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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213화 (213/538)

213. 챕터32. 서쪽으로 (4)

까놓고 말해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조선상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선군이 돌아다는 것도 탐탁지 않은데, 조선인 일꾼까지 데려오는 게 말이 되는가.

날품 파는 이들과 잡일할 일꾼은 산동에도 넘쳐난다.

하지만 조선군과 조선일꾼을 데려와야 하는 속내는 따로 있고, 이걸 바라고 요청한 건 산동상인과 관리 파벌이니...

얘들은 그냥 와서 투정부리는 거다.

‘그래서 노인네들이 안 오고 애들을 보낸 거겠지. 이제 와서 쓸데없는 자존심은. 쯧쯧.’

연오랑은 피식 웃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언제 준비될지 궁금한 모양이군?”

“예...”

“이게 보챈다고 될 일이냐? 아직 한참 남았다. 포구가 완성되려면 몇 달은 걸릴 테니, 지금처럼 그저 느긋하게 있어라. 이상한 티 내지 말고, 그냥 장사나 해.”

“...”

“일단 포구를 만들어야 말을 데려오든 말든 할 거 아냐. 너희 포구를 열어줄 테냐? 설령 그렇다고 해도 군마를 옮기고 기력을 회복시킬만한 땅도 없잖아?”

“아...!”

매섭게 꼬집고 있지만... 한편으론 공청 파벌에게 던져줄 변명을 대신 말해주는 터라, 상단 후계자들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중국의 포구는 중국식 상선에 맞춰 만들어져 있고, 위태위태한 배다리를 걸쳐놓고 죄다 사람 손으로 짐을 옮기는 방식을 취했다.

조선에 새로 만들고 있는 항구처럼, 통일된 규격의 부두와 나름의 기계식 상하역장치가 있는 게 아니지.

헌데 배로 싣고 온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서 대체 어느 세월에 다 옮기겠나. 그냥 처음부터 제대로 된 포구와 부두를 만드는 게 낫다.

“또 너희가 당장 말을 받는다고 해서, 수천마리의 말을 수용할 목마장이 있어? 너희가 관리방법을 제대로 알기나 하냐? 설마 그냥 마구간만 지어서 대충 넣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더불어 다닥다닥 붙어서 며칠을 좁은 공간에 갇혀 오는데, 군마의 상태가 악화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

배에서 내렸다고 해서 바로 쌩쌩 달릴 수 있는 게 아니고, 나름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니... 포구 옆에 공터나 목마장은 필수다.

“그러니까 우리가 친절히 도와주는 거 아냐.”

“...”

“인부들도 마찬가지다. 포구를 건설함에 있어 너희의 재물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지만, 반대로 아국 또한 투자했다. 우리 도움 없이, 그냥 너희끼리 할래?”

“...”

돈 이야기가 나오자 세 청년은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더니 고개를 냉큼 숙였다.

“이해했습니다. 대인.”

“오냐. 공청 파벌은 안 그래도 돈이 없어서 허덕거린다고 하던데, 여차하면 그쪽에서 포구건설 비용을 대라고 해라. 운송이 질질 끌리면 누구 손해가 제일 크겠냐?”

“옙!”

셋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조선특산물은 덩어리당 부피가 그리 크지 않아서, 얼마든지 지금처럼 옮길 수 있다.

상인 파벌은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으니, 군마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공청 파벌에게 강짜를 놓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서로 견제하지 말고, 그냥 느긋하게 너희 할 일이나 해라. 우린 우리 할 일을 할 테니까. 대신 내 일 좀 도와줘라.”

“어떤...?”

세 청년은 연오랑의 부탁에, 자기도 모르게 긴장해서 입가가 바싹바싹 말라갔지만...

“별 거 아냐. 그냥 이것저것 구하고 싶어서 말이지.”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품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

산동반도 북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항구. 연태. 그 곳의 터줏대감 중 하나인 연태 공가.

연태 공가는 지난날 수많은 부침을 겪었음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원나라 시절. 몽골인은 남송 출신인 강남인들을 남인이라 부르며 거의 노예 취급했다. 그나마 강북출신은 북인이라 부르며 남인보다 조금 낫게 대우했지만, 그래도 한족의 굴레를 벗을 순 없었지.

다만 원나라는 상인을 우대했기에, 연태 공가는 원나라에 기생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 후 명이 등장하고, 농민반란군 출신 홍무제는 나라의 기틀을 잡기 위해 유학을 익힌 사대부출신인 사족과 호족의 편의를 봐주며 지지를 얻어냈다.

이와 동시에 강남지방의 상인을 무섭게 찍어 누르고 찢어발겨서, 그 이권을 사족과 호족에게 넘겨줬지.

명이 원을 밀어내며 강북으로 올라오면서, 같은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럼에도 산동 상인들은 살아남았다.

요동으로 진출한 명군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산동상인의 명맥을 남겨뒀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연태 공가는 명에 기생하여 살아남았고, 명이 망하자 드디어 날개를 폈다.

지난날 핍박받던 세월을 보상받듯... 연태 공가를 비롯한 산동상인들은 해안 도시의 지배자가 되어, 단순한 상인이 아닌 권력자로 자리매김 한 거지.

그런 역사를 가진 만큼, 연태 공가의 장원은 거대했다.

말 그대로 거대하다는 표현 이외에는 다른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담벼락이 성벽처럼 장원을 감싸고, 장원 내의 정원은 산동의 명산인 태산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구릉과, 황하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인공수로가 가로질렀다.

담벼락 속에는 수백채의 전각이 자리 잡고 있었데, 궁궐을 본떠서 만든 내원과 외원에는 공가의 친인척들이 살았다.

가솔이 아닌 공가상단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공가상단을 호위하는 가병들은 흡사 외성처럼 만들어진 장원 외곽에 머물렀는데, 그 인원을 다 합치면 만여명에 이를 정도.

하나의 마을이자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아무리 사람 많고 땅 많은 중국이라고 한들, 이 정도 성세를 뽐내는 호족은 산동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허나 이 모든 것의 주인.

공가의 가주 공표는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햇살이 쏟아지는 정원 장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상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수십년.

항상 웃는 얼굴이 습관이 되어 얼굴의 주름까지 바꿔놨음에도, 그의 표정은 가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마가 그랬단 말이지?”

“예. 아버님. 아무래도 더 이상 자극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흐음...”

공표는 이름난 상인이라면 으레 들고 다니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손떼 묻은 주판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소문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애매하구나.”

“예...”

공표의 아들이자 공가의 후계자인 공형은, 아버지를 따라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을 가장 잘 아는 산동상인이지만, 그럼에도 연오랑에 대해서는 자세히 파악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산동상인조차도 조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으니까.

물론 전보다 훨씬 많은 물량과 수출상품이 쏟아졌으니, 당연히 조선이 내부정리를 끝내고 발전하고 있다는 건 안다.

다만 그 성장세가 얼마나 되는지, 착호군이라 불리는 이들이 정확히 뭔지, 조선 조정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던 것.

오래전. 조선이 압록강 너머 호주로 진출하면서, 중국상인들은 여진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졌다.

손바닥만한 의주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하면,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쫓아냈다.

사신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일개 상인세력의 요청과 입조를 조선조정이 받아줄 리가 없잖아? “넌 뭔데, 감히 건방지게 조선조정에 입조를 바라는 거냐?”라며 매몰차게 튕겨냈지.

결국 중국상인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의주상인, 아니면 의주로 파견 나온 조선관리 뿐이었는데...

이들은 조선조정이 무서워서 뇌물조차 제대로 안 받는 이들이라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한계가 있었지.

그럼에도 연오랑의 이름은 자주 오르내렸고, 반대로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온갖 소문이 따라다녔다.

그럼 어찌해야할까.

어떻게든 연오랑에게 딱 달라붙어서 이리저리 찔러보면서 성향을 파악하고, 그의 취향과 호불호를 알아내서 접근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던 것.

‘뇌물도 안 먹히고, 연회도 귀찮아하고, 여인도 마다하고, 재물조차 관심이 없다. 조선조정을 의식하기 때문일까?’

조선도 왕실이 있으니 왕실의 암투와 견제가 분명 있을 터, 부마의 신분이니 알아서 몸을 사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활동을 보면, 조선조정의 견제는 없다시피 하지 않나. 오히려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걸로 들었는데...’

조선조정이 그를 견제했다면, 애초에 산동으로 보내지도 않았을 거다.

‘고지식하고 청렴결백한 관리인가?’

청렴결백은 잘 모르겠다만, 고지식하지 않은 건 확실하다.

오히려 산동상인들보다 더 이재에 밝고, 중국인들 봐도 “저건 뭔가?”라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으니까.

‘그의 나이를 비춰보면 딱딱하기도 힘들 것 같고... 하는 행동을 보면 귄위적이지도 않다.’

연오랑은 조선기병과 함께 흙먼지를 마시며 돌아다녔고, 또 한편으론 웃통을 까고 맨땅을 밟으며 공사현장을 싸돌아다녔다.

이 모든 걸 지켜본 공표가 내린 결론은...

‘정말 모르겠군.’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는 거다.

그나마 다행 아닌 다행이라면... 그만 이런 심정이 아니라는 것.

공표를 비롯한 상인회만 뿐만 아니라, 영기옥의 관리파벌도, 공청의 군부파벌도 죄다 물을 먹고, 연오랑에게 휘둘리려 하고 있었다.

“공청의 방문요청도 무시했다고?”

“예. 뭐... 이런저런 수사가 붙어 있긴 했지만... “시건방지게 누구보고 오라 마라야? 보고 싶으면 네가 와라.”라고 했죠.”

“허허...”

공표는 공청의 일그러진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분해서 시뻘게진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음?”

“부마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건 무리일 듯 합니다. 그저 조약대로 움직이는 게 최선 아니겠습니까?”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연오랑을 떠올리며, 아들 공형은 조용히 살을 덧붙였다.

공형은 연오랑을 몇 번 만나지도 못했지만, 확실히 느낀 건 있었다.

이자는 산동상인은 물론이고, 산동 권력자들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자고로 상인이라면 흥정을 하는 게 몸에 배어있는 법.

사람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랏일에도 주고받는 게 있기 마련이니, 공적인 친분과 함께 사사로운 친분도 함께 형성되기 마련.

허나 연오랑은 애초에 흥정 자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고, “너흰 닥치고 내 말대로 해라.”라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던 거지.

“음... 네가 느끼기에 그러했느냐?”

“예.”

공표는 공형의 안목을 믿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공형이 비록 나이를 그리 많이 먹지 않았지만, 명이 망한 후 벌어진 혼란기를 살아오며 천하가 좁다하고 배를 타고 돌아다녔다.

녀석이 주도한 사업과 상행이 한두번이 아니니, 눈썰미는 충분히 믿을 만 했다.

‘따라갈 수밖에 없나...’

공표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혀를 찼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만약 연오랑과 조선이 산동상인의 손을 잡지 않고, 공청파벌과 손을 잡아버린다면?

그땐 정말 다 끝이니까.

‘조선이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이미 밀약을 맺고, 조차租借라는 보도 듣도 못한 방식으로 항구를 내어줬는데,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진 않을 터... 그럼에도 부담스러운 건 여전하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싸운다면...’

상인이라면 항상 최악을 가정해야 하니, 혹시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묻고 말았다.

“조선군은 어떤 것 같으냐?”

“저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싸워선 안 될 겁니다. 애초에 그걸 기대하고서 조선군을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흐음...”

손을 내저으며 단언하는 공형을 보며, 공표는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가병과 비교해도?”

“절대 안 됩니다.”

혹시나 싶어 다시금 되물어보지만, 철벽같은 대답에 막히고 말았다.

‘조선기병과 싸운다고? 택도 없는 소리다.’

공형은 속마음을 토해내듯,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명이 망하고 연태 공가가 스스로 일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공가는 가병을 늘리고 군병마냥 무장을 시켰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바다에 나가면 모두가 친구이자 적 아닌가.

허나 나름 싸움질을 경험했다고 자부하는 공형조차도, 조선군만큼 절도 있는 군기로 무장한 이들은 본적이 없다.

생전 처음 보는 주둔지를 각을 딱딱 맞춰서 건설하고, 목책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것을 만들어 놨다.

생전 처음 본 게르가 오히려 익숙할 정도였지.

주둔지 안을 들어가서 보진 못했지만, 그 안에 목욕탕과 한증막까지 따로 만들어놨다고 들었으니... 어째 조선군이 숙영하는 모습은 상행에 익숙한 자신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침마다 꼬박꼬박 나와서 도검과 창을 휘두르며 훈련하는 것도, 기병 수십, 수백이 꼬리를 물고 질주하며 어울리는 것도, 말 위에 올라타서 활을 쏘는 기사까지.

조선군이 하는 꼴을 보면, 옛 이야기로만 들었던 몽골군도 저보다는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몽골군마저 격파한 게 조선군 아닌가.’

이 시대의 여진은 중국이 보기엔 그저 귀찮게 구는 마적취급이었기에, 공형은 조선이 여진을 정복한 것보다 북원잔당을 때려잡고 몽골초원을 뚫고 간 게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하냐.”

“예.”

“기사騎射라...”

공표는 어릴 적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라, 작게 몸을 떨었다.

그는 원말명초 시대를 살았고, 명과 원이 싸우던 모습을 기억했다.

숙련된 기병을 육성하고 유지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질주하는 말 위에서 활을 쏴대는 건 더 어렵다.

그런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 군대를 이루고 있다? 이건 재앙이다. 당장 심혈을 기울여 키운 공가의 가병들도 그런 짓은 못하니까.

‘애초에 기병자체가 얼마 없고, 그 때문에 공청이 우리와 손을 잡고 항구를 열어주지 않았나.’

군문에 종사한 공청이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악수를 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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