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21화 (221/538)

221. 챕터33. 급습하다 (3)

워낙 어릴 때부터 활동해서 자주 잊곤 하는데, 연오랑은 이제 고작 이십대 초반 아닌가.

힘은 넘쳐흐르고, 전쟁터를 전전하고 훈련대원을 가르치면서 칼질은 더욱 농후해졌다.

샤샤샥! 그의 유려한 손목 움직임을 따라, 장도는 꽃잎을 그리듯 사방으로 질주했고,

“크허헉...” 번쩍번쩍 거리는 칼날의 반사광이 피어오르기 무섭게, 천호장은 치렁치렁한 옷자락과 함께 양손목이 쪼개져 허물어졌다.

“...!”

“아아악!”

난데없는 칼부림에 모두가 놀라 소리치기 바빴지만, 연오랑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접시와 젓가락을 집어 던지며 반항하던 장군 중 한명이 목이 잘려 쓰러지고.

호랑이처럼 날뛰는 연오랑을 보며 두려움에 잠식되어, 도망치려다가 발이 꼬여 쓰러진 장군의 등에 칼이 박힐 때까지.

너무나 놀라면 뭘 할 생각도 못하고 몸이 굳어버린다는 말처럼, 모두는 장군들이 전부 쓰러질 때까지 석상으로 변해 손가락질만 할뿐이었다.

“...”

“다 끝났나?”

연오랑이 피 묻은 칼을 휙휙 휘둘러 피를 털어내며 중얼거리자, 드디어 얼음이 깨어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흐헉!”

“어어어...?”

어떤 이는 연오랑이 근처에 오지도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의자 채로 뒤로 넘어져 끙끙 앓고 있었고.

그나마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이들은 장민과 영기옥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던 사람들인데... 그들마저도 놀라서 벌떡 일어서거나,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입을 벙긋거렸다.

“흐읍.”

“끄음...”

심지어 이 모든 걸 계획하고 함께 하기로 한 장민과 영기옥마저도, 눈을 질끈 감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숨겼다.

연오랑의 소문을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보고 있으니 소문이 한참 모자라다.

들숨 날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발걸음을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한사람씩 썰어 재껴버릴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늑대를 물리치려다가 호랑이를 불러 온 게 아닐까?”라는 우려가 폐부에서부터 솟구쳤다.

가장 기겁한 건, 역시나 공청 파벌에 속해 있던 이들.

그들은 연오랑이 피를 털어내고 있자, “허헉!” “흐헙!”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반 신음반 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연회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쿵! 그들은 문을 붙잡기 무섭게, 벌컥! 열린 문에 얻어맞아 뒤로 나뒹굴었고... 쓰러진 그들을 향해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반으로 기운 시야에 들어왔고, 잔뜩 겁먹은 눈이 핏방울을 타고 올라가자 생경하게 생긴 손도끼에 닿았다.

그 손도끼를 쥐고 있는 손은 번들거리는 강철로 감싸져 있었는데, 그제야 나뒹굴었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고 괴인들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연회장 밖에서 시립하고 있던 조선군.

시커먼 갑옷을 입은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 건데... 그들 뒤편으로 시체들과 함께 피 웅덩이가 점점 퍼지는 게 보였다.

아마 밖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다 정리했냐?”

“옛!”

“밖에서 지키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흡사 “밥 먹었냐?”라고 묻듯 무미건조한 대화가 이어지고 나서, 쾅! 조선군들은 문 앞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꼴사나운 모습 보이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죽이려면 진작 죽였을 테니까.”

“...!”

“흐힉!”

연오랑은 그리 말을 하고서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살아남은 공청 파벌 일행은 문 밖으로 나가지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앉지도 못하고서 엉거주춤하게 뭉치는 게 고작이었다.

“왜? 뭐 잘못됐나?”

“아... 아닙니다. 대인.”

연오랑이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자, 장민과 영기옥은 냉큼 고개를 숙이며 눈빛을 피했다.

연회를 빌미로 해서 적장을 초대해 참살하는 방법은, 고래로부터 이어 내려온 유서 깊은 암살 방법 아닌가.

명이 망한 후로. 중국 내에서는 이런 피냄새 진동하는 연회가, 연례행사마냥 해마다 한 번씩 터져 소문이 퍼졌었다.

허나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분위기를 보지도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도 않고.

자기 손으로 직접 처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를 둘러싸고 요상하고 허황된 소문이 무성하다지만, 지금의 그는 청도포구의 총책임자이자 조선의 부마인 인물이니까.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가 한참 잘 못 봤구나.’

그러니... 장민과 영기옥은 연오랑의 진면목을 보고서, 속으로 이 생각 밖에 안 떠오를 수밖에.

공청 일행이 너무 맥없이 당해버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산동세력끼리 으르렁거리는 건 연례행사나 다름없는데, 차마 이렇게 대놓고 수작을 부리겠는가.

게다가 조선과 산동은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으면 좋았지, 나빠질 이유가 하등 없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군마의 대가로 초석을 넘기기로 했었고.

예상보다 군마가 많이 들어와서 놀라긴 했지만, 계약이 추가되면 추가됐지 파기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안했다.

그러니... 조선의 부마가 있는 자리에서 칼부림을 부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한술 더 떠서 조선의 부마가 직접 칼춤을 출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아직 명줄이 남아 저승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공청과 공윤발.

두 사람은 억울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하고서, “크...” “으으...” 입으로 피거품을 내뿜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을 흘려댔다.

“마무리 해야지? 너희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해줬는데, 마무리까지도 내가 해야 돼?”

연오랑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공청과 공윤발의 머리칼을 우악스럽게 잡고 뒤로 당겼고, 쾅쾅! 의자채로 넘어진 두 사람은 “끄억.” “크억.” 마지막 단발마를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

“...!”

참혹하고 살 떨리는 행동에, 모두는 말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냐?”

쿵! 연오랑은 피 묻은 장도를 탁자 위에 내리치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쓱 훑어봤다.

“내 손에만 피를 묻혀서야 쓰나. 산동 일은 산동사람이 처리해야지. 안 그래?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이 두 놈을 죽이고 싶어 했던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

“...!”

비릿하게 웃는 연오랑을 보며, 모두는 속뜻을 알아차리고서 꺽꺽 헛바람만 들이켰다.

남의 손을 빌려 피를 봐놓고서, 자기 손에 피가 묻을까봐 머뭇거리는 얌체 같은 행동을 비웃는 것이기도 했고.

이제 한 배에 올라탔으니, 똑같이 손에 피를 묻혀 신의를 보이라는 뜻이기도 했고.

그리고 이 자리에서 피를 묻히지 않는 자가 있다면, 뒷일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협박이기도 했으니까.

‘쌀이 밥이 다 됐는데, 우리가 덤터기를 쓰면 되나.’

연오랑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마냥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들을 노려봤다.

피냄새 나는 연회가 중국에서 유행이라지만, 조선이 끼어드는 건 또 다르다. 그것도 조선의 부마이자 사령관이 끼면 일이 더 골치 아파진다.

차라리 대놓고 시원하게 두들겨 패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렇게 비겁하고 음습한 수를 쓰면 조선이라는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꼴.

그러니 청도에서의 일은 철저히 산동인이 주가 돼서 벌어진 일이고, 조선은 어쩌다보니 끼어들어서 어쩔 수 없이 마무리하는 식으로 결말이 나야 했다.

뭐... 알 만한 사람은 속사정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평범한 중국 백성들이 조선에 대해 억하심정이나 악감정을 품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

연오랑이 말없이 계속 압박을 이어가자.

“...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어색하게 맴돌기 무섭게, 저쪽 한편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뚜벅뚜벅 연오랑 앞으로 다가와, 바닥을 적시는 핏물에 아랑곳하지 않고 절을 올렸다.

“조장 효가의 효의병이라 하옵니다.”

눈가를 가로지르는 칼자국이 있는 청년이었는데, 상처를 보아하니 죽다 살아난 게 분명했다.

얼굴에 상처를 입는 경우에는 보통 죽기 마련인데, 저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은 걸 보면... 분명 사연이 깊을 거다.

“...”

연오랑은 말없이 장도에 시선을 주고선, 걸음을 옮겨 연회장 벽 쪽에 자리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는지, 효의병은 조심스럽게 장도를 쥐고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처음 보는 양식의 장도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후훕” 효의병은 어색하게 장도를 쥐고선, 쓰러져서 배를 붙잡고 꺽꺽거리고 있는 공청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나를 기억하느냐. 네 놈이 웃으면서 이 상처를 냈지.”

효의병은 눈가에 난 상처를 쓸어내렸고, 왠지 모르게 후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복수를 할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십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꾸는 악몽 속 느낌 때문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

다만 이미 영혼이 반쯤 빠져나왔는데, 공청이 대답할 수가 있나.

효의병은 넋두리를 하듯, 공청의 상투를 쥐어틀고 중얼거렸다.

“드디어 가문의 원한을 갚게 되는 구나. 이 날만을 기다렸다.”

그는 그리 말을 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고, “후...” 심호흡을 하더니 장도를 쥐고 푹 찔러 넣었다.

“컥...”

아직도 나올 피가 남았고, 아직도 신음을 흘릴 힘이 남아 있던 걸까? 장도가 뱃속을 파고들자, 공청은 뭍에 끌려나온 물고기마냥 몇 번 파닥거렸다.

“죽은 누이의 몫이다.”

“끄...”

효의병은 곧장 공윤발에게도 한칼 먹여줬고,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다시금 연오랑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의 행동이 기폭제가 된 걸까?

다들 한명씩 나와 연오랑에게 절을 하고선, 장도를 넘겨받아 공청 부자를 푹푹 찔러댔다.

효의병처럼 원한에 차서 난도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잔뜩 겁을 집어먹고 손을 부들부들 떠는 이들도 있었고, 찌르기는커녕 어설프게 상처만 헤집는 이도 있었다.

“...”

이윽고 어쩌다보니 마지막 차례가 된 장민은, 힘겹게 장도를 들고서 공청 부자 앞에 섰다.

이미 두 사람은 뱃가죽이 뒤집어져, 혀를 빼물고 죽은 지 오래.

이 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면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될 일이던가?”싶은 심정이 머릿속을 채웠으니까.

‘이게 다 너의 업보다.’

장민은 난도질이 된 공청을 한 번, 그리고 아직도 놀라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주들을 쓱 훑어봤다.

끝으로 자신이 죽은 건지 산건지 헷갈려 하며, 낯빛이 밀가루마냥 하얗게 질린 공청 파벌의 가주들에게 닿았다.

‘네놈이 없었으면 저들과 우리가 찢어지지도 않았겠지.’

장민은 두려움에 잠식당해 눈이 풀려 있는 가주들을 뒤로하고, 공청의 뱃가죽에 다시금 장도를 쑤셔 박았다.

없던 힘까지 끌어와서 인지. 안 그래도 찢어진 내장이 퍽 터지면서, 핏물이 장민의 얼굴까지 튀어 올라 그의 시야를 가렸다.

‘그때도 이랬지.’

피냄새를 맡고, 손에 피를 묻혀서 일까? 악몽으로 남아 잠을 지새우게 했던 오래된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오래전. 정난의 변 당시 산동은 황제군과 정난군의 사이에 껴서 시름시름 앓았다.

백성들뿐만 아니라 지주호족들의 처지도 마찬가지.

하루는 황제군이 와서 “충성을 보여라!”라며 털어가고, 다음날은 정난군이 와서 “여기에 배덕한 황제군을 지원한 이들이 있다면서?”라며 털어갔다.

반항하면 전쟁의 광기에 휘둘려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산동인이 산동인끼리 상처를 감싸며 뭉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

헌데 명이 망하자, 문제가 복잡해지고 심각해졌다.

정난군은 재빨리 본거지인 연왕부 북평으로 되돌아갔지만, 황제군은 사정이 달랐다.

정난의 변 초창기엔 각 성의 주둔군을 긁어모아 싸웠는데, 내전이 해가 넘어가고 전세가 옥신각신하자. 황제군은 닥치는 대로 병력을 긁어모아 전장으로 떠밀었다.

황제군 장군인 공청이 이끌던 군대도 그러했다.

산동출신은 오히려 없고, 산서,섬서,호광 심지어 저 멀리 사천에서 온 병사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남경이 사라지면서 전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징병되어 끌려온 이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했고, 모병으로 뽑힌 이들은 녹봉을 안주면 공청 밑에 있을 이유가 없다.

이 상황에, 공청이 병사들의 탈영과 이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군세를 유지하고 세력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뻔했다.

기존의 것을 빼앗는 수밖에 없었고, 공청은 산동의 지주호족들을 박살내고 그 땅과 사업체를 빼앗아 병사들에게 나눠준 거지.

조장 효가의 효의병은 어쩌면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유서 깊던 가문이 하루아침에 박살나서 몰살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사정이 이렇게 되자 산동호족들은 외지인에 대항해 “산동인 끼리 모이자!”라는 기치 하에 뭉치게 됐고, 티격태격하며 십여년이 흐르자 무력으로는 양패구상 할 수밖에 없는 백중세를 유지하게 됐다.

이 상황을 타계하고 산동일통을 이룩하기 위해서, 공청은 고향인 호광 및 하남의 세력을 끌어들이려 했고... 장민과 영기옥은 모두의 시선 밖에 있던 조선을 끌어들인 거지.

장민은 힘이 다 빠진 걸음으로 위태위태하게 걸음을 옮겼고, 공윤발에게 다가가 장도를 힘겹게 내리 꽂았다.

‘우릴 분열시킨 대가다.’

장민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저편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들에게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연오랑에게 죽은 장군들이 공청 밑에서 앞잡이 노릇을 한 이들이라면, 살아남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공청 파벌로 들어간 가주들이었다.

산동의 호족들은 예전부터 서로 교류하고 지내왔는데, 고작 한 세대 만에 뭐 얼마나 바뀌었을까.

저들은 공청 파벌이 장악한 지역에 살고 있었고, 가문을 보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저들은 중간에 껴서 공청이 막 나가지 못하게 제어했었고, 반대로 확실히 공청 편을 들지도 않아서 파벌 내부에서 겉도는 처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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