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31화 (231/538)

231. 챕터34. 제거하다 (4)

청도에서 일을 벌인 조선군은 벼락처럼 산동 각지로 뻗어나갔다.

연대별로 찢어져 움직였고, 그들 곁엔 회유된 하급무관과 관료, 상인세력의 후계자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공청 파벌이 쥐고 있던 위소를 제거 및 회유하고, 공청 파벌의 장원을 급습해 현물재산은 조선이 압수, 땅과 이권은 산동인에게 넘겨줬다.

뒤처리는 산동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연대병은 그저 앞으로 달려가 치고 또 치면서 공청 파벌을 지워나갔지.

이미 공청이나 장민,영기옥이나 서로를 물어뜯으려고 준비를 끝마치고 기회만 노리고 있지 않았나.

청도에서 공청 파벌의 머리가 싹 쓸려나가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조선군을 앞세우니... 파죽지세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전원기병이라는 압도적인 기동력을 활용해서, 위소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이미 다른 위소를 박살낼 정도였지.

흡사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마냥 위소와 공청 파벌만 콕콕 집어서 무너뜨렸으니, 일반 백성들 사이에선 온갖 소문이 퍼지기 마련.

여기에 장민과 영기옥 파벌이 양념을 뿌리며 거짓정보를 섞자, 거짓이 진실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공청이 조선의 부마를 앞에 두고 칼부림을 부렸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한 다리 건널 때마다 살이 덕지덕지 붙어선 어느새 공청이 조선의 부마를 해하려 했다는 소문으로 변질되어 갔다.

너무도 빠르게 퍼진 소문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 의아해 했지만... 조선군의 징벌은 실제로 진행됐고, 흉악하게 생긴 검은 갑옷을 입은 기병대를 목격한 이가 한둘이 아니지 않나.

산동과 맞대고 있는 모든 세력은 조선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허나 조선군은 그들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산동과 하남의 경계인 조현에 눌러 앉았다.

“음...”

‘내 생애에 이런 식으로 산동에 오게 될 줄은 몰랐군.’

조선이 좁다하고 돌아다녔던 인수부윤 성억.

그는 끝도 없이 펼쳐진 대평원과 그 평원 중앙에 솟아 오른 태산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산동은 성의 경계 부분인 서쪽을 제외하곤 온통 평야였고, 몇날 며칠을 달려도 끝도 없이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산동 서남부는 습지대와 자잘한 호수가 많은 곳으로 이름 높았고,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이 활동하던 지역 또한 이곳 아니었나.

허나 송,원,명 시대를 거치면서 습지는 간척과 개간되어, 지금은 평야로 변해 있었지.

그 정도로 평야가 넓다보니 산동인들 입장에선,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은 충분히 태산이라 부를 만 했다.

이름 높은 명산인 태산이 사실 그리 높은 산이 아님에도 말이다.

다만 산이 넘쳐나는 조선 출신이 보기엔, 태산의 높음보다 끝도 없이 지평선이 이어지는 평야가 더 놀랍게 느껴진다.

“북방에서나 볼법한 광경을 여기서 보게 되는군.”

“예.”

“하지만 기후가 좋으니, 북방과 비교할 바가 못 되겠지.”

“...”

살짝 씁쓸한 맛이 감돌자, 성억의 후임으로 내정된 원창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창명 또한 성억을 따라 온갖 곳을 다 가본 바. 이곳만큼 풍요로운 대지는 본적이 없다.

‘아국의 평야와는 풍경이 다르지만 말이지.’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조선에선 논밭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겠지만, 산동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드넓은 평야에는 수수, 기장, 콩, 중국땅콩 등이 파릇파릇하게 피어올라서, 눈에 보에는 모든 곳이 작은 풀숲마냥 온통 푸른빛으로 점칠 되어 있었으니까.

중국 북부에선 가을에 심은 겨울밀을 초여름에 수확하기 때문에, 밀을 파종하기 전 빈 기간 동안 다른 작물을 심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산동인들의 주식이란 말이지?’

원창명은 자기도 모르게, 보자기에 싸뒀던 찐빵을 꺼내들었다.

“식사를 하려고? 이제 곧 주둔지에 도착할 텐데?”

“아. 아닙니다. 그냥 전답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서 말입니다.”

“...”

성억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또한 찐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유목민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말 위에서 산 세월이 땅을 밟고 산 세월만큼이나 오래되지 않았나.

그나 원창명이나, 그를 호위하는 기병들이나, 다들 능숙하게 말을 달리면서 찐빵을 뜯어먹었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건 영 익숙해지지 않는데요?”

“북방에 있을 때, 비슷한 걸 먹어보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맛은 없군요.”

“이건 산동인들에게 밥이나 마찬가지인 음식이니, 밍밍한 게 당연하겠지.”

“예.”

중국 북부의 주식은 밀이었고, 이 밀을 발효시켜 만든 빵이 바로 만터우(만두)라 불리는 빵이었다. 이름은 만두라 하지만 미래에 흔히보는 속을 채운 만두가 아니라, 꽃빵과 비슷한 음식이지.

본래 조선에선 밀이 얼마 없어서 흔히 먹을 수 없었지만, 요즘에는 북방에서 밀이 재배되면서 이런저런 면요리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밀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만 이건 처음 먹어본 터라, 원창명은 물론이고 호위기병들 또한 입에 맞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일행은 끝도 없이 펼쳐지는 평야를 따라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미 조선군이 휩쓸고 지나가고, 관료,상인 파벌의 사람들이 와서 정리를 시작한 탓일까?

논밭에 나와 있는 농부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기는커녕, 낯선 외향을 갖춘 기병대를 오히려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도 하루이틀이지... 청도에서 출발할 때부터 겪었던 일인 터라, 원창명은 지루함을 몰아내고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요동이 의도한대로 움직일까요?”

“움직여도 좋고, 움직이지 않아도 손해 볼 건 없겠지.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고민해 보게.”

“음...”

지금껏 성억은 연오랑-세종-태종 사이를 오가면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대계를 누구보다도 많이 듣지 않았나.

그런 그의 후임이 될 원창명을 키울 생각인지, 성억은 비밀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해답을 찾아낼 실마리를 던져줬다.

“북직례의 가호와 요동의 가호를 생각하면 더 쉬울 걸세. 주적까진 아니지만, 아국의 최대 경계대상이 북평부라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원창명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지금껏 알음알음 들었던 이야기를 열심히 조합해 이번 작전의 속내를 파고들었다.

조선과 맞닿아 있지 않은 북평부가 왜 문제가 될까.

‘북평부가 요동과 산동을 흔드는 축이기 때문이지. 가장 강력한 군력을 가지고 있고, 가호 또한 가장 많기 때문.’

거용관이 박살나고 조선과 북원잔당이 난장판을 피우기 전에, 북평부는 요동과 산동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군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젠 불가능해졌고, 이번에 천진이 박살나면서 한축이 완전히 무너졌지.’

평택에서 출발한 성억 일행이 청도에 도착했을 무렵, 조선해군에 의해 천진이 개박살이 났다는 소문이 산동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조선해군은 흡사 “우리와의 약조를 지키지 않으면 다음은 너희 차례다.”라고 협박하듯,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산동북부 해안에 바짝 붙어서 청도로 오고 있었으니까.

사실 조선해군은 산동반도의 해안선 지도를 만들고 수심을 측정하는 중이었지만, 산동상인들은 입장에선 위협적인 무력시위와 다름없었다.

‘그들이 겁먹은 건 둘째 치고, 앞으로 요동에서 풍파가 일어나겠지.’

“요동은 아직도 심양파벌과 요양파벌이 대립하고 있지요? 저희가 요동북부로 진출하면서 분란이 심화됐다고는 들었습니다만...”

“맞네.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아국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예...”

요동은 조선이 여진을 흡수하는 게 어려울 거라고 봤지만, 반대로 여진이 손을 벌려 환영하면서 빠르게 조선인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물론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선의 성장세를 가로막을 정도로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으니... 요동 입장에선 자기 살을 떼어준 심정이 될 수밖에.

특히나 우량카이 3위의 영역을 손에 쥐고 있던 심양파벌 입장에선, 안 그래도 병사와 권세가 줄어 불만이니... 떠넘기기 작전 실패의 책임을 요양파벌에게 물어 잇속을 챙기려 하고 있었다.

‘가호를 생각하라고 했지? 가호...’

문제는 요동의 가호가 북평부나 산동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거 명이 요동을 점거했다지만, 요동은 사실상 군사지역에 더 가까웠지 않나. 과거 요동은 몽골인, 여진인, 한족, 기타유목민족, 고려인, 우량카이 3위가 다 섞여 살았다.

헌데 정난의 변으로 요동군 수십만명이 죽어나갔고, 명이 망해버리자 우량카이 3위가 완전히 독립해서 떨어져 나갔고, 몽골과 기타유목민족도 북원잔당이나 우량카이 3위에 흡수됐다.

건주위, 해서위가 이런저런 풍파에 휩쓸려 흔들리자, 요동의 여진인들 또한 그들에 흡수되거나 죽어나갔지.

그 후에 고려인은 조선에 흡수됐고, 조선이 아예 만주를 집어삼키자 여진인과 한족 요동인이 야금야금 조선에 흡수됐다.

그 결과. 지금 요동의 인구는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50만에서 60만 사이 밖에 되지 않는 것.

그에 비해 북평부는 아무리 못해도 300만을 넘어서니... 요동이 북평부를 견제한답시고, 5만이 넘는 군병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 시대의 병사는 곧 일꾼이며 농부이니, 병사로 굴리는 것 자체가 나라의 생산력을 곱절로 떨어뜨리는 꼴 아닌가.

요동은 태생적으로 산동의 지원이 없었으면, 진작 망해버렸을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헌데 북평부의 한쪽 팔이 잘렸다. 천진수군이 없어졌으니, 요동수군을 그렇게 많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거지.’

요동수군의 존재 이유는 천진수군을 막기 위함이니, 이치를 따져보면 요동수군의 수를 줄이는 게 당연한 수순.

“그렇지 않습니까? 게다가 땅을 잃은 심양파벌은 강제적으로 군병의 수가 줄어들었으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요양파벌의 수군을 축소하라고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군호를 민호로 조금이라도 전환시키는 게, 그들 입장에서도 나을 테고요.”

“그렇겠지.”

“이순몽 장군을 비롯한 연대장들이 북직례에서 분탕질을 치는 것도 그걸 위해서군요?”

“맞네. 북평부의 군력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덩달아 요동의 군력을 줄일 명분이 되니까.”

“음...”

원창명은 머릿속에 조선군의 움직임을 그려봤다.

1연대는 청도포구를 지키고 있고, 1연대는 림기현의 초석광산을 점거하고 있다.

약조대로 산동은 조선에게 초석을 계속 팔게 되겠지만, 그 비싼 초석을 공짜로 얻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잖나.

초석광산을 안정화시키고, 마을재건 및 빈민구제를 명분으로 삼아 눌러 앉고서, 미친 듯이 초석을 캐서 청도로 나르고 있을 거다.

나머지 5개 연대는 산동을 휩쓸고 총사령관인 연오랑이 머무는 조현으로 집결했고, 남은 4개 연대는 반대로 산동북부를 지나쳐 북직례에 가 있었다.

이순몽, 유은지, 조비형, 진강이 이끄는 4개 연대.

하나같이 기병전술에 특화된 장군이 이끄는 연대는 북평부 위소를 사정없이 박살내며 북직례의 동북부 해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을 거다.

‘그걸 위해서 천진을 박살냈으니까.’

천진이 박살났다는 소문은 이미 산동까지 퍼졌는데, 북평부에서 넋 놓고 있겠는가.

어쩌면 조선이 요동,산동과 연합해 천진으로 상륙할지도 모르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법.

아마도 북직례 내부에선 병력을 빼서 이리저리 옮기는 작업에 돌입했을 거고, 연대기병은 요새이자 성에서 빠져나와 이동 중인 북평군을 사정없이 패고 있을 거다.

‘본래 북평부 장군인 진강은 북평부의 위소와 병력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을 터, 특히나 산동방면을 담당했으니 더욱더 잘 알고 있겠지.’

진강이 귀화한지 한참 되긴 했지만, 지형이나 요충지의 위치가 뭐 얼마나 변했겠는가.

대병이 주둔할 곳과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정해져 있기 마련이니, 진강이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북평군도 기병이 부족한 건 마찬가지일 테니... 아군 기병대의 기동력을 따라오지 못하고 각계격파를 당하고 있겠지.’

“산동의 관료,상인 파벌은 자신들이 공청 파벌을 흡수하고 안정화 시키는 동안, 북평부가 움직이지 못하게 아군이 견제하는 걸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 더 큰 목적은 북평부의 군력 자체를 줄이는 것에 있지.”

성억은 원창명을 보며 히죽 웃으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결론은... 산동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목표는 요동이었군요.”

“여러 목표 중 중요한 목표라고 봐야 맞겠지. 공청은 분명 위험인물이었고, 지금 아니면 제거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예... 그럼 이번 작전을 통해서 북평부 병사들은 못해도 수천명은 줄어들겠군요.”

“진강 장군이 잘해준다면, 만 명 넘게 사살할 수도 있겠지.”

“음...”

‘내가 아는 계획대로라면 초토화 작전은 아닐 터, 병사만 사살하는 게 과연 더 이득이 될까?’

조선군이 매번 해왔던 것처럼 죄다 불태워버리고 땅을 못 쓰게 하는 게 아니라, 이번엔 위소와 지주가문의 장원, 병사들만 콕콕 집어서 박살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뜯어낸 재물을 흡사 의적이라도 된 것 마냥, 북평부 백성들에게 마구 던져주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북직례 백성들이 친조선파가 되겠습니까?”

“그것까진 바라지 않네. 다만 북평부를 더욱 싫어하게 되겠지. 줬다 뺏으면 누가 좋아하겠나.”

성억은 미래를 그리며 피식 웃고 말았고, 원창명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들이 자기 손에 쥔 걸 빼앗기는 걸 반길 리가 있나.

본래 주인이 마을 지주였다 한들, 이미 주인이 죽어 없어진 물건을 회수하는 건 도적질로 밖에 안 볼 거다.

게다가 진강은 파벌싸움에 밀려 날아간 이력이 있는 만큼, 북평부의 파벌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군은 한쪽 파벌의 장원과 위소만 작살내서, 유치하지만 노골적인 이간책을 시전하고 있는 바. 이건 알면서도 먹힐 수밖에 없다.

조선군이 땅과 이권을 차지하지 않으니, 주인 잃은 공돈에 누구든지 눈이 멀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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