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29화 (229/538)

229. 챕터34. 제거하다 (2)

“그럼 저자를 앞세워 이동하지. 다른 총기들과 소기小旗를 찾아야 하니까.”

“예예.”

양 백호라 불린 인물은 눈빛으로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말했고, 장육과 이 총기는 군말 없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1부터 5중대 까지는 숙영지를 건설하고, 7중대는 6중대 마무리 작업을 도와주도록. 나머지 중대는 이대로 마을을 점거하고 총기와 소기들을 모으도록.”

“옙!”

“충성!”

연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육을 둘러싸고 있던 기병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

모두의 시선과 묵언의 압박을 받으며 장육과 이 총기는 냉큼 양백호 옆으로 다가갔고, 양 백호 또한 말에서 내려서 발걸음을 맞췄다.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황망한 눈동자를 숨기지 않고 묻자, 양 백호는 조선무관들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말해도 되나 의문이 들었던 것.

허나 이미 쌀이 밥이 되었고, 해치지 않는다는 말을 지켰으니 믿는 수밖에.

“...”

그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중대장을 다시금 힐끔 살폈고,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입을 열었다.

“그게...”

양 백호는 청도에서 있던 일. 공청 일파가 칼부림을 부렸다는 거짓된 정보를 일러줬고, 둘은 믿기지가 않아서 눈을 부릅떴다.

‘말이 되나?’

‘하지만...’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던 공청 편을 들 생각이 없는데, 말이 되든 안 되든 무슨 상관일까.

둘은 계속해서 눈빛을 마주치며 의견을 나눴고, 이내 양 백호도 동참하고 말았다.

“공청 파벌은 이미 끝났어. 알겠지?”

“예예.”

“흐음.”

둘은 양 백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양 백호는 이곳 위소에 속해 있던 백호소의 수장이었고, 얼마 전부터 기병지휘관이 될 거라고 하면서 청도에서 훈련을 받았었다.

그랬던 인물이 공청 파벌에 속해 있던 이들의 목이 뎅강뎅강 날아가는 걸, 자기 눈으로 봤다고 하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할까.

“허면... 영가 놈들의 뒤를 빨던 이들도 다 죽은 겁니까?”

“그래.”

“허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리는 오묘한 신음이 장육 입에서 흘러나오자, 양 백호는 얼른 말을 이었다.

“영가의 장원을 다 불태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저길 그냥 불태울 수 있었겠나? 장원에 살던 백호와 총기들 모두 영가의 가솔과 함께 죽었네.”

“퉤. 개 같은 놈들. 그건 마음에 드는 군요.”

“그렇지?”

“...”

양 백호는 동조하는 이 총기를 보며 히죽 웃었지만, 장육은 아직도 표정을 풀지 못했다.

“전부 죽었다라...”

“그래. 무자비하더군.”

양 백호는 기병훈련을 받았다지만, 정작 기병이 실전을 치르는 걸 처음보지 않았나.

조선군이 잘게 쪼개져 장원과 장원 주변의 거점을 포위하고, 장원을 급습하고, 우악스럽게 정문을 때려 부수고, 그 안의 모든 것을 말발굽으로 사정없이 짓밟는 건 처음 봤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서, 다시금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반항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게. 이미 산동 전체가 말발굽에 밟히고 있을 테니까. 얼마나 많은 기병이 청도에서 출진했는지 헤아릴 수가 없네. 아무리 못해도 만 명 이상이야. 공청 파벌이 차지하고 있던 위소와 장원은 전부 박살날 걸세.”

“히익! 만... 기병만 만명이라고요?”

“그래. 기병만.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화포도 가지고 있는 것 같더군.”

“...!”

둘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기병대 만명이라? 그렇게 많은 기병은 본적도 없다.

“알겠지? 저들은 산동인이 아니야. 소문만 무성한 조선군일세.”

“...”

장육은 대답대신 힐끔 뒤따르는 조선기병을 살펴봤다.

모두가 통일된 갑옷을 입고 있고, 생전 처음 보는 요상한 무기를 잔뜩 달고 있고. 심지어 하나같이 활을 끼고 있다.

저걸 다 쓸 줄 아니까, 저렇게 과무장을 하고 돌아다니지 않을까?

‘허나 백호조차도 저걸 다 다루진 못할 거 같은데...’

장육은 자기도 모르게 양 백호를 힐끔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도 나름 군문에 오래 있던 터라, 지휘무관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어지간한 무관 아니면 저 무기를 다 다룰 수도 없을 텐데, 반대로 조선기병은 다 가지고 있으니... 저들 하나하나가 지휘무관급 실력을 가졌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알겠나? 허튼 생각은 절대 하지 말게.”

“저들 모두가 정말로 기사를 할 줄 아는 겁니까?”

“기사가 뭔가. 배사背射까지 하더군.”

장육의 생각을 읽었는지, 양 백호가 단호하게 말을 쏘아붙였다.

“허헙.”

“...”

이번에도 이 총기가 먼저 기겁해서 신음을 내질렀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앞으로 달리면서 뒤로 쏘는 배사까지 할 줄 안다고? 이게 조선군인지, 말로만 듣던 몽골군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럼 우린 어찌되는 겁니까?”

“글쎄...”

양 백호는 자기도 정확히 몰라서 말을 흘리다가, 이내 곧 결심을 하듯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될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절대 우릴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걸세. 우리 위소는 끝끝내 살아남았으니까.”

“처지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말이죠.”

“그래. 처지가 안 좋아지긴 했지만, 어찌됐건 살아남았지.”

이 총기의 씁쓸한 미소가 전염이라도 되는 듯, 양 백호 또한 씁쓸한 미소를 숨기지 않고 말을 받았다.

홍무제는 명나라를 세우고, 조선과 유사한 군호제를 도입했다. 어쩌면 조선이 홍무제를 따라한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조선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명은 둔전을 경작케 해 재원을 충당하고, 봉족제와 유사한 방법으로 군병이 되는 집안을 보조하게 했다.

다만 군호와 민호를 완전히 분리해서, 위소장이 통치하게 만들었으니... 군정이 실시되는 일종의 군인마을이 생겨난 셈이랄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군호제는 많은 폐단을 낳았다.

군호의 둔전은 위소장의 사전으로 흡수되고, 군호에 속한 이들 또한 소작농이 되거나 아예 이탈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돈을 주고 군호에서 빠져나와 민호로 전환되는 경우도 많아, 종국에는 장부상으로만 남은 군대가 되어버렸고.

원래 역사에서도 결국엔 군호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이 이뤄지게 된다.

허나 지금 역사에선 명이 망해버리자, 오랜 시간에 걸쳐 미래에 펼쳐지게 될 사건이 지난 이십년간 순식간에 진행됐다.

“지난 내전 때도 황제군이나 정난군이나 우릴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네.”

“그랬지요.”

정난의 변이 벌어지자, 산동의 군호는 황제군에 속했다가 또 정난군에 속했다가를 반복했다.

산동만 그랬을까.

중국 전역의 군호가 몸살을 앓았고, 무수히 많은 군병이 죽어나가면서 군호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명이 망하면서, 이 군호를 통제할 주체도, 무너진 군호를 재편성할 주체도 사라졌다.

군권을 쥔 도지휘사는 자신의 권한을 늘리기 위해 민호를 흡수해 군호를 재편성하려 했지만, 경쟁자인 포정사와 안찰사가 미쳤다고 이걸 들어주겠나.

오히려 군호조차도 민호로 바꾸어 도지휘사의 힘을 빼려고 했다.

군호에 속한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또한 미쳤다고 군인이 되는 걸 좋아할까. 당연히 민호가 되는 걸 선호했지.

여기에 금력을 가진 호족과 상인세력마저 끼어들어서, 군호를 해체시켜 둔전을 자신의 사전으로, 군병을 소작농이나 사병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

이래서 지금 역사에선 중국 군대가 잔뜩 쪼그라들고 사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위소의 지휘관 자리를 놓고 온갖 세력이 손을 뻗치게 되니... 성의 군대가 외부로 힘을 투사하기 힘든 거지.

패잔병을 이끌던 공청의 경우에도 똑같은 방식을 취했다.

그는 허울만 남은 산동 도지휘사를 밀어내고, 군호를 장악하고, 그거로도 부족해 호족집안을 무너뜨려 자신을 따르는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나눠줬다.

새로운 군호를 만든 셈인데, 정체 상태가 지속되자 장수들은 위소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호족가문으로 변모하기 시작.

이곳 위소 마을을 지배하던 영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남았네.”

“우린 화약장인이자, 오래전부터 초석광산을 관리해 왔으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양 백호의 말에, 장육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이 온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에도, 이곳 림기현의 위소마을이 예전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 건 바로 초석광산을 관리했기 때문.

이들은 군병이면서도 정작 창칼을 들고 싸워본 적이 없었고, 정난의 변 때나 공청이 밀고 들어왔을 때나, 언제나처럼 초석을 캐고 화약을 만드는 일만 집중했다.

다만 이 중요한 자리를 그냥 놔둘 순 없으니... 공청의 수족인 영가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백인장이라 할 수 있는 백호, 오십인장이라 할 수 있는 총기 자리에 자신을 따르는 이들만 임명해 관리를 해왔던 것.

기존에 있던 백호, 총기, 십인장인 소기가 허름한 초가집에서 근근이 살아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럼... 여긴 조선이 다스리게 되는 겁니까? 그 누구도 초석을 포기하려고 하진 않을 텐데요?”

“뭐... 윗사람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나? 중요한 건 그간 영가에게 핍박받았던 우리의 입지를 높이고, 살아남으면 그만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조선이든 해안가 상인이든 뭔 상관이랍니까. 그치들이라고 해서 지금껏 우리에게 잘해준 것도 없는 데 말입니다.”

이 총기의 말에 양 백호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장육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조선기병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총기와 소기를 긁어모았고, 모두는 두려운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귓속말을 하며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눴다.

그런 그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으자, 연대장인 김효성이 앞에 나섰다.

“뒤에 뭔가 있는지 보이나?”

“...?”

역관의 외침에 모두는 자기도 모르게 검은 갑옷장막 뒤를 살폈고, 그곳엔 살짝 그을린 가마니들과 비단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딱 봐도 영가의 장원에 있던 재물을 죄다 챙겨온 모양이다.

“영가가 그간 이곳을 착취했다고 들었다. 앞으로 이곳 위소는 산동인들에게 돌아가겠지만, 정리가 될 때까진 우리가 관리하게 될 터.”

“...!”

“이건 그간 너희가 착취당한 보상이다. 가져가라.”

“...!”

“헉!”

“히익!”

혹여나 한자리에 모아서 다 죽일까봐 겁을 내고 있던 이들인데, 뜬금없이 포상을 준다고 하니... 다들 믿기지가 않아 신음만 흘려댔다.

“움직이지 말고, 줄 흐트러뜨리지 마라.”

“...!”

허나 진심인 걸까? 조선군은 그들이 반응을 하든 말든, 다짜고짜 곡식가마니를 가져와 그들 앞에 하나둘씩 던져줬다.

그들이 “이걸 받아도 되나 말아야 되나?” “혹시나 함정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머뭇거릴 때.

“가져가라. 나머지는 다른 마을 주민에게 나눠줄 거다. 그러니 괜히 동요하지 말도록. 너흰 앞으로 너희 일만 계속 하면 될 테니까.”

“...!?”

모두는 다시금 황망한 눈동자를 뿌렸고, 김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백호 양휘진, 백호 초권, 총기 장육, 총기 건묘정은 앞으로 나와라.”

“...”

갑자기 왜 자신들을 부르나 화들짝 놀랐지만, 모두는 지명한 인사를 보며 속으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농땡이를 피우며 놀고먹던 영가의 지휘관을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초석광산을 관리하던 이들이었으니까.

“우리와 함께 초석광산을 둘러보러 간다.”

“...”

“앞장서라.”

“예예.”

모두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지목 당했던 양 백호가 얼른 앞장서서 다른 이들을 이끌었다.

앞서거니 두서거니 하면서 재빨리 발을 놀리는 하급지휘관들.

“초석광산이라... 정말 부럽군.”

“예.”

그들의 뒤를 따르는 김효성은 대대장에게 자기도 모르게 아쉬움을 토로하고 말았다.

대대장 또한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밀려왔다.

조선은 초석을 구하려고 별의 별 난리를 치고, 화약제조청에선 밤낮을 잊어가면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산동에선 그야말로 거저먹기로 초석이 나오고 있으니까.

“공청은 초석을 전가의 보도로 삼아서 써먹었는데, 어째 관리는 엉망으로 했군.”

“초석을 많이 만들어봐야, 팔아넘기기엔 너무 부담스럽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부하들이 이탈하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선, 호족가문으로 변모하는 걸 막을 수도 없었겠지요.”

대대장의 말에 김효성은 피식 허탈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화약제조기술은 명에서 넘어왔고, 명은 초석광산을 이용하면서도 전국에서 화약을 생산했다.

일전에 북평부를 두들겨 패면서 화약장인들을 데려와, 그들의 선진기술을 흡수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순도와 생산량에서 보면, 초석광산에서 캐는 게 최고였지.

다만 명은 화약제조 및 화포제조기술이 외국에 넘어갈 걸 극히 우려해서, 병장兵仗과 군화軍火라는 조병창 비슷한 기관을 설립해 몇몇 특정된 곳에서만 화약무기를 제작하게 했다.

헌데 명이 망하자. 조병창을 차지한 세력은 화포는 만들 수 있는데 화약제조는 힘들어졌고, 공청은 화약은 넘쳐나는데도 정작 제대로 된 화포를 새로 만드는 건 힘들었다.

화포는 대장간에서 창칼 만들 듯이 쿵쾅쿵쾅 한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지금 중국이 화약무기를 맘껏 쓰기 힘든 데엔, 이런 이유도 있었지.

아무튼. 이래서 공청은 화약을 팔고 화포를 들여오려 했고, 그게 힘들다면 화약을 지렛대 삼아서 이런저런 이득을 얻으려 했는데... 온 사방에서 견제가 들어오니 그것도 생각만큼 쉽진 않았다.

돈과 사람이 넘쳐나는 세력에게 화약무기란 비대칭전력이나 다름없고, 이걸 적대세력에게 허용하면 목을 내밀고 죽여 달라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중국원정 때에 조선에게 막대한 양의 초석을 지원해 준 건, 이런 속사정도 숨어 있었지.

문제는 다른 부하들이 죄다 호족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여기만 특별취급하면 문제가 생길뿐더러, 돈도 땅도 되지 않는 위소를 누가 가려고 하겠나.

결국 이곳 위소도 다른 곳처럼, 호족가문의 휘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