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25화 (225/538)

225. 챕터33. 급습하다 (7)

“구운 돼지고기인가 봅니다.”

“음.”

박홍신 또한 고개를 끄덕거리고선, 잘게 잘린 돼지고기와 혼합밥을 한껏 퍼서 입안에 집어넣었다.

생고기는 보관기간이 길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훈제를 하거나 염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해군에선 보다 간편하게 염장을 선호했다.

문제는 이게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아무리 오래 삶아도 꽤나 짜다는 점.

그래도 이렇게라도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는 게 어딘가.

그는 예전 기선군 생활을 떠올리며 군말 없이 숟가락을 놀렸고, 무말랭이와 말린 배추, 부추, 함선 한쪽에서 키운 콩나물과 상추를 뒤섞어 짠맛을 덜어냈다.

식사를 끝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부관병이 냉큼 차를 내왔다.

비록 고급스런 찻잔이 아니라 한 번에 왕창 끓여서 수통에 나눠 담은 거지만... 이 또한 감지덕지.

하나둘씩 두정갑을 챙겨 입고 나오는 병사들처럼, 두 사람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차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 개인정비를 끝마친 항해사를 비롯해, 중간지휘관들이 하나둘씩 선미루로 모여들었다.

“천진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이 속도라면 한시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돛이 부푼 형상과 돛대 끝에 달린 함대기가 휘날리는 걸 보며 항해사가 입을 열었고, 나침반과 육분의의 원시적 형태인 사분의를 통해 대략적으로 거리를 측정했다.

“나쁘지 않군. 함대 간의 간격을 좁히도록.”

“옛!”

이사검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항해사가 목청을 높이자, 견시병은 원숭이마냥 돛대와 돛에 달려 있는 그물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곤 밑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맞춰, 열심히 색깔 별로 구별되어 있는 깃발을 하나둘씩 번갈아 끼웠다.

깃발신호는 기존 기선군에서도 있었지만, 해군이 창설되어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하자 더욱 다양해지고 복잡해졌고... 견시병은 그걸 죽어라 외워야 했지.

‘잘 전파되는군.’

박홍신을 비롯해 지휘관들은 목에 걸고 있던 망원경으로 다른 함선의 꼭대기를 살폈고, 이어받듯 반복적으로 교체되는 천연색 깃발의 춤사위를 확인했다.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이사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금 함선 전체가 기운차게 고함을 내질렀다.

선원들은 선실에 내려가 두정갑을 갖춰 입고 개인무장을 챙겨서 올라왔다.

해전에서 굳이 무거운 두정갑을 입어야 싶을까 싶지만, 어차피 적함이 공격할 수단은 화살밖에 없으니 입는 편이 훨씬 낫다.

물이 빠지면 갑옷의 무게 때문에 가라앉기 십상이지만... 바다는 강과 달라서, 빠지면 갑옷을 입든 안 입든 살아남는 건 쉽지 않으니까.

전통에 화살을 듬뿍듬뿍 챙기고, 갑판에 모래를 뿌려 미끄러지지 않게 대비하고, 기름통과 기름주머니도 미리 준비하고, 갑판벽 양쪽에 위치한 대형쇠뇌에 장전을 시작.

갑판 밑 선창. 1층 포갑판도 분주해졌다.

1층은 군데군데 박혀 있는 기둥 외엔 확 트여 있었고, 20문의 화포가 이 선창에 잔뜩 포진되어 있었다.

화포병들은 나무창문을 떼어내 작은 포구멍을 열어 놨고, 개량동차에 밧줄을 연결해 반동을 잡을 수 있게 조정했다.

그 옆에는 철환과 장군전을, 반대편엔 미리 계량해둔 화약꾸러미를 조심스럽게 풀어놨다.

“서두르지 말고 꼼꼼히 해라. 시간은 많으니까.”

“옙!”

화포장은 좁은 선창을 돌아다니면서, 혹시나 실수하는 게 없는지 빠짐없이 둘러봤다.

훈련은 지겹도록 해왔지만 실전은 이번이 처음.

원래 첫 경험에는 온갖 사건사고가 나기 마련이니, 최대한 작은 사고가 나도록 미리미리 대비해놔야 했다.

13척의 함선이 그렇게 전투준비를 끝마치는 동안에도, 바람은 꾸준히 함대를 앞으로 밀어줬고.

신기루처럼 어스름하게 보이던 육지와 항구의 윤곽이 서서히 진해지면서 선명해졌다.

저기가 바로 그 유명한 천진.

북평부의 유일한 수군기지이자, 북평부 수군 전체가 조용히 잠을 자고 있는 곳이다.

천진은 본래 직고라 불렸는데, 연왕이 정난의 변을 일으키면서 직고를 천진으로 바꿔 부르게 했다.

이곳은 원대에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성장했는데, 원의 대도였던 북평으로 강남의 풍족한 물산이 끝도 없이 올라왔기 때문.

대운하와 육로를 통해 올라오기도 했지만 해로를 통해서도 옮겨졌고, 북평과 가까운 직고가 무역항으로서 부상하게 된 거지.

운석핵꿀밤 이후 북평부가 들어서자, 천진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북평부는 산동-요동의 연합을 끊기 위해서, 천진수군을 흡사 사략선처럼 운용해 산동의 무역선을 약탈했고.

요동이 요서회랑을 두고 산해관 맞은편, 광녕위에 영원성을 쌓자 육상공격이 어려워진 바. 천진수군을 더욱 키워서, 바다를 통해 요동반도에 직접 상륙하려 했다.

이 때문에 천진에는 무려 3만에 가까운 북평부 수군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 인원만큼이나 거대한 항구가 만들어진 거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최악의 상황이 됐다. 이거야.”

“예?”

함장 윤세진의 말에 항해사는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또 무슨 명령을 내리나 싶었던 것.

허나 함장은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본 어린아이마냥 설레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천진만 박살내면 북평부에는 수군이 없는 것 아닌가. 저렇게 한곳에 뭉쳐 놓은 건 멍청한 짓이란 말이지. 흐음. 아닌가? 하긴 북직례엔 천진 말고 수군진으로 써먹을 만한 항구도 없겠군.”

“...”

항해사가 “혼자 뭔 소리를 하냐?”라는 듯 바라보자.

“왜구가 아닌 중국 수군과 싸워보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기대가 돼서 말이지.”

“...”

윤세진이 바다에서 왜구를 여러 번 때려잡은 경력이 있는 터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항해사는 잔뜩 들뜬 그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가 모시는 함장이 유별난 모습을 보인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윤세진은 평범한 무관처럼 문무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승차한 게 아니라, 태종 때부터 기선군에 뼈를 묻어 지금까지 남았다.

연오랑이 신형수송선을 만들 때에 가장 먼저 달려와 함장을 시켜달라고 했고, 신형전함이 완성되자 시험작을 타겠다고 또 제일 먼저 손을 들었지.

나이도 적지 않은 인물이 모험심과 호기심이 아주 왕성해서, 연오랑과 나름 쿵짝이 맞아 해군조련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함장과 항해사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적함이 보입니다!”

돛대 꼭대기 망루에 올라있는 견시병이 소리치자.

“오냐. 나도 보인다!”

윤세진은 깨끗이 밀어버린 턱수염을 매만지며,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 저편을 살펴봤다.

작은 원통 시야에 점처럼 떠 있는 함선이 보였는데, 거리가 거리인지라 천진수군은 이쪽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배가 워낙 커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배인지 자신들이 잘못 본건지 확신할 수 없을 거다.

“이쪽으로 오겠군?”

“그렇지 않겠습니까.”

항해사 또한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입을 맞췄다.

망원경이 실용화되어 선보인 게 벌써 몇 년인가.

육군은 물론이고 해군의 하급지휘관에게 뿌릴 정도로 많이 생산된 터라, 견시병조차도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게 네 몇년치 녹봉보다 비싼 거니까, 부서지면 각오해라.”라는 잔소리를 매일 같이 들었지만.

“차라리 오는 게 낫지. 도망쳐서 적들이 대비하면 그게 더 피곤해지지 않겠나?”

“그야 그렇지만...”

항해사 또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견시병은 다시금 기함에서 보낸 깃발신호를 확인하며 목청을 높였다.

“속도를 높여서 적함에 가깝게 붙으라는 명령입니다!”

함장과 항해사는 얼른 자리를 옮겨, 뒤쪽에 가깝게 따라붙은 지휘함의 돛대 꼭대기를 확인했다.

견시병의 말처럼 오색깃발이 번갈아가며 오르내려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좋군!”

“속도를 높여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닻줄을 다루는 선원들의 손놀림에 따라, 돛은 더욱 활짝 퍼져서 임산부의 배처럼 부풀어 올랐고.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나머지 선원들은 자기자리에 자리 잡고, 활시위를 퉁퉁 튕기며 다시 한 번 검사했다.

명이 망한 후로 금수품이라는 게 없으니, 조선은 강남지방에서 끝도 없이 물소 뿔을 수입해왔다.

하도 많이 수입해서 각궁 가격이 반으로 떨어질 정도였으니, 해군갑사들이 죄다 각궁으로 무장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

다만 각궁이 워낙 까다로운 물건이라서, 바다에서 오래 머문 탓에 관리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는 게 문제.

허나 자기 목숨처럼 끼고 산 터라, 어느 누구도 시위가 풀어지거나 늘어진 사람은 없어보였다.

“화포는 어찌할까요?”

“육안으로 확인되면 저놈들은 당장 도망치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희 배가 워낙 크니, 저희가 누군지 몰라도 일단 천진으로 돌아가서 보고부터 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대기하라고 해. 이 진영을 유지하면 화포를 쏘기도 힘드니까.”

“옙!”

항해사는 지휘본부로 쓰이는 선미루 귀퉁이로 다가갔고, 연철과 나무가 섞여 있는 뚜껑을 열고 “대기!” “대기!”라고 소리쳤다.

선미루에는 작은 동관이 수직으로 박혀 있었는데, 1층 포갑판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통신장치였다.

한참 원시적이지만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딘가. 함장의 명령을 화포장이 곧장 듣는 것만으로도 효과만점이다.

“계속 이 속도를 유지한다.”

“옙!”

함장 윤세진의 기운찬 목소리를 따라, 전함은 더욱더 속도를 내며 천진수군의 꽁무니를 뒤쫓아 갔다.

쫓아가면서 계속 망원경으로 살펴보고 있자.

“흐흐. 저놈들 보게. 확실히 놀란 모양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작은 시야 너머로, 선원들이 허둥지둥 거리면서 돛을 펴고 노를 미친 듯이 젓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도 “대체 저건 어디서 튀어나온 배냐?”라며 놀라고 있지 않을까.

“계속 몰아간다.”

“옙!”

중국의 배가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곤 하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형태나 속도나 크기나 죄다 거기서 거기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는 전투용 함선이라는 게 따로 없는 터라, 천진수군이 타고 있는 배 또한 의주에서 지겹게 보던 무역선과 흡사했다.

선수와 선미가 사각 형태로 솟아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달리 말하면 저들이 아무리 도망쳐봐야, 신형전함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는 뜻.

“거리는...”

“대략 오백보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둘은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배의 크기, 육안으로 보이는 배의 크기를 비교해 거리를 대략적으로 계산해 봤다.

“금방 따라잡겠군?”

“예.”

“음...”

윤세진은 적함을 살피다가, 이젠 육안으로도 형체가 뚜렷하게 보이는 천진항구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여기서 보인다는 건, 천진의 등대와 망루에서도 이쪽이 보인다는 뜻.

정체를 알 순 없어도 수상한 배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건 알아차렸을 테니, 괜히 적함을 잡겠다고 변침하는 게 더 손해다.

“화포를 쓰기에는 화약이 아깝겠군. 그냥 지나가면서 궁시로 공격하고 불태우겠다고 전해.”

“옙!”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견시병은 깃발신호를 보냈고, 이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수신했다.

“북을 쳐라!”

둥둥둥둥. 고전적이지만 유구한 전통을 가진 전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일정한 박자로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선원들의 심장고동 또한 흥분을 가라앉히며 박자를 맞춰갔다.

함선은 적함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쉐에엑! 적함에서 발악하듯 쏘아대는 화살은 우수수 날아와 파도에 박치기를 했다.

“천진수군의 실력이 저거 밖에 안 되나? 화살 사거리를 못 잴 정도로?”

“당황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천진수군은 발해만 밖으로 나온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니, 아국의 신형전함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일 겁니다.”

“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터라, 윤세진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막연히 “우리 배보다 2,3배는 더 크다더라!”라고 상상하는 것과, 시야를 전부 가리는 떠다니는 산이 눈앞을 가리는 건 천지차이일터.

적들은 도망치기 바빠서, 궁시 또한 겁먹고 마구잡이로 날린 게 분명하다.

허나 조선해군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준비!”

“준비!”

천진수군의 배가 50보 안쪽으로 다가올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고, 이내 적들의 당황한 얼굴이 모두의 눈동자에 맺히자.

“발사!”

쉐에엑! 수백발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져 적함을 집어삼켰다.

“으억!” “크헉.” “허헉...”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소리가 퍼지기 무섭게, 다시금 화살이 날아들어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신형전함은 흘수선에서부터 갑판까지의 높이가 3미터를 훌쩍 넘어간다.

저들은 흡사 공성전을 하듯. 선체 안을 보지도 못하고 올려다보고 쏴야 하는 반면에, 아군은 갑판 위에 서면 적함의 속살이 훤히 보이는 판국.

게다가 순수 전투병력만 이백명에 가까우니, 머릿수부터 몇 배나 차이난다.

그 결과. 두 번의 일제사격 만에, 적함은 힘을 잃고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불태워라!”

“옙!”

투둥! 윤세진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형쇠뇌에서 머리통만한 옹기가 튀어나가 속도가 줄어든 적함의 갑판에 떨어졌다.

촤라락! 파편과 함께 종이로 막아뒀던 옹기의 내용물이 터지는데, 꼭 검은색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듯 했다.

“히익!” “이게 뭔...”

난데없는 액체세례에, 겨우 살아남은 천진수군이 비명을 내지르려던 찰나.

“발사!”

후르득. 다시금 소나기처럼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이번 화살은 일렁거리는 불뱀으로 변해 있었고, 불뱀이 갑판을 왁! 깨물기 무섭게 넓게 퍼진 불꽃이 넘실넘실 혀를 내밀기 시작.

“으아악!” “불이다!”

안 그래도 시체가 즐비한 적함은 순식간에 땔감으로 변해버렸다.

“확실히 효과가 좋군?”

“물론입니다. 저거 써먹겠다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흐흐. 그건 그렇지.”

함장과 항해사는 불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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