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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81화 (181/538)

181. 챕터28. 차지하다 (8)

길고 길게 이어지는 동쪽 땅이야 가본적도 없으니 관심 없지만, 당장 차지하겠다는 북쪽 땅 만해도 복여위와 카사르 왕가의 권역을 상회하는 수준 아닌가.

한 번에 집어먹어도, 너무 많이 집어먹은 모양새다.

‘조선이 이 넓은 영역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야치부르는 그런 생각이 불쑥 치솟았지만 애써 꾹 눌렀다.

하얼빈 북쪽부터 흑룡강 인근지역은 몽골이나 여진인이 보기에도 야인이라 부를 만한 이들이 살았고, 심지어 요나라에서 떨어져 나온 거란일파도 심심치 않게 남아 있는 곳.

거기까지 죄다 조선땅이라 말하고 있으니, 이건 배포가 큰 건지 허풍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의 주장이 뭐든 무슨 상관일까.

어차피 거긴 복여위 권역도 아닌데 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서신으로 일러준 내용이겠지?”

“...”

야치부르는 불쑥 치고 들어온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땅이야 어찌됐건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거니까.

'제길...'

경솔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구겨지기 무섭게, 연오랑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놀렸다.

“이곳. 앞으로 송주(송원)이라 부를 곳에 내년, 늦으면 내후년부터 마시를 열겠다. 만약 올해부터 거래하고 싶다면, 이곳 우라홍니까지 와야겠지.”

“조공무역이오?”

“조공은 무슨. 너희도 이미 호주에 와서 거래한 적이 있지 않나? 이제 조공은 안 하니, 강이 얼어붙지 않는 봄부터 가을까지 상설교역을 할거다. 물론 병장기는 제외 해야겠지.”

“...!”

야치부르는 속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선의 배포에 놀라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몽골은 조선과 달리 조공이라는 것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숙이면 몇 배로 되돌려 받는, 수지맞는 거래라고 생각할 따름.

그걸 못하게 됐으니 아쉬울 수밖에.

또한 요동은 개원로를 통해 우량카이 3위와 거래했지만, 조선이 제시한 것처럼 무제한적인 거래를 허락하지 않았다.

산동과 요동상인은 꽤나 얌체같이 굴었고, 특히나 복여위 출신은 그런 상술을 알면서도 당해왔다.

‘조선과 직접 거래하면, 지금까지의 거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얻게 될 터...’

중국물산이 산동-요동을 거쳐서 가격이 뻥튀기 되는 것과 조선물산이 곧장 오는 걸 비교할 수 있나.

어지간한 물산은 조선도 다 가지고 있을 테니... 마시가 열리는 걸 거부하기는커녕 무조건 환영해야 될 일이다.

“하지만 분명 날파리들이 꼬이겠지? 네 수하부락들을 잘 관리해야 할 거야. 반드시 기억해라. 너희가 칼로 덤비면 나는 화포를 갈겨 주겠다. 반대로 곱게 재물을 가져오면, 친절히 손을 내밀어 줄 거고.”

역시나 협박을 잊지 않았고, 야치부르는 이미 조선군의 위용을 눈으로 확인한터라 군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우리에게만 교역을 허락하는 거요?”

“그럴 리가 있나. 타안위든, 태녕위든 찾아오는 자는 누구든 마다하지 않을 거다. 또한 너희가 요동의 개원에 가서 거래하는 것도 막지 않을 거고.”

“음...”

당연한 이야기이건만, 야치부르는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심정이 들어 신음이 터져 나왔다.

“훗. 너희들 힘싸움에 우릴 끼워 넣지 마라. 조선이 끼어드는 걸, 너희는 물론이고 요동과 산동, 북원잔당, 심지어 저 멀리 있는 북평부조차 원하지 않을 터... 이 난장판에 진짜 혈풍을 일으키고 싶나?”

“...”

살기가 풀풀 풍기는 엄포에,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요동이 복마전이 되었지만, 어찌됐건 지금 당장의 주적主敵은 북원잔당이다.

아직도 산발적인 소규모 교전이 이어지고 있는 중인데, 온갖 물산을 거래하는 요동이나 조선과 척을 친다? 싸워서 지는 건 둘째치고, 알아서 말라 죽을지도 모르는 일.

그때는 세력 싸움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로 한 생사투가 벌어지게 될 거다.

‘그랬다간 복여위의 유지건 뭐건 할 것 없이, 아무것도 남지 않고 북원에 흡수되겠지.’

야치부르는 속이 쓰리다 못해 아려왔다.

‘만약 거부한다면?’

다시금 머리를 맹렬히 굴려 미래를 굽어봤다.

복여위가 밍밍한 태도를 보이면, 조선은 당장 타안위, 태녕위와 손을 잡을 게 분명.

그건 최악의 상황이다.

설령 우량카이 3위가 전부 거부한다고 해도, 이미 여진을 무너뜨리고 눌러 앉은 조선이 자리를 비켜줄 리가 없다.

결국 남은 선택은 한바탕 붙는 것 뿐인데... 이길 가능성이 적은 건 둘째 치고, 승리하더라도 피투성이가 될 게 뻔한 일.

피냄새를 맡은 아자이를 비롯한 북원잔당이, 상처 입은 사냥감을 가만 놔두겠는가.

‘모두가 합심해서 조선을 치지 않는 이상 승리는 힘들 텐데... 타안위와 태녕위가 서로를 믿을 리가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서로 등을 떠밀며 조선군에게 두들겨 맞기만 기다릴 텐데, 그래서야 무슨 전쟁을 하겠는가.

야치부르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복여위에게 희망찬 미래가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심정이 딱 이렇지 않을까.

‘어쩔 수 없구나.’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가 수를 훤히 읽고 있는데, 더 이상 버티는 게 오히려 꼴사납다.

“돌아가서 서신을 전달하고 오겠소.”

“잘 생각했다. 빨리 오가는 게 좋을 거다. 이제 곧 태녕위, 타안위, 심지어 카사르 왕가에게도 조선사신이 찾아갈 테니까. 그리고 그들 모두가 환영하겠지. 안 그러겠나?”

연오랑은 “꿍꿍이를 품고 있다가는 손해만 볼 걸?”이라고 말하듯, 피식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

2사단과 3사단이 북쪽을 평정하고, 수만명의 포로를 끌고 길림으로 회군하고 있을 때.

남쪽에서도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 조선군이 올까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갔으니... 오겠지.”

조선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확신할 순 없지만, 요새 들리는 소문이 흉흉하지 않나.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튀어나오는 먼지처럼, 아무리 밀어내도 비집고 들어오는 여진인들인데... 그들이 진짜 먼지취급을 당하고 있다.

빗자루가 된 조선군은 온 사방을 휩쓸고 있었고, 먼지가 된 여진부락은 죄다 쓸려서 한곳에 뭉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들려오는 소문은 그러했지.

“음!”

“저기 보시죠!”

무순천호소의 천호장 이백강은 부장의 외침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 뿐일까?

“오!” “진짜 왔다!”

“배다!” “요상하게 생겼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군병들 모두 하나같이 탄성을 내지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문만 무성하게 들려오던 조선수군이, 퍽 특이하게 생긴 배를 이끌고 혼하浑河를 타고 오고 있었으니까.

‘정말 왔군...’

이백강은 놀란 가슴을 애써 누르며, 심호흡을 크게 이어갔다.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게 끝이 아니다.

“조선기병이다!”

명 초기에 만들어져서 제대로 보수조차 못해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인 무순보루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병사가 목청을 높였다.

“음!?”

“저기...!”

모두의 시선은 강에서 떨어져 동북쪽 협곡으로 향했고... 그곳에선 먼지구름을 밀어내며 검은 깃발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째 꼭 짜고 친 것 마냥, 조선기병과 조선수군이 동시에 오고 있다.

‘정말 끝이군...’

이미 윗선에서 결정 난 사안이지만, 천호장 이백강은 시원섭섭하면서도 찹찹한 심정에 주변을 돌아봤다.

부서지기 직전이지만 나름 열심히 보수했던 무순보루가 눈에 들어오고... 그의 심정과 달리, 몇 되지도 않는 병사들의 신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흡사 “이 지긋지긋한 곳을 드디어 떠나는 구나!”라는 마음에, 꽤나 흥분한 모습이다.

천호소면 당연히 천명의 병사가 머물러야 하지만... 사람이 부족해 허덕이는 요동에서 완편된 부대를 거느리는 보루가 어디 있을까.

이곳엔 고작해야 오백정도 밖에 없었다.

이들 또한 많은 요동병이 그러한 것처럼 둔병으로 이뤄졌는데... 이곳 사정은 더욱 심각해서 삼분의 일은 농부, 삼분의 일은 장사꾼, 삼분의 일만 군병이었지.

이런 병력을 이끌고, 시도 때도 없이 약탈하러 오는 여진부락을 용케 막아온 게 스스로 대견할 노릇.

‘음...’

수년간 이곳을 지켜왔던 천호장 이백강이니 만큼, 온갖 감정이 가슴을 휘감았다.

조선기병은 위풍당당하게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걸 보며, 이백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이제 확실히 몸으로 느껴졌으니까.

‘조선군이 정말 가호랍을 처단한 모양이구나...!’

가호랍이 이끌던 해서여진은 요 몇 년 사이에 무순천호소를 위협한 걸 넘어서 심양도 한번 건들고 갔고, 끝내 요양 일대까지 약탈하고 가지 않았나.

그 무시무시한 위용을 피로서 경험했는데, 조선군은 고작 몇 달만에 가호랍과 해서여진을 박살내 버렸다.

‘그런 조선군을 이렇게 코앞에서 맞대는 게 과연 좋을는지...’

상식적으로 봤을 때, 강대한 적과는 마주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이 북방에서 제대로 된 상식이라는 게 존재나 할까.

‘뭐... 조선이 이 땅에 제대로 터 잡는 게, 쉽진 않을 테지.’

이백강은 무순보루 너머의 경작지를 물끄러미 보며, 애써 우려를 떨쳐냈다.

저길 둔전으로 만들어서 써먹으려고, 개고생 하던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라서다.

‘아무리 기세 오른 조선이라고 한들... 가능할까?’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과거를 비추어 미래를 굽어봤다.

지금 역사에서 요동은, 산해관 반대편의 관녕위에 있는 영원성부터, 요택이 있는 요서, 요동반도부터 시작해서 동북쪽으로 사선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는 요양, 심양, 철령위, 개원로까지.

딱 이 지역만 지금 요동의 권역이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이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정주민족인 한족이 보기엔 굳이 금싸라기 땅인 요하 일대를 벗어나, 쓸데없이 여진족과 싸우며 황무지 혹은 초지나 다름없는 땅을 차지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던 거지.

지금 역사에선 요동의 영토지배가 더욱 어려웠다.

수지타산을 따지기 전에, 애초에 사람이 부족해서 확장이 불가능했으니까.

원나라 시절. 요동에는 몽골,거란,여진,고려,한족이 전부 뒤섞여 살면서 미약하나마 요동인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중국본토의 한족하고는 살짝 기질이 다른 편이었지.

이후 명이 요동으로 진출하고 군사지역화 하면서, 요동인을 중국에 흡수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항복한 나하추를 필두로 수만의 동방3왕가, 요동기병을 사천 및 중국 서남부로 끌고 가서 막바지 통일전쟁에 써먹었고, 그 대신 중국본토에서 한족을 강제 이주시켜 요동에 심었다.

하지만 이주가 시작된 지 한세대도 지나기 전에 정난의 변이 터졌고, 우량카이3위를 비롯한 요동군 수십만명이 내란에 끼어들어 갈려 나갔다.

그 후엔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요동이 중국본토와 분리되어 인구유입이 끊어졌지.

이러한 막대한 인구유출이 고작 이십여년전에 발생했는데, 요동의 인구가 늘어날 리가 있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동과 북평부가 대립각을 세우면서, 서쪽에 병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없어서 빌빌거리는 요동이 동쪽까지 신경 쓰는 건, 힘에 부치는 걸 넘어서 불가능한 상황이었지.

속사정이 이러하니... 어차피 쥐고 있어도 문제만 계속 생기는 땅을, 시원하게 조선에게 넘기면서 골칫거리인 여진족도 함께 떠넘겼다.

‘헌데, 조선이 이렇게 속전속결로 여진을 쓸어버릴 줄이야.’

천호장 이백강은 거듭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아서, 고개만 계속 내저을 따름이다.

조선수군은 빠르게 다가왔고, 천호소 군병들이 뭔가 하기도 전에 하선을 시작했다.

훌쩍훌쩍 뱃전에서 뛰어내려 배를 정박시켰고, 이윽고 개미떼처럼 쏟아져 나온 군병들이 빠르게 임시 부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 자재를 준비해 왔던 걸까? 배 위에선 사다리를 비롯한 온갖 목재가 쏟아지더니, 뚝딱뚝딱 못질이 이어졌다.

그 모습이 너무나 태연해서, 꼭 자기 집 안마당에서 작업하는 것처럼 보였다.

“...”

“...”

오히려 환영인사를 하려 했던 이백강과 천호소 군병들이 민망해서, 멀뚱멀뚱 눈만 굴리며 바라볼 정도였지.

조선수군이 부두를 만들기 시작하는 동안, 조선기병 또한 무순천호소 코앞까지 들이쳤다.

헌데... 다들 화들짝 놀라서 웅성거리기 시작.

“저기 보시죠. 장군. 저들은 조선군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보이는군.”

조선기병 뒤로도 옅은 먼지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두에 서서 터벅터벅 걷고 꼬락서니를 봐선... 조선군이 사로잡은 여진포로인 게 분명했다.

조선군이 지게 위에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행군하진 않을 테니까.

“여진인을 여기로 데려오다니...”

“포로로 데려온 게 아니겠나?”

“음...”

다들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고, 천호소 이백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받은 명령은 “앞으로 무순은 조선땅이 될 것이니, 무순천호소를 해체하고 무순보루를 조선군에게 인계한 후에, 몸 성히 군병을 데리고 심양으로 돌아오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조선군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는데, 수천의 여진포로까지 끌고 올 줄이야?

이걸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마... 우리 식량을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나.”

이미 윗선에서 서로 이야기가 다 끝났지만... 혹시 아나.

조선군이 무순천호소를 쓱싹 해버리고, “우리가 왔을 땐, 이미 여진부락에게 당해서 다 죽었던데?”라고 발뺌할지도 모르지 않나.

“음. 아닙니다.”

괜히 불길한 소리를 내뱉은 부관이, 부정이 탈까 싶어서 냉큼 입을 틀어막았다.

“오는군.”

이윽고 요동군병의 의구심을 해결해 줄 인물이 등장.

조선기병대 사이에서 몇몇 기병이 빠르게 말을 몰아 무순보루를 향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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