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40화 (240/538)

240. 챕터35. 남하하다 (5)

태종이 실시했던 공도정책으로 인해서 무릉도는 사실상 무인도나 다름없었고, 해군이 도착할 때에는 백여명도 안 되는 인원이 어영부영 살고 있었다.

아주 이따금씩 왜구나 일본어부들이 잠깐 들리기도 했으나, 지금 역사에선 대마도 정벌 이후로 일본인이 동해로 나오는 일은 없었지.

지난날 조정입장에선 무릉도는 조선 땅이니 지키긴 해야 하는데... 멀어도 너무 멀고, 물범 등의 특산물이 나오긴 하는데, 그걸 얻자고 관리하는 건 역시나 무리.

본토처럼 직접 관리하는 건 아무래도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골칫거리였고, 공도정책이 폐지된 후에도 그냥 있는 둥 없는 둥 대충 흘러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반전됐다.

아무리 훈련이라지만 망망대해에 떠서,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

설주나 경흥에서 출발해 원산이나 동래로 향하는 건, 먼 바다를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나마 잔잔한 동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게 고작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훈련하기 힘들었으니, 동해 한복판에 위치한 무릉도를 찍고 가는 식으로 항로를 잡은 거지.

미래에도 풍랑이 거칠어 출항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지금 시대에는 오죽하겠는가.

무릉도에서 머무는 기간이 적지 않은 터라 아예 해군기지를 건설했고, 여기저기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을 모아다가 마을까지 만들 게 됐다.

이후 해군 때문에 입소문이 퍼지자, 새로운 어장과 어종을 찾아 수산기업이 무릉도에 이따금씩 찾아올 정도로 성장했다.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니까. 그러니 해군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이곳에 병력을 집결시켜도 본토 방위에는 문제가 없으니,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실전경험을 쌓으려는 것 아닌가. 천진에서 시원하게 한바탕 했지만, 모든 해군병이 다 경험한 건 아니니까. 다음 전장을 준비해야지. 흐흐.”

“...”

박홍신은 다시금 다가올 해전을 기대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고, 황보인은 가볍게 고개를 내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화약이나 열심히 만들어 놔야겠군. 초석광산을 차지하지 못했으면 난리가 났겠어.’

이 인간은 해군이 한번 싸울 때마다 돈이 얼마나 깨지는지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보급사령관인 황보인이 해야 할 일만 잔뜩 불어난 셈이다.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자. 수평선 너머에서 등장한 함선 3척은 어느덧 청도포구에 발을 내밀고 있었다.

다만 지겹도록 본 신형전함이 아니라 뭔가 동글동글하고 뭉툭해 보이는 함선 2척이 섞여 있는 게 아닌가.

“엉?”

“신형무역선이군. 드디어 여기로 돌렸나 본데?”

황보인은 뭔지 몰라서 눈을 크게 떴고, 박홍신은 신이 나서 입을 놀렸다.

“새로 만든 무역선이라고요? 음... 신형수송선과 다르게 생기긴 했는데...”

“수송선과 무역선을 비교하면 쓰나. 수송선은 조운선 대용으로 만든 거라서 근해나 강에서 쓰는 물건이고, 저건 바다를 오가기 위해서 만든 물건이지. 신형전함을 만들 때부터 함께 만든 걸로 아는데, 드디어 동해에서 시범항해를 끝낸 모양이야.”

“오...”

황보인이 흥미를 보이자,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신형전함이 소형 갤리온을 닮았다면, 무역선은 카락의 형태와 흡사하지만 그래도 갤리온과 더 닮아 있었다.

선수와 선미를 높이는 게 아니라, 갤리온의 폭을 늘려 배를 빵빵하게 불린 형상을 하고 있던 것.

모든 배는 속도와 적재량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고, 원하는 바에 따라서 타협점을 찾아가야 했다.

신형전함이 속도에 치중한 선체비율과 형상을 추구했다면. 신형무역선은 신형전함과 같은 선체비를 가지고 있음에도, 폭을 늘려서 속도를 포기하고 적재량을 늘린 거지.

“무역선이나 수송선이 빨리 다니면 좋겠지만, 사실 빨리 가는 것보다 짐을 많이 싣는 게 더 이득이니까.”

“일장일단이 있겠군요?”

“그렇지. 그래서 하나로 통일하지 못하고 다른 형태를 만들 수밖에 없었네. 적재량을 늘리면서 속도를 살리기 위해선, 더 큰 배를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건 뭐... 나중에 조선기술이 발전하면 해결될 일이지.”

“지금 당장은 저게 그나마 최선이라는 거군요?”

“맞네. 동해에서 시범항해를 하는 건 봤는데, 이번에 전함이 아니라 무역선을 뽑아냈을 줄은 몰랐군.”

둘은 감탄을 하며 지켜봤고, 둘 뿐만 아니라 주둔지와 선소를 짓던 모든 이들의 시선에 새로운 함선에 꽂혔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신형무역선은 접안했고, 배사다리가 내려오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하선을 시작.

다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배에서 내려와, 마중 나온 황보인과 박홍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네들. 오랜만이군.”

“헙!”

“...!”

둘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효령대군과 공녕군 이인을 보며,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는 허리를 넙죽 접었다.

신형무역선을 타고 온 예비연대와 일련의 관리들이 청도에 머물기 시작한 며칠 후.

드디어 풍운을 일으키던 조선군이 전부 회군해 청도로 몰려들었다.

하남에서 홍형청을 제거한 본대도 돌아왔고, 북직례에서 난장판을 벌이던 분견대 또한 두둑하게 전리품을 챙겨 돌아왔다.

이에 맞춰서 작게나마 환영식 및 승전축제가 벌어졌다.

사실 조선이 좋아할 일이지, 산동인 특히나 청도주민하고는 별 관계없는 일 아닌가.

“우리가 잔치 준비를 왜 해야 되냐?”라고 반발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돈은 산동상인이 댔으니, 자신들도 함께 놀고먹으면 그만.

청도의 승전식 아닌 승전식은 꽤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본토에서 새로 온 관리들은 기존관리들과 술잔을 마주하고, 연대장들 및 지휘관들은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기 바쁠 때.

연오랑은 관청의 요대에 나와 우두커니 밤바다를 보며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누가 무관들 아니랄까봐 하여튼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터라, 지휘관들과 한잔씩만 해도 연오랑은 수십잔을 먹는 꼴 아닌가.

열기와 더부룩한 배를 꾹꾹 눌러대며, 그는 요대에 놓인 의자에 거의 늘어지듯 널려 있었다.

“편히 있게. 일어서지 말고.”

“...”

인기척에 “귀찮게 또 누구야?”싶어 힐끔 보니, 효령대군이 옆에 다가온 게 아닌가.

회색가사를 입은 승려들과 이야기하기 바쁘던 그가, 어느새 옆자리에 달라붙었다.

예를 갖출 법도 하건만... 연오랑은 그냥 대충 뭉개고 인사만 하고 원위치로 돌아갔고, 효령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여전하구나.’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 녀석의 머릿속은 알 수가 없다.

미운 꼴로 보이기 딱 좋은 모습이지만, 효령은 예나지금이나 연오랑을 꽤 좋게 보고 있지 않나.

지금은 그 마음이 더 커져서, 이 정도 무례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음...”

효령은 히죽 웃고선 연오랑을 따라 의자에 누으려 했는데... 등받이가 크게 젖혀진 형태의 생경한 의자. 미래에는 해변의자라 불릴 물건이 놓여 있다.

어떻게 앉아야 하는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연오랑을 따라서 팔베개를 하고 늘어져선 흥얼거리듯 중얼거렸다.

“내가 와서 놀랐나?”

“조금요. 용연에서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그렇지.”

연오랑은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입을 열었고, 효령은 은근히 편안함을 느끼며 의자에 더욱 파고들었다.

원래 역사에서의 효령은 세종이 시키는 일을 이따금씩 하면서, 그때그때 테스크 포스를 만들고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왕의 형제다보니 관직에 오르지 못하지만, 그 능력은 나쁘지 않으니 이런저런 일에 불려 다닌 거지.

허나 지금 역사에선 아니었다.

세종은 왕권을 세우기 위해 굳이 왕족을 동원할 필요도 없었고, 신료들은 정치관료가 아닌 행정관료로 변모해서 굳이 왕과 신료들 사이에 기싸움을 할 일도 없어졌다.

수족처럼 부릴 관리들도 미친 듯이 많아져서, 굳이 왕족을 동원해 팀을 꾸릴 필요도 없어졌지.

그 탓에 효령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속편하게 살고 있었고,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다름 아닌 조선불교의 뼈대를 잡는 일.

그는 처음 연오랑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용연현에 머물며 공의회에 참석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찰을 건설하거나 관리하는 걸 담당해 왔었다.

“큰 틀은 잡혔고, 세부사항은 논의가 많이 필요하지 않나. 그건 앞으로도 몇 년 더 걸릴 걸세. 교리를 다시 정립하는 게 쉬우면, 그게 더 문제지 않겠나.”

“예...”

조선불교 공의회가 시작된 지 벌써 7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안 끝나고 있는데... 효령은 한참 더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자네 덕분에 논의가 길어지는 것도 있고.”

“제가요?”

그는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고, 효령은 피식 싱거운 웃음을 지어줬다.

“가는 곳마다 경전과 유물을 가져다주지 않았나. 그걸 연구하다보니 일이 점점 많아지는 거지.”

“아...”

듣고 보니 타박하는 게 아니라 칭찬을 하고 있다.

예전 원정전쟁 때부터 시작한 싹쓸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고, 당장 청도를 차지하고 나서도 산동에 굴러다니는 경전과 불교유물을 챙겨서 조선으로 보내지 않았나.

북방에 새롭게 만들어진 무역도시. 창주(송원)에서 우랑카이 3위 및 기타 몽골부족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거기서도 불교 경전을 사들였을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게다가 이번에 이곳에도 청도사寺를 짓기로 하지 않았나.”

“예...”

효령이 말을 덧붙여 보지만, 연오랑은 의심을 풀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도에 사찰을 짓는 건, 크다면 큰일이고 작다면 작은 일.

산동인들 중에서도 불교신자가 꽤 되고, 출신국을 불문하고 고승은 동아시아 어디서나 고승 대접을 받는 게 지금 시대다.

청도사는 지어지는 건, 어찌 보면 이름값 있는 사찰이 없는 산동인들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일이지.

하지만 효령이 직접 올만한 일은 아닌데...

“자네가 하남까지 정리를 해줬으니,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숭산을 가보겠나.”

“아...”

이어지는 말에, 연오랑은 이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효령이 왜 바다건너 산동까지 왔나 했더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소림사는 예전에 홍건적이 다 뜯어가서 볼 게 없을 텐데요?”

“그래도 남아 있는 게 있지 않겠나? 숭산에만 명승고적이 있는 게 아니니, 이번 기회에 한번 둘러보는 것도 나쁠 건 없지.”

“흐음...”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중국의 사찰을 구경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쁠 건 없군.’

연오랑은 대충 효령의 의도가 짐작되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 하면 흔히 무공과 무술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선종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당,송 시대에 엄청나게 성장했으나, 원말에 홍건적이 발호할 때 아주 대대적으로 작살났고, 명이 망한 지금에는 아직도 회복을 못한 상황.

만약 효령과 조선승려들이 함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교류를 시작하면, 명이 망하면서 교세가 약해진 불교계에 조선불교가 끼어들 자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가능하겠습니까?”

연오랑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자, 효령도 확신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확신할 수 없군. 원,명 모두 백련교, 백운종, 명존교 등의 화엄밀교를 탄압하지 않았나. 이들 종파는 민간에 널려 퍼져 있었으니, 그 빈자리를 조선불교가 차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예.”

“게다가 명은 굳이 백련교가 아니어도 불교계를 압박했네. 권세를 잃어버린 사찰도 많을 거고,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민간신앙으로 내려갔는데... 파고들 틈이 있을지는 봐야 알겠지.”

“그렇군요.”

불교의 교세에 대해선 연오랑도 잘 모르는 터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지만, 효령은 묘한 눈으로 그를 살폈다.

녀석은 흡사 종교를 무기처럼 활용하려고 하고 있으니, 꽤나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지금껏 불교를 통치원리로 이용하려는 나라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성리학이 국시가 된 이후로 불교는 탄압과 억압의 대상이었지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헌데 연오랑은 조선불교를 위로 올리지 않고, 오히려 민간으로 끌어내려 물밑에서 파고들었다.

조선불교를 이용해서 조선문화를 전파하고 조선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

문제라면 이렇게 교세가 커지면 백련교처럼 나라를 뒤집어엎을 위험이 있다는 건데... 조선불교는 조선불교청이라는 견고한 조직체로 완성됐고, 조선불교청 자체가 조선조정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었다.

과하게 말하면 조선불교청은 조선조정의 앞잡이처럼 활동하여, 조정의 의도에 맞춰 움직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절대 불가능했다.

“이게 되나?”싶기도 한데, 이미 북방에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나.

여진인이 빠르게 정착하고, 그들이 믿던 샤머니즘과 각종 민간신앙은 순식간에 조선불교에 자리를 내줬다.

이젠 여진인 대부분이 불교신자가 되어, 조선인의 정체성을 갖춰나갔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지.’

효령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연오랑은 곧장 핵심을 집어왔다.

“창주의 보련사寺와 요양의 선화사, 심양의 운화사 등은 어찌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잘 돌아가고 있네. 각 사찰마다 배치된 승려만 이제 오십이 넘어가니까.”

“오...!”

연오랑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감탄을 늘어놨다.

조선불교는 이제 그의 손을 떠나 움직이고 있었는데,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빠르군요.”

“맞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부감이 적었지.”

“다른 도시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까?”

“물론.”

시원시원한 대답에, 연오랑은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요동이 생각보다 허약한 모양인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래전 원정전쟁을 떠났을 때 요양에 처음 새워진 선화사.

그곳은 조선사찰인 동시에, 암묵적으론 요동의 정세를 수집하는 조선첩자의 근거지였다. 요동은 이걸 알면서도, 원정전쟁에 조선을 끌어들이기 위해 묵인할 수밖에 없었고.

허나 지금에 와서는 진실로 교세를 확장해서 사찰이 커지고 승려들이 늘어난 건 물론. 나아가 심양까지도 조선사찰이 지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