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08화 (208/538)

208. 챕터31. 머무르다 (8)

“지금은 무리고 나중에 가볼 기회가 있을 겁니다.”

연오랑 또한 그저 히죽 웃으며 만류했다.

거긴 여기보다 더 추워서, 가면 개고생만 하다가 올 거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이 동쪽 동토의 대지까지 진출해야 했을까요?”

“음...”

연오랑의 질문에 세자는 다시금 고민에 빠졌고, 뒤에 시립하고 있던 이들 모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정에서도 옥신각신 말이 많았으니까.

“관리하기도 힘든데, 아무것도 없는 땅을 뭐 하러 차지 하냐?”라는 의견과.

“북방을 정복하고 여진을 복속시켰으면, 이 기회에 나머지 여진부족도 모두 굴복시키고 조선의 강역을 넓혀야 되지 않냐?”라는 의견이 첨해하게 대립했기 때문.

지금 시대는 과거에 비해 지구의 온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발해 시절에 잘나갔던 곳이라고 해도 지금은 농사도 제대로 짓기 힘든 동토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니까.

굳이 돈이 되는 걸 찾고 또 찾아보자면...

“모피나 녹용...?”

세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확신 없는 말투로 답을 했다.

‘사슴농장이 꽤나 인상 깊었나보네.’

연오랑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히죽 웃고 말았다.

평주 인근에는 목마장만큼이나 사슴농장이 많았고, 그곳에선 하나같이 죄다 녹용을 뽑아내고 있었다.

녹용이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미친 듯이 늘어났지.

그래도 크게 문제는 안 될 거다.

중국산 녹용은 생산량이 많지 않고, 약재의 효력은 이곳 북방산이 훨씬 나을 테니... 지금은 인삼과 함께 주요 약재수출품 자리를 은근히 꿰차고 있는 중이지.

다만 이것만으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모피도 마찬가지.’

조선은 만주를 정복했지만, 만주땅 전체를 조선내지처럼 만든 게 아니다.

점점이 뿌려진 도시만 존재할 뿐,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여전히 미개척지가 넘쳐난다. 비록 그 땅에 여진부족이 살지 않더라도, 야생동물은 여전히 존재하지.

착호군과 여진사냥꾼들은 힘을 합쳐서, 조선내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맹수4종세트 퇴치작업을 진행 중인데... 땅이 워낙 넓은 터라 이 작업이 언제 끝나게 될지 감히 예상조차 못할 정도.

결론은 굳이 동쪽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어차피 모피는 넘쳐난다는 뜻이다.

“음... 뭐지? 그럼.”

세자는 혼자 중얼거렸고, 연오랑은 친절히 답을 던져줬다.

“나무입니다. 저하.”

“나무요? 나무는 어차피 많지 않나요?”

“언제까지고 많진 않을 테니까요.”

“으음...”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세자는 끙끙 앓는 표정을 하면서 학사들과 연오랑을 번갈아 바라봤다.

목재의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시대엔 목재가 흡사 강철마냥, 산업의 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뭐 하는 것마다 전부 나무가 필요하기 때문에,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조선 입장에선 하루가 다르게 나무가 줄어들고 있지.

그럼에도 지금 당장은 워낙 숲과 산이 많아서 문제가 없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민둥산이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측면에서 북방의 만주땅을 집어삼킨 건, 천만다행인 일.

송주(길림)이 그 대표적인 곳으로, 연오랑이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송주에 조선소를 건설하고 배를 찍어내지 않았나.

굳이 배까지 만들진 않더라도, 거기서 베어낸 목재가 송화강을 타고 내려와 조선내지까지 흘러들어왔지.

“그런데도 동쪽으로...?”

“문제는 배를 만들 때 필요한 목재를 수급하기 위해선, 조선내지의 나무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설주의 나무가 가장 질이 좋은 편이지요.”

학사 중 누군가의 의문에, 연오랑은 친절히 답을 해줬다.

배 하나 만들 때 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건,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

원래 역사에서도 판옥선의 필요성을 외치면서, 반대 의견으로 산림자원이 작살난다는 말이 많았으니까.

그만큼 배를 만들 때는 작은 나무 말고 큰 나무가 필요했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림이 필수적이지.

“아...!”

“예. 설주 일대는 지금껏 사람 손이 닿아본 적이 없는, 거목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 어디인지 감히 추정할 수도 없지요.”

“그렇겠네요.”

추운 날씨는 둘째 치고, 야인여진의 문명수준에서 연해주와 동시베리아의 목재를 얼마나 써먹었겠나.

“저기 신형전함이 보이십니까.”

“예!”

연오랑이 조산포구 한쪽에 산처럼 듬직하게 떠 있는 전선들을 가리키자, 세자 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형전함은 기존의 맹선, 심지어 신형수송선보다 더 큰데, 저렇게 큰 배를 만들 때 나무가 얼마나 많이 들어갈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음...”

“예. 설주와 북방의 산림지대가 아니면, 애초에 엄두 낼 수도 없지요.”

배라는 것도 어찌됐건 소모품이고, 한번 만들고 끝이 아니잖나.

수리를 하든 꾸준히 만들든, 어찌됐건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법. 원재료의 공급처가 없으면, 중간에 흐지부지되기 마련이다.

원래 역사에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의 산림자원은 급격하게 메말랐고, 이들은 그 대안책으로 아메리카로 눈을 돌렸다.

신대륙의 목재를 이용해서 더 큰 배를 만들기 시작한 거지.

조선 입장에선 신대륙이 곧 만주와 연해주, 동시베리아인 셈이고, 연오랑은 유럽보다 일찍 이러한 흐름을 이끌려고 계획한 거지.

“특히나 돛대가 중요합니다.”

“...?”

“배의 크기가 커질수록, 더 크고 많은 돛을 달아야 하고, 그 큰 돛이 버티려면 더욱더 큰 돛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허면 그 돛대가 하나로 된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짜깁기한 게 더 튼튼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로 된 게 더 튼튼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그런 돛대로 쓸 만한 나무를 내지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연오랑의 물음에 세자는 답을 알지 못해 학사들을 바라봤고, 학사들 모두 자신감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신형전함인 범선에 쓰이는 돛대는 그 지름만 30~50센티를 넘어가고, 높이만 해도 수십미터를 넘어간다.

이런 돛대를 하나의 나무로 만들려면 수십년동안 자란 거목이 필요한데, 조선내지에서 이 수요를 어떻게 다 감당하겠는가.

유럽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를 겪었고, 영국은 미국제 목재를 이용해 돛대를 만들었다면 프랑스는 거목 두 개를 짜깁기 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전자가 더 효과가 좋았지.

“계획조림이 필요한 이유 중에는 이것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2세대에 걸쳐 나무를 키워야 선박에 쓸만한 목재를 구할 수 있는데, 앞날을 보지 않고 나무를 마구 베어내면 미래의 부족분을 감당할 수 없겠지요.”

“예...”

지금 역사에서 조선은 원래 역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배를 만들고 있는데, 당장은 산림자원이 넘쳐나서 문제없겠지만 한 세대만 지나도 황폐해 질 거다.

“미친 듯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배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걸 대비해서라도 미리미리 다른 공급처를 찾아서, 조선내지의 산림을 보존해야하는 법.

“하지만 동쪽 땅은 사정이 다르지요. 이 땅은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땅이고,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광활한 산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십,수백년간 나무를 베어내도 끄떡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죠...?”

세자는 동쪽, 설주에 대한 이야기를 소문으로만 들어봤지만, 얼추 이해가 됐다.

모두가 하나 같이 하는 말이, 동쪽과 동북쪽에 존재하는 거라고는 눈과 얼음, 나무뿐이라는 말을 수도없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연해주를 개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동시베리아 전체를 조선의 강역으로 만들 수 있겠지.’

연오랑은 속마음을 숨기고서, 조용히 미래를 그려봤다.

이 시대엔 시베리아의 광물자원, 유전, 천연가스 등을 써먹을 수 없는데도, 그가 굳이 연해주로 나아간 이유는 툰드라 지대에 끝도 없이 깔린 나무 때문.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한발을 내딛어 꿀을 빨아먹고 나면, 그가 죽고 나서도 조선은 꿀맛을 포기하지 못하고 연해주와 동시베리아를 갉아 먹을 거다.

먼 미래에 만주땅에도 사람이 가득차서 북쪽으로 올라갈 일이 생긴다면, 설주(블라디보스토크)가 지금처럼 계속 성장해서 안정적인 목재 공급처가 된다면,

수세기 후. 러시아의 모피사냥꾼들이 시베리아를 작살내며 동쪽으로 밀려올 때. 조선은 반대로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며 시베리아를 잠식하게 될 거다.

중앙시베리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만주, 연해주와 닿아 있는 동시베리아만큼은 확실히 조선의 강역으로 만들 수 있겠지.

‘앞으로도 2,3백년은 남은 먼 미래지만, 지금부터 삽을 떠놓아서 나쁠 건 없잖아? 게다가 지금 당장에도 범선을 만들려면 나무가 필요하고 말이야.’

연오랑은 먼 미래를 애써 머릿속에 지우고, 세자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국은 어째서 이렇게 많은 선박과 신형선박, 신형전함을 만들어야 할까요?”

“음...?”

“흐음.”

“크흠.”

세자는 다시금 물음표의 바다에 빠졌고, 뒤에 있던 학사들 모두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또한 나름 조정에서 시끌시끌했던 문제이기 때문.

아직도 옛 기억을 벗어던지지 못한 노신들은 대외무역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지금 상태로도 충분한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할까?”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중국상인에게 뜯어 먹히지 않고, 왜구를 방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군력을 증강해야한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섞여 있었으니까.

“보시죠.”

연오랑은 정자에서 훌쩍 뛰어내려, 정자 앞 흙바닥으로 걸음을 옮겨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따라 요상한 그림이 완성됐는데, 꼭 동아시아의 지도를 닮았다.

“이게 조선, 이건 중국, 이건 일본입니다.”

“아하.”

하나씩 콕콕 집어 부르자, 모두는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이 중국을 두들겨 팬 게 벌써 몇년 전 일이다.

이제 관리들의 시야도 조선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를 관조할 수 있게 됐고, 정확한 지도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위치와 지명 정도는 알 수준이 됐지.

“여기는 북원, 여기는 올량합 3위, 북방신도시 북쪽과 설주의 동쪽은 미개척지입니다.”

연오랑은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를 쿡쿡 찍으며 말을 이어갔다.

“허면... 앞으로 아국이 어디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음...”

세자는 흙지도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굳이...?”

“흐음.”

학사들은 물론이고, 연오랑에게 보고하러 왔던 이들마저도 까치발을 들고 힐끔힐끔 살펴보며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눴다.

“애매하네요?”

“그렇지요. 애매합니다. 동쪽은 매개척지이니 그냥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면 될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들인 노력에 비해 얻을 수익은 적겠네요?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이쪽은 목재와 모피 말고는 딱히 얻을 게 없으니까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 맞습니다.”

연오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자는 정답을 맞췄다는 듯 빙긋 웃으며 박수를 쳤다.

“북쪽은 어떻습니까?”

“북쪽도 동쪽과 마찬가지일 테고. 그곳은 그 뿌리를 찾기 힘든 여진이나 몽골일파가 살고 있겠지요. 아국은 그들을 백성으로 받아들여 귀화시켜야 할 거고...”

학사 중 한명이 세자를 대신해 답을 했다.

“서쪽은?”

“올량합 3위와 요동이 막고 있는데...”

세자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학사들 중 한명은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뭔데. 말해봐.”

“올량합 3위는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아국에 종속되게 될 것이고, 요동 또한 아국에게 토지를 할양하면서 세가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다만 요동에게 무력을 쓰기에는 명분도, 필요성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연오랑은 자신만만한 대답의 행간을 읽고서,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너 착호군 전역병이냐?”

“예. 1기 출신입니다.”

“오호. 역시.”

“헤헤. 크흠.”

연오랑이 친한 척을 하자, 청년학사는 괜히 입가가 올라가며 씰룩거렸다.

‘확실히 중국을 두들겨 패준 보람이 있네. 시강원 학사가 저런 말을 대놓고 할 정도면, 이젠 중화사상이나 사대주의 따위를 들먹이는 조정신료들이 없다는 거잖아?’

연오랑은 속으로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뿌듯해졌다.

운석핵꿀밤으로 인해 중화사상은 쪼개졌지만, 그럼에도 명나라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신료들이 꽤 존재했었다.

허나 운석핵꿀밤 세대가 조정의 근간이 되어 전면에 등장하고, 조선이 중국과 여진을 다 두들겨 패버리자, 이제 완전히 속국의식에서 벗어난 모양이다.

그러니 요동을 놓고 “무력으로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해봐야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라는 건방진 의견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요동을 처리하는 계획은...”

“그만.”

연오랑은 말을 덧붙이려는 학사의 입을 다물게 하고선,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요동정복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단계에 있는데, 그걸 굳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꺼낼 필요가 있나. 그것도 아직 어린 세자가 듣기에는 때가 이르다.

“올량합 3위를 정복한들 북원과 마주하게 될 텐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요동 또한 마찬가지인 상황. 결론은 육지를 통해 뻗어나기는 더 이상 힘들다는 뜻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저하.”

“예? 예. 그렇죠.”

세자는 ‘요동을 처리한다고? 뭘 어떻게?’라는 의문에 빠져 있다가, 연오랑이 부르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허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바다로 나가야겠죠? 아... 그래서!?”

세자는 금세 답을 찾아냈는지, 스스로 놀라서 감탄했다.

“육지로 나갈 수 없으니 바다로 나가야만 하고, 바다로 나가기 위해선 배가 필요하고, 배가 필요하기 때문에 목재 수급처인 북방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역시 이것도 하나로 이어진 거겠죠?”

“예. 그렇습니다.”

세자는 허공에 원을 빙빙 그리며 뿌듯해 했고, 연오랑 뿐만 아니라 학사들 모두 그 귀여운 모습에 얼굴이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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