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86화 (186/538)

186. 챕터29. 고민하다 (4)

“더불어 여진인들은 생삼을 팔아왔으니, 앞으로 홍삼으로 만들어 팔면 수익이 더 늘지 않겠습니까?”

최사강과 목진공을 그리 말을 하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인삼을 찌고 말려서 홍삼으로 만드는 증포 과정이 어렵긴 하지만, 이건 이미 고려 때부터 알음알음 쓰던 방법 아니냐.

전보다 더 나은 개량품을 진작 완성했고, 하동연구소는 용연현으로 넘어가 삼마니들에게서 수매한 인삼을 홍삼으로 만들어 팔아 왔었다.

물론 조정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인 건 당연했지.

효능은 둘째 치고, 쉽게 썩는 생삼에 비해 보관기간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

명이 망한 후로. 인삼거래에 대해서 통제할 세력이 없으니, 조선은 맘껏 팔았고 중국상인이 앞 다투어 달려드는 건 당연한 이치.

이 비싼 물건은 바다건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썩어버리기 십상이었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국상인들은 생삼보다 홍삼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강남상인들은 이 홍삼을 동남아시아까지 가져가서 팔고 그랬으니까.

“뭐가 됐든 손해 볼 건 없으니, 일단 삼마니를 투입해야겠군.”

“예.”

‘백두산 일대는 착호군이 활동하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삼마니를 통해서 지도를 만들면서 사전조사를 한다고 생각해야겠군.’

연오랑은 그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광산은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야지. 지금 당장 뽑아낼 수 있는 재원이니까.”

“예.”

공조참판 황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때? 북방으로 올라오겠다는 집안이 꽤 있나보네?”

“생각보다 많습니다. 평양 출신 집안이 절반 정도이고, 의외로 삼남출신 집안도 적지 않습니다.”

뒤이어 빠르게 보고서를 훑어 내리며 대답을 이어갔다.

“비리를 저지르고 사면을 조건으로 오는 집안이냐?”

“그런 집안도 몇몇 있지만, 그보다는 취련군이나 철장과 관계를 맺고 있던 집안 중에서, 뒤늦게 광산업에 뛰어들려는 집안이 있습니다.”

“음...”

‘철의 수요가 미친 듯이 폭증하고 있으니까, 이 낯선 땅까지 와서라도 한몫 잡아보려는 집안이 있는 모양이네.’

연오랑은 돌아가는 사정이 짐작이 되어, 속으로 빙긋 미소를 삼켰다.

조선이 건국된 후. 늘어나는 철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조정은 취련군과 철장을 늘려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관의 주도로 진행.

각종 노역과 세금 대신 철을 바치는 취련군을 만들었고, 이들은 광맥채취보다는 사철채취에 집중했다. 큰 돈과 큰 기술 없이 하기에는 이게 더 편했으니까.

이렇게 모은 철은, 각 지방에 설치한 철장에서 가공해 금속제품을 만들었지.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별의 별 기업이 생겨나면서, 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부터다.

배와 건물을 짓는 데 쓰이는 못. 말에 쓰일 마구. 마차의 부품. 보다 늘어나고 향상된 농기구와 건설공구에 쓰일 금속부품, 하다못해 피혁제품에 붙일 금속부자재 등등이 필요했으니까.

이에 발맞춰서 용연현에선 광산업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등장하고, 용연광산의 채굴을 시작.

이들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광물채굴의 학문화 과정을 진행했는데...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만큼,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성과를 이뤄냈다.

이러는 동안에도, 관이 관리하는 철장의 기술력을 뛰어넘는 공작기업이 속속 등장.

지금에 이르러선. 용연과 배봉연구소에서 교육받은 장인들이 각 지방으로 퍼져서, 이 시대 기준으로 보면 초거대 대장간이라 할 수 있는 공작기업이 곳곳에 생겨났다.

이렇듯 수요도 늘고, 보다 빠르게 제품을 생산하는 가공업체도 늘어났는데... 정작 공급량이 형편없다.

예전의 채굴방식으로는, 발전하는 조선이 필요로 하는 양을 충당할 수가 없는 거지.

오죽했으면, 잠시나마 요동과 중국에서 철을 사왔겠는가.

민간에서건 조정에서건 자연스럽게 광산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의가 터져 나왔고, 이는 곧 “광산기업을 허가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허나 용연의 광산기업은 사실상 사기업과 비슷한 형태로 운용되고 있는데, 앞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광산을 관용광산으로 만든다고?

그랬다가는 돈이 얼마나 깨져나갈지 상상이나 될까.

당연히 민간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고, 이 민간광산기업에게 어떻게 코뚜레를 꿰어 통제할지가 관건이었데... 뭐 어려울 게 있나.

천일염전의 예를 비춰서, 세금을 더 걷고 더 강력하게 감시하면 그만이지.

아무튼 조선내지가 이런 상황인터라, 경쟁자 하나 없는 북방에 올라와서 광산기업을 일구려는 집안도 나름 있는 모양이다.

‘하긴 지금이 기회 아니겠어? 광산일꾼으로 써먹을 여진포로는 넘쳐나고, 여긴 아무것도 없으니 뭘 채굴하든 파내는 족족 팔아넘길 수 있겠지.’

“착호군병이 소속된 집안이 적지 않겠군?”

“예...”

황상은 조심스럽게 연오랑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에 노천광산이 넘쳐난다는 걸 소문낸 건 당연히 착호군일테니, 그들 집안이 몰려오는 것도 당연한 일.

이건 비리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워낙 제멋대로 튀는 연오랑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나.

황상은 괜히 제발이 저려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상관없다. 누가 됐든 이 허허벌판에 와서 고생을 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거두는 게 맞으니까. 그럼 역시 석회,석탄,철,동 광산이 주를 이루겠군?”

“맞습니다.”

황상 뿐만 아니라 다른 참판들 모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온 사방이 공사판이 된 조선땅이니 당연히 석회,철,석탄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건 신도시를 건설하는 만주도 마찬가지.

이미 연길과 훈춘을 건설할 때, 똑같이 겪어왔던 일 아니냐.

특히나 석탄은 그 활용처가 알려진 이후로, 북방 뿐만 아니라 조선내지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

목재에 비해 부피가 작고, 오래 보관할 수 있고, 화력도 강한 이 물건을 마다할 리가 없다.

다만 미래에도 그렇지만, 석탄과 석회처럼 무거운 물건은 먼 곳에서 가져와 써먹기에는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든다.

그냥 어떻게든 최대한 가까운 곳에 광산을 만들어서 캐내는 게, 수익적인 면에서 훨씬 이득.

이는 자연스럽게 석탄,석회 광산기업이 조선팔도 곳곳에 만들어지는 효과를 가져왔고, 그 흐름이 만주까지 이어지는 거지.

“은, 금광산을 여는 건 조정에서도 아직 보류하고 있지?”

“예. 아무래도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연은분리법 덕분에 일부 납광산에서 은이 나오곤 있지만, 그건 조정에서 따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음...”

‘그건 다행이네. 민간광산이 의외로 잘 돌아간단 말이지.’

연오랑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속으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원래 역사에서건 지금 역사에서건.

몇몇 신료들은 “광산을 민간에 풀어주면, 하라는 일은 안하고 죄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광산만 찾으러 다닐 것이다!” 혹은 “밀채가 성행하여 사회가 문란해 질 것이다!”라는 우려를 표하긴 했지만... 그들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막말로 밀채를 한다고 한들. 은,금을 캐서 누구에게 팔고, 어디에 써먹을까.

값비싼 귀금속을 살만한 사람은 대충 정해져 있고, 귀금속이 화폐로 통용되지 않는 조선에서 이걸 대규모로 판다는 건 “내가 밀채하고 있다!”라고 자랑하는 꼴 밖에 안 된다.

중국상인에게 파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오히려 미미하지만 역으로 중국의 마제은이 조선으로 흘러들어오는 판국.

더불어 말이 좋아 밀채지, 광산을 일구는 게 어디 한두푼 들어가는 일이냐.

사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아예 광산촌을 만들어야 되니, 권력, 재물, 사람을 다 가진 진짜 부자토호들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데...

“뭐 하나 비리가 걸리기만 해라. 박살내고 다 뜯어갈 거다.”라고 조정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고, 온갖 외지인이 조선팔도를 싸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비밀이 지켜질 리가 있나.

그냥 일반 광산을 찾아서, 제대로 된 광산기업을 설립하고 세금을 내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이런 민간광산개방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큰 발걸음인 게...

그 누구보다 보수적인 터줏대감들이 지주에서 벗어나 기업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경직된 향촌사회구조를 깨고 변화의 파도에 올라탔다는 뜻이었다.

‘땅, 사람, 돈 문제가 얼추 마무리 됐으니까, 이제 제도와 체제만 남은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연오랑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 아프다.

더럽게 복잡하게 꼬여서, 하나가 삐끗하면 다 어긋하게 생겼으니까.

그렇다고 이걸 포기한다는 건, 조선을 완전히 개혁할 수 있는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꼴 아니냐.

‘후우... 이걸 위해서 지금껏 달려왔는데, 버텨내야지.’

조선을 망하기 직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으니 어떻게든 함께 가야지.

“이제 남은 건 제도와 교육 문제인데... 다들 교육당의 확대방안에 대해서 논의를 했을 터, 말해봐라.”

“먼저 교육당에 대해 말씀 드리면...”

정초는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호주와 의주에 귀화교육당과 직업교육당이 설립되고, 몇해 전엔 신입관리를 교육시키는 연수원이 설립되면서 사정이 요상하게 흘러갔다.

교육에 관한 부분은 예조가 관할하고 있는데, 교육당이 미친 듯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예조를 다 집어삼키게 생겼으니까.

자연스럽게 교육당의 분리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고, 이는 곧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춰 6조체제의 개편으로 이어졌다.

이러는 와중에도 교육당은 계속해서 확대 및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독립부서로서의 성향을 굳혀갔고, 여진을 쓸어버리고 만주를 차지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주에 머물던 교육당 소속 임시관리, 조정관리, 착호군 행정관리가 전부 뒤섞여서 연주와 평주에 파견됐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각 만주신도시에도 빠짐없이 파견되어 교육을 시작.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이질적인 요소가 끼어들었다.

“원산에서 교육받은 이들의 평판은 어때?”

“누구보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여진 출신이라보니, 여진말을 할 줄 알아서 서로 편하더군요.”

“맞습니다. 아무리 호주에서 귀화인을 교육시켰다고 해도, 어려서부터 여진말을 쓰던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요.”

“흐음.”

‘역시 궁하면 뭐든지 써먹게 되는 법이지.’

연오랑은 속으로 히죽 만족스런 미소를 흘렸다.

그가 원산에 도착해서 함길도를 개척할 때.

자연스럽게 동북면 여진인들을 정리하면서, 중앙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핵심은 다름 아닌 토관과 향리를 해체시키는 것.

그나마 별 탈 없이 진행된 건, 함길도에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

또한 여기 살던 이들은 오랜 세월 조선인으로 살던 이들보다는, 운석핵꿀밤 이후 완전히 조선인으로 넘어온 여진인이 많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뼈대 있는 집안이 몇 없는 거지.

이들은 수령을 보좌하는 향리직을 세습해서 이어 내려왔는데, 연오랑은 이 지방행정체제 자체를 아예 중앙으로 편입시켰다.

당연히 기존 권한을 잃어버린 토관과 향리들의 반발이 있었겠지만... 이게 조금 애매해졌다.

이들이 특권을 잃어버린 건 맞는데, 그 대신 그들 자신 혹은 자식이 조정의 관리로 임용됐으니까.

조정에서 관리를 엄청나게 뽑아댔으니, 자연스럽게 거기에 끼어들어간 거지.

과거응시생들 사이에서 “관리를 이렇게 많이 뽑는 데도, 뽑히지 못하는 거면... 진짜 허당 중에 허당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아니냐.

“왜 나는 관리가 못 되냐! 왜 내 자식만 떨어졌냐! 억울하다!”라는 소리를 하는 건, 스스로 바보라고 자인하는 꼴 밖에 안됐다.

이렇게 향리조직을 해체시키고, 세습 또한 당연히 없애고, 과전의 일종인 인리위전人吏位田 또한 없앴다.

그 대신 조정관리처럼 직접 녹봉을 줬지.

이렇듯 향리시절보다 녹봉이 늘어났고... 무엇보다 중앙품계에 올라간 이상 열심히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중앙조정에 진출할 수 있게 됐는데 불만이 있을 리가.

누가 아냐. 잘하면 정승의 자리에 오르게 될지?

이건 지금껏 차별이자 막혀 있던 신분상승의 길이 열리는 것이니, 향리나 토관들은 당장의 불이익이 있더라도 모두 감수할만한 정책이었다.

발목을 잡은 건, 지극히 현실적인 다른 문제들이었다.

“재원 상황은 어떻지? 함길도에서 실시된 정책을 다른 지방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냐?”

“먼저 녹봉은...”

목진공은 재깍 보고서를 들추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첫 번째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돈이다.

과전은 해체된 지 오래됐고, 어지간한 궁방전, 공신전 또한 회수됐고, 삼남지방에서 진행되는 양전사업에 맞춰 온갖 위전位田도 싹 통합되어 정리되고 있다.

각 부서별로 쪼개져 있던 세수원이 하나로 뭉쳐졌고, 토지정리사업을 통해 생산량 또한 몇 배로 상승한 상황.

하지만 관리가 워낙 많이 늘어난 탓에, 살짝 빠듯하게 운용되고 있었는데... 여기에 중앙관리만큼이나 많은 함길도와 동북면 출신 토관과 향리의 녹봉까지 직접 줘야 되는 상황 아니냐.

“중국에서 수입하는 식량이 없으면, 지금 당장은 버티는 수준에 머물 겁니다.”

“오... 그게 어디냐. 모자랐으면 큰일 날 뻔 했네.”

“...”

연오랑은 히죽 웃으며 섭섭한 소리를 내뱉었고, 이 장부를 끼워 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던 목진공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흘겼다.

그와 하급관원들이 고생했던 걸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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