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28화 (228/538)

228. 챕터34. 제거하다 (1)

“대체 뭔 생각으로 화약고를 포구 근처에 세워놓은 거지?”

“임시화약고, 아니면 화약고 중에서 분리해 놓은 곳 중에 하나 아니겠습니까?”

조선은 화약고 관리를 사령부 관아만큼이나 철저하게 방비하는 터라, 둘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딱 봐도 화약고에서 화약을 꺼내 옮기는 것처럼 보이는 터라, 믿지 않을 수도 없었지.

사실 북평부도 화약고 관리를 이렇게 허술하게 하진 않았다.

다만 천진은 원나라 시절부터 상업무역항으로 발전해 온 터라, 제대로 된 방어시설이나 성벽도 없던 곳이었다.

아주 옛 시절에 만들어진 성벽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몰려들어 상가와 점포가 생기면서 포구 일대가 난잡하게 성장한 것.

이후 북평부가 들어서면서 상업무역항이 아니라 수군진으로 바뀌게 되자, 그 일부를 허물어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그래서 저렇게 어중간한 곳에, 화약고 및 무기고 등을 끼워넣을 수밖에 없었던 거고.

다만... 북평부 사정이야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화포장은 얼른 거리와 포각을 측정해 알려줬고, 철환으로 갈아 끼운 화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열문의 화포는 연속해서 불을 뿜어냈고, 한번 쏠 때마다 점점 화약고 근처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가까워지더니.

이내 세 번째 일제사격 때에, 다섯발이 넘는 철환이 화약고를 박살내며 파고들었다.

“아악!” “커헉!”

망원경 너머로 펼쳐지는 피보라를 보고 있자니, 천진수군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으나... 순식간에 지워졌다.

“헉!”

“큭...”

콰쾅! 천지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섬광이 쏟아져 둘의 시야를 멀게 만들었으니까.

하늘을 찢어발기는 괴물의 포효소리와 함께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수십장 위로 솟구친 옛성벽의 파편과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진 천진수군의 시체들이 분수처럼 날아올랐고.

쿠르릉. 땅속 깊은 곳에서 용트림을 하는 괴물이 발버둥치는 걸까? 화약고 일대는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흔들리더니, 주변을 깡그리 무너뜨리며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어째 화약고가 한 번에 터진 게 아닌 건지, 폭음과 진동은 연이어 함대를 진동시켰는데... 그 위력이 얼마나 센 건지, 갑판 위에 있던 선원들마저도 후폭풍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펼쳐졌으니, 천진수군 뿐만 아니라 조선해군 또한 화들짝 놀라 포격을 멈출 정도였지.

“와아!”

“터졌다!”

잠깐 넋을 놓고 보고 있던 화포병들이 마침내 탄성을 내질렀고, “헙!” “허...!” 눈이 부셔서 잠깐 정신을 잃었던 화포장과 화포부장은 서로를 마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자기가 명령을 내렸음에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다.

“뒤... 뒤에 화약고가 더 있었나본데?”

“예예. 그런 모양입니다.”

둘은 더듬거리며 말문을 이어갔다.

쾅쾅쾅! 아직 폭발하지 않은 화약이 남아 있는지 폭음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천진항구는 어느새 뿌옇고 검은 연기로 가득 차올랐다.

연기가 어찌나 많이 피어오르는지... 검은 구름이 천진을 아예 집어삼킨 것처럼 보여서, 포구 안쪽 시가지가 보이지도 않았다.

‘끔찍하군.’

화약고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연기를 피해 입을 막고 도망치는 이들. 후폭풍에 쓸려 나자빠진 후에 정신을 잃은 이들. 사방으로 터진 파편을 맞아 쓰러진 이들이 망원경을 가득 채웠다.

‘연기와 불길 때문이라도, 배를 탈 생각을 절대 못 하겠군.’

십여년의 평화를 거치면서, 천진수군이 안전 대신 편리함을 택한 결과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돛을 올려라!”

“돛을 올려라!”

구경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윤세진은 목청을 높여 명령을 내렸다.

돛을 내려 아무리 속도를 줄였어도, 해류와 바람을 타고 신형전함은 꾸준히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덧 천진항구가 사거리에서 벗어나기 직전이었고, 저 멀리 천진항구 바깥에 위치한 암초와 해안선이 보일 정도였지.

“변침!”

“변침!”

“함장님! 돌격 명령입니다.”

“음!?”

윤세진은 견시병이 알려온 명령을 들으며, 뒤따라오는 함선과 저 멀리 보이는 기함을 살폈다.

‘운 좋게 화약고가 터졌으니, 계획보다 빨리 끝장을 보려는 모양이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휘리릭. 조타병이 돌린 타륜은 맹렬하게 끝까지 돌았고, 신형전함은 갑판에 있던 이들이 죄다 갑판벽에 쏠릴 정도로 기우뚱하며 몸을 비틀었다.

촤락촤락. 흰 포말을 일으키며 다시금 선회를 하고서, 이번에는 윤세진의 13번함이 선두가 되어 북쪽으로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힘차게 타륜을 돌리던 조타병은 꽉 붙잡고 있던 타륜을 풀어 제자리에 향하게 했고.

“다시 좌현으로!”

“좌현으로!”

윤세진의 명에 이번엔 반대방향으로 뒤리릭. 타륜을 힘껏 돌렸다.

전 함대 돌격명령이 떨어졌으니, 이제 적을 옆에 두고 하는 포격전은 잠시 접어둬야 할 시간.

“화시를 준비하라.”

“화시!”

항해사의 복명복창이 끝나기 무섭게, 자기 차례만 기다리고 있던 갑판 위 선원들이 부산스럽게 손을 놀렸다.

활시위를 점검하고, 화살촉 뒤로 천으로 뭉툭하게 매어놔 기름에 푹 담가놨던 화시를 확인하고, 화시에 불을 붙일 작은 화로 또한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이윽고. 쿵... 포격을 맞아 반쯤 물에 파묻힌 적함에, 신형전함은 옆구리를 부딪치며 딱 달라붙었다.

비스듬하게 남쪽에서부터 찔러들어 온 13번함은 엉망이 된 천진포구의 백보 거리까지 파고들었고, 여기서 더 들어가면 오히려 좌초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해안에 바짝 붙었다.

“발사!”

“쏴라!”

휘리릭!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화살들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퉁퉁! 뒤를 이어 묵직한 소음과 함께 대형쇠뇌에 실려 있던 기름항아리 또한 화시의 등을 받쳤다.

잔해가 돼서 마구잡이로 둥둥 떠다니는 폐선 뒤엔, 천진수군이 이십년동안 꾸준히 만들어온 함선이 겹겹이 쌓여 있지 않나.

그 위에 올라탄 천진수군이 맞든 말든, 병사들은 어깨가 빠져라 화시를 날려대기 시작했다.

콰콰쾅! “아아악!”

“음?”

뭔가 다른 파공음과 비명소리에 윤세진이 옆을 바라보자.

13번함 뒤를 따르던 몇몇 전함에선, 기어코 달라붙은 천진수군에게 자갈비를 쏟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성벽이나 다름없는 신형전함에 어떻게든 기어 올라가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런 이들에게 조란탄 세례가 쏟아지니, 바닷물마저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천진수군은 분해된 살점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거... 앞이 보이지도 않군요.”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적함은 널려 있는데.”

매캐한 탄 연기를 맡으며 윤세진이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포갑판에선 검은 연기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정면을 향해 연신 장군전을 날려댔다.

쾅쾅쾅! 검은 연기를 뚫고 날아간 장군전은 적함, 부두, 포구의 좌판, 포구 근처의 건물들, 옛 성벽 뒤에 숨은 시가지까지 마구잡이로 날아갔고.

온 사방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소리가 연기에 버물어져 선원들의 귀를 찔러댔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없던 힘이 생기기 마련.

가져온 화약과 장군전을 전부 써버릴 생각인터라, 함대는 미친 듯이 포격을 이어갔다.

“천진수군은 완전히 끝났군.”

“예.”

윤세진은 급습작전이 완벽히 성공한 것에 기쁨이 차오르는 동시에, 지옥도를 보고 있자니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 함께 밀려왔다.

이십년 넘게 힘을 길러온 천진수군이, 오늘 하루 만에 백지로 변할 테니까.

‘수군병은 얼마 죽지 않았어도, 배가 없으면 수군이 아니지.’

사상자가 얼마나 될지 짐작도 안 되지만, 아무리 많아도 천여명을 넘기는 힘들 터... 삼만 중에서 천여명이면 큰 피해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선만큼은 단 한척도 남지 않을 거다.

그의 바람처럼, 화마는 최고점을 향해 매섭게 나아갔다.

기름띠를 따라 엉켜 있던 적함에 하나둘씩 불이 옮겨 붙고. 불이 붙은 함선이 늘어나면 날수록, 불기둥은 기하급수적으로 덩치를 불려갔다.

붉은 바닷물 위로 무지개 빛깔을 반사하는 기름띠가 덮어지고, 해수면 전체가 불꽃파도를 토해내며, 천진포구까지 불길이 옮겨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의 바다. 불타는 지옥이다.

그는 묘한 눈으로 불타는 바다를 보고 있는 항해사에게, 아까 했던 대화를 다시 꺼내고 말았다.

“자네 말대로... 앞으로 해군은 정말 돈 먹는 괴물이 될지도 모르겠어.”

“...?”

“보게. 아무리 방비를 못한 천진수군을 급습했다지만, 아군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나 했을까? 오늘 싸움은 앞으로 아국의 역사에 몇 없을 엄청난 대승으로 기록될 걸세.”

“예...”

항해사가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 바라보자.

“하지만 이번 단 한 번의 전투에, 거의 반년치 군비를 소모하지 않았나. 앞으로도 해군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겠지.”

“그렇겠죠?”

“그럼... 육군은 모르겠지만, 해군의 싸움은 돈으로 결판나는 시대가 온 것 같지 않나?”

“음.”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모를 묘한 목소리에, 항해사는 뭐라 대답도 못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뭐. 산동이 어느 정도 벌충해 주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화약이었으니까 말이죠.”

“...”

항해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고, 윤세진은 쓴웃음을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새벽녘에 시작됐던 급습은 해가 하늘 꼭대기에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고, 더 이상 머물기 힘들 정도로 불바다가 되어서야 조선해군은 반대편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

장육은 귀를 간지럼 피우는 소란스러움에, 눈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였다.

안 그래도 꿈자리가 사나워서 늦게 잠든 터라, 피곤이 온몸을 짓눌러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뭔데...’

눅눅한 짚으로 만든 침상에 파묻혀 일어나지도 못하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 눈곱을 떼어내고 있자.

“...!?”

왠지 모를 진동과 함께, 알아듣기 힘든 고함과 비명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흘러들어왔다.

“크음...”

‘꼭두새벽부터 대체 뭔 일이야...’

마른기침을 내뱉고, “끄응.” 신음을 내며 몸을 일으켰고, 낡고 금이 간 담벼락을 눈에 담으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헉...!”

허나 태평과 짜증이 잔뜩 묻어난 그의 눈에, 여명과 함께 치솟고 있는 불길과 검은 연기가 단박에 들어왔다.

“대체 뭔...!?”

‘저긴 영가의 장원이 있는 곳 아닌가?’

오래전 공청과 함께 찾아와, 어느새 이곳 위소의 주인이 됐고, 그 위소마저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대지주이자 호족으로 변모하고 있는 영가.

주는 것 없이 부려먹기만 한 탓에, 얼굴을 떠올려봐야 재수만 없지만... 그래도 이 인근의 마을주인인 영가의 장원이, 저 꼴이 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이게 뭔...!?”

그는 번개라도 맞은 것 마냥 잠이 확 달아났고, 이리저리 날뛰면서 정작 뭘 어찌해야할지 모를 동네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 때. 저쪽에서 갑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이가, 황급히 달려왔다.

“허헉... 장 총기!”

“대체 무슨...”

장육이 말을 묻기도 전에, 군병 오십을 관리하는 최하급지휘관인 동료 이 총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 조선군일세! 조선군이 영가를 박살내고 이쪽으로 오고 있어!”

“조선군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조선이 청도에 포구를 만든 건 익히 들었고, 청도포구를 관리할 조선기병이 있다고 들었다. 허나 그들이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여길 왜 오고, 또 영가의 장원을 왜 불태운단 말인가.

“천천히 말...”

그는 잔뜩 겁먹어서 흥분한 동료를 다독이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두두두...! 어스름한 아침햇살을 따라 검은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서, 수백기의 기병이 마을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조...!”

화들짝 놀란 그가 소리치며 집으로 피신하기도 전에, 쉐에엑!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의 초가집 지붕에 틀어박혔다.

“어...”

“흐헉...!”

자기도 모르게 발이 땅에 붙어 옴짝달싹도 못하는 두 사람을 향해, 기병대는 화살을 쏘아대며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아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뭔 일인지 몰라 자다가 깨서 나온 모든 병사들을 향해 기병대가 달려들었던 것.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인 기병대는 순식간에 마을을 휩쓸며 포위했고.

요란하게 펄럭이는 검은 깃발과 자신들은 입어보지도 못한 검은 두정갑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보기만 해도 흉흉한 기창을 들고 배회하기 시작.

“아악!” “허헉...!”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협박을 담은 몸짓은 충분히 통하기 마련.

장육과 이 총기는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세 명의 조선기병을 앞에 두고,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그들은 딱 봐도 질 좋은 철로 만든 창날을 내밀고서, 벽으로 붙으라고 휙휙 손짓하고 있었으니까.

둘은 눈을 마주치며 발을 질질 끌었고, 이내 벽에 바짝 달라붙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저 창날이 언제 자기 가슴팍에 박힐지 두려웠기 때문.

세 명의 기병 뒤로, 또 다른 기병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들을 앞에 섰고.

“이 자가 맞나?”

“예? 예.”

두 사람은 낯선 조선말보다, 그들과 함께 있는 인물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

‘왕 백호가 왜?’

‘어째서?’

장육과 이 총기는 자신의 상관인 왕 백호를 보며 알 수 없는 눈빛을 뿌렸고, 왕 백호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못하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왕 백호는 힘없이 답했고. 역관을 통해 대화를 하는 터라, 장육과 이 총기 또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딱 봐도 죽이려는 것 같진 않은 터라, 둘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덤이었지.

“뭐. 그런 건 상관없겠지. 아무튼 저 자가 이곳 림기현의 초석광산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인물이라는 거지? 계급은 낮지만 그건 영가 때문에 그런 거고?”

“예. 그렇습니다.”

“...!”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장육은 자기도 모르게 눈이 화들짝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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