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챕터29. 고민하다 (7)
반란과 마찬가지로, 뭔가 사회에 불만이 있어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든 말든 하는 거다.
조선이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으니, 우려가 들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처럼 승천하는 분위기에서 어느 누가 왕실과 조정에 불만을 갖겠는가.
“군부의 창설을 무관들이 반대하거나, 군부를 믿고 더 설칠 것 같아?”
“아닙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사단장들은 손사래를 치며 열변을 통했고, 참판들 또한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고려 때엔 아예 무과시험조차 없었고, 조선 대에 와서야 무과가 생겼다.
물론 문과에 비해 살짝 품계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오른 게 어디냐.
하지만 앞으로 군부가 생겨나고 품계조차 문과와 분리되어 다르게 돌아간다면, 자기 밥그릇을 충실히 지킬 수 있다는 뜻과 동일.
명분과 실리 모두 지금보다 향상되는 건데, 무관들이 반대할 리가 없지.
“또 뭐. 사병화가 우려 된다고?”
“크흠.”
“음...”
연오랑이 빈정거리자, 사단장들은 기세등등한 표정을 반대로 참판들은 똥 씹은 표정을 애써 숨겼다.
군사령관 휘하부대의 사병화 문제는 지난 세월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원래 역사에서의 조선 또한 이걸 우려해서, 훈련은 따로 시키고 사령관만 조정에서 내려 보내서 싸우게 시켰다가... 박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수,당,송,원,명 등의 중국왕조도 죄다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었다.
그럼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지, 무턱대고 반대만 했다가는 욕만 먹는 법.
“지금 착호군 연대장과 중,소대장을 순환시키고, 중앙군 갑사들과 착호군병도 순환시키고, 모든 훈련과 교육, 전략전술, 조직체계를 통일화 시키는 작업을 해왔잖아?”
“옙!”
“그렇습니다.”
“너희가 보기엔 내가 괜히 생돈과 아까운 시간을 들여가면서, 이런 복잡한 작업을 진행한 것 같냐?”
“...”
“...”
참판들은 다들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고, 병조참판 최사강만이 동의한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팔도를 넘어서 만주땅까지 복잡하게 이어지는 인사이동 업무를 담당하느라, 병조출신들이 날밤을 지센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사병화는 간단히 말해서 인사이동이 고착되면서 발생하는 문제고, 출신지역과 활동지역이 엇비슷해지면서 생기는 문제다.
서로 안면이 있고 피땀을 함께 흘려봤어야 하나가 되든지 말든지 하지, 생판 모르는 이들을 붙여놓고 섞어 놓으면 사병화 같은 게 일어날 리가 있나.
허나 동질성이 있어야 개별 집단군의 전투력이 향상되는 법.
묶어 놓으면 사병화의 위험성이 있고, 흩어놓으면 오합지졸이 되는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하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출신과 신분이 다르더라도, 동일한 조건을 설정해 주기만 한다면 동질성이 생성된다는 뜻.
고려 때의 봉건적 성격이 남아 있는 현군사제도를 싹 쓸어버리고, 통일된 신 군사제도를 덮어씌우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다.
“그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신군율을 만들었고, 신분을 무시하고 실력으로 새로운 계급과 지휘체계를 갈랐고, 기존 무관들뿐만 아니라 신기선군에도 적용되고, 북방의 토관들마저도 흡수해서 적용되고 있다.”
“...”
“인사와 보급, 훈련과 작전을 완전히 분리해서 운용하는 방책도 준비해 놨지. 안 그래?”
“예...”
“그건 그렇습니다.”
또 하나. 연오랑은 미래에서 왔고 그걸 지금 시대에 맞게 고쳐 넣지 않았나. 미래의 제도는 과거의 수많은 전례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결과물.
문민통제를 받지 않는 군부를 제어하기 위한 가장 손쉽고, 깔끔한 방법은 바로 인사권과 예산, 보급품을 쥐어트는 것.
특히나 이 예산을 쥐어트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착호군이 지나간 곳과 새로이 개간되는 지역에선, 의창은 물론이고 군자창 또한 정비되어 하나로 합쳐진 걸 알고 있지?”
“예.”
“아...!”
연오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판들은 그 속내를 읽어내고 감탄을 흘렸다.
각 부서별로 개별 관리했던 위전을 통합해서 하나의 예산으로 활용하는 게, 군제도에도 영향을 주게 될 거라는 걸 떠올렸나 보다.
“앞으로 이 통합예산을 다른 부서처럼 군부에도 나눠줘야 할 텐데, 무관의 전횡專橫이 벌어질 수나 있을까? 걔들은 조정의 정치에 끼어들 수도 없을 텐데?”
“크음.”
“음...”
참판들은 괜히 신음을 흘려댔고.
“신군율과 신 군계급, 신 품계는 어떠냐. 개별 사령관의 독주가 벌어질 수 있을 것 같아?”
“...”
이번엔 사단장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신군율은 지휘관이 부하들을 군무의 영역에서만 활용하고, 군무가 아닌 사적인 업무에 쓰이는 걸 방지했다.
예전처럼 자기집 노비처럼 부렸다가는, 목이 떨어지는 걸 넘어서서 집안이 박살난다.
더불어 과거 태종은 지방세력을 압박하기 위해 수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서 내려 보냈지만, 지금은 착호군을 통해서 직접 지방세력을 해체시키고 있다.
개간과 개혁이 완료된 지역에선, 이젠 거꾸로 수령의 권한이 너무 강해진 상황.
군부의 창설은 비대해진 수령의 군사권을 회수한다는 거고, 반대로 말하면 군부 또한 수령의 행정권에 간섭할 수 없다는 뜻.
이 판국에 자기 부하도 아닌 현청의 관리를 감히 부릴 수나 있을까.
하사부터 대령, 장군으로 이어지는 신군계급은 어떠냐.
이건 단순히 신품계가 탄생하는 걸 넘어서, 군 내부에서도 각자의 역할과 활동범위를 자율하면서도 제한했다.
“너희 부대에서 할 일을 왜 우리한테 시켜?” “그건 니들이 할 일이 아닌데, 왜 신경 쓰고 있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고, 이미 착호군을 굴리면서 익숙해진 상황.
사령관이나 누군가가 계급으로 찍어 눌러서 이상한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그걸 쉽게 따를 리가 없는 거지.
끝으로 보급품.
“화약제조청과 군기감은 여전히 군부가 아닌 병조 소속에 머물 거고, 앞으로 전역하게 될 착호보조군은 사복시, 공야사 등의 장인과 합쳐서 조병창造兵廠을 만들 텐데... 그들의 지원 없이 군부가 돌아갈 거 같냐?”
“아닙니다.”
“...”
누구보다도 보급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사단장들이 냉큼 손을 흔들어 댔다.
생각하면 답도 안 나오는 군량 문제는 제외하고도, 조선군은 완편된 중무장 기병군단, 그것도 야전화포를 끌고 다니고 있다.
이들이 소모하는 재원과 군수보급품은, 예전 조선군 전체가 소모하는 양을 웃돌았다.
화약 같은 경우에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보급품들 또한 동네대장간에서 찔끔찔끔 조달하는 걸로는 턱도 없지.
결국 수상한 짓거리를 하기 위해선 단순히 병사들만 사로잡는 걸 넘어서, 각 지방의 기업들을 죄다 끌어들여 동참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쿠데타를 넘어서, 이미 대규모 지방반란 수준 아니냐.
여기까지 고민하는 건, 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됐냐? 안전장치가 하나도 아니고 셋,넷이나 달려있는데, 아직도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냐? 아니면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거냐?”
“...”
연오랑이 싸늘한 눈빛을 뿌리자, 다들 눈길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래서 아무튼. 지금껏 신체제로 운용되는 평안도와 함길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 봤어?”
“못 봤습니다.”
“그럼... 너희도 알겠지만, 지금껏 조선이 이 방법을 하지 못한 이유가 뭐냐?”
“그건...”
모두는 괜히 부끄러워서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연오랑이 미래의 선진 군체제를 가져와 끼워 넣었으니, 지금보다 발달된 건 당연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간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돈과 관리가 없어서다.
몇몇 신료들은 “굳이 불필요한 재원을 낭비하면서까지, 임시 군조직인 착호군을 저렇게 복잡하게 운영해야 되나?”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결과적으론 군제개혁의 준비과정이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그 문제가 해결됐잖아? 옛날에 못했다고 해서, 지금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사병화와 무신들의 전횡이 우려되면, 안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무식하게 군부창설을 반대하면 어쩌자는 거냐.”
“...”
“말해봐라. 뭐 다른 방안이라도 있어? 너희가 보기에 착호군이 아니라 기존의 영진군이나 기선군을 활용했다면, 지난날 원정이나 건주여진처리, 이번 해서여진 토벌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 같아?”
“...”
입 아프게 말해서 뭐할까.
당연히 불가능이다.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북방을 정벌했지, 지금껏 놔뒀겠는가.
사실 나이가 든 노신일수록 와 닿는 게 달랐는데... 착호군이 해온 짓은 감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별세계 사건의 연속이었기 때문.
그들 상식을 무참히 깨부수는 일이니, 군사제도에 있어서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넌 못했지만, 나는 했는데?”라는 건방진 반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어딘가에서 연오랑과 같은 인물이 튀어나오면, 조선이 여진과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
“아니야?”
“어찌 그런...”
“천하에 조선을 그리 다룰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북직례나 산동, 왜나 올량합3위, 북원조차도 저흴 어찌하지 못할 겁니다.”
연오랑이 참담한 소리를 내뱉자, 모두가 침을 튀겨가며 말을 토해냈다.
그가 워낙 막나가는 인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하면 어쩔 거냐?”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줄은 몰랐다.
“태평한 소리 하네.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
“기존과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무시하는 건. 그 작자야 말로 관리로서 자질이 없는 거고, 특히나 나라의 안위가 달려 있는 군사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과하게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냐? 바꿀 수 있을 때 바꿔야하고, 좋은 게 있으면 뭐든지 흡수해야지. 개화자강은 군사 문제에 있어서 필수 아니냐.”
“...”
다들 속으로 “그래도...?” 라는 의심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지만, 말이야 전부 맞는 말 인터라...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완숙한 정객으로서의 촉이 “이게 끝일까?”하는, 실낱같은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
“...”
‘군부의 창설이 양반관료체제를 붕괴시킬 시발점이라는 걸 느끼는 건가?’
연오랑은 침묵에 잠겨 있는 참판들을 넘어, 저 먼 한성에 있을 조정대신들을 떠올려봤다.
지금 시대는 양반관료제가 아직 양반신분제로 변질되지 못했다.
관리가 되었기 때문에 양반이라 불리는 거지, 양반이라서 관리가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음서를 비롯한 추천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죄다 폐지된 상황.
공신 및 고위관리집안에게 천일염전기업을 허가해줬으면 충분하지, 뭐 얼마나 더 대우해 줘야 할까.
나아가 관리를 엄청나게 충원하면서, 굳이 음서가 아니어도 어지간한 이들은 죄다 관리가 됐다.
이 판국에도 못 됐으면 진짜 쓸모없는 인물이니, “내 자식도 넣어주시오!”라는 말을 꺼내는 건 “내 자식은 바보요.”라고 자랑하는 꼴.
아무튼. 미래의 양반 신분개념과 지금 양반의 개념이 살짝 괴리가 있는데... 이 시대 인물들이 과연 미래의 양반신분제를 예상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려는 자들이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만... 세종과 태종이 밀어붙이고, 명분 또한 우리에게 있으니 막을 수 없을 거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양반이란 문반과 무반을 합쳐서 부르는 말 아니냐.
그런데 조정과 분리된 군부가 탄생하고, 무과가 없어져 대체제도가 생기고, 무관이 정객政客이 아닌 진짜 군인으로 재편된다면... 앞으로 무반이 생겨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반관료체제가 당장 무너지진 않겠지.’
무반이 사라진다고 해서 조정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을 거고, 문반만으로 이뤄진 새로운 정치세력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도 쉽지 않을 거다.
‘문과출신은 지금도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잡과출신이 조정관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잖아? 잡직관원마저 죄다 일반관리로 개편됐고, 사대부와 향리의 구별 또한 흐릿해졌으니...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도 애매해지겠지.’
권력은 독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건데... 관리가 늘어나도 너무 늘어나면서, 오히려 관리의 특권들이 하나둘씩 사멸해 가고 있다.
챙겨주기에는 챙길게 너무 많아져서, 차라리 그냥 다 같이 안 주는 쪽으로 가는 게 속 편하지.
더불어 근본성리학은 저물었고, 문과출신 유학자들조차도 각 계열에 맞는 잡학을 익히며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다.
조정이 비대해지고 유학에서 멀어져 전문화가 가속될수록, 서로의 영역은 건들 수 없는 영역으로 고착화 될 거다.
신분 문제는 또 어떤가.
서얼, 환속한 천민, 일반 양민, 양반사대부, 지방향리 등이 다 섞여서 관리가 됐고, 이들은 능력에 따라 제한 없이 품계가 오르고 있다.
이들이 하나로 뭉쳐 당파를 이루거나 당쟁을 한다? 턱도 없는 소리.
원래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조선조정의 모습은 사라질 거고, 조정관리들은 정치가보다는 실무행정가로 변모하게 될 거다.
‘더불어 이러한 정치,행정세력이 군부와 서로 경쟁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문반과 무반이 갈라서는 꼴이 될 거야. 양반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겠지.’
연오랑은 먼 미래, 혹은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며 히죽 미소를 지었고, 모두는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졌다.
이 인간이 이럴 때마다, 천지개벽할 일이 벌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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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오는군.”
“오늘은 꽤 잡았나본데?”
“그러게 말이야.”
석탄을 넣은 화롯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이들.
하나같이 맹수갑옷을 입고 있던 이들은, 차가운 입김을 후후 불어내며 손을 녹였다.
북방의 추위는 과연 매서웠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삽과 곡괭이를 휘둘러댔고, 만주신도시에 터잡은 조선군은 끊임없이 삽질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