움이 서렸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옛 금주 연천호의 후손이 다시 튀어나왔단 말이지.’

원나라 시절 금주는 요동반도를 뜻했고, 원말명초 시절에 온갖 세력과 부딪치지 않았나.

동방3왕가와도 부딪치고 또 협력해왔고, 그 때마다 전장의 사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피를 뿌려댔다.

금주 천호 연군강이 고려에 투신했을 때, 나하추와 요왕 아자스리마저 아쉬워하며 겁을 냈으니... 사내가 그 시절에 살진 않았지만, 위명은 익히 들어봤지.

한동안 잊혔던 가문이 다시 튀어나와,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아 적잖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설마... 금주를 다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떠올려봤으나, 얼른 고개를 내저어 지워냈다.

지금의 금주는 요동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는데, 설마 조선이 요동까지 넘볼 리가 있나.

‘그 정도의 여력이 있을까? 모르겠군.’

아는 게 적은 터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최 알 수가 없다.

다만 미치지 않고서야 요동과 이곳까지 노릴 리가... 아마도 해서여진을 처리하는 걸로 마무리 지을 거다.

“헌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사내가 생각에 잠겨 있자 부하중 하나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음을 던졌고...

사내는 쓴웃음을 머금고선, 떫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답을 했다.

“조선군이 이 땅을 쑤시고 다니기 전에, 도르호치를 산채로 잡아와라.”

“알겠습니다!”

“본대는 조선군을 맞이하러 간다.”

“옙!” “우라라!”

사내가 목청 높여 소리치자, 수백의 몽골기병들이 만곡도를 치켜세우며 고함을 내질렀다.

“후...”

검은두정갑을 펄럭이며 연신 김을 뿜어내는 기병이 다가오자.

“마실 것 좀 줘라.”

“옙!”

지휘관은 긴말하지 않고, 부하를 시켜 물주머니부터 건넸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정찰기병은 눈치 보지도 않고, 꿀꺽꿀꺽 물을 마셔대고선 얼굴에도 뿌려 열기를 식혔다.

“흔적은 찾았나?”

“후흡... 예. 기병이 움직인 흔적은 물론이고, 쓸린 나뭇가지와 잡풀들을 살펴봤을 때, 부상병도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좋군. 앞장서라.”

“옙!”

“모두 움직여라!”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쉬고 있던 연대기병이 일제히 몸을 떨치며 일어섰다.

“...!”

‘놀랍고 또 놀랍구나.’

이미 숱하게 경험하고,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이지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경탄이 절로 나온다.

중무장한 일천기병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흡사 산이 일어서는 것 같았으니까.

11연대장 당성군 홍해는 태조의 부마 중 한명으로, 내금위에 속해 있다가 연오랑이 원산으로 올 때 착호군으로 발령받았다.

다만 연오랑은 아직 쌩쌩히 살아 있는 태종의 부마인데, 태조의 부마를 신경이나 썼겠는가.

낙하산 취급도 안 해줬으니, 홍해는 자기 실력으로 연대장 자리를 꿰찬 나름 실력 있는 인물이었지.

그럼에도 자기 부하들이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으니,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가자!”

감탄하며 지켜보던 홍해가 다시금 명을 내리기 무섭게, 삐빅! 대대장들이 불어대는 호각소리를 맞춰 중대장, 소대장들 또한 호각을 불며 기병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달린 흔적을 숨기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 특전대원들이 발견한 흔적은 홍해의 눈에도 손쉽게 들어왔다.

예상대로 한바탕 박살났던 이들은, 완전히 탈주한 게 분명.

“이 방향으로 가면 어느 부락이 나오지?”

“아마도 후안 부락일 겁니다.”

“후안이라...”

홍해는 회의 때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봤다.

‘거참...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그리곤 스스로 놀라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11연대가 가려는 곳은 미래의 송원시.

장춘 서북쪽에 위치해서 눈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청나라 때가 되어서야 군사도시로 발전.

지금은 그저 허허벌판인 곳이다.

“돌가하(도르호치)가 그 부락으로 도망쳤을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후안 또한 이번 싸움에 합류했으니까요.”

“음...”

대대장의 의견에 홍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2사단이 나치부루를 쫓아 북쪽 하얼빈까지 갔다면, 홍해가 속해 있는 3사단은 도르호치를 쫓아 장춘 너머의 서북쪽으로 향했다.

지금 역사에서 이 지역은 명목상 요동의 권역이면서, 실질적으론 우량카이 3위의 권역이었고, 정작 사는 이들은 천차만별이었다.

우랑카이 3위로부터 떨어져 나온 몽골부락, 원나라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세력을 이루던 몽골부락.

요동에서 흘러들어와 정착한 중국인 마을, 여기저기에서 흘러들어온 여진부락이 모두 섞여 살았지.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해서여진과 깊게 연관된 터라, 도르호치는 이들을 결집해 나치부루를 도우려했으니... 조선군이 이들을 가만 놔뒀겠는가.

한바탕 회전이 벌어졌고, 나치부루 일당보다 훨씬 단합하지 못한 도르호치 일당은 진짜 기병전에 휩쓸려 일패도지하고 말았다.

조선군은 잔당을 처리하며 계속 진군을 이어갔고, 도르호치에게 합류한 부락이든 합류하지 않은 부락이든 가리지 않고 죄다 포로로 잡아들였다.

홍해가 이끄는 11연대는 보다 빠르게, 도르호치를 쫓아 북상하던 중이고.

“그런데... 올량합 3위와 만날 일이 있겠나?”

“그들이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고... 이 땅에 금을 그어놓고 살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이 사단이 난 이상,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특전대에 속해 길잡이 역할을 대신하던 여진인은,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을 이어갔다.

이만주 일파를 쓸어내면서, 얼마나 많은 건주위와 해서위 여진부락을 집어삼켰던가.

그들 중에선 초창기에 호주로 와서 교육받은 이들이 부지기수였기에, 특전대에 뽑힌 해서위 출신 여진인은 꽤나 능숙하게 조선말을 할 줄 알았다.

“흐음...”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몽골초원이 어지러우니, 올량합 3위는 이쪽을 신경 쓰기 어려울 겁니다.”

홍해가 고심에 빠지자, 옆에서 달리고 있던 대대장이 얼른 말을 이어 붙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우량카이 3위가 동몽골초원을 빼앗은 후로, 이쪽은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이렇게 온갖 잡다한 세력이, 겁도 없이 저기까지 올라가서 자리 잡은 거고.

“설령 만난다 한들, 두려워해야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여진부락을 처리하기도 바쁜데, 쓸데없이 올량합 3위까지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나.”

“예... 뭐. 저들도 우릴 알고 있으니, 적대하진 않을 겁니다. 어찌됐건 명분과 이 땅의 종주권은 저희에게 있지 않습니까.”

“걸핏하면 칼을 앞세우는 저들이 그걸 쉽게 인정하겠나?”

홍해는 혹시나 싶어서 되물었으나...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대대장은 냉랭한 말을 토해내며, 쥐고 있는 기창을 흔들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주면 그만이다.”라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다.

“풉. 맞는 말이긴 하군.”

“예. 고민은 저희가 해야할 게 아니라, 그들이 해야할 겁니다.”

대대장의 단호함에 홍해 또한 마음을 붙잡았고, 11연대는 계속해서 말을 몰아 북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흔적은 더욱 많아지고, 땅에 파묻히듯 산세는 줄어들면서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초지와 잡풀, 가볍게 솟아있는 구릉이 계속 이어지고, 말 발자국은 강가의 한쪽으로 스며들어 사라져 있었다.

“여긴 정말 조선내지만큼 강이 많군. 오기 전에는 몽골초원을 상상했는데 말이야.”

“복여위의 영역인 서북쪽으로 계속가야 초원과 평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북원잔당조차 여기까지 말을 몰고 오곤 했으니까요.”

“그렇겠지... 도하할 수 있는 곳은?”

“흔적을 따라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몇몇 구릉만 넘으면 여진부락이 나올 테니, 적들이 매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특전대를 먼저 보내지.”

“옙!”

대대장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홍해를 보면서, 살짝 갑갑한 마음이 들면서도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다 잡은 물고기인데, 괜히 경거망동하게 굴었다가 피해라도 입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윽고 안전이 확보되자, 연대기병은 말허리까지 차오르는 강을 거침없이 건너 포위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맹수사냥을 할 때부터 지겹도록 했던 분진합벽 아닌가.

연대는 소대별로 잘게 쪼개져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삐익! 모두가 알아볼 수 있게 효시를 날려 보내고선 느긋하게 나아갔다.

쫓아올 땐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바삐 달려왔지만, 어째 전투를 앞에 두고선 한량마냥 느긋하게 나아갔다.

급습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게 뭐하는 건가?”싶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명을 받은 대로 해야지.

“역시... 씨를 제대로 못 뿌렸군.”

“장정들이 죄다 딸려갔으니, 일손이 부족했을 겁니다.”

홍해는 어설프게 얼기설기 얽혀 있는 전답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 추운 땅에서도 나름 뭐라도 심어서 먹고 살았는지, 딱 봐도 초지와 전답은 구별됐는데... 제대로 자란 작물이 없는 걸로 봐선, 확실히 올해 농사도 망친 모양이다.

‘쉽게 되겠어.’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히죽 미소가 지어졌다. 일이 더 쉬워질 것 같아서다.

“탈주해서 자기 부락으로 도망친 이들이니, 쉽게 항복하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식량은 둘째치고, 부락에는 제대로 싸울만한 이들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홍해와 대대장은 서로 마주보며 웃고선, 계속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헌데... 어째 마을은 누가 이미 휩쓸고 지나간 것 마냥, 인기척이 없었다.

대신 수많은 핏자국과 말발굽 흔적만 마을에 가득할 뿐.

“...!”

“이런...”

“누가 선수를 친 모양입니다.”

“찾아라!” “뒤져라!”

소대장들은 소대원들을 부리며 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급히 떠난 탓인지 죽은 시체조차 갈무리 하지 못하고 사방에 널려 있었다.

다만 필요로 하던 인물이 없다는 게 문제다.

“돌가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애와 여자들도 없는 걸로 봐서, 누군가 먼저 약탈한 게 아니겠습니까.”

“음...”

일이 꼬인 것 같아, 홍해와 대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여기 흔적이...!”

“연대장님!”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이어지다가, 누군가 낯익지만 낯선 기병과 함께 홍해 앞으로 달려왔다.

“소속은?”

“충성! 13연대에 배속된 특전대 소위 오도파입니다.”

“음.”

‘13연대?’

홍해는 어색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조선말을 듣고서, 생각을 정리해 말을 토해냈다.

“돌가하를 찾았나?”

“예. 올량합 3위가 데리고 있는데, 지금 13연대가 대치중입니다.”

“...!”

“음!”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했던 대답이 흘러나오자, 홍해와 대대장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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