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챕터32. 서쪽으로 (1)
“해군사령부라...”
“정확히는 해군 2함대사령부라고 하더군.”
“허허. 2함대라...”
‘해군이라... 단어 하나만으로, 바뀐 수군의 성격이 바로 드러나는군.’
자기도 모르게 들뜬 기색이 역력한 박홍신의 대답을 받으며, 최윤덕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조선은 기선군이라는 수군이 있었고, 기존의 기선군은 연안방어와 조운운송만 할 뿐.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선군에서 해군으로 이름을 바꾼 이상, 이제부턴 바다로 나가겠다는 포부와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겨 있지 않나.
“어쩌면 북방의 신도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내지에 저렇게 큰 수군 병영이 생긴 게 놀랍지 않나?”
“놀랍지. 사령부라는 말이 낯설기도 하고.”
“그것도 그렇지.”
‘예전을 생각하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최윤덕은 박홍신의 대답을 받으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 시기 조선군은 지방의 육군 영진군, 수군 기선군, 12사에서 10위로 바뀐 중앙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도에 육군은 병마절도사, 수군은 수군절도사라는 최고 군지휘관이 파견되고, 이들이 머무는 곳을 흔히 병영이라 불렀다.
다만 병영이라고는 허나... 군 지휘본부의 역할을 했지, 지방군 전체가 모여서 머무는 숙소가 있는 건 아니었다.
대신 요충지에 진鎭, 포浦, 영營 등으로 이름 붙인 소규모 군사주둔지를 만들었고, 군역을 치르는 군병들은 이곳에서 훈련 및 근무를 하거나 잡일을 했다.
이런 식으로 분산 배치한 건, 왜구나 여진으로부터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 요충지를 빼놓지 않고 전부 방어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가 있지만... 속을 까놓고 보면 결국은 돈이 없어서였다.
지난날 조정의 세수가 통일되지 못한 것처럼, 군 제정 또한 통일되지 못한 건 마찬가지.
각 군영에선 조정의 지원도 받지만, 대부분의 재원을 인근 군현에서 충당했다.
지방관아는 조정에 올려 보내는 세수 외에 지방관아에서 쓸 재원을 따로 걷어야 하는데...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재수 없게 군진이 옆에 붙어 있으면, 세수가 반토막 난다.
당연히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고, 결국 군역을 치르는 군병들은 농사를 짓거나, 자염을 만들어 팔거나, 해산물이나 어패류를 채집하고, 하다못해 나무라도 베어서 땔감을 만들어 팔 정도였지.
또 다른 문제는 조선의 물류체계와 유통망이 건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착호군은 이동하는 도시이고, 이 도시를 지탱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보급품이 필요했다.
착호군은 오히려 이 약점을 반대로 이용해서, 머물고 지나가는 곳마다 도로와 수로, 다리를 건설하며 유통망과 교역망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었지.
헌데 분산 배치되지 않고 한 곳에 뭉쳐 있는 군진과, 착호군 주둔지가 다를 게 뭔가.
군병이 모여 있는 군진은 생산 없이 오롯이 소비만 하는 도시와 다름없고,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근 군현에서 지원 받는 걸로는 애초에 유지조차 할 수 없는 거지.
‘헌데 그걸 해냈다. 공전도, 군자전도, 지방관아의 지원도 없이. 오롯이 조정의 세수로만.’
오랜 시간 착호군과 함께 해왔음에도, 최윤덕과 박홍신이 놀람을 금치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제 조선은 고정된 통합군영을 유지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됐고, 거대한 도시가 소비하는 물량을 보급 및 지원할 정도의 유통망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이런 곳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거지.’
“2함대사령부라...”
“다른 사령부는 만들어졌고, 1함대사령부를 만들 곳은 아직 못 정했지.”
“음...”
최윤덕은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해군에 대한 사안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터라, 박홍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경청했다.
기선군이 신기선군으로 다시 해군으로 바뀌는 동안, 해군 갑사의 수는 이만오천명까지 불어났다.
동시에 기존의 많은 수군영이 폐쇄되고, 함대사령부로 통합.
수군영들은 어쩌면 본래의 목적인 민간포구나 조운포구로서의 성격만 남게 됐다.
2함대는 평택, 3함대는 목포, 4함대는 울산, 5함대는 원산에 위치했는데, 3,4함대 사령부는 아직 완공 전이고, 1함대 사령부는 아직 삽을 뜨지도 못한 상태였지.
“그럼 1함대사령부는 용연에 만들어 질까?”
“그건 힘들 걸세.”
최윤덕은 지나가면서 봤던 용연항구를 떠올렸지만, 박홍신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용연항구는 천혜의 입지를 지니고 있지만, 거긴 이미 중국상선이 오가는 곳이다.
조선은 여전히 중국을 견제했고, 어차피 알려질 테지만... 조선의 신형함선에 외국인의 접근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해군을 창설하면서 군항과 민항을 완전히 분리했고, 나주가 아닌 목포에, 동래가 아닌 울산에 군항을 건설한 거고.
“그럼... 1함대사령부는 평안도에 만들어지겠군?”
“그렇지 않겠나? 평안도에는 기존 기선군이 사용하던 수군영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아마... 수군 갑사. 아니군. 해군 갑사가 더 충원되면 평안도의 수군영들을 해체하고 함대사령부로 통합할 걸세.”
“...”
최윤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봤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 수군의 대부분은 삼남지방에 주둔하고 있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난 후부턴, 수백, 수천명씩 왜구들이 쳐들어오는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였고, 대다수는 배 한두척씩 끌고 와서 털어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건 약탈이라기 보단 해상강도에 더 가까웠고, 이렇게 자잘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선 삼남지방에 넓게 퍼져서 지키는 게 효율적이었으니까.
허나 지금 역사에선 평안도와 황해도에도 적지 않은 수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까닭은 사무역을 시작한 의주 때문.
서해 먼 바다에 나가는 건 힘들더라도, 조선은 해상무역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발해만 인근까지는 나가서 순찰을 해야 했지.
오래전, 세종이 “요동과 산동의 바닷길을 재패하는 게 어떤가?”라는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기존의 기선군병보다 더 많은 해군 갑사를 키울 텐데... 그럼 사령부마다 대체 몇 명이 주둔하는 건지.’
최윤덕은 머릿속에 다시금 지도를 그리며, 전에 없던 거대 항구도시가 세워지는 걸 상상해봤다.
해안가에 사령부만 달랑 있어봐야 유지도 안 될 테니, 사령부를 끼고 군병들을 상대로 할 도시가 건설될 텐데... 그 크기가 얼마나 커질지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육군은 어떤가? 나는 육군 소식은 몰라서 말일세.”
“그게...”
이번엔 반대로 박홍신이 최윤덕에게 자문을 구했다.
기선군이 해군으로 바뀐 것처럼, 지방의 영진군과 중앙군이 통합된 육군이 창설되는 건 당연한 수순.
기존에는 문,무관의 혼용은 물론이고, 기선군과 영진군 무관끼리의 직위혼용도 있었는데, 이젠 육군과 해군 무관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북방의 해서여진 전쟁을 통해서 합동작전을 펼쳐왔지만, 어디까지나 합동작전이었지 육,해군 소속이 섞인 건 아니었던 것.
“기존의 병영은 육군사령부. 아마도 사단사령부로 바뀔 것 같은데... 아직 사령부 건설은 안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네. 당장은 북방 강역을 정비하는 게 우선이고, 내지는 지금 당장 급한 게 아니니까.”
“음... 착호군 때문인가?”
“맞네.”
박홍신은 최윤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재깍 알아차렸다.
착호군이 창설된 후론, 사실상 조선 내지에는 군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군병보다 훨씬 나은 착호군이 돌아다니는데, 굳이 영진군 군병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없잖아? 그치들은 군역을 하러 끌려와선 착호보조군과 함께 노역을 담당했었다.
그 후. 착호군병이 전역하여 갑사로 재임용되자, 그 인원수에 맞춰 영진군의 축소가 서서히 진행됐다.
해군 갑사의 충원에 따라서 수군호가 해체되어 민호로 전환된 것처럼, 군호 또한 해체되어 군역의 의무가 없는 민호로 전환되는 중이지.
“지금도 정병의 인원과 갑사의 인원이 엇비슷한데, 이 추세로 계속 간다면 3,4년 후에는 정병이 없어질지도 모르겠군.”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겠지.”
둘은 연오랑이 꿈꾸는 군제개혁을 어렴풋이 알고 있음에도, 지금도 진행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정말 별 탈 없이 이게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쉽사리 지우지 못했다.
궁극적으로는 사시사철 훈련하는 상비군.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운영되는 군대로 변모하는 거니까.
과연 이 무지막지한 군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음...”
“흐음...”
둘이 어렴풋이 손에 닿을 것 같은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말을 타고 달려온 부관이 재깍 목청을 높였다.
“사단장님. 승선이 끝났습니다.”
“좋아. 난 먼저 가보겠네.”
최윤덕은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렸고.
“산동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게. 곧 다음 연대를 이끌고 갈 테니까.”
박홍신은 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
“오...”
“과연...!”
“저렇게 큰 배라니! 우리 상선보다 훨씬 크군.”
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는 포구 저편에서, 옷자락을 펄럭이며 감탄을 토해내는 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뭉쳐서 웅성거렸다.
수평선 저편에서 등장한 4척의 함선은 서서히 몸집을 불려갔고, 포구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길게 그림자를 그리며 포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조선이 저런 배를 만들 수 있었나?’
‘조선은 바다로 나온 적이 없지 않나.’
모두는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뭐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각오로 매섭게 눈을 밝혔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싶지만... 부둣가를 완전히 감싸듯 경계를 서고 있는 기병들 때문에 접근하기도 부담스러웠다.
산동에선 찾아보기 힘든 검은두정갑을 껴입은 이들이 잔뜩 몰려다니면서 잡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는데... 무장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활과 기창을 들었으면 그 기세에 눌려서 일꾼들이 죄다 도망갔을 거다.
일꾼들뿐이겠는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가슴도 돌멩이가 얹힌 듯 답답해졌다.
“조선군을 불러들인 게 잘한 선택이었을까요. 회주님.”
“...”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으나 대답은 없었다.
바닷바람에 맞아 새하얀 수염을 날리는 노인은, 대답 대신 그저 포구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동 반도 북쪽의 거대포구인 연태포구.
그 일대를 주름 잡는 거물이자, 유서 깊은 호족이며, 연태상인회의 회주, 연태 공가의 가주.
공표는 포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선군 주둔지를 보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릴 적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선군이 세운 게르는, 그의 유년기를 무참히 짓밟았던 몽골군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노인은 피 묻은 기억을 애써 밀어내며, 흡사 변명하듯 속으로 대답을 토해냈다.
‘정말로 잘한 선택일까?’
속으로 다시금 되물어보지만... 두 번, 세 번 돌이켜봐도 마찬가지의 선택지만 남을 뿐.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
“후우...”
공표는 마른 한숨을 토해내며, 번뇌와 고민을 흘려보냈다.
명나라가 망하기 전, 산동은 꽤나 잘나가던 지역이었다.
산동 자체의 물산도 부족하지 않고, 남경과 북평을 연결하는 중간 지역에 위치하여 교역도 활발했고,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물산을 요동으로 보내면서 덩달아 덩치를 불릴 수 있었으니까.
허나 정난군과 황제군이 싸우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에 끼어 주전장이 된 산동은 만신창이가 됐다.
끝내 운석핵꿀밤으로 명나라가 망해버렸고, 그 폐허 속에서 산동인들은 악착같이 재기를 시작했지.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산동반도 해안가의 상인 집안 및 연합체인 상인회였으나... 사정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던 강남상인들이, 북방무역에 눈을 돌려 조선과 요동을 두드리기 시작.
강남-산동-요동,조선으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쥐고서, 중계무역으로 돈을 벌던 산동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타격이었다.
여기에 조선이 스멀스멀 동북방 무역의 주도권을 가져가더니, 끝내 여진을 굴복시키고, 요동의 땅을 빼앗고, 우량카이 3위와의 무역마저도 빼앗아버렸다.
이제 조선이 “내가 너희를 강남상인만큼 우대해야할 이유가 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산동상인 입장에선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지.
‘그때 조선을 지원한 게 실수였나?’
수십번 되물은 질문이지만, 언제나 대답은 같았다.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으니까.
지난날 산동이 조선을 지원했지만, 속내는 북평부를 위협해서 군사적 위기를 모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땐 먼 미래를 생각하지 못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으니까.
나아가 조선이 발톱을 숨기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거용관을 완전히 무너뜨려 북방 통로를 열어버리고, 수만명의 북평부 군사를 쓸어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지.
이로 인해 산동의 권력추가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세발 달린 솥처럼, 산동은 병권과 무역권, 행정권을 세 세력이 나눠가진 상태였는데... 북평부의 병력에 구멍이 생긴 틈을 타서, 병권을 쥔 공청 파벌이 급격하게 세를 불려버린 거지.
결국 무역권을 쥔 상인세력 장민 파벌과 행정권과 내륙호족의 지지를 받는 영기옥 파벌은 힘을 합쳐서 대응해야 했는데... 뜬금없이 튀어나온 조선이 은밀한 유혹을 던졌다.
‘거부할 수 있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지만, 역시나 대답은 불가다.
“그나마 기존 포구를 내주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희가 당한 걸까요?”
침묵에 잠겨 생각을 거듭하고 있던 공표를 대신해서, 상인회의 상단주 중 한명이 질문을 던졌다.
“모르겠군.”
“맞네. 잘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저희가 조선의 관료들을 얕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두서없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미 손에서 떠난 일 아닌가.
더 고민해봐야 머리만 아프다.
“배가 정박했으니, 이만 내려 가지.”
공표는 장내를 정리하며 그리 말을 했고.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이 알려온 바로는 백호장군이 직접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괜한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가보는 게 좋겠지요.”
“크음...”
“끙...”
누군가의 말에, 상인들 모두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