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챕터34. 제거하다 (3)
“그럼 저들을 구슬리는 건 어렵지 않겠지?”
“예. 그럴 겁니다. 당장 보시면 알겠지만 저들은 산동제일의 화약장인인데도, 푸대접을 받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대접해주면 대접해줄수록 따르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이 높아지면, 나중에 산동인들이 여길 관리할 때 불만을 품을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치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허술하진 않을 겁니다. 공청도 사정은 알았지만, 자신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차악을 선택한 것일 테니까요.”
“그렇겠지.”
김효성은 쉽게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였고, 왜 자신이 여기에 왔는지도 다시금 깨달았다.
‘다른 연대장들에게 맡기기엔, 미덥지 않았던 모양이군.’
다른 연대가 산동을 휩쓸고 다닐 때. 그의 연대만 이곳에 자리 잡은 건... 창과 칼로서 적을 치는 게 아니라, 여길 최대한 정상화시키고 확장시키라는 뜻.
그는 야전지휘관으로 커오는 동시에 꾸준히 정무에 힘써왔고, 다른 연대장들보다 민정에 대해 익숙했다.
설주(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면서, 야인여진을 조선에 귀화시켜 복속시키는 일을 꾸준히 해왔으니까.
‘영가를 치는 건, 그냥 발치에 걸린 돌을 빼낸 것에 불과했군... 거참. 날 믿어주는 건지, 못미더워 하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연오랑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도 전자가 아닐까? 다른 연대장들이야 싸움질만 좋아하지, 뒤에서 내정을 굴리는 걸 귀찮아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으니까.
“저... 저기입니다.”
“음.”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초석광산에 도착했고, 하급지휘관들은 조심스럽게 안내를 시작했다.
“오... 이렇게 생겼군?”
“북방의 광산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군요.”
“음... 오래전에 몽골초원에서 봤던 염호나 암염광산과 흡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저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김효성 뒤를 따르던 이들은 망설이지 않고, 이런저런 감상을 늘어놨다.
초석광산은 뭐랄까. 모르고 봤다면 그냥 산에 붙어 있는 개흙밭이나, 특이한 모양으로 이랑과 고랑을 파낸 밭처럼 보였을 거다.
그런 흙밭을 요리조리 각을 지어 파내고, 그 파낸 흙을 한곳에 쌓아 모아두고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 흙 자체에 초석이 함유되어 있고, 이걸 재가공해서 순도 높은 초석을 얻는다고 했다.
‘허... 이거야 말로 염초밭이라 부를 수 있겠군.’
모두가 설명을 들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혀를 내두르고 있자.
“정제한 초석을 볼 수 있겠나?”
“예예. 나리.”
누군가의 물음에, 양 백호 일행은 개흙밭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는 움막 같은 작업장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이곳에선 흙을 조리고 끓이기를 반복해서 얻은 초석결정이 말라가고 있었는데, 양 백호는 손가락보다 조금 큰 초석 덩어리를 내밀었다.
“음...”
가장 흥미롭게 초석밭을 보던 그는 흡사 수정처럼 생긴 초석을 이리저리 살피고, 조심스럽게 쪼개서 분말가루의 촉감과 색을 살폈다.
“어떤가? 해산.”
“과연 품질은 좋군.”
최해산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선, 이 먼 산동까지 오게 된 화약제조청 관리들을 불러 뭔가를 시켰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면서 연필로 뭔가를 열심히 적는 걸로 보아, 벌써부터 새로운 초석생산 방법에 안달이 난 모양새다.
“잘하겠지?”
“큭. 이를 말이오.”
최해산은 김효성의 물음에, 피식 웃는 걸로 자신감을 내비췄다.
실력에 비해 살짝 인성에 문제가 있던 최해산이지만, 그가 착호군에 속해 연오랑 밑에서 박박 구른 게 벌써 몇 년인가. 거기에, 어떤 면에선 연오랑보다 더 깐깐한 세종 밑에서 화약제조청을 이끌어 온 세월이 얼마인가.
이젠 정말로 노련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중신重臣으로 변모해서, 아래 사람을 부리는 것도 익숙함을 넘어서 능숙해졌다.
“저긴 뭔가?”
“저긴 초석광산으로 초석이 암석처럼 뭉쳐져서 나옵니다.”
최해산이 개흙밭 너머 움푹 파인 산을 가리키자, 양 백호는 조심스럽게 답을 던졌다.
양 백호가 “안내할까요?”라는 눈빛을 뿌리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는 그를 따라 광산으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산은 엄청나게 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네 뒷산마냥 작지도 않았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여기가 초석광산인걸 몰랐다면, “흔한 산이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처럼 평범해 보였다.
“음...”
“석탄광산과 비슷한데?”
“말로만 듣던 암염광산이 이렇게 생겼을까?”
이번에도 역시나 웅성거렸고, 양 백호는 얼른 초석덩어리를 하나 가져와 보여줬다.
암석이라곤 하는데... 손으로 쓱쓱 털어내면 가루가 떨어질 정도로 아주 무른 암석이었고, 색조차 흙색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냥 진흙덩어리를 뭉쳐서 말려 놓은 느낌이다.
“큰 차이가 없군?”
“예. 어차피 염초밭이나 이 덩어리나, 초석이 함유된 건 마찬가지니까... 아마도 산에 파묻히면서 흙이 굳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보이네.”
최해산은 화약제조청 관리의 의견에 동의했고, 맞는지 싶어서 양 백호에게 묻자. 그 또한 “맞습니다.”라며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염초밭이라...”
“자네들이 작업하는 구역이 어디까지인가?”
“천호소라고 했으니, 대충 천명정도가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나?”
“아니지. 천명이라고 해도 둔전도 함께 일궈야 하니, 많아봐야 오백정도 아니겠나? 가족들까지 일을 하는 건 아닐 테고.”
화약제조청 관리들은 양 백호와 함께 온 장육 등에게 이것저것 캐물었고, 그들은 숨김없이 설명을 늘어놨다.
“그간 이곳에서 생산하는 초석의 양이 얼마라 하나?”
“오래전에 최대로 많이 생산했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이곳에서 한 달간 만든 초석의 양이 아국의 반년 치 생산량보다 많다고 하네.”
“허...!”
연신 양 백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최해산의 대답에, 김효성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예전 말고, 화약제조청이 정비된 후를 기준으로 말하는 거 맞나?”
“맞네.”
믿기지가 않아서 얼른 되묻자, 최해산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연... 대감께서 신신당부한 이유가 있군.”
화약제조청이 재정비 되고, 오물수거기업 및 비료기업이 생겨나면서, 조선의 함토鹹土생산량 자체가 예전에 비해 3,4배 가량 증가한 상태였다.
이 함토를 정제해 초석을 뽑아내는 방법은 연구를 거듭해서, 눈곱만큼씩 효율을 높이고 있었지.
그런데도 이곳에서 뽑아낼 수 있는 초석의 양과 비교조차 불가하다.
“...”
김효성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손짓으로 최해산을 불러 조용히 귓속말을 시작했다.
“천호소 하나의 인원으로 뽑아낼 수 있는 양이 그 정도라면, 인부가 많아지면 더 많이 뽑아낼 수 있겠군.”
“그럴 걸세. 땅만 파면 초석이 나오니까. 정제하는 방법은 기존장인들에게 맡기고, 단순 채취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을 걸세.”
“인이 청도에 머물고 있으니, 얼른 연락을 취해야겠군. 잉여 인부들을 이곳에 정착시켜야겠어.”
“좋은 생각일세.”
황보인은 청도에 머물면서 연대병을 지원하는 동시에, 청도포구 전체를 관리하고 있었다.
청도포구의 공사가 얼추 마무리 되면서, 수만의 인부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착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전부 정착한 건 아니었다.
빈민으로 변모할 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그들을 처리할 겸, 이곳으로 불러오는 건 꽤 좋은 선택이다.
“몇이나 불러오는 게 좋겠나?”
“대략 이천에서 삼천정도 부르는 게 나을 걸세. 초석밭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너무 많으면 정작 초석은 못 캐고 마을만 만들다 끝날 수도 있네.”
“음...”
김효성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어찌하는 게 좋은지 수지타산을 따져봤다.
‘이곳을 앞으로 누가 관리할지는 산동인들이 알아서 정하겠지만, 영가의 땅과 재원을 넘겨준다고 하면 군말 없이 받아들일 거다.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는 걸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비용은 산동상인회에게 받아내면 되겠지.’
여기에 조선의 자금이 투자되면, 나중에 초석광산을 놓고 조선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사태는 산동인들이 먼저 피하고 싶을 테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지원을 요청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어떤가?”
“좋은 생각일세.”
“게다가 보게. 난민들을 이곳에 정착시켜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초석을 생산케 하면, 이곳의 수입원은 둔전이 아니라 초석이 될 걸세.”
“그렇겠지.”
“초석 생산량을 줄이면 이 마을이 굶어죽는 거나 다름없으니, 생산량을 쉽게 줄일 수도 없지 않겠나? 그렇다면 초석을 팔아야 하는데... 산동인들이 보기에 가장 안전하고 후환이 없는 상대가 누구 겠나?”
김효성이 음흉한 미소를 품자, 최해산 또한 히죽 입고리가 들렸다.
“우리 조선이겠지. 소량으로 잘게 팔수도 있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고, 다른 성의 세력들에게 대량의 초석을 팔았다가는 그 후환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기껏해야 요동에게 넘기는 건데... 공청이 없어진 이상, 산동이 마냥 요동의 뒤를 봐주는 것에 불만이 생기겠지.”
“그렇지. 특히나 작전대로 북평부의 군력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산동은 요동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을 걸세.”
둘은 히죽 미소를 머금었고, 이내 정보 수집을 마친 관리들이 둘에게 달라붙었다.
산동인들을 모르겠지만, 연오랑은 분조分朝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부서의 관리를 다 데려왔다.
그들은 이곳의 사정을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을 친조선파로 만들 수 있을지, 초석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짧은 시간동안, 큰 틀을 짜서 내밀었다.
어찌 보면 이건 양전사업이나 북방신도시 건설과 크게 다를 게 없었으니까.
“인력은 청도에서 벌충하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저들에게 보은을 내리려면 제대로 된 집을 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청도를 건설하던 인력과 장인, 만들어 놓은 자재가 있으니 이곳으로 옮겨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가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장인들에게 돌려줘도, 꽤 많은 땅이 남을 것 같습니다. 그걸 이곳을 관리할 가문에게 팔면 재건축비용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초석밭의 크기도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초석의 생산량이 오락가락해서, 이치들조차도 예전에 파던 구역만 사용하고 다른 구역을 알아보진 않은 것 같더군요.”
“맞습니다. 옛 명나라 때의 장부나 서류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적이든, 토지장부든, 예전 내전 때 다 날아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공청이 억지로 만든 장부와 서류만 남아 있다고 하니, 이걸 정리하면 꽤 많은 군호와 민호가 정리될 듯합니다.”
모두는 자기가 알아오고 그려온 계획을 늘어놨고, 이내 다른 걸 알아온 관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화포나 화기를 만들 줄 아는 장인은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도 없으면 아마 산동의 다른 세력들도 몇 없을 테니... 옛 명나라 시절 물건을 그대로 쓰거나 개량하는 모양입니다.”
“어째서?”
“예전 내전 때. 연왕부에서 산동장인들을 다 데려갔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야 뭐... 엉망이 됐고요.”
“음...” “흠.”
최해산과 김효성은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기기술자는 숙련된 장인이고, 내전 당시에 그들을 남겨뒀을 리가 있나.
아마 연왕부는 산동은 물론이고, 다른 성의 화기장인들을 닥치는 대로 데려갔을 거다. 자신들이 써먹지 않더라도, 황제군이 써먹지 못하게 막아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연왕부의 후신인 북평부의 화포가 중국제일이라는 말이 붙게 된 건가?”
“뭐... 연왕부는 북원과 여진, 기타 유목민잔당을 상대해야 했으니, 물 밑으로 화포를 개량해 왔겠지.”
“그 후로는 공청조차도 화기장인을 육성하는 건 힘들었을 테고.”
“그랬을 걸세.”
둘의 만담에, 모든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대 화포는 동으로 만들었다.
옛 명나라라면 전국의 동광산에서 동을 채굴해 조병창으로 옮겨 화포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지금 역사에선 불가능해지지 않았나.
동광산을 끼고 앉은 세력에게서 동을 사와야 했는데... 동은 최고로 민감한 홍무통보를 만들거나, 온갖 생필품에 활용되는 물건이니 수요가 많기 마련.
화포를 만들겠다고 동을 엄청나게 긁어모으는 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뿐더러 온갖 오해를 불러일으킬 거다.
‘그러니 제대로 된 화기장인을 육성하는 것도 힘들었겠지.’
김효성이 머릿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자, 다른 관리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초석광산 말고도, 함토를 이용해 염초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와 조금 다른 것 같았는데, 제대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최해산이 반색하며 되묻자, 화약제조청 관리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명이 망하자, 온갖 세력이 화기와 화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는 큰 결실을 보진 못했지만 어찌됐건 조금씩 발전했다.
북평부도 조선의 화약제조방법보다 나은 점이 있던 것처럼, 산동 또한 초석광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름 연구를 해온 모양이다.
“그런데 정작 초석광산을 관리하는 이들이 그 방법을 안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청이 초석광산을 쥐자 다른 파벌에서 어쩔 수 없이 연구를 한 모양입니다. 장인들끼리 교류하면서 이들도 익혔고요.”
“음...”
이들의 지식이 필요하니 첩자를 활용해 야금야금 기술을 빼돌렸고, 반대로 그 지식을 이쪽에서도 흡수한 모양이다.
영가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만 우대했으니, 홀대 받은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상인, 관료세력에게 몰래 지식을 팔아넘긴 거겠지.
“좋아. 바로 진행하지. 지금쯤이면 해군이 천진을 박살내고 재보급을 위해 청도로 오고 있을 터. 목탄과 황, 흑연은 청도주둔지에 있으니 초석만 확보되면 곧장 화약을 보충할 수 있을 거다. 지금부터 당장 초석 생산에 들어간다.”
“옙!”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