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93화 (193/538)

193. 챕터30. 발전하다 (4)

더욱이 기존 물레는 쭈그리고 앉아서 사용하는 물건인 것에 반해서 이건 의자와 탁자가 일체형처럼 되어 있고, 실을 감는 나무 손잡이 밑에는 톱니바퀴와 구동축이 달려 있다.

전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훨씬 편한 자세로 일을 할 수 있으니 효율이 증가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

‘실을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원료가 많이 필요해질 거고, 많이 생산된 실을 천으로 만들 새로운 베틀이 필요하게 되겠지... 이걸 감당할 수 있나?’

“강원도와 경상도에서 목화밭이 엄청 늘어났다고 들었는데...”

“예. 그건 맞습니다. 원산 인근에서도 목화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착호기병은 태종의 착호군에 속했다가 원산으로 옮겨 순환근무를 한터라, 자신 있게 답을 했다.

‘음...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조정이 논의를 한 걸로 아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겠구나.’

지난날 중국원정이 끝날 때부터, 태종이 이끄는 착호군은 목화밭과 뽕나무밭을 개간하는 데 열중하지 않았나.

신료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서, 고작 1,2년 만에 기존 생산량의 4배를 뛰어넘는 엄청난 성장을 기록했다.

미개척지는 아직도 많고, 농지로 쓰기에 애매한 산지도 엄청나게 많으니... 이러한 성장세는 지리적인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치솟을 거다.

‘이러다가 사람이 부족해지지 않을지 모르겠군.’

목화씨를 수확하고 씨와 솜을 분리하는 거나, 뽕나무에서 누에를 털어내는 거나, 죄다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작업 아니냐.

장영실이 조선이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니라서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이에 관한 논의도 벌어지고 있지 않을까.

‘음... 이건?’

그리고 장영실과 같은 고민을 연오랑 또한 했던 걸까?

짐마차에서 꺼낸 물건 중에선, 꽤나 특이하게 생긴 큼지막한 기물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뭔가?”

“대감께서 시제품으로 만든 물건인데, 목화씨를 쉽게 뺄 수 있게 도와주는 기구라고 하셨습니다.”

“뭐!?”

장영실은 속을 들킨 것 같은 생각과 충격에, 기함을 토하고선 기물에 달라붙었다.

목화는 씨앗과 솜이 엉켜 있어서 이걸 분리해야 써먹을 수 있는데, 이걸 쉽게 분리해 주는 물건을 조면기라 불렀다.

이 시대에도 두 개의 막대가락 사이에 목화씨를 넣어서 분리하는 원시적인 형태의 조면기가 존재했는데, 연오랑은 톱니바퀴를 이용해 보다 편하게 솜을 뽑아내는 장치를 만들었던 것.

원래 역사에서 미국 목화산업의 혁명을 일으켰던 휘트니 조면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휘트니 조면기의 축소판이자 원시형태라고 할까?

어찌됐건, 지금 쓰는 것보다 수십배는 나은 효율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톱니바퀴 성애자가 되어 기계공학자로 발전하고 있는 장영실에게 맞기면, 진짜 괜찮은 물건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

“오...!”

고질병이 발병했는지... 장영실은 영롱한 톱니바퀴의 결합에 눈을 떼지 못했고, 부하장인은 옆에서 계속 “큼.큼.”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줬다.

한참을 그렇게 조면기를 살펴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선, 장영실은 옆에 있는 정체모를 물건에 관심을 돌렸다.

“크흠. 미안하게 됐군.”

“아닙니다.”

“이건...”

장영실은 서신을 살피다가 비슷해 보이는 설계도를 찾아 중얼거렸다.

“제봉틀?”

“옙!”

왠지 모르게 자신만만한 착호기병의 목소리에, 장영실 또한 기대감을 품고 달라붙었다.

제봉틀은 작은 탁자처럼 생긴 물건 위에 몸통이 달려 있었고, 밑에는 중앙막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상하운동을 하는 발판이 달려 있었다.

그는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이걸 이렇게 밟는 건가.”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발판을 밟아봤다.

촤락촤락. 발판과 연결된 톱니바퀴와 가죽끈이 돌아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몸통에 달려 있던 바늘이 상하운동을 시작.

“오오!”

“와!”

장영실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부하장인마저도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바느질을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군!”

“예. 효율은 비교할 수가 없지요.”

착호기병은 이미 이걸 써먹는 걸 봤던 터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동안 손바느질을 해야 될 물건이, 한시진도 안 되서 끝나버렸으니까.

“중간에 홈이 파인 특수 바늘을 써야한다고 되어 있는데...”

“예. 아마 그럴 겁니다.”

“흐음.”

장영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생각에 잠겨 들었다.

‘엄청난 물건이긴 한데, 이걸 민간에서 쉽게 써먹을 수 있나?’

문뜩 이런 의문이 피어올랐던 것.

제봉틀 또한 시대를 바꾼 발명품 중에 하나지만... 지금 조선은 이런 엄청난 효율을 가진 물건을, 수용할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

조선 사람들 모두가 손바느질을 할 줄 알고, 애초에 손바느질을 직업으로 삼을 만큼 옷을 많이 입는 것도, 옷감이 많은 것도 아니다.

삯바느질로 생을 이어가는 사람도 몇몇 있겠지만, 나라 전체로 봤을 때 그 수가 몇이나 되겠나.

‘물론 상의원에서 쓰면 엄청 좋아하겠지만...’

왕실의 의복과 관복 등을 관장하는 곳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대충 봐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이 물건을 과연 민간 백성들이 사려고 할까.

“안 그런가?”

“뭐... 그렇다면 그렇겠지만, 개량하면 더 값싸게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영실이 부하장인과 중얼거리고 있자, 착호기병이 옆에서 슬쩍 거들었다.

“사실 착호군에선 이걸 두정갑을 만들 때 썼습니다. 가죽과 갑옷을 제봉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겠군.”

둘은 갑옷을 만들 줄 아는 터라, 충분히 이해가 되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옷감 사이에 철판을 넣어 리벳으로 박아 넣는 것도 힘들지만, 두툼해진 옷감을 대바늘로 꿰매는 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착호군은 모든 갑옷을 두정갑으로 통일시켰으니,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허면 피혁기업에선 이걸 이미 사용하고 있겠군?”

“착호보조군만 사용하고 기업에는 아직 팔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게 아니니까요.”

“음...”

“흐응.”

‘역시 가격이 문제인가?’

‘하긴 고장이라도 나면, 고칠 사람도 없겠군.’

장영실과 부하장인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고, 착호기병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 붙였다.

“대감께서 토벌을 떠나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거라 하셨습니다.”

“대감께서?”

“예. 혹시 압니까. 앞으로 조선백성들 모두가 옷을 수십벌씩 가지고 있고, 저잣거리에서 옷을 사 입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

“와.”

거창하고 희망찬 미래를 읊자, 둘은 다시금 감탄을 내뱉었다.

‘하긴... 앞으로도 계속 면포와 양모의 생산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니냐.’

먼 미래가 아니라 손을 잡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그리 될 것 같아서, 장영실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내 제봉틀에서 시선을 떼고, 옆에 있는 원통형 물체에 관심을 돌렸다.

보물창고라고 되는 것 마냥, 짐마차에는 장영실을 홀릴 보물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건 또 뭔가? 서신에 따르면 수동식 탈수기라고 되어 있는데?”

“양털을 깎고 나서 세척하고 말리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말입니다. 그걸 빠르게 하려고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뭐. 가끔씩 빨래한 옷의 물기를 뺄 때도 씁니다.”

“오... 탈수기라.”

‘일전에 빨래판이라는 걸 만들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도 특이한 걸 만들었구나.’

장영실은 속으로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빨래판은 나무판에 요철 형태로 홈을 파서, 빨래를 쉽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

허나 무식할 정도로 간단한 구조에 비해, 제대로 된 빨래판은 한참 늦게 발명됐다.

앞으로 수백년 후에 만들어질 물건이지만, 청결을 중시하는 연오랑은 이걸 놓치지 않고 착호군에게 전파했지.

그게 벌써 수년전 일이고, 동네 목수 혼자서 뚝딱뚝딱 만들 정도로 간단한 물건 아니냐.

조선팔도에 순식간에 퍼져서, 빨래에 있어서 일대 혁명을 가져왔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이건 구조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닌 것 같은데...’

장영실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탈수기에 달라붙어 구조를 살폈다.

겉면은 나무로 된 원통이 감싸고 있고, 안에는 송곳구멍이 잔뜩 뚫린 얇은 철통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길쭉한 막대가 바닥과 연결되어 붙어 있었다.

흡사 바퀴에 안장을 달아 놓은 것처럼 생긴 물건이 옆에 달려 있었는데, 여기에 앉아서 발판을 돌리는 모양이다.

“맞나?”

“예.”

장영실은 장난감을 본 아이마냥 냉큼 안장에 올라타서 열심히 발판을 돌리기 시작했고, 발판과 연결된 가죽끈이 돌아가면서 탈수기 안에 있는 막대기둥과 밑판이 돌아갔다.

“그... 너무 빨리 밟으면 고장 납니다.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아차차.”

차락차락 돌아가는 톱니바퀴 소리를 만끽하던 장영실은, 흡사 보물에 흠집이라도 난 것 마냥 화들짝 놀라 뛰어내렸다.

그리곤 혼자서도 탄력을 잃지 않고 빙빙 돌아가는 발판을 살피다가, 땅에 머리를 처박고 탈수기 밑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톱니바퀴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흐음... 원리는 수차와 크게 다르지 않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구조를 연구하면 여러 곳에 쓰임이 많을 거라 하셨습니다.”

상하운동을 회전력으로, 회전력을 상하운동으로 동력방향을 바꾸는 건, 말 그대로 온갖 것에 다 적용할 수 있는 원리 아니냐.

연오랑은 장영실을 비롯한 연구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줬고, 이들이 여기서 뭘 더 뽑아낼지 기대하고 있었다.

더욱이 톱니바퀴와 같은 물건은 크면 클수록 만들기 쉬워지지만,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만들기 힘들어진다.

이걸 계속 만들다보면, 장인들은 자연스럽게 야금기술과 정밀제련기술이 발전하겠지.

“이게 끝인가?”

“예.”

“저건...?”

장영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뒤편에 있던 짐마차를 가리키자.

착호기병은 히죽 웃으며 약 올리듯 답을 했다.

“똑같은 물건이 실려 있는데, 저건 용연연구소로 가게 될 겁니다. 사실 오기 전에 배봉연구소에 먼저 들렸지요.”

“끄응...”

“아앗!”

장영실과 부하장인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공주는 연오랑에게 나쁜 버릇이 물들었는지, 공야사 장인들을 시험에 빠트렸으니까.

군역면피를 위해 서얼을 비롯한 꽤 많은 이들이, 연구소의 임시관리가 되어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허나 처음에는 군역면피 및 서얼이라고 아니꼽게 보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임시관리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사정이 바뀌었다.

작금에 이르러 임시관리로 일하는 건, 정식관리가 쉽게 되는 방법 중 하나가 됐다.

또한 여기서 버티면서 뭐든 기술을 익히고 나면, 나와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됐지.

이들에게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실력을 입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식관리인 공야사를 이기는 것.

연오랑은 발명품 시제품을 만들 때마다 각종 연구소에 전부 보냈고, 이들을 자체 경쟁시키게 만든 거지.

그리고... 이 얄궂은 심술에 피해는 누가 보느냐? 당연히 공야사가 보지 않겠나.

조정에선 “민간연구소보다 기술과 실적이 밀리면 되냐?”라며 마구 쪼아댔으니... 익히 경험한 둘이 사색이 된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포상금은 전처럼 주시겠지요?”

“그럴 겁니다. 아마도...?”

착호기병도 확신할 수 없어서 어깨를 으쓱거렸고, 죽어가던 둘의 표정이 금세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이런저런 물건을 만들어내면, 연오랑은 왕실의 이름을 빌려 포상금을 줬다.

한 번에 쌀 수백석을 줬으니, 눈이 뒤집히는 것도 당연한 일.

다만 아무리 용연군이라고 해도 일개인이 조정관리에게 포상금을 주는 건 문제가 있었기에, 연오랑은 조정에게 포상금을 넘기고 조정이 왕실의 이름으로 포상금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

예전이라면 이 눈먼 돈을 쓱싹해버리는 정신 나간 관리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세종과 연오랑이 지켜보는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물론. 다들 “저게 뭔 생돈 날리는 짓이냐.”라고 의아해했지만, 연오랑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단순히 장인들의 의욕을 높이는 걸 넘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의 개념을 확립하고, 조정이 몸에 익히도록 연습시키려 했던 것.

지금이야 연오랑의 주머니에서 나가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되진 않을 거고, 나중에는 이게 관례이자 관습이 되어 왕실의 이름으로 포상금이 나가지 않겠나.

유럽에서 산업혁명시기나 르네상스시기에 무수한 발명품이 튀어나온 건, 그 시대에 맞는 지적재산권이 법률로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

물론 이것도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투명하게 적용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지.

살아온 역사가 전혀 다른 조선에게 지적재산권을 이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터라, 연오랑은 살짝 꼼수를 써서 다른 형태로 이걸 이식하려 했다.

이래야 앞으로 조선에서도 “이거 하나만 제대로 만들면, 나도 팔자가 핀다!”라는 인식이 퍼질 테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도 되는 걸까?

착호기병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개량관복을 입은 장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좌랑 어른!”

“또 뭔가!?”

괜히 놀란 장영실이 화들짝 놀라서 중얼거리자, 장인은 손에 든 두툼한 서찰을 내밀다가 어정쩡하게 멈춰 섰다.

“예?”

“아닐세. 무슨 일인가.”

“대감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공야사 장인들이 앞뒤 다 자르고, 대감이라고 부를 사람이 연오랑 말고 또 있겠는가.

‘허. 이렇게 딱 맞춰서 올 수도 있군.’

장영실은 냉큼 서신을 챙겼고, 역시나 전과 같이 서신과 함께 부품설계도와 미완성된 구상도가 들어 있었다.

“음...”

“흠.”

부하장인과 장영실은 서신을 돌려보기 무섭게, 신음 아닌 신음을 흘려댔다.

공주가 보낸 물건도 만만치 않은데, 연오랑의 의뢰는 한술 더 떴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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