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14화 (214/538)

214. 챕터32. 서쪽으로 (5)

그리고 공표의 생각이 맞았다.

중국의 기병전력은 원래 역사는 물론이고, 명나라 시절과 비교해도 택도 없을 정도로 바짝 줄어 있었다.

정난의 변 때. 열심히 키워놨던 기병전력은 반토막이 났고, 운석핵꿀밤으로 남아 있던 전력마저 사라졌다.

이후 조선의 북방진출과 북원과 오이라트의 남하로 말 무역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지.

시간이 흘러 몇해전부터는 완전히 말무역이 끊긴 상태.

중국내지에 목마장이 있지만 북쪽에 몰려 있었고, 그 땅은 이미 몽골에 의해 점령당하거나 치고 패고 싸우는 지역 아닌가.

공급이 수요를 절대 못 따라가는 상태에 이르렀다.

거기에 말의 수명은 대략 20~30년이고, 군마로 쓰면 5~6년 밖에 못 써먹으니... 지금에 이르러선 제대로 된 기병전력을 유지하는 지방과 세력이 없다시피 했다.

‘산동의 기병조차 다 긁어모아야 오천을 넘을까 말까 하지 않나.’

잘 나가는 연태 공가조차, 진짜 군마를 탄 기병은 백여명 정도 밖에 없으니... 더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이래서 조선이 군마 오천필을 판다는 말에, 공청 파벌은 눈이 뒤집혀서 냅다 손을 잡은 거고.

“게다가 조선기병이 완전히 무장한 것도 아니고, 지금껏 보여준 게 전부는 아닐 테고, 소문으로만 듣던 화포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공표의 목소리엔 아직 힘이 담겨 있었고, 공형은 혹시나 실수를 할까 우려되어 얼른 말을 이어 붙였다.

“가문의 가병을 동원해봐야 제대로 칼을 쓸 수 있는 이들은 천명 정도에 불과하고, 다른 가문의 사정은 뻔하지 않습니까.”

“흐음...”

칼잡이 가병을 천여명이나 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난장판이 된 중국에선 이게 기본 아닌가.

다만 손에 꼽히는 공가가 천여명 밖에 동원하지 못하면, 상회에 속한 다른 가문은 그에 반도 못 미칠 거다.

‘더군다나, 상회는 한 몸으로 움직이지 않을뿐더러, 죽었다 깨어나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습성은 버릴 수 없을 터... 진짜 군병처럼 단결하지도 못할 것이야.’

공표는 침침한 눈을 감으며, 속으로 과거를 긁어냈다.

공청이 산동에 눌러 앉아 세력을 넓힐 때. 그때 상회와 관리 파벌이 일치단결해서 승부를 봤으면, 공청 파벌을 무너뜨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게 되겠나.

조선에 비하면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명나라 패잔병이라도, 저들은 진짜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다.

배 한척, 동네 하나의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패싸움을 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시간이 흐르고 흘렀지만... 변한 건 없을 거다.’

“그리고... 조선군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계속 충원되고 있으니, 수적 우위를 점하기도 힘들 겁니다.”

“끄응...”

공표는 결국 마음을 완전히 접고 말았고, 공형은 아버지의 누그러진 표정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차라리 조선군이 강하면 강할수록 잘 된 일 아니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됐으니 그저... 부마와 사적인 친분을 만들려고 애쓰는 것보단, 조약을 지켜 저희의 이득을 보장받는 정도로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부마가 딴소리를 하진 않겠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그렇다 한들, 저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겠습니까.”

“끄응...”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말에, 공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후...”

공표는 다시금 마음을 굳혔는지, 딱. 주판을 소리내어 튕기며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차피 조선군을 불러온 순간 뒤돌아 갈 수 없게 됐지. 도와줄 거면 제대로 도와줘야 이득일 터.”

“...”

“다른 상회주에게는 내가 말을 해둘 테니, 너는 청도에 집중하거라. 부마의 요청은 어지간하면 다 들어주고.”

“알겠습니다.”

공형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가고, 조선군이 청도에 자리 잡고 두 달이 훌쩍 흘러갔다.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 두 집단이 만났으니, 문제가 한두개 발생했겠는가.

그럼에도 용케 어찌저찌 굴러갔다.

조선은 엄격한 규범과 무식한 칼로서 찍어 눌렀고, 산동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처지가 못 됐으니까.

문제 아닌 문제라면, 그 사이에 낀 중국인 인부들이 문제였지.

“쓰부레. 똥 싸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고.”

“끄응... 잡소리 하지 말고 빨리 싸기나 하게.”

“후...”

뿌지직. 나무판자 건너편에서 고약한 냄새가 피어오르자, 줄을 서 있던 이들이 죄다 코를 막고 손을 내저었다.

이 시대 중국인에 공중위생의 개념을 주입시키는 게 쉽게 될 리가 있나.

조선과 마찬가지로 아무데나 똥을 싸지르는 게 일상이었고, 그나마 있는 변소마저도 가림막 하나 없어서, 눕혀둔 나무통 위에 걸터앉아 싸면 그나마 개념이 있는 편이었지.

그런 이들에게 착호군식 변소를 설치해 놨으니, 안 그래도 배운 게 적은 중국인 인부들은 적응하는 게 쉽진 않았다.

오죽했으면, 변소만 담당하는 관리인을 지정해서 세워놨겠는가.

“다 쌌으면 어서 나와서 손이나 씻게.”

“알았다니까.”

팔뚝에 붉은 띠를 감싸고 있는 이가 소리치자. 삐걱삐걱 변소계단을 내려온 이가 눈을 흘기며, 물항아리로 걸음을 옮겨 손을 씻었다.

자기가 언제부터 변소관리장이었다고, 똑같은 인부로 왔으면서 감투 하나 썼다고 유세를 부리는 꼴이 눈꼴사나웠지만... 어쩌겠나.

말을 안 들으면 추방 아닌 추방을 당해서 다시는 일을 못하게 되니, “나 죽었다.”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조선이었다면 수만명의 인부가 싸대는 똥을 잘 모아서 인분거름으로 만들었겠지만, 중국에 인분거름법을 알려줄 리가 있나.

그저 마차에 실어 옮겨서, 죄다 바다에 내다버렸다.

어째 여기서도 똥마차가 등장했지.

똥마차와 함께 흙먼지를 날리며 오가는 수많은 짐마차들이 있었고, 개중에선 중국에서 볼 수 없던 수많은 특이한 마차들이 있었다.

바퀴를 작게 만들어 높이를 낮추고 대신 마차짐칸을 길게 만든 물건이 쉽게 보였는데, 미래에 봤다면 트레일러처럼 보였을 거다.

그 위에 실린 건 목재와 기와, 세공된 바위나 벽돌 등이 대다수였고, 자재들은 청도를 둘러싼 여러곳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중국도 자기와 벽돌을 만드는 공방이 있고, 상업이 발달한 만큼 역사가 오래되어 조선기업보다 더 나은 곳도 있기 마련.

그런 공방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 청도 곳곳에 새로운 공방을 세우고 물건을 만들었다.

“음...”

“생각보다 청도가 더 커지고 있네. 괜찮을까?”

“별 수 있겠나. 인부들을 그냥 거지떼처럼 놔둘 순 없는 노릇이지.”

“끄응...”

공형을 비롯한 상회의 후계자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짐마차를 보며 쓴웃음을 날렸다.

더 정확히는 짐마차가 아니라, 짐마차가 지나갈 수 있게 정해진 대로와 그 대로를 끼고 난잡하게 건설된 판자촌을 굽어봤다.

청도는 조선에게 넘긴 땅이니 어떻게 사용하든 조선이 알아서 하는 걸로 결국 결정 났지만, 문제는 조선에게 넘긴 구역 외의 땅마저도 죄다 조선의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여기도 조선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나?’

속으로 중얼거려보지만, 공형은 답이 없어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청도포구와 인근 구역만으로는 자급자족이 될 수가 없다.

외부에서 식자래를 비롯한 모든 자재가 들어가야 하고, 반대로 포구에서 내린 물건도 도시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포구와 조차지 건물만 달랑 만들어 놓고, 외각을 길도 찾을 수 없는 판자촌으로 만들어 내버려 두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에 따라 포구를 중심으로 해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대로가 만들어졌고, 그 대로와 대로 사이를 이어주는 또 다른 대로가 교차했다.

이 교차대로가 계속 확장하면서, 사방에서 밀려온 유민인부들이 사는 지역마저도 조선이 주도하는 도시계획에 포함되어 버린 꼴이 된 거지.

“조선이 여기까지 자신들이 관리한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네. 따로 관리하기에는 애매할뿐더러, 당장 조선이 손을 떼버리면 분명 문제가 생길 테지.”

“그럴 걸세.”

녕해 추가의 후계자인 추곡의 말에, 동석 오가의 오병룡이 말을 받았다.

거지떼나 마찬가지인 인부들이 청도 한쪽에 가득가득 쌓인 식량을 보고도, 욕심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모두 조선군 때문.

시시때때로 순찰을 도는 조선기병이 없었다면, 자기 몫을 더 달라고 아우성치며 폭도로 변했을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아무리 자기 목숨이 아까워도, 눈앞에 재물이 있으면 앞뒤 가리지 않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한번 폭동이 일어나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난장판이 벌어지겠지.’

공형은 친우들의 말에 물끄러미 인부들을 바라봤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호위를 겸하는 가병을 거느리고, 빛나는 비단옷을 입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라.

거렁뱅이나 다름없는 유민들 눈에 깃든 시기와 질투, 그리고 탐욕과 울분이 모두 섞인 눈빛은 서글프면서도 오싹했다.

저 눈이 뒤집혀 폭발하면, 곧장 여긴 전쟁터로 변해버릴 거다.

‘겪어봤고, 강남의 소식을 여러 번 듣지 않았나.’

이미 산동에서도 겪었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고, 중국의 모든 해안도시에서 이따금씩 벌어지는 일 아닌가.

밀려든 유민과 도시를 지배하는 권력자들 간에는 지난 이십여년동안 꾸준히 충돌이 있어왔고, 결국엔 피와 칼로서 끝을 맺었다.

물론 승자는 유민이 아니라 호족과 상인이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야 그렇다쳐도... 문제는 도시가 계속 커지는 것 아닌가. 포구의 완성은 아직도 한참 남았고, 인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부들이 거주할 집도 계속 만들어질 텐데.”

“그 말이 맞지... 헌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군. 이제 와서 조약을 미룰 순 없는 것 아닌가.”

“끄응...”

공형과 함께 있는 이들은 전부 상단 후계자들이고, 따지고 보면 미래의 해안도시 권력자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조선과 맺은 밀약을 알고 있으니, 조선에 지불해야할 대가를 알고 있고 그게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느끼고 있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문제는 없지 않나? 어차피 청도는 황무지였고, 청도포구가 아무리 커진다고 한들 한계 이상으로 커질 순 없을 걸세.”

“맞네. 조선이 이곳으로 모든 물산을 가져와 팔지 않을 거고, 조선의 상선이 얼마나 올지 몰라도 의주로 보내는 우리 상선이 줄어들진 않을 걸세.”

“맞는 말이나... 조선이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진 않을 것 아닌가. 만약 의주로 입항하는 상선을 제재하면 우린 청도포구에만 목을 메야할 걸세.”

“끄응...”

유산 산가의 후계자 산해홍의 무서운 말에, 모두는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졌다.

최악 중에서 최악의 상황을 언급했으니까.

그렇게 되면 조선은 완전히 산동의 목줄을 잡고 흔드는 꼴이 될 거고, 청도는 조선과 통교하는 유일한 거점이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럼 조선이 먼저 조약을 깨는 꼴이고, 조차기간이 끝나면 청도는 우리 것이 될 걸세.”

“조약이야 그렇지만...”

‘힘으로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나.’

산해홍은 끔찍한 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모두는 눈빛을 읽고서 속내를 알아차렸다.

“뭐. 불길한 상상을 하면 끝도 없는 법이지. 청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외부의 지원 없이 유지되지도 못할 테니, 조선이 청도를 차지하는 선택을 하지 않겠지. 그랬다간 진짜...”

‘전쟁일 테니까.’

공형 또한 괜한 상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겁먹는 꼴도 웃기지 않나. 나중일은 나중일일세.”

“맞는 말일세.”

“그렇겠지.”

모두는 불길한 상상을 털어내듯, 힘차게 걸음을 옮겨 공사판을 누볐다.

청도가 전부 공사판이지만, 이미 완성되어 깔끔하게 정돈된 곳도 있기 마련.

포구를 둘러싼 상관과 창고, 관아와 숙소를 비롯한 중심지는 가장 먼저 완성됐고, 그 중에선 벌써부터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교환소.

누가 봐도 티가 나는 값비싼 비단옷을 입은 상인들이 들락거렸는데, 하나같이 흉악하게 생긴 호위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호위들은 갑옷은 입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흔히 쓰는 박도와 대도, 철퇴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다들 기가 죽어서, 교환소 밖의 대기실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들보다 더욱 흉악하게 무장하고 있는 조선군이 교환소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맹수갑옷으로 무장하고 허리춤엔 장도와 전투도끼를 걸치고, 창문 틈으로 스며든 햇빛을 반사하는 쇠장갑을 끼고 있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저 강철주먹에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이빨이 다 튀어나갈 거다.

통일된 무구로 무장한 조선군이 십여명이 넘어가니, 상단호위들은 칼잡이들답게 상대를 파악하고 얌전해진 거지.

저 무장을 다 갖추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감히 상상도 못하겠고, 그만큼 돈을 들였으면 실력 또한 돈값을 하기 마련이니까.

기죽어서 조용해진 대기실과 반대로 교환소 안쪽은 시끌시끌했다.

짐꾼들이 내려놓은 관짝을 열기 무섭게, 양 상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환소 직원이 재빨리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저울을 가지고 마제은의 무게를 재고, 햇볕에 비춰보며 광택을 살피고, 살살 긁어내어 품위를 확인하고, 마제은 밑바닥에 찍힌 문양을 보며 조제소를 확인하고, 물에 담가서 은 함유량을 재고 있었다.

옆에선 주판을 튕기며 목청을 높여대고, 상인과 상인은 조금이라도 이득을 챙기려고 실랑이를 벌었다.

중국은 나라에서 정한 공식화폐가 없지만, 예로부터 쓰이던 마제은이 존재했다.

명이 망한 후론 민간 조제소가 더욱더 성행해졌고, 중국 전역의 교환소와 조제소에선 자신들만의 마제은을 찍어 냈지.

물론 일반 백성들은 그런 거금을 쓸 일이 없지만, 상인들은 현물 대신 대부분 마제은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끌시끌한 교환소 한쪽에선, 탐구열에 불타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