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44화 (244/538)

244. 챕터35. 남하하다 (9)

“게다가 상해가 아무리 바다로 뻗어 나왔다곤 하지만, 어찌됐건 장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잖아요? 장강의 목줄을 쉽게 내주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자칫 잘못하면, 조선이 장강의 출입구를 막고 있는 꼴이 될 수도 있는데... 이건 여우를 잡으려다가 호랑이를 불러 온 꼴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반대로도 생각을 해봐라. 과연 아국이 자리 잡는 걸 모두가 싫어할까? 크게 넓게 봐라.”

“끄응...”

이인은 다시금 머릿속에 중국전도를 그렸고, 연오랑의 말을 따라 남직례와 절강에서 벗어나 지도를 키워 남쪽과 서쪽내지로 지도를 넓혀봤다.

뭐가 문제가 될까하고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니, 하나둘씩 실마리가 잡혀온다.

‘일단 남직례는 제쳐놓고.’

남직례는 명의 수도였던 남경이 위치한 성이다.

그만큼 거대하고 물산도 풍부한 지역이었는데... 운석핵꿀밤이 모든 걸 바꿔버렸다.

남경이 위치한 응천부는 말 그대로 사라졌고, 응천부를 둘러싸고 있던 저주,화주,태평부,진강부 모두 운석충돌의 피해를 입었다.

장강의 넘치는 강물이 운석이 떨어진 충돌구로 흘러 들어와서, 찬란했던 남경이 지금은 남경호수가 됐지.

남경호수가 생겨나면서 몇 년간 장강의 수위가 대폭 낮아질 정도였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남경호수를 중심으로 응천부 일대는 죄다 습지로 변했고. 파괴되지 않은 옛 건물이 습지에 솟아오른 기괴한 땅이 되지 않았나.

이 일로 인해서 남직례의 위상과 생산력 등은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절강은 당사자이니 일단 빼놓고...’

그 다음. 남쪽으로 내려가면 복건, 서쪽으로 나아가면 강서와 호광이 나온다.

‘아...’

그리곤 뭔가 꺼림칙한 게 걸려들었다.

‘호광!’

“호광인가요? 그치들이 절강과 남직례를 압박하고 있겠군요.”

“그럴 거다.”

연오랑은 심드렁하게 답했지만, 현실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지금 시대에, 중국 최대의 곡창지대는 단연코 호광이다.

미래에 동정호를 중심으로 호남성, 호북성으로 나뉘게 되는 호광성.

이곳은 중앙에 장강과 동정호를 비롯한 온갖 호수와 강을 끼고 있어서, 인구도 많고 물산이 넘쳐나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곡물 생산량이 압도적이다.

“사천도 만만치 않게 비옥하지만... 그쪽은 내부 정리하느라 바쁘니까 제외하고, 광서와 광동도 나쁘지 않지만 그쪽은 더 정신이 없을 거고.”

이인은 아이처럼 손가락까지 접어가며 혼잣말을 늘어놨다.

“운남은 식량사정이 좋지 않으니 당연히 중국내지로 손을 뻗을 건데... 사천? 호광? 둘 다 가능성이 있겠네.”

“...”

“식량... 그러고 보니 아국으로 들어오는 곡물도 호광에서 넘어오는 양이 꽤 되죠?”

“맞다. 강남이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따지고 보면 호광에서 오는 쌀이 적지 않지.”

연오랑의 조언에 이인은 더욱더 양념을 붙여갔다.

‘호광에서 나오는 식량은 중국 모든 곳으로 흘러가지. 장강을 타고 와서 강서, 절강, 복건으로 나가고, 운하를 끼고 남직례와 산동까지도 넘어가잖아. 음... 그럼.’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다른 곳은 그렇다 쳐도 복건성이 계속 걸린다.

‘복건성. 이곳의 식량자급률이 얼마나 되지?’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

복건성은 중국대륙 동남단에 위치해서, 지리적 입지상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와 활발히 무역하는 지역이었다.

예전부터 왜구의 침략을 무수히 받던 탓에, 사람들의 성정은 거칠기 짝이 없고 자기들만의 결속력도 강하다.

지형적으로 보면 동쪽 해안가 일대는 평탄해서 항구가 많이 들어설 수 있지만, 반대로 서쪽으로 조금만 가도 험준한 우이산맥이 자리 잡고 있지.

성 전체로 보면 평지보다 산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외부에서 식량을 들여오지 않으면 유지조차 못할 정도다.

“그런 복건의 식량창고가 호광이었죠?”

“맞아.”

“당연히 진주광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겠군요? 절강상인들에게도 나름 짜증이 나 있을 테고요.”

“그렇지 않을까?”

연오랑은 가볍게 빙긋 미소를 지었지만, 이인은 더욱더 고민에 빠져들었다.

‘호광상인들은 쓸데없이 통행료를 내야하니 짜증이 났을 테고, 복건상인들도 쓸데없이 식량이 비싸지니 짜증이 났을 거야. 운하는 또 어떨까. 진주광이 운하의 초입 또한 가로막고 있으니 남직례와 하남, 산동상인들도 짜증났겠지.’

이 모든 세력을 다 건드렸는데도 진주광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누구하나 손을 쓰기 힘든 교묘한 위치에 자리 잡았기 때문.

남통은 장강의 하류에 위치해 있고, 소주와 항주 바로 위에 있다.

절강상인들은 이곳에 호광,강서,복건,하남 상인세력이 손을 뻗길 원할까? 그럴 리가 있나. 진주광은 독립세력이지만, 다른 상인세력은 성에 근거지를 둔 연합세력이다.

진주광을 치우고 다른 세력이 여길 차지하면, 절강상인 입장에선 진짜로 목숨이 위태로울 판국. 내륙상인이 해안의 항구를 차지하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할 일이다.

이러니 다른 세력이 “아. 진주광 저거 짜증나는데, 왜 처리를 안 하는 거냐?”라고 성질을 부릴 때, 절강상인들은 “거. 우리가 정리할 거라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이러면서 차일피일 머리만 굴리고 있었던 것.

“맞죠?”

“정답! 하지만 결국 정리를 못했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절강상인들은 다른 상인세력과 손을 잡을 바에, 차라리 그냥 우리와 잡는 게 속편한 법이지. 적어도 우린 그들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않으니까.”

“음...”

이인은 동의를 하면서도, 살짝 이해가 안 되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까지 절강이 혼자 힘으로 살아남으려고 발악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다른 세력과 손을 잡으면, 아무리 콩가루연합이라고 해도 머릿수로 밀어버릴 수 있지 않나.

“안 그런가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옛 명나라 시절에 그들이 당해왔던 걸 생각하면 쉽게 힘을 합치지 못할 거다.”

“흐음.”

이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번엔 옛 역사까지 들춰서 끼워 맞춰봤다.

원말명초시절. 오왕 장사성은 소주,항주 및 절강상인의 후원을 받아 세력을 키우고 유지했다.

그는 주원장, 진우량과 힘을 합쳐서 원과 싸우다가도, 시세가 불리해지면 냉큼 원에 붙어서 홍건적 반란군의 뒤통수를 치고 세를 불렸지.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고, 주원장과 진우량이 싸울 때도 이리저리 간을 보면서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를 반복했다.

파양호 대전이 벌어질 때. 세력이 큰 진우량이 당연히 이길 줄 알고 진우량과 손을 잡기로 했으면서도, 눈치만 살살 보면서 지원하지 않았다가 결국 주원장이 승리하지 않았나.

그 후 주원장과 싸웠다가 화해했다가를 반복하면서 기회만 보다가, 결국엔 주원장에게 패배해 최후를 맞이했다.

천하의 박쥐도 이런 박쥐가 따로 없는데, 이 장서성의 후원자가 바로 소주,항주등의 절강상인이다.

주원장은 명을 세우고 안 그래도 향촌중심의 농업사회를 외치며 상인세력을 때려잡았는데, 지겹게 그를 괴롭혔던 절강상인들을 가만 놔뒀겠는가.

홍무제 치세 동안 무자비한 탄압을 당해서, 주씨만 봐도 이를 박박 갈 정도였지.

이렇기에 명이 망하자, 명이 임명한 관리들을 싹 갈아치우면서 제일 먼저 독자세력으로 성장한 지역이 바로 절강이었다.

이게 고작 한세대도 안 된 과거의 일.

억압의 역사를 생생히 품고 있는 절강상인은, 조선만큼이나 중국의 통일왕조가 생겨나는 걸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가 봤을 때. 지금 중국에서 통일왕조가 튀어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어딘 것 같냐. 군벌출신 칭왕자 말고 말이야.”

“역시... 호광이겠죠?”

“맞아. 지금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호광이다.”

호광은 그 땅 크기만 해도 조선에 버금가고, 인구는 조선을 뛰어넘는다.

사람과 물산이 넘쳐흐르는 곳이니, 그만큼 호족도 무지하게 많지만... 만약 칭왕자가 튀어나오게 된다면 순식간에 왕조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호광.

안 그래도 섬서의 몽골을 막기 위해 호광 북부에선 호족연합 비슷한 게 구성됐는데, 만약 진주광을 정리하기 위해 남부에서도 다른 연합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며 버티곤 있지만, 절강상인들은 진주광을 계속 놔두면 결국 문제가 터질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예.”

“호광에 야심가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산동의 공청과 손을 잡고 하남을 건드리려는 호족도 있지 않았냐. 야심가들이라면 분명 진주광을 계속 걸고넘어져 호광세력의 단합을 이루려 할 거고, 그들이 장강을 타고 내려와 남직례 끝에 있는 진주광을 정리하면?”

“진주광으로 끝나지 않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어떻게든 힘을 합쳐서 칼을 뽑아들었으니 뭐라도 썰어야할 거고, 손해만 볼 순 없으니 뭐라도 뜯어먹으려 하지 않겠냐? 그럼 당연히 남직례에 손을 뻗게 되겠지.”

“그렇게 호광이 남직례까지 집어삼키면... 더 이상 막을 세력이 없겠군요?”

“그렇겠지. 안 그래도 물산이 넘쳐나는 호광인데... 남북을 이어주는 운하가 있는 남직례를 차지하면, 그야말로 날개를 단 꼴. 절강상인들은 제2의 명나라가 등장해서 자신들을 탄압하는 걸 두고 보지 않을 거다.”

“음...”

이인은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봤고,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엿봤다.

중국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외부인인 그가 이런 판단을 할 정도면, 중국호족들이 더 정확히 인지하고 있겠지.

“복건은 어떨 거 같냐?”

“복건 입장에선... 진주광이 없어지는 게 최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광에 머리를 숙이는 건 싫어하겠네요?”

“그럴 거다.”

복건은 자립자족이 불가능한 곳.

어떻게든 식량을 사오고, 반대로 막대한 양의 수입품을 내다 팔 시장이 필요하다.

해안도시는 복건의 경쟁자나 마찬가지니 제외. 남은 선택지는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중국내지에 팔 수 밖에 없는 상황.

결국 호광의 눈치를 보면서, 딸려갈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옛 명나라 시절에, 절강만큼은 아니지만 복건도 탄압 당했다. 어쩌면 그치들이 더 싫어할 지도 모르겠군. 왜구가 난리를 피울 때, 원이나 명이나 둘 다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예.”

“그러니 복건 입장에서도 차라리 우리가 나서는 걸 바랄 가능성이 크지. 적어도 우리가 상해를 끼고 앉으면, 호광이 세력을 뻗치는 걸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아...”

이인은 이해가 되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직례도 마찬가지다.”

“그렇겠지요. 역시 휘주상인들 입니까?”

“어.”

연오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직례는 홍택호,고우호,성자호,백마호 등. 회하를 끼고 있는 호수를 기점으로, 미래에는 서쪽의 안휘성과 동쪽의 강소성으로 나뉘게 되는데... 안휘성의 휘가 휘주에서 따왔을 만큼, 휘주는 나름 역사가 깊다.

원래 역사에서의 휘주는 남직례 남쪽 황산 인근 지역을 말하는데. 이 지역은 땅이 험하고 척박해서, 이 지역에 살던 이들은 운하가 지나가는 양주와 회안으로 진출해 세력을 일궜다.

이들을 훗날 휘상, 휘주상인이라 불렀고, 명,청대에는 중국 삼대상인에 속할 만큼 전성기를 이루게 되지.

지금 역사에선 휘주상인이 중국을 대표하는 상인세력으로 성장하는 시작단계라 할 수 있었고, 원 역사보다 빠르게 양주와 회안으로 진출한 상황이었다.

운석핵꿀밤으로 남경이 남경호수가 되어버렸고, 온 사방에서 호족들이 들고 일어나니, 그나마 빈틈을 찾아 치고 들어간 곳이 회하와 대운하가 지나가는 양주와 회안이었던 것.

지금 역사에서 대운하는 제대로 정비가 안됐지 않나.

대운하에서 호수로, 다시 회하로, 수로와 육로를 동시에 활용해야 했고, 당연히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는데... 그 인력을 휘주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는 거지.

“게다가 남직례는 남경과 붙어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큰 호족가문이 들어서지 못했잖아?”

“당연히 그랬겠지요.”

남경은 명나라의 수도였고, 전국의 대호족과 거부들, 고위관리들이 죄다 모여 살던 곳이다.

응천부와 그 일대는 남경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었고, 대운하가 지나가는 남직례 중부 또한 마찬가지.

큰 호족 대신 자잘한 토착호족집안이 오밀조밀 몰려 있었다.

명이 망하면서 이들도 슬금슬금 덩치를 불렸지만, 대호족으로 변한 곳이 없어서 휘주상인의 침투를 제대로 막아낼 수가 없었지.

지금은 얼추 휘주상인과 남직례 호족이 공생관계를 이뤘고, 이들 또한 당연히 진주광이 없어지길 바랐다.

대운하를 통해서 강남의 물산이 강북으로 올라가지만, 반대로 강북의 물산도 강남으로 내려가니까.

장강과 대운하의 교차점을 진주광이 걸어 잠그고 돈을 뜯어내니, 짜증이 안날 수가 있나.

그럼에도 남직례 호족들이 진주광을 정리하지 못한 건, 호족이 너무 많고 자잘해서 콩가루를 넘어 미세콩가루라서 그랬다.

“흐응.”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잘 엮어봐라. 남직례 중부와 동부는 개별가문의 세는 적으나 수는 많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절강 못지않다.”

“...”

“그런 만큼 다른 성의 세력이 남직례에 진출할까 불안해하고 있을 터, 연판장 조약을 맺는 일에 가장 관심을 보일만한 곳이 휘주상인과 남직례 호족들 아니겠냐.”

“운하로 묶여 있기 때문이겠지요?”

“어. 단순히 운하뿐만 아니라, 진출로가 마땅치 않으니까.”

미래에 강소성이라 불릴 남직례 동쪽 지역은 나름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허나 항구로 쓸만한 곳은 죄다 남쪽에 몰려 있어서 물량을 소화시키려면 대운하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대운하의 통제권을 자신들이 쥐길 바랄 테니, 분명 연판장 조약에 관심을 보일 터.

이미 대운하 경제권으로 엮인 서주와 하남호족이 연판장 조약을 맺는 걸 봤으니, 더욱 감질난 상황 아닐까.

“결국 저희가 움직이는 걸 모두가 바라는 형국이군요.”

“진주광은 둘째 치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두가 호광이 뭉치는 걸 경계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끼어드는 걸 모두가 반길 수밖에. 남은 건 세부조항에 있어서 네가 얼마나 뜯어낼 수 있냐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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