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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192화 (192/538)

192. 챕터30. 발전하다 (3)

태종에게 발탁되어, 세종 시기에 제대로 활약한 천재 발명가 장영실.

그는 비록 이론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천재 공학자였고,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문 관측 기구인 대간의 등을 만들었다.

지금 역사에선 당연히 장영실의 인생도 바뀌었는데, 어찌 보면 잘 풀렸고 한편으로는 잘 안 풀린 편이었다.

원래 역사에선. 세종초기에 상의원 별좌에 임명되면서부터, 제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상의원은 왕실의 의복 및 대궐의 재물을 관리하는 부서였는데, 당연히 관복에 들어갈 온갖 장신구 및 기물 또한 만들었지.

세종은 바로 휘하에 장영실을 두고서, 직접 명을 내려 이것저것 만들게 시켰던 것.

문제라면 천민출신을 속량시킨 걸 넘어서, 직급을 껑충 뛰어 별좌에 임명했다는 것과 상의원 별좌 자리가 안 그래도 얼마 없는 문관자리라서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지금 역사에서는 처지가 달랐다.

관직 자리는 넘쳐났고, 관노 출신인 잡직관리조차 전부 속량되어 일반관리가 됐다.

공야사의 관노도 예외는 아니었고, 장영실은 상의원이 아닌 상급부서인 공야사에 그대로 남아 자연스레 그 틈에 묻어갔지.

신료들의 견제가 웬 말이냐.

본래 하나 밖에 없던 공야사의 실무책임자인 좌랑. 그 자리가 무려 열 명으로 늘어났고, 문과가 아니어도 임명이 됐다.

그 덕에 장영실도 잡음 없이 좌랑이 되었으니, 원래 역사보다 무탈하게 풀린 셈이지.

안 풀린 점은 원래 역사보다 주목을 덜 받았다는 점.

미래의 지식을 풀어서 별 희한한 물건을 잔뜩 만들어낸 연오랑이 있는데, 장영실이 주목을 덜 받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

그렇다고 장영실의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고... 그는 지금껏 쭉 공야사에서 있으면서 연오랑이 만든 온갖 발명품을 뜯고 맛보고 즐겼고, 역설계를 하여 보다 나은 물건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단적으로 야전화포의 포가와 신형함선에 장착되는 동차, 원래 역사보다 훨씬 개량된 기리고차 또한 장영실의 손길이 닿아 있었지.

황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마중을 나가자,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그를 맞이했다.

“오! 자네가 왔나?”

“예. 뭐... 다들 귀찮아해서 말입니다.”

“하하.”

장영실은 웅피갑옷을 입은 사내를 보며, 환하게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원산에서 머무는 착호군이 한성까지 오는 건 분명 귀찮은 일이 맞겠지만, 그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

말은 저렇게 했어도 나름 경쟁이 치열했을 거다.

“서신을 보내셨나?”

“예. 여기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내는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고, 이런 형태의 서신이 익숙한 장영실은 냉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봉투 속엔 겹겹이 겹쳐 있던 서신 한 뭉치가 담겨 있었는데, 단순히 글만 빼곡하게 적힌 게 아니라 알아보기 힘든 괴상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오... 과연.과연.”

“저기...?”

장영실은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서신을 읽어 내려가다가, 옆에서 콕콕 찌르는 손길을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뭔가?”하고 봤더니, 그의 부하장인이 “사람들이 보는데 저렇게 세워둘 겁니까?”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차차. 일단 방으로 가지.”

“예. 그거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장영실의 안내를 받아 사내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뒤로 이두마차가 끄는 짐마차 두 대가 미끄러지듯 끌려왔다.

“오... 흔들림이 꽤 줄었군?”

“예. 전보다 개량을 했는데, 자갈도로에서는 흔들림이 꽤 줄었지만 밖으로 나가면 여전히 어지럽더군요.”

“끄응.”

장영실은 이미 마차를 여러번 만들어 본 경력이 있지 않나.

마차를 아무리 좋게 개량해도, 정작 길이 엉망이면 효과가 없다.

하지만 험한 조선땅에 길을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그저 신음만 나올 수밖에.

착호기병은 원산에서부터 마차를 끌고 왔을 테니, 누구보다 더 실감했을 거다.

“흐흐. 그래도 전보다 나아졌습니다.”

“상용화는 되겠나?”

“글쎄요... 저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워낙 품이 많이 들어가는 물건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겠군.”

완충장치가 덕지덕지 붙으면서, 나무부품보다 금속부품이 더 들어가는 마차로 개조됐으니... 당연히 가격도 껑충껑충 뛸 수밖에 없지.

잘 만들어도 사는 사람이 쉽게 나올지는 의문이다.

자리가 많아졌다고 해도, 좌랑직은 나름 공야사의 2인자 자리 아니냐.

확장을 거듭한 공야사 관아에는 길쭉한 전각이 귀퉁이에 박혀 있었고, 그곳은 좌랑들이 쓰는 개별 집무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으차.”

장영실과 부하장인은 집무실 문을 활짝 열고서, 안에서 의자와 탁자를 꺼내 밖에 자리를 만들었다.

“미안하게 됐군. 안이 복잡해서 말일세.”

“아닙니다. 저야 노상취침이 일상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합니다.”

“음.”

장영실과 부하장인들은 할 말이 없어 머쓱한 미소만 짓고 말았다.

착호군이 일년의 절반 이상을 신형게르에서 생활하는 걸 알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의 말대로 오히려 이렇게, 노지露地에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게 더 친숙할거다.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장영실은 대꾸를 하기 무섭게 서신에 빠져들었고, 착호기병은 부하장인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오...!”

“끄응...”

반응은 정반대다.

착호기병은 집무실 안에 흡사 무기마냥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온갖 형태의 톱니바퀴와 구동축.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설계도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고.

부하장인은 “청소 좀 하지...”라는 생각에 괜히 자기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어때. 이런 건 처음보지?”라는 자부심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팔도에 이와 같은 작업장은 또 없을 테니까.

‘좌랑 어른이 별종은 별종이시지.’

부하장인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서, 히죽 미소를 지었다.

장영실이 태종에게 발탁됐던 건 오래전 동래에서 큰 가뭄이 들었을 때. 물을 퍼 올려 옮길 수 있는 양수기 비슷한 수차를 선보이면서부터다.

헌데 배봉마을은 기존에 없던 초거대수차를 만들었고, 그 안에는 원시적이지만 이 시대엔 충분히 복잡한 톱니바퀴와 동력축을 넣어 파쇄기를 만들어냈다.

그 후에도 톱니바퀴와 동력축을 이용한 온갖 농기계와 건설기구가 튀어나오자... 장영실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과 함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매료되었다.

원래 역사에서, 세종의 명을 받아 온갖 것에 다 두각을 나타내면서 발명품을 만들어냈을 그가. 지금 역사에선 톱니바퀴와 사랑에 빠져버린 거지.

게다가 시대가 그를 도와준다.

전에는 “그게 뭐 돈이라도 되냐?”라고 했던 것들이 진짜 돈이 되기도 하고, “그거 익혀서 뭐가 될래?”라고 했는데 진짜 관리가 되는 등.

온갖 분야에 있어서 전문화, 학문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장영실은 “음... 이걸 잘 연구하면, 이 또한 학문이 되지 않을까?”라는 포부를 품고, 엔지니어에서 머물렀어야 할 그가 이론과학자로 성장을 시작한 거지.

다만 이 톱니바퀴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해서, 공야사 장인들이나 신료들 사이에서 별종 취급을 받긴 했지만...

반대로 기상천외한 물건을 설계하고, 기존의 물건에 죄다 톱니바퀴와 구동축을 달아 새롭게 개량하고 있었다.

착호기병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손바닥만한 톱니바퀴를 꺼내들자.

“신기합니까?”

“이것 말인가?”

부하장인은 “그게 뭔 줄이나 아냐?”라는 눈빛으로, 은근히 자랑 섞인 물음을 던졌다.

그 속내를 알아차린 걸까? 착호기병은 피식 웃고 톱니바퀴를 흔들며 대꾸했다.

“난 훈련대원이네. 용연군 대감과 공주자가를 지근에서 모셨지. 이것보다 더 특이한 것도 많이 봤네.”

“아...”

한방 제대로 먹은 듯, 부하장인은 합죽이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조선 사람들 모두가 연오랑의 소문을 들어봤지만, 공야사 장인들만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애초에 연오랑의 발명품이 없었으면 공야사가 이렇게 확장하지도 못했을 테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눈이 빙빙 돌아가는 어지러운 집무실 구경을 끝마치자, 밖에서 장영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공주자가께서 보내신 물건인가?”

“예.”

둘은 성큼 밖으로 나갔고, 마부들과 함께 짐마차에 실린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건 이번에 개량한 신형물레라고 하셨습니다.”

“오...!”

장영실은 감탄을 날리기 무섭게, 냉큼 신형물레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다.

지난날 모두의 무관심 속에 정선공주는 혼자놀기에 열중하고, 그것도 기술과 신학문에 관심을 쏟았다.

그녀는 조정신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보다 꽁꽁 숨어들어가야 했다.

그러려면 목공술과 기술들을 직접 익혀서, 자신의 궁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게 눈에 안 띄는 최선이라 생각했지.

그런 공주님과 궁녀를 가르칠 수 있는 장인은 당연히 공야사 장인들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중에서 장영실이 걸려들었다.

공주 입장에선 태종과 세종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장영실이니, 문제가 생겨도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장영실 입장에선 공주의 부탁을 무시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어쨌거나 혼인하지 않은 하나 남은 공주 아니냐.

연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지.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공주가 혼인하고 궁을 떠나고나서는 이렇게 서신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착호군을 이끄는 연오랑의 부인이자 무려 공주인데, 누가 감히 그녀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까.

그녀는 혼자놀기의 활동영역을 더욱 넓어졌고, 연오랑에게 이런저런 잡지식을 주워들으면서... 이렇게 직접 발명품 개발에 뛰어들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 아닌 문제라면... 그녀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진짜 쓸만한 물건을 만들어 냈다는 거지.

“원산연구소에서 만든 건가?”

“연구소가 설립된 지 몇 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치들은 오히려 공주자가께 기술과 지식을 배워야 할 처지죠.”

“하긴...”

장영실은 단박에 이해가 되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망치질과 대패질도 엄연한 기술이고, 하루아침에 몸에 붙는 게 아니다.

나아가 단순한 쇠붙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비록 초보적이긴 하지만 어찌됐건 기계공학의 첫걸음을 밟고 있지 않나.

하루아침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게다가 원산연구소는 배를 만드는 곳 아닙니까. 그 인력을 빼긴 어려워서 말입니다.”

“음. 그것도 그렇겠군.”

이 또한 이해가 됐다.

신기선군을 창설하면서 조정에서는 신군선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인력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난다.

아마도 연오랑과 공주가 주도해서, 부속 연구소를 만들었을 거다.

‘그래도 대단하긴 대단하군.’

장영실은 연오랑의 거침없는 행보를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연오랑은 연구소를 안 만들면 병이라도 생기는지, 지나가는 곳곳에 연구소를 만들어댔다.

가장 처음에 만들어진 곳은 하동연구소와 배봉연구소. 이곳에선 말 그대로 농업,공업,상업,역사 등의 모든 걸 연구했지.

이내 곧 조정과 손을 잡고 확장과 분열을 하면서. 용연연구소에선 선박과 광산, 공업을 연구했고, 호주연구소에선 농업 및 외국작물의 토산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원산에 가서는 용연연구원들을 그대로 대려가 선박연구소를 확장했고, 연주(연길)에 가서는 여진인까지 끌어 모아서 목축업을 연구하는 연주연구소를 만들었다.

뭐. 시대가 시대인지라 말이 연구소지.

그냥 민간지식과 기술자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그들을 재교육시키고 문언화 작업을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조선은 상공업 및 과학기술에 워낙 기반이 없던 터라, 연구소는 눈에 띌 정도로 쑥쑥 자라면서 온갖 부수적인 연구결과를 토해내고 있었다.

“기존 물레와 다른 걸 보니, 양모를 뽑아내는 물건인 것 같은데... 공주자가께서 목장을 만드셨나?”

“강원도와 함길도에 워낙 많은 양목장이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용연군 대감께서 원산에 사냥개 농장을 만드시면서, 양목장도 겸사겸사 함께 만들었습니다.”

“허허. 사냥개라. 들어본 적이 있네. 꽤 거창하다고 들었는데 말일세.”

“뭐...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착호기병은 자기가 봤음에도,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쓴웃음을 머금었다.

연오랑의 사냥개 사랑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었으니까.

그는 조선땅의 개 품종을 바꿔버리겠다는 듯.

착호군이 지나가는 곳마다 들개들을 때려잡고, 품질이 좋은 개는 따로 추려 모아서 목장을 만들고, 미흡한 녀석들은 도살하거나 민간에 불하했다.

이 추세로 가다가는 미래에 조선을 대표하는 개가, 늑대와 비슷하게 생긴 라이카계열의 원시품종이 될지도 모를 노릇.

착호군이 이에 대해서 딱히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던 건... 큰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몰이사냥을 할 때 사냥개가 필수였기 때문.

나아가 이러한 녀석들 중에서도 또 골라서, 사람 말을 잘 듣는 군견으로 만들어서 써먹었으니... 착호군이 싫어할 리가 있나.

조선백성들이 보기에 착호군은 말과 개를 몰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니, 구경거리가 되고 소문이 퍼지는 건 당연한 말이지.

“그나저나 양모라... 이런 기물이 필요할 정도로 많이 나오나?”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확실히 많이 나오긴 많이 나오더군요.”

“그렇겠지. 이걸 보면 알겠지만, 한 번에 실타래 2개를 뽑아낼 수 있게 만든 물건 아닌가.”

“예... 뭐.”

착호기병은 잘 알지 못하는 터라 대충 얼버무렸지만, 장영실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

기존 물레는 한 번에 실을 하나만 만들 수 있는데, 두 개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효율이 두 배로 뛴다는 뜻.

이걸 더욱 개량해서 세 개, 네 개를 만들 수 있다면? 한사람이 서너명의 몫을 해낼 수 있는 건 자명한 사실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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