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91화 (191/538)

191. 챕터30. 발전하다 (2)

게다가 시시각각 사노비를 풀어주라고 압박당하고, 있는 땅도 양전사업을 통해 뜯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등장하고 자본의 가치를 인정해주니... 땅에 목을 매고, 관리가 되는 것에 목을 매던 이들이 보다 쉬운 길로 눈을 돌리는 게 인지상정.

예전 같았으면 죄다 관리지망생이었던 착호군 1기가, 자기 입으로 기업을 키우고 장사를 하겠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

반대로 말하면, 군과 조정에 그대로 남겠다는 이들이 많은 것 또한 당연한 반응이고.

“자네는 훈련대 소속이니, 군에 남겠지?”

“아닐세. 여기 추위는 영 몸에 안 맞아서 말이야. 나는 무사부에 지원할까 하네만.”

“오...”

“그걸 진짜 하긴 하나?”

“용연군 대감의 성격을 알지 않나. 훈련원에 따로 교육반을 만든다고 하셨으니, 분명 밀어붙일 걸세.”

“하긴, 대감이라면...”

말을 받은 사내는 히죽 미소를 지었고, 다들 연오랑을 익히 경험했던지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기사대, 훈련대, 특전대는 착호군 내에서도 가려 뽑은 이들.

당연히 기존무관출신이 많을뿐더러, 앞으로도 무관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다만 훈련대의 경우에는 살짝 결이 달랐다.

이들은 연오랑의 직속제자나 마찬가지.

지휘관으로서의 전략전술보다는 개인무기술에 특화된 이들이고, 지금까지 무기술교관이 되어 착호군을 교육시킨 경험이 있지 않나.

계속해서 조선군을 훈련시키는 건 물론이고, 조선내지에 퍼트릴 무사부로서는 제격이지.

해서 연오랑은 하급지휘관으로서의 지휘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원에, 무기술과 무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교육과정을 다시 집어넣었다.

여기서 잘 배운 이들이, 지방향교로 가서 가르치게 될 테니까.

“나도 약재기업을 해볼까 하네만.”

“자네도? 뭐 건수라도 잡았나?”

“흐흐. 건수라면 건수겠지만... 내가 요 근래에 군의랑 함께 돌아다니지 않았나. 그 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일세.”

“뭔데?”

떼돈을 벌 수 있다는 말 때문일까? 모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게 말이지... 저번 원정 때에 용연군 대감이 중국과 몽골의 약초를 왕창 가져오지 않았나. 호주에서 키운 약초 중에서 이 땅에 잘 적응한 약초가 있다고 하더군.”

“...?”

“감초 말일세. 군의들이 말하길. 감초는 오히려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 잘 자란다고 했고, 이 땅에는 야생 감초가 널려 있다고 하더군. 야생 감초가 자랄 정도면, 감초를 재배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조선내지보단 여기가 더 쉬울 것 아닌가.”

“오...!”

“감초라.”

모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향약집성방을 만든 이유가 뭔가.

수입품인 중국의 약재가 아닌 토종 조선 약재를 이용하기 위해 만든 의학서이자 약초서 아닌가.

허나 모든 약재를 토종으로 대체할 수 없는 법이고, 이 시절에 대체할 수 없는 대표적인 약재가 바로 감초였다.

감초의 효능은 둘째치고. 한약재의 쓴맛을 상쇄시키는데 필수적인 약재가 바로 감초라서, 어지간한 처방전에는 무조건 감초가 들어가니까.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이렇듯. 무조건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감초를 이제 조선 내지에서 재배한다?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사업 아니냐.

“오... 하긴, 북방땅은 조선내지와 풍토가 다르니, 생경한 약초가 많이 있겠군.”

“조정과 사령부에서 괜히 약초꾼과 삼마니 등을 한자리에 긁어모았겠나?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다들 지난 기억이 떠올랐고, 이제야 뭔가 그림이 그려졌다.

한성에서 온 의관들이 군의, 여진약초꾼들과 함께 산을 쑤시고 다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바빴던 건가?”

“그럴 걸세. 향약집성방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개정판을 준비 중일 걸세.”

“음...”

“흐응.”

모두에게 와 닿는 이야기인터라,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원래 역사에서도 유학자가 의술을 익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고, 어지간한 돌팔이 의관보단 유학자가 더 뛰어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다만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을 뿐.

문과보다 격이 떨어지는 잡과에 응시해, 전문 의관이 되려는 이들이 없었던 게 문제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문과와 잡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잡과와 신학문이 득세함에 따라서, 유학을 공부했던 과거응시생 중에서 전문 의관으로 변모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더불어 돈을 벌 수 있는 약초기업이 성행하지 않나.

향약집성방은 조정의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서, 양반사대부든 지방호족이든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가졌다.

길가에 널려 있던 잡풀인줄 알았는데, 이게 돈벌이가 될 약초가 될지 누가 알겠냐.

착호군 1기가 의관이 아니면서도, 향약집성방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건 이 때문이었다.

“나는 종두 접종을 위해서 한성의 의관들이 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에이. 아직 조선내지에서도 접종이 끝나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오겠나.”

“그런가?”

“맞는 말일세.”

모두는 지난날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떠올리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종두법을 시행하기 위해서, 세종과 맹사성이 개고생을 하면서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지 않았나.

천만다행이도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왕실비전이라 소문난 비방을 처방받기 위해서 백성들은 앞다퉈 달려왔고, 안 그래도 이런저런 대외적인 정벌로 높아졌던 왕실의 위상은 하늘 끝까지 닿을 정도가 됐지.

예상대로 결국은 종두가 우두고름으로 만든 약인 걸 알게 됐지만, 이미 맞을 사람은 다 맞고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대대적인 반대는 당연히 없었고, 겁도 없이 설치던 몇몇 집안이 있었지만... 왕실에 대한 비방과 기망을 했다는 죄를 물어 적몰시켜버리자, 반대도 쏙 들어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종두 접종이 끝나지 않은 건, 물리적인 한계 때문.

접종받을 백성은 너무 많고, 집도할 의관과 우두에 걸린 소는 상대적으로 적으니... 시간이 지체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좋은 게 좋은 건 줄 알아야 효과가 있는 법인데, 여진인들이 종두가 뭔지 접종이 뭔지 알기나 하겠나? 이게 왕실비방인 걸 알기나 하고?”

“흐음.”

“그건 그렇겠군.”

이어지는 말 또한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조선과 요동을 접해본 여진인은 국가와 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지만, 저 먼 곳에서 끌려온 이들은 생각자체가 달랐다.

이들의 인식세계는 부족과 부족장에 머물러 있었고, 과한 경우에는 조선을 엄청나게 큰 거대부족, 왕을 힘이 엄청 센 부족장 수준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성은을 내려준다고 한들, 이게 성은인지 뭔지 이해나 하겠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겠지.

“조선화 교육이 끝나야, 자신들이 얼마나 큰 혜택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

“맞네. 어차피 겨울이 오면 전염병이 돌기 쉽지 않으니, 갑작스럽게 두창이 발병할 일은 없지 않나.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깨끗이 씻기는 거고.”

“옳은 말일세.”

“크큭.”

모두는 욕탕과 한증막에 낯설어 하던 여진인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연오랑은 말끝마다 “청결. 청결.”을 달고 살았고, 착호군은 낯선 규율에 적응해 왔었다.

공동변소를 만들어 주둔지 및 식수원과 분리시키고, 숙영지마다 수로라 할 수 있는 하수도를 만들고, 항상 물을 끓여마시게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욕탕과 한증막을 만들어 꼬박꼬박 씻게 하고, 빨래를 자주 시키고, 뭐할 때마다 손을 씻게 하는 등등.

귀찮게 여겨지는 일들을 신군율이라는 명분하에 찍어 눌렀고, 그 세월이 오래되자 이제 습관이 되어 몸에 붙었다.

그리고 여진인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자, 왜 이 난리를 피웠는지 바로 알아차렸지.

똑같이 있어도 몸에서 나는 체취와 더러움은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니까.

착호군은 자기들이 편하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여진인을 강제로 씻기고, 위생개념을 주입했는데... 이게 귀찮지만, 뭔가 깨끗해진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지 않나.

이젠 착호군이 강제하지 않아도, 만주신도시에는 공중목욕탕과 한증막이 끝도 없이 만들어져서 여진인이 애용하고 있었다.

“자네는 어찌할 건가?”

“나는 몇몇 친우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송주(길림)에서 만들고 있는 배를 살까 하네만?”

“배를?”

배는 한두푼 하는 게 아닌 터라, 다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들 집안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어떻게든 배 한척만 구하면 남는 장사가 아니겠나? 앞으로 창주(송원)에서 올량합 3위와 무역을 한다고 하니, 거기에 끼어볼까 하네. 다른 건 몰라도 소금과 차, 면포, 모직물은 무조건 이득이 될 테니까.”

“오...”

꽤나 거창한 계획을 말하자,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세히 말해보게.”

“그게...”

사내는 흡사 동업하자고 꼬드기는 것 마냥 입을 놀려댔다.

이들이 알까 모르겠다만... 착호군 1기가 머무는 만주신도시, 조선내지의 모든 곳에선, 각자의 미래를 품은 희망찬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

쿵쾅쿵쾅. 공야사의 야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시끄러웠다.

사방에서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고, 거대한 가마에선 후끈한 쇳물이 흘러나와 내천을 이뤘다.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는 어느덧 예술품처럼 변해 주조틀로 변신했고, 뜨거운 쇳물과 함께 신음을 흘리며 연기를 뿜어냈다.

“이쪽으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오자. 장인들은 주둥이가 달린 옹이를 들고, 매끈하게 빠진 거푸집에 쇳물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이번 거푸집은 흙이 아니라 아예 형태가 굳어진 자기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요철 형상을 한 판석이 흙으로 된 받침대 위에 올려 있었다.

뚜껑처럼 생긴 거푸집 또한 자기로 만들어진 걸까? 불꽃이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거푸집 상태는 어떤가?”

“확실히 자기로 만든 게 편하고 좋긴 하군요. 흙으로 만든 것보다 손이 많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속도는 빨라졌습니다.”

“음...”

중년인은 새로 만든 거푸집을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거푸집은 따지고 보면 최고급 도자기와 크게 다를 게 없으니, 저게 다 얼마이고 저걸 만드는 데 얼마나 수고로웠겠는가.

이 정도 효율이 안 나오면, 생돈을 땅에 버린 꼴이다.

“그나저나 석탄이 확실히 편하긴 하군?”

“예. 질 좋은 목탄에 비하면 떨어지긴 하지만, 자기를 구울 때는 석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년인은 손에 든 세필을 놀려 쓱쓱 뭔가를 적어나갔다.

코크스로 정제하지 않은 석탄에는 황성분이 많아서, 그냥 사용하면 강철이 아니라 오히려 무르거나 뚝뚝 부서지는 잡철이 되기 십상이다.

조선인들은 정확한 화학적 원리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경험칙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었지.

해서 철을 녹일 때는 사용하기 힘들지만, 자기를 구울 때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공야사에서는 석탄을 가마에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심도 깊게 연구하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저편에 있던 장인이 목청을 높이자.

“얼른 가보지.”

“옙!”

두 중년인은 재깍 몸을 날려 옆 작업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선 똑같은 거푸집으로 만들어낸 완성품이 식어 있었고, “끄응!” 힘을 서서 거푸집 뚜껑을 벗겨내자, 시커멓게 달라붙은 내용물이 얼굴을 내밀었다.

“다 식었나?”

“예.”

“어디...”

중년인은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내, 쓱쓱 문지르며 살펴봤다.

“꽤 잘나왔군요. 톱니의 규격도 일정하고, 기포자국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군.”

둘은 싱글벙글 미소를 참지 못하고서, 애지중지하는 보물마냥 연신 톱니바퀴를 매만졌다.

거무튀튀한 상태지만 이제 막 나와서 그런 것 아니냐.

숫돌로 마감을 하고 나면, 동경처럼 번들거리는 최상품으로 변신하게 될 거다.

둘은 장인들의 인도를 받아 다른 거푸집을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하나같이 죄다 톱니바퀴였는데, 그 크기가 천차만별.

눈금이 그려진 철자를 들고 톱니간의 유격과 두께 등을 살펴보는데, 천만다행으로 전부 제대로 나왔다.

“과연 용연에서 온 철이, 품질이 좋긴 좋군?”

“이를 말씀이십니까.”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골탄(코크스)로 만들어진 강철괴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니, 그걸 녹여서 제품으로 만들면 당연히 최고품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값만 싸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말이지.”

“골탄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함길도에서도 골탄광산을 만들고 있다고는 하는데 완성되려면 시간이 걸릴 테고, 북방에서 골탄광산을 많이 찾아야만 값이 떨어질 겁니다.”

“흐음.”

조선 장인과 탄광기술자들은 이제 석탄을 구별 할 줄 알았다.

모든 석탄이 골탄이 되지 않는 걸 몸으로 경험했고, 이건 인력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저 북방땅에서 더 많은 골탄광산이 발견되기를 기대할 수밖에.

“이것도 잘 나왔군.”

“예.”

둘은 계속해서 내용물을 살펴봤는데, 하나같이 톱니바퀴이거나 톱니바퀴와 연결할 넓적하거나 몽둥이처럼 긴 쇠막대기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고 있을 때.

“좌랑 어른!”

“무슨 일인가?”

“어르신을 찾는 사람이 왔습니다!”

“나를? 어디서 왔다고 하더냐?”

“원산입니다.”

“원산!?”

구슬땀을 흘리며 톱니바퀴를 살피던 중년인. 장영실.

그는 원산이라는 말을 듣기 무섭게, 황급히 땀을 닦아내며 작업장을 빠져나왔다.

관복도 아닌 작업복에, 목덜미에 수건을 걸치고 있는 꼴이 관리가 아니라 일반 잡부처럼 보이지만... 공야사 소속 장인들이 죄다 이렇게 입고 있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건가.

겨울이 성큼 다가와 날이 쌀쌀함에도, 장영실은 긴팔티셔츠를 닮은 개량작업복만 입고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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