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27화 (227/538)

227. 챕터33. 급습하다 (9)

‘저쪽도 그런가?’

남쪽 포대에서 눈을 떼고 북쪽 포대를 살피자, 그쪽도 사정은 엇비슷했다.

보아하니 저쪽도 포대를 맞춘 건 몇발 안 되어 보이는데... 대신 포대 근처는 쑥대밭이 됐고, 심지어 성벽 뒤쪽에선 불까지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더 이상 안 쏴도 될 것 같은데...?”

“돛을 펴고, 속도를 높여라!”

화포장이 조용히 중얼거리기 무섭게, 항해사의 명령이 함선을 진동시켰다.

펄럭! 두둥. 추르륵 풀린 돛은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화포장은 누가 자신의 등을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으며 사다리를 붙잡았다.

“선회하려는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둘은 선미루에 있던 윤세진과 눈을 마주치고선,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포장도 나름 고급지휘관인터라, 이번 작전의 개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훈련도 그만큼 많이 했고.

화력전함은 옆에 적을 둬야만 제대로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고정된 적을 훑고 지나가면 다시 선회하는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멈춰서 쏴대려면, 돛을 다 잡고 닻까지 내리고 싸워야 하는데... 그러면 수가 압도적인 적함의 공격을 멈춘 상태에서 받아야 했고.

더 큰 문제는 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화력전을 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것.

“크게 돌아서 거리를 더 좁히겠지.”

“예. 적들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선회해야 할 거구요.”

둘의 예상대로 함대가 움직였다.

촤락촤락! 속도를 높인 함대는 파도를 가르며 크게 선회해서, 하얀 물보라를 짓밟으며 서로의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신형전함은 완전한 범선이고, 크기도 엄청난 만큼 선회반경도 넓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선형을 매끈하게 했어도, 첨저선인 이상 방향을 휙휙 바꿀 수가 없기 때문.

짧은 반원을 그리며 뱃머리는 남쪽을 향했고, 그러는 동안 천진항구와 함대 간의 거리는 삼백보까지 줄어들었다.

가까워졌으니 포격이 더욱 잘 먹히는 건 당연한 말.

“포대 말고, 움직이는 적함을 노려라.”

견시병의 신호를 읽은 윤세진이 목청을 높이자.

“적함을 노려라!”

화포장과 화포부장 또한 복명복창하며, 바쁘게 포각을 확인해 화포병들을 이끌었다.

콰콰쾅! 자기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반대편 화포는 일제히 불을 뿜어내며 몸을 흔들어댔다.

삼백보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고, 저 앞에는 먹잇감이 산처럼 널려 있다.

난데없는 기습공격을 받았다지만, 천진수군의 숫자가 워낙 많지 않나. 대다수가 이제 막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으려다가 끌려나왔겠지만, 그 중에선 제 정신을 차린 이들도 있기 마련.

그런 이들은 용케 함선에 올라타, 돛을 펴고 노를 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릿하게 다가오는 이들에겐 불벼락을 먹여줘야지.

콰콰쾅! 기함의 명령이 따로 없어도, 각 함은 각자 옆에 보이는 적함을 향해 사정없이 포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으억!” “크헉!” “아아악!”

거리가 가까워서 인지, 이젠 적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릴 지경이다.

쾅! 굉음과 함께 날아간 철환은 적함의 옆구리를 뚫고 반대편으로 비집고 나왔고, 쾅! 어떤 적함은 재수 없게 흘수선 근처를 맞았는지 속도가 점점 줄면서 바다에 빨려 들어갔다.

콰쾅! “아아악!” 재수가 가장 없던 건, 철환이 갑판 위를 정통으로 휩쓸고 지나갔던 경우다.

천진수군은 일단 달라붙어야 하니 머리를 내밀고 우악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철환은 생선뼈를 발라버리듯 선수부터 선미까지 싹 쓸고 지나갔던 것.

“...!”

“...!”

화포장과 화포부장은 손을 번쩍 들며 환호를 내지르려다가, 그 참혹한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입이 다물어졌다.

철환이 쑤시고 지나간 자리는 먼지가 확 피어오르는 듯 했는데, 그건 철환에 맞아 쪼개진 나뭇조각들이 날카로운 파편으로 변해 갑판 위를 휩쓸었기 때문.

조란탄을 맞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적함은 유령선이 되어 멈춰 섰고, 뒤에 오던 적함의 앞을 가로막았다.

“계속 발포하라!”

“발포!”

아까처럼 함대 전체는 돛을 접어 속도를 줄였고, 130문의 화포는 앞서거니 두서거니하며 미친 듯이 연기를 토해냈다.

하도 쏴대는 터라 바닷바람조차도 검은 연기에 휩싸여, 하늘은 먹구름이 낀 것 마냥 요상한 색으로 변해갈 지경이다.

“음...”

윤세진은 매캐한 화약 냄새를 힘껏 들이마시면서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안 맞는 것 같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배에서 쏘는 터라 명중률이 뚝 떨어져서, 130문이라 중에서 50문 이상은 애꿎은 바다를 때리고 있었던 것.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무려 80문이 명중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지난날 중국원정 때 거용관을 두들겼던 것과 엇비슷한 숫자에, 그보다 더욱 강력한 함포사격이니, 천진수군은 지옥을 맛보고 있을 거다.

‘멍청한 놈들이군. 아닌가. 하긴 달라붙는 거 말곤 답도 없겠지.’

그는 함대를 향해 다가오다가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적함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진수군도 당연히 화포를 사용하는데, 조선해군처럼 왕창 싣지 않고 두세문정도를 선수나 선미에 달아서 사용했다. 그래야 접근하면서 포격을 한 후에 달라붙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화약을 배에 실어서 보관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화포야 그렇다 쳐도, 안 그래도 습기에 약한 화약을 그렇게 보관하면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인지, 접근하는 적함 중에서 화포를 쏘는 적함은 단 한척도 없었다.

문제는 화포로 대응하는 것 외에는, 우악스럽게 일단 달라붙는 방법 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저렇게 불나방처럼 달려들다가 진짜로 목숨을 태우고 있던 거지.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약하단 말이지?’

그의 앞에 쓰러진 적함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건만, 윤세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콰쾅! 일제히 쏘아내는 철환이 다가오던 적함 3척을 휩쓸어버렸음에도, 침몰하는 적함은 단 한척도 없었으니까.

배라는 게 그렇게 쉽게 부서지는 물건이 아닌 터라, 소맹선 같이 작은 배야 한방에 바닥까지 구멍이 뚫리겠지만...

조금만 덩치가 커져도, 철환이 선체를 아예 뚫어버리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재수 없게 파편에 맞아 죽는 이들은 있겠지만, 배 자체가 포격 한두방에 침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던 것.

‘철환이 너무 강해도 문제군. 차라리 장군전이 낫지 않을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함장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기함에서 새로운 명령이 전해졌다.

“장군전으로 교체하라는 명령입니다.”

‘역시. 노름으로 딴 자리가 아니라는 거군.’

그는 박홍신과 이사검을 떠올리며, 히죽 웃음을 머금었다.

“장군전으로 교체하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1층 포갑판이 부산스러워졌다.

기존의 다양한 나무화살을 철령전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화포자체가 야전화포, 함포, 공성포 세 종류로 통일되지 않았나.

구경이 작은 야전화포는 대對인마 전용이니 철령전을 쓸 일이 없었고, 함포는 해군용, 공성포는 육군용으로 분리되면서 철령전 또한 두 종류의 장군전으로 통일된 상태.

통일된 규격이 정해지면 만들기도 쉬워지고, 생산단가도 낮아지기 마련이니, 포갑판 구석에는 성인 팔뚝보다 크고 굵은 장군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발포!”

“발포!”

포격은 화포장이 알아서 하는 터라, 윤세진은 망원경으로 계속 천진수군을 살피고 있었는데... 쾅쾅쾅! 이내 곧 굉음이 터졌다.

철환과는 약간 다른 파공음과 함께, 쉬웅!쉬웅! 하늘을 쪼개며 날아가는 나무화살은 피뢰침에 딸려오는 번개처럼 적함에 틀어박혔다.

쾅! 우지끈 뭔가 쪼개지는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오르는데.

“오!”

“와...?”

윤세진과 항해사는 장군전을 맞고, 한방에 박살나 기울어지는 적함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소맹선 크기의 작은 함선이라지만, 갑판에서부터 선체바닥까지 한방에 뚫어버릴 줄은 몰랐다.

“철환보다 나은데?”

“예. 켁켁. 사거리는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은데, 근거리에서 써먹기에는 철환보다 나은 점이 있군요.”

항해사 또한 잔뜩 흥분해서 연기를 마시다가, 침을 퉤퉤 뱉어가며 목청을 높였다.

쾅쾅쾅! 둘이 계속 적함을 살피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쏴대는 통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했고.

장군전에 맞은 적함은 구멍이 뻥뻥 뚫리며,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큰 배는 한방에 침몰하지 않았지만 장군전이 틀어박혀 누각이 부서져 스스로 무너지는 적함이 한둘이 아니고, 재수 없게 선체 측면에라도 맞았다가는 구멍이 크게 뚫려 바닷물을 들이키고 있었다.

‘음... 확실히 근거리에선 장군전이 나쁘지 않아.’

훈련 때도 이미 확인했던 거지만, 실전에서도 확인되자 윤세진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철환은 작은 몸체에 힘이 너무 많이 실려서, 선체를 그냥 뚫고 지나가 힘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허나 무겁고 큰 장군전은 오히려 속도가 줄어서, 파괴력을 온전히 적함에 쏟아 붓고 틀어박히고 있었던 것.

‘일장일단이 있다는 거겠지.’

그가 그리 생각하는 와중에도. 장군전으로 갈아 끼고 나서 전과를 올린 화포병들은 신나게 장군전을 쏴대기 시작했다.

작은 포구멍으로 살피던 그들 눈에도, 눈에 띄게 적함이 멈춰 서서 주인을 잃고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게 보였으니까.

“이거... 전투보고서가 올라가면, 호조관리들이 장군전만 쓰라고 떼쓰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군요.”

“에이.”

“호조관리들이 돈에 미쳐 있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습니까.”

“설마 그러겠나.”

‘하긴 철환이 보통 비싼 게 아니지.’

그는 이 와중에도 돈 걱정을 하는 항해사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철환은 말 그대로 철로 만든 공이고, 아무리 질 떨어지는 철을 사용했어도 철은 철이다.

철환 하나를 만들 양이면 창날 수십개를 만들 수 있으니... 지금 이렇게 마구 쏴대는 건, 말 그대로 철덩어리를 바다에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거지.

그에 비하면 장군전은 부피가 커서 귀찮지만, 철환과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로 값싼 물건 아닌가.

항해사가 눈이 돌아가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실없는 생각은 얼른 지워버리고, 다시 전장에 집중.

‘음. 이만하면 충분히 틀어막은 것 같은데...?’

윤세진은 천진항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폐선들을 바라봤다.

일부러 움직이는 적함을 노리고 쏜 건, 박살낸 적함으로 천진항구를 아예 틀어막기 위해서였다.

부서진 적함과 부유물들은, 밀물을 따라 천진항구로 몰려가게 될 터.

아무리 물 위에 둥둥 떠 있다지만, 장애물이자 나무암초가 된 폐선들을 밀어내고 다가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밀어 넣고 나서, 움직이지 못하는 천진항구를 일방적으로 때려줄 속셈이었던 거지.

‘지금까진 계획대로 잘 된 것 같고...’

망원경으로 천진항구를 살피던 그에게, 콰캉! 장군전을 맞아 사방으로 비산하는 나무파편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앞에 위치한 10,11,12번 함에서 부두를 노리고 집중적으로 장군전을 날리고 있었던 것.

천진항구에 시체벽마냥 폐선방벽을 세우는 작전이 성공하자, 다른 함에서는 또 다른 사냥감을 찾는 것 같았다.

‘좋은 수야.’

부두를 박살내면 묶여 있던 배들이 풀려나 제멋대로 꼬이게 될 게 분명.

‘그걸 떠나서 천진수군이 배에 타려면, 헤엄쳐서 기어올라야 하겠지.’

조선의 해군사령부나 신식항구가 들어선 곳은 돌과 삼물회로 마감한 단단한 부두를 건설했지만, 천진항구는 나무로 엮어놓은 부두인터라 장군전의 활약에 속절없이 박살나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뭔가 공을 세울만한 걸 찾아야 하는데...’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망원경으로 천진항구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그리고 그 때. 쉬우웅! 펑! 아직 살아남은 포대가 있었는지, 천진항구에서 포탄이 날아와 물보라를 일으켰다.

조선함대가 가까이 다가왔어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 수십발 중에서 단 한발도 맞추질 못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히 가까워졌다.’

그는 20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물보라가 피어오른 걸 보며, 경각심을 가졌다.

중국함선도 포탄에 맞고 침몰되기 쉽지 않은데, 덩치가 월등한 신형전함이 포탄 몇발 맞는다고 침몰하겠는가.

하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어디서 쏜 거지?’

그는 두리번거리며 화약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찾았는데... 어째 부서진 포대가 아니라, 다른 쪽 성벽에 올려놨던 화포를 긴급히 써먹고 있는 모양새다.

‘그럼 화약을 다시 옮겼다는 건데...’

계속해서 머리는 김이 나도록 돌아가고, 눈두덩이 아플 정도로 망원경을 꽉 끼고 천진항구를 살폈다.

그렇게 계속 찾고 있자, 뭔가 수상한 곳을 발견했다.

중간에 뚝 끊어진 옛 성벽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 앞에 위치한 큰 창고에서 병사들이 바삐 돌아다니는 게 보였던 것.

계속되는 포격으로 포구는 배에 빨리 올라타라고 독전하는 무관과 마구잡이로 바다에 달려드는 병사들.

반대로 잔뜩 겁을 집어먹고 후방으로 도망치려는 병사들이 뒤섞여 난장판이 펼쳐졌는데... 어째 묘하게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갑옷도 제대로 못 입은 병사들은 웬 옹기와 나무통 같은 걸 바삐 옮기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포구로 향하는 게 아니라 성벽 뒤 시가지로 향하는 게 아닌가.

‘수상하군.’

그는 일개미처럼 뭔가를 옮기는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이윽고 그들 중 일부가 성벽 저편에서 불쑥 올라온 걸 발견했다.

“저기다!”

“예!?”

윤세진은 황급히 동관을 통해 명령을 내렸고, 화포병은 포갑판을 가로질러가 선수에 있던 화포장에게 전달했다.

“화약고가 밖에 있다고?”

“예.”

화들짝 놀란 화포장의 말에 화포병은 연신 혀를 놀렸고, 그는 화포부장과 함께 망원경으로 윤세진이 일러준 목표물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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