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196화 (196/538)

196. 챕터30. 발전하다 (7)

“만약 신법률을 교육시킨 율관을 지방으로 보내게 되면, 수령 밑에 있게 되는 건가? 아니면 수령 위에 있게 되는 걸까?”

“위에 놓을 리는 없지 않나. 그럴 거면 율관을 수령으로 보내면 되지, 수령을 왜 따로 보내겠나. 게다가 그렇게 된다면, 지금과 똑같이 수령이 일은 못하고 송사만 볼 것 아닌가.”

“맞는 말일세. 밑에 놓는 것도 말이 안 되지. 그러면 분명 또 수령이 사사건건 율관의 일에 간섭할 것 아닌가.”

“그럼 옆에 놓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말을 토해내기 무섭게 입을 다물었고, 다른 두 사내 모두 입을 다물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이어갔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니... 지난날 태종과 지금의 세종이 어째서 수령의 품계를 한껏 높여서 지방으로 내려 보냈는지 알고 있다.

지방 세력을 찍어 누르기 위해서.

원래 역사에서 훗날 악법이 될 “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들었던 것도, 본래는 일반백성들이 아니라 지방 세력을 찍어 누르기 위함.

다만 지금 역사에선 “부민고소금지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착호군이 활동하면서, 보다 화끈하게 지방 세력을 날려버린 거고.

헌데 수령의 사법권을 분리하여 율관에게 넘겨준다는 건, 지방호족세력의 해체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는 뜻.

더불어 이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수령의 한쪽 팔이 떨어져나가고, 그 한쪽 팔이 오히려 견제세력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이게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율관만으로 구성된 조직이 탄생할 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되지 않겠나.”

“흐음. 그렇게나 쉽게 될까...?”

“보게. 의금부義禁府에서 관할하기에는 무리 아닌가.”

의금부는 왕명을 받아 움직이며, 왕족 범죄, 국사범, 반역죄, 양반관료 재판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당하는 특별사법기관이다.

“맞네. 의금부가 관할하기에는 너무 작은 건수들인데, 반대로 수는 또 무지하게 많지.”

“형조에서 담당하기에도 조금 그렇지?”

“아무래도...”

“형조는 여유가 없지.”

이 시대는 민법,상법,형법등이 딱 부러지게 구별되지 않았고, 결국 처벌은 형법으로 귀결됐다.

지방 수령은 민형사상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곤장을 치거나 배상금을 물어주는 정도의 처벌 정도만 내릴 수 있었고, 그 이상의 사안에 대해서는 형조 등의 중앙기관으로 이관하여 처리했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상황이 애매하다.

대명률의 요체 또한 형법인데, 이걸 삭제하고 조선형법을 삽입하는 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또한 태종 때부터 사노비와 공노비의 속량을 쉽게 해준 바.

노비문제를 관장하는 형조도관은 예나지금이나 바빴고, 지금은 형조관원의 반수 이상이 이 일에 달라붙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리고 착호군에서 시행 중인 신군율도 있지 않나.”

“아! 그걸 잊고 있었군.”

“흐음...”

뜬금없이 튀어나온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 군법은 있지만 평시 군법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민형법이 준용되고, 군사권을 가진 수령은 군병에 대해서도 처벌을 내릴 수 있었다.

허나 착호군에는 판군사대라는 독립사법기관이 존재했고, 착호군의 활동영역이 넓어짐에 따라서 판군사대의 활동영역 또한 은근슬쩍 넓어지지 않았나.

착호군을 넘어서 영진군과 기선군 소속에 대해서도 관여하기 시작한 거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판군사대의 신군율 조항이 형법에 흘러들어와 반영될 지경이다.

“한성부는...”

“한성부도 무리일세.”

이 시대엔 형조, 한성부, 사헌부 또는 의금부를 묶어서 삼법사三法司라 부르기도 했는데, 사법기관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한성부는 말 그대로 한성과 성저십리, 한성외각를 전부 관할하는 부서로, 지방행정조직임에도 수도인 한성을 관할하는 탓에 다른 지방행정조직보다는 살짝 격이 높았지.

더욱이 형사가 아닌 민사에 관한 업무를 대다수 처리하는 터라, 어찌 보면 지금 논의하는 사안은 한성부의 업무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성부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 않나.”

“맞지. 한성부의 관할영역이 넓다고 하나, 어찌됐건 한성일대를 관할하는 게 전부 아닌가. 조선팔도를 아우를 수 없고, 새롭게 강역이 된 북방의 업무를 처리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지.”

“하긴... 그건 그렇겠군.”

이 또한 맞는 말이라서, 한성부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한성부가 아무리 덩치가 커져도 중앙조정은 아니니, 전국을 관할하는 건 분명 문제가 생긴다.

“그럼 사헌부만 남았는데...”

“끄응.”

“그치들이 끼어들 여유와 깜냥이 있겠나.”

“혹시 모르지.”

다들 기연가미연가 하면서도, 치가 떨려서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누구에게 콩고물을 얻어먹을 일도 없는데, 괜히 사헌부 관원들이 매서운 눈초리를 뿌리며 살펴보곤 했으니까.

탄핵, 간쟁, 감찰을 담당하던 사헌부는 운석핵꿀밤 이후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세종이 등극하면서, 농본주의의 대칭점에 서 있는 자본유학을 받아들이고, 유학적 논리관과 거리가 먼 자주화와 전문화가 추진되자... 내리막길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진 처지가 됐지.

존폐 위기에 놓인 사헌부는 두 가지 방안으로 생로를 찾아갔다.

하나는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조선법 제정에 열중하는 것.

다른 하나는 두 왕이 밀어붙이는 여수구죄법을 등에 업고, 강력한 비위非違감찰을 실시하는 것.

지금에 이르러선 사헌부가 하는 일은 후자가 대다수였다.

관리가 엄청나게 늘어난 만큼. 사헌부가 건수를 올리고 감찰할 대상도 많아졌고,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기에도 쉬워졌으니까.

“그치들은 자기 할 일도 바빠서, 이 일에 끼어들기 힘들 걸세.”

“그게 맞을 걸세. 신입관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던 부서 아닌가. 사람이 적으니 일을 더 벌이는 건 무리일걸세.”

이들은 어문학를 특기삼아 특별 임용됐지만, 다른 동료들과 함께 별시를 치렀기에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삼법사보다는 차라리 호조관원들이 상법에 더 밝을 것 같단 말이지.”

“그건 그렇지. 의주에서 재정학이 튀어나왔으니까.”

“흐음.”

다른 의견에 모두는 기억을 더듬었다.

조선은 상법에 관한 상세하고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 적용되고 있는 것들은 죄다 의주에서 사무역을 진행하면서 만들어진 조항들이다.

중국상인과 사무역을 하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조선상법이 필요했고, 그걸 계속해서 다듬어 온 건 오히려 호조관리들이지.

“기업에 관해서 가장 잘 아는 건, 집현전 학자들이겠고.”

“그건 확실하지.”

기업은 애초에 있지도 않던 거라서 다른 부서에 넘기지 못하고, 집현전에서 기업의 존재와 규제, 통제 방안에 대해서 연구해 왔었다.

만약 기업법을 만든다면, 집현전 학자들이 제격이지.

“그럼...”

“음...”

셋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시간 죽이기 용으로 시시콜콜하게 시작된 논의가, 어째 꽤나 거창해졌다.

결론은 조선의 모든 사법기관과 호조, 집현전 관원까지 끼어들어야,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뜻.

지방에 율관을 파견해,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적당히 덜어내고, 추가한 통합사법기관이 탄생해야 할 거다.

수령의 한 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쪽 팔에 대해서도 혀를 놀려봐야 하지 않겠나.

“흐음... 어쩌면 용연군 대감께서 하는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렇지 않겠나?”

“맞지. 맞지.”

셋은 혹여나 누가 들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귓속말 하듯 소곤거렸다.

북방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대충 감이 잡히지 않나.

북방에서 시작된 군제개혁이 조선내지로 흘러들어오게 되면...

‘어쩌면 수령은 군사권마저 빼앗기게 될 지도 모르겠군.’

‘사법권과 군사권이라는 양팔이 잘린 수령은 몸통만 남아서 행정권만 가지게 될 건데...’

‘이걸 감당할 수 있나?’

셋은 입은 다물고, 눈빛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던 기존 기조는 완전히 내다버리고, 예전 조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초거대조정이 탄생하는 건데...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세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모양인데?’

‘호조에 있는 친우들에게 물어봐야 되나.’

‘내 예상보다도, 관리들을 더 많이 충원한 모양이야.’

셋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입가가 들렸다.

“흐흐...”

“헤헤.”

녹봉이야 호조관원들이 생각할 문제지, 자신들이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니잖나.

그저 자리가 많이 늘어나면 그만큼 잘릴 가능성은 줄어들고, 반대로 승진의 가능성은 높아지지 않겠나.

신입관리인 셋은 자기도 모르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나왔다.

*****

조선의 궁궐은 편전을 중심으로 해서, 앞쪽은 조정신료들이 사용하는 영역, 뒤쪽은 왕의 사적영역에 속했다.

훗날 문종이 될 왕세자가 등극하자. 궁 밖에 살던 세자를 궁 안으로 끌어왔고, 자연스레 세자가 머물 동궁이 조성됐다.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자선당, 승화당, 계조당이 일제히 올라가고 있는 중이지.

건물 지을 인력과 기술은 넘쳐나고, 지금 조선은 원래 역사의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지 않나.

국왕의 개인재산이라 할 수 있는 내수별좌內需別坐의 재원만으로, 동궁을 지을 수 있을 정도.

다른 것 다 떠나서. 내수별좌가 소유한 천일염전에서 나오는 소금만 내다팔아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었으니까.

그런 돈의 힘을 빌어서, 세종은 편전 뒤편에 개인 집무실로 써먹을 작은 궁을 새롭게 건설했다.

원래 역사에는 있지도 않던 궁이지만, 뭐 어떤가. 왕이 짓고 싶으면 짓는 거지.

세종의 취향이 잔뜩 반영된 탓일까?

궁은 오롯이 석재와 벽돌로만 이뤄진 북방식 형태를 하고 있었고, 하얗게 회칠한 벽은 창문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벽면에 잔뜩 달려 있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북방식 가옥의 형태를 취했는데, 창문을 저렇게 많이 달면 이치에 맞지 않지만... 세종이 저렇게 하겠다는 데 누가 말리겠나.

세종의 천재성은 이런 쪽에서도 발휘되는지, 이 궁은 세종이 직접 설계한 탓에 꽤나 애착을 가지고 있었지.

집무실 안에 조선에선 생소한 벽난로가 두 개나 설치되어 있던 탓일까? 집무실로 모여든 대신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고, 막 끓인 따스한 차를 마시며 자기도 모르게 노곤해졌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전하...!”

“후흡... 편히 앉게.”

대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지만, 세종은 휙휙 손을 내저으며 가쁜 숨을 내뱉었다.

앞의 트인 가죽 슬리퍼를 신고, 한손에는 쇳덩이를 이어붙인 아령을 들고, 막 운동을 하다왔는지 편한 복장을 한 세종.

예법을 어긋난 걸 넘어서 아예 초월해 버린 모습을 보며, 대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삼켰다.

다만... 이런 모습을 한두번 본 것도 아니고, 말싸움을 해봐야 이길 수도 없는데 입 아프게 싸울 필요 있나.

다들 “끄응.” 앓는 소리만 내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후.후.” 가쁜 호흡을 내쉬던 세종은 쿵. 아령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상석에 편히 앉았다.

그래도 왕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아령에는 멋들어진 이화문양이 박혀 있었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들 사락사락 보고서를 넘기는 세종의 손길에만 집중했다.

“내용은 괜찮군.”

“...”

훈민정음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던 윤회는, 속으로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종이 살펴본 보고서는, 훗날 용비어천가라 불릴 물건이었으니까.

훈민정음이 창제가 앞당겨졌으니, 자연스럽게 용비어천가의 집필 또한 앞당겨지기 마련.

명이 망하고 자주화가 시작됨에 따라, 원래 역사와 내용이 달라지긴 했지만... 얼추 비슷하게 완성됐다.

“혜례본과 언해본은 완성이 얼마 안 남았지?”

“예. 전하.”

혜례분은 훈민정음을 한자로 풀이한 해설서. 언해본은 훈민정음만 이용해서 풀이한 해설서를 의미했는데, 지금 역사에선 죄다 한 번에 진행 중이었다.

“조선정운正韻은 어떠한가?”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듯 싶으나... 내년 초에는 완성할 수 있습니다.”

“흐음.”

세종은 그간 꾸준히 보고를 받아왔기에, 별다른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만큼 조선정운은 중요하니까.

조선은 땅은 작지만 역사는 오래되어, 이 시대에도 사투리 비슷한 게 존재했다.

똑같은 천天이라는 글자를 남부지방에선 “뎐,뗜.” 북부지방에선 “첸,틴.”이라고 발음해 왔지. 중세국어이기도 하고,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

이걸 해결하기 위해 한성의 표준발음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게 바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조선정운이었다.

달리 말하면 이건 수많은 한자를 죄다 한글발음으로 표기한 사전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원래 역사에선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여,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한자사전 비슷한 책을 간행했다.

다만 이건 중국 홍무제 때 만들어진 홍무정운洪武正韻에 기반 하여 만들어졌는데, 홍무정운은 중국의 표준음을 정하려고 만든 사전이다.

한자를 발음하기 위해, 한자로 발음기호를 달아 놓았으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조선에 제대로 먹히기나 할까.

당연히 조선말과 중국말이 달라서,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

허나 지금 역사에서 만들어지는 조선정운은 동국정운과 완전히 반대라서, 만들어지면 모두가 곧장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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