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챕터29. 고민하다 (3)
연오랑, 태종, 황희가 이끄는 착호군이 존재하는데, 추가로 4번째 착호군단을 만드는 건 무리.
이제 착호군 1기가 전역을 시작할 테니, 새로 뽑는 착호군은 기존 착호군단에 편입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까.
그래서 양전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먼저 무역을 통해서 지주집안을 해체시키고 기업집안을 성행하게 하려는 게 분명했다.
‘나쁘지 않아. 어차피 개성과 평양의 집안들은 의주의 무역에 끼어들어 변하고 있잖아? 이번 기회를 잡고 더 많이 변하게 되겠지. 이들은 고려 때에 상업을 했던 집안이 적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한번 흔들어 놓은 다음에 양전사업을 진행하면, 큰 저항 없이 실행할 수 있을 터.
‘더불어 평양평야도 작지 않은 곳이니까, 거길 개발하기 시작하면 평양 토호들도 마냥 싫어하지 않겠지.’
연오랑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생각을 정리했다.
“음... 이주문제는 그리하면 될 것 같고, 생각해 봐야할 건 이제 의주의 무역이겠군?”
“예. 일단은 평주와 길주에서 예년보다 많은 물산이 넘어오고 있으니 괜찮을 텐데,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목진공이 긍정과 부정이 반반 섞인 의견을 내놓기 무섭게,
“하지만 이제 북방무역을 우리의 손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중국상인들은 우리만 바라봐야 할 겁니다.”
“물론 그도 그렇지만, 그들이 식량을 쥐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이앙법이 시작된 삼남지역에서 보다 많은 소출이 나오는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조정에서 소비하는 양도 곱절에 곱절로 늘어났으니까요.”
“맞습니다. 앞으로는 분명히 우리가 주도권을 쥐겠지만, 지금 당장은 무리를 해선 안 될 겁니다.”
병조참판 최사강과 이조참판 원숙, 형조참판 조치의 설전 아닌 설전이 이어졌다.
‘모두 맞는 말. 북방무역이라... 우리에게는 나쁘지 않지만,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가 있겠어.’
연오랑 또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몽골세력이 중국서북부. 섬서를 깔고 앉은 후로, 그쪽은 아직도 막혀 있었다.
아직도 칸이 결정되지 않은 탓에, 통일되지 않고 봉건영주마냥 만호장, 천호장들이 각 영지를 꿰차고 주저앉았다.
이들은 앞으로 벌어질 패권전쟁, 혹은 그 패권전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으니... 중국상인에게 전마를 팔 리가 없는 거지.
예전이야 중국물산이 없어서 손해를 보더라도 거래했겠지만, 섬서를 차지한 이상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산서와 북직례는 연오랑과 조선군이 깽판을 치고 간 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바투한, 가로한, 호부패 등의 항명출신 몽골만호장은, 북직례와 산서를 놀이터가 삼아 끊임없이 약탈하며 세력을 불려나갔다.
이들이 이렇게 움직이면, 만리장성 북쪽의 다른 만호장, 천호장들도 자극을 받기 마련. 서로 힘을 합치거나 싸우면서, 산서와 북직례를 건드렸다.
하지만 독자노선을 걷는 만호장들이 성장하는 걸, 기존의 북원잔당이 좋아할 리가 없잖아?
연오랑과 조선이 의도한 대로, 몽골의 분열은 더욱 심각해져서 우량카이 3위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였지.
이렇게 중국본토의 북방무역이 여전히 막힌 와중에, 뜬금없이 조선이 여진을 쓸어버리고 그 땅을 차지했다.
전에는 여진-요동이 거래하고, 요동-산동,강남이 거래하는 방식이었는데... 여진이 없어진 이상, 대부분의 북방물산은 조선-중국 간의 거래 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우량카이3위-요동의 거래가 남아 있지만, 우량카이3위-조선의 무역량과 비교나 되겠는가.
이래서 참판들은 환호와 우려가 동시에 드는 거다.
중국상인들이 지금 당장 식량이 부족한 조선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물고 늘어지면, 조선 입장에선 손해를 볼 가능성이 생기니까.
‘하지만 누구나 이득 앞에서는 시야가 좁아진단 말이지.’
연오랑은 손가락을 튕기며 계산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새도 말 값은 계속 오르고 있지?”
“아...!”
“음.”
“어때? 말과 농우를 1:1로 교환할 정도로 값이 뛰었어?”
“그게...”
목진공은 서류를 뒤적여 답을 찾아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얼추 비슷합니다. 헌데... 말을 파실 생각이십니까?”
“조정에 상신해보는 건 어때? 이번 전쟁을 통해서 말이 꽤 많이 생겼고, 전마로 쓰기에도 애매하고 농마로 쓰기에도 애매한 녀석들을 처분하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음... 저희가 타는 전마가 여진말이나 몽골말에 비해 조금 크긴 하지요.”
“맞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이번 전쟁으로 얻은 여진말들 중에서 당장 전마로 쓸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적더군요.”
사단장들은 자신들의 애마를 떠올리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역사와 달리. 명의 간섭을 받지 않던 조선은 연오랑이 개입하기 전에도 꾸준히 전마개량에 힘써왔었고, 축산기업의 등장 이후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갔다.
민간목마장에게 모든 방면에 있어서 밀리기 시작하던 사복시조차, 눈에 불을 켜고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연오랑을 따라하며, 한혈마를 수입하는 집안이 여럿 생겼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게다가 착호군의 전마는 화포의 굉음은 물론이거니와, 중무장 마갑의 무게, 수백 수천이 어우러져서 코앞에서 맞붙는 기마백병전에도 맞춰 훈련시킨 녀석들 아니냐.
몇 안 되는 여진인들이 모여서, 활 쏘며 타고 다니던 전마와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다른 걸 떠나서, 농사를 짓는 데는 말보다 소가 낫긴 하지요.”
공조참판 황상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닌 경험이 많은 터라, 다른 의견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비록 수전을 하지 않는 땅이라지만 습지와 늪지가 적지 않으니, 발목이 튼튼하고 지구력이 강한 소가 말보다 농사일에 적합했다.
여진의 말은 속도 대신 힘을 키우게 개량된, 농마용 말이 아니었으니까.
만약 소와 말을 1:1 혹은 1:2 비율로 교환할 수 있으면, 충분히 남는 장사다.
“강남 상인들이 말에 눈이 돌아갈 건 분명하니...”
참판들뿐만 아니라, 사단장들도 이해득실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금은 사단장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목민관 직함을 가지고서 민생을 돌본 경험이 있으니까.
북방무역의 핵심이 모피와 말이라고 하지 않았나.
앞이야 뭐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살 수 있다지만, 말은 아니었다.
서로가 물밑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세력들에게, 말은 무조건 있으면 좋은 어쩌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군수품 아니냐.
더 이상 북방에선 말을 구할 곳이 없어졌는데... 지금껏 말을 팔지 않던 조선이 판다고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거다.
“조정에서도 고민을 하긴 할 텐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단 말이지. 여진은 이제 정리됐고, 남은 여진부락도 앞으로 큰 저항 없이 정리될 거다. 지금 당장 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두해만 지나서 제대로 된 목마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말은 금방 늘어날 테니까.”
“음...”
“그건 그렇습니다.”
수렵, 유목, 목축, 기업형 목마장 순으로 투자비용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부락민 수준에서 깨작깨작 말을 키우던 것에 비하면, 한 집안에 수십, 수백두를 키우는 기업형 목마장은 비교조차 불가한 법.
북방은 넘치고 넘치는 게 땅 아니냐.
선진기술과 경영법, 선진수의술이 투입된 기업형 목마장이 등장하면, 지금껏 여진이 사육했던 말의 총량을 금세 앞지를 수 있다.
“어차피 필요한 건 중국상인들이 딴 짓을 하지 못하게 묶어둘 시간 아니냐. 임시변통으로 말을 파는 것도 나쁘지 않지.”
“...”
“더불어 우리 또한 올량합 3위에게서 말을 사들여야 하잖나. 요동과의 거래선을 우리가 빼앗아 와야 할 거고, 그렇게 되면 중국상인들은 요동에서 말을 구하는 게 힘들어질 거다. 지금 당장은 풀어주는 게,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지.”
“예.”
“흠... 일리가 있는 말씀이십니다.”
다들 어느 정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머뭇거리지 않고 동의를 표했다.
“모피무역은... 솔직히 애매하군. 겨울이 오기 전에 얼마나 챙길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래도 전보다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여진 사냥꾼을 동원하면,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사단장들은 다시금 긍정적인 대답을 늘어놨다.
여진의 모피무역은 대다수가 수렵을 통해 얻은 부산물 아니냐.
하지만 사냥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그 양이 갑자기 많아질 수도 없다.
지금껏 거래양이 많았던 건, 그냥 잘게 찢어진 부족단위의 사냥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
‘하지만 이제부턴 착호군 방식으로 사냥을 하게 될 텐데...’
착호군 방식은 여진이 해오던 추적, 함정사냥이 아니라 대규모 몰이사냥 아니냐.
몰이사냥이 효과가 클게 분명하지만, 그게 예전 여진부락 전체가 사냥하던 양을 맞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이게 구멍이 나면 피곤해질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연오랑이 알쏭달쏭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사단장들은 “맡겨만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목청을 높였다.
‘잘 되길 기도해야 하나...’
그는 그저 쓴웃음만 지어댔다.
이게 문제되는 이유는. 기존에 수출하던 물량을 유지해야, 그에 상승하는 식량을 수입할 수 있기 때문.
이게 부족해지면 다른 곳에서 재원을 끌어와야 하는데... 안 그래도 조선내지에서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그쪽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더불어 “야. 봤냐? 여진을 우리가 먹었어도 우린 아무렇지도 않다고. 딴 생각하지 마라.”라고, 조선이 중국상인에게 엄포를 놓을 수 있다.
‘조선내지에 축산기업이 많이 생겼지만, 여길 건드릴 순 없고...’
연오랑은 잠깐 딴 주머니를 생각했다가,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지난 세월동안 엄청나게 많은 축산기업이 생겨났지만... 그 부산물과 수익은 전부 내수시장에 재투자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돈을 더 벌겠다고 중국상인에게 팔았다가는, 하나둘씩 엮이고 있는 조선의 상업과 가내수공업 기업의 성장세가 둔화될 테니까.
“별 수 없군. 더 열심히 사냥하는 수밖에.”
“예. 게다가 설령 물량이 줄어들더라도, 저희가 손을 쓰면 여진의 가죽세공품보다 훨씬 좋은 값을 받지 않겠습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는 소리. 맞습니다!”
원숙의 말에 병조참판 최사강이 재깍 말을 받았다.
최사강은 그간 착호군을 비롯해 평난군, 정토군의 무장을 교체하는 작업을 담당하지 않았나.
그 누구보다 빠삭하게 알고 확신했다.
그간 착호군이 활동하면서 얼마나 많은 피혁기업과 가죽세공장인이 생겨났던가.
조선내지에서도 미친 듯이 생겨났고, 의주에선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해서 아예 여진부락에게서 생가죽을 수입해서 가공해왔었다.
이젠 모든 가죽이 조선장인의 손에 의해 재탄생하게 될 테니, 여진인이 어설프게 무두질한 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다.
“만약 재원이 걱정되신다면, 인삼은 어떻습니까? 이제 저희가 인삼무역을 독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인삼이라... 얼마나 찾아봤냐?”
“포로들 중에서 진짜 삼마니들을 골라 따로 추렸는데, 그 수가 대략 천명정도 됩니다.”
“흐음...”
‘애매하네. 사실 삼마니 숫자도 숫자지만, 솔직히 운이 더 중요하잖아?’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딱히 확신하진 못했다.
조선의 삼만큼이나 유명한 게 만주삼이고, 여진인들도 열심히 삼을 캐서 내다 팔았다.
물론 조선이 고려 때부터 이미지메이킹을 잘한 탓에, 조선삼이 살짝 더 비싼 가격을 받곤 했지.
다만 삼마니가 많다고 해도 삼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정기적인 수입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그럼에도 삼마니를 긁어모으고, 이들을 따로 관리하며 학문화 작업을 진행한 건, 역시나 진짜 인삼을 만들기 위함.
‘연구소에서 산삼씨앗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를 했으니, 이제 슬슬 결과물이 나올 때도 됐는데 말이지.’
연오랑은 손가락을 튕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선의 효자수출품 중 하나는 단연 인삼이고, 예나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었다.
허나 이게 진짜 세수가 되고 나라의 재원이 되려면, 사람의 손으로 재배해서 산출량을 매해마다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 법.
그는 인삼재배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농축산중소기업의 후계자답게 풍문으로 이것저것 들은 지식이 있지 않나.
그걸 오래전에 풀어서 하동에서부터 인삼재배연구를 해왔었고, 배봉마을 나아가 착호군 창설이후에는 조정의 관리들까지도 투입 되서 함께 연구를 이어왔다.
다만 아직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진 못했는데...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냥 인삼이 자라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상품이기 때문.
어찌됐건 이들 여진 삼마니들의 지식이 추가되면, 한발 더 나아가지 않을까?
‘토질을 따지는 건 내가 잘 모르지만, 해가림막과 바람길. 터널형 구조를 알려줬으니 분명 성과가 나올 건데 말이지.’
연오랑은 ‘제발 돈 걱정 좀 덜하고 살자!’라고 속으로 외치며, 쓴웃음을 뱉어냈다.
“그런데 삼마니들을 푼다고 해서 삼이 쉽게 구해질까?”
“이들은 지난세월 동안 조선변경을 드나들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간 묵혀둔 것이나 다름없으니, 꽤 많이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조선 삼마니들 또한 북방보다는 착호군이 개척한 남방을 더 많이 돌아다녔지요.”
‘하긴. 생각해보니 요 몇년사이에 여진인들이 삼을 제대로 못 캐긴 했지.’
여진인들이 산삼을 주로 채취하던 곳은 백두산, 연길,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산지가 아니냐.
헌데 조선이 건주위를 쓸어버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왔는데, 여진인이 함부로 거길 얼쩡거릴 수가 있나.
이제 거길 열어주면, 열심히 캐올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