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45화 (245/538)

245. 챕터36. 질주하다 (1)

“흐흐. 걱정 마시죠.”

“잘 해야 할 거다. 네 말대로 진주광을 처리하는 건, 지나가는 길에 걸린 돌부리를 치우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상해를 얻어내는 거다. 그 이유는 알고 있지?”

“예.”

이인은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하게 답을 했다.

이건 어쩌면 조선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사안이니까.

동해는 신형전함이 만들어지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바다가 됐다.

남해도 제주에 무역항이 생기고, 대마도를 획득하면서 조선의 바다가 됐다.

남은 건 서해인데, 청도를 얻고 천진을 박살내면서 서해북부를 조선의 바다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상해를 얻어서 서해남부까지 조선의 바다로 만드는 것.

“...”

“...”

이인은 찬란한 미래를 떠올리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지만, 연오랑은 보다 침잠해서 더 먼 미래를 그려봤다.

이렇게 인근의 바다를 모조리 조선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그 다음 수순은 뭐겠는가.

중국,일본,동남아시아 상인이 활개 치는 남중국해로 진출하는 일만 남았고... 그걸 위해선 제대로 된 근거지가 있어야 했다.

‘그렇게 대만을 얻게 되는 거지. 대만을 얻고 나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 터질 거야.’

이번 참수작전의 최종목표. 대만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라는 목표를 떠올리며, 연오랑은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서로 딴생각을 하고 있다가, 연오랑은 불연 듯 뭔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효령대군께서 나보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했거든? 뭐 들은 거 있냐?”

“...?”

이인은 “뭔 소리냐?”하는 표정을 지었고, 연오랑 또한 연신 물음표를 그렸다.

까놓고 말해서 조정은 연오랑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여기서 좋은 일이 또 뭐가 있을까.

아무리 고민 해봐도 알 수가 없어서 물었는데, 이인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녀석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앗! 설마. 그걸 이야기 안 하셨습니까?”

“그게 뭔데.”

“공주자가께서 회임하신 거요.”

“...?”

연오랑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주가 임신을 하든 말든 자신과 뭔 상관인가 했는데... 녀석은 히죽히죽 웃으며 그를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닌가.

‘설마?’

“헉!?”

이내 곧 알아차린 연오랑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예. 축하드립니다.”

“어...”

연오랑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고, 이인은 얼빠진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며 연신 킬킬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엉뚱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긴 했지만, 이렇게 당황한 모습은 또 처음 본다.

“놀라셨습니까?”

“너 같으면 안 놀라겠냐?”

‘임신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연오랑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가 밖으로 자주 나돌아 다니긴 했지만... 결혼한 지 몇 년 됐고 밤일도 열심히 했으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는 미래인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아기를 늦게 갖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고, 공주는 이제 이십대 초반 아닌가.

남들이 보기엔 늦었을지 몰라도, 그가 보기엔 전혀 늦은 게 아니었지.

게다가 자식을 빨리 낳으라고 압박하는 시부모도 없고, 외가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딱히 친한 왕실식구도 없고, 원경왕후는 오래전에 죽었고, 태종은 자식도 손주들도 많아서 공주가 애를 낳든 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연오랑을 부마로 만들어서 엮은 것만으로도 할 만큼 한 거고, 나머지는 부부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 놔뒀던 것.

솔직히 말해서 세종이나 태종이나, 공주가 자식을 낳는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딱히 투정을 부리는 일은 없었는데...’

그랬기에 공주도 아기 욕심을 보이지 않아서 연오랑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뜬금없이 소식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라...’

이건 미래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일 인터라, 혼란과 당황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결혼이야 뭐 그렇다 쳐도, 아이가 생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그런데...?”

연오랑은 살짝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인은 혹시나 싶어서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공주자가께서 일부러 늦게 알리셨습니다. 큰일을 하고 계시는데 방해되면 안 된다고요. 그래서 홍형청을 제거했다는 승전보가 전해지자, 뒤늦게 회임하신 사실을 궁에 알리셨습니다.”

“음...”

그가 산동으로 온지 벌써 반년 넘게 지나지 않았나. 시간상으로 뭔가 안 맞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나 보다.

“허. 거참.”

“왜...?”

연오랑이 기쁨보다는 당황한 기색을 많이 보여서일까? 이인은 조심스럽게 되묻고 말았다.

연오랑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인은 이미 아이가 있지 않나. 연오랑의 반응은 뭔가 평범함에서 조금 빗겨나고 있다.

‘설마 아기를 가진 걸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이인은 끔찍한 상상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연오랑과 공주의 결혼생활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건, 단순히 부부싸움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니까.

공주는 세종, 태종이 연오랑에게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보루인데, 이게 무너지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

딱딱하게 굳은 이인의 표정을 읽어서 일까? 연오랑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이상한 상상하지 말고. 놀라서 그래. 아기를 가질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거든.”

“예...?”

이인이 알기론, 연오랑과 공주는 천생연분처럼 퍽 죽이 잘 맞지 않았나.

혼자놀기의 달인이 된 공주의 성격과 품행을 누가 받아줄 수 있나 걱정했지만,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둘은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당연히 자식도 기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이인의 망상과 달리, 연오랑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아기란 말이지...’

그는 한참을 서성거렸고, 이내 당황이 지워지고 기쁨인지 희열인지 감동인지 모를 요상한 감정이 심장을 달구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 게임 속 세상이 아닌 건 어릴 적에 알아차렸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게임캐릭터로서, 세상에 스쳐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곤 했다.

어쩌면 그래서 조선개조에 목을 맸던 걸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으면 그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역사에 이름을 세길 사명이 주어진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 다짐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뭔가 알 수 없는 소속감과 진실이 느껴졌으니... 이 요상한 감정 때문에 마냥 기뻐하지 못한 거지.

그런 기분이 정리되고 나자, 이제야 진짜 기쁨이 밀려와 가슴이 뜨거워졌다.

“건강은?”

“에이. 별 걸 다 걱정하십니다. 공주자가만큼 활발한 사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음.”

공주는 취미가 승마요, 결혼을 하기 전부터 부인운동법으로 알려진 요가를 꾸준히 해오지 않았나.

결혼 후에는 연오랑을 따라다니면서 알음알음 칼질도 몰래 훔쳐 배웠으니, 건강은 전혀 문제될 게 없을 거다.

“하... 내 아이란 말이지.”

드디어 연오랑의 얼굴에 미소가 맴도는 걸 느낀 걸까? 이인 또한 동조해서 히죽 미소를 머금었다.

“예.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형님.”

“하하.”

연오랑은 드디어 시원하게 웃기 시작했고, 이인 또한 덩달아 함께 웃음을 이어갔다.

어찌됐건 경사 중에 경사고, 공주가 연오랑의 아이를 낳으면 그것만큼 왕실과 연오랑이 더 깊게 엮일 수 있지 않나.

이인은 연오랑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답게, 더욱더 기분 좋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흠... 가봐야 하나?”

“공주자가께선 안 오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출산일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굳이 오셔도 딱히 할 일이 없을 거라고...”

“끄응.”

연오랑은 충분히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청도와 용연은 며칠 만에 갈 수 있으니 갔다 와도 되지만, 공주는 자기 때문에 이곳 일이 잘못되는 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다.

‘이젠 조용하고 느긋하게 준비하는 일만 남았는데...’

“내가 없어도 별 문제는 없잖아?”

“그건 그런데... 호족들이 보기에는 그게 아닐지도 모르죠. 그치들은 형님이 집에 가는지 조정에 가는지 알겠습니까? 말해줘도 믿지도 않을 거고요.”

“음.”

“게다가 형님이 움직이지 않아도,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까. 교섭이 잘 안 풀리면 형님이 한손 거들어 주셔야죠.”

“네가 할 일이잖아. 인마.”

“흐흐.”

이인은 대답 대신 그저 헤실헤실 웃었고, 연오랑 또한 웃음이 전염되어 피식 웃고 말았다.

“전쟁을 빨리 끝내야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 적어도 아기 낳는 건 직접 봐야겠지?”

“그래야죠.”

시대가 시대인지라 남성의 권위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이 낳을 때 곁에 없으면 적잖게 서운해 할 게 분명.

“겨울이 오기 전에 확실히 끝낸다.”

“옙!”

연오랑은 각오를 다지듯 말을 토해냈고, 그에 전염되어 이인 또한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조선이 하남으로 진출했다! 하남의 군벌 홍형청을 무너뜨렸다!

이 엉뚱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소문이 중국을 강타하며 퍼져나갔다.

허나 조선은 그대로 청도에 틀어박혀 두문분출 했고, 반대로 산동과 하남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공청과 홍형청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니, 그들끼리 열심히 속닥속닥 일을 진행하고 있던 것.

중국의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청도로 쏠렸으나, 조선군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청도를 건설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연판장 조약은 물밑에서 진행된 일, 그리고 또 진행되고 있는 일.

일반 백성들 입장에선 “대체 조선은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와서 난리를 피우는 거지?”라는 의문과 함께, “공짜로 칼을 휘두르진 않았을 거 아냐. 분명 뭔가 대가를 받았을 거야.”라는 뜬소문만 둥둥 떠다녔다.

남직례, 절강상인과 연계를 맺는 또한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뜬소문에 잔뜩 곤두선 진주광조차도, 절강호족들이 산동에 드나드는 것에 긴장하지 않을 정도. 상인호족의 혈족이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건, 지금껏 꾸준히 진행되어 온 당연한 일 아닌가.

그만큼 조선과의 밀약은 철저히 수면 밑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중국세력은 그저 산동을 유심히 지켜볼 따름이었지.

하지만 조선은 그림자에 숨어 차곡차곡 전쟁 준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젠 스무척으로 불어난 조선해군은 청도와 평택을 계속 오가면서 연대병과 보급품을 충원했고, 초석광산에서 채취한 초석은 청도에서 화약으로 변신했다.

천친에서 소모한 화약을 다 채우고도 남는 화약을 제조해서 보급선을 가득가득 채워나갔다.

청도에서 출발한 3척의 신형전함은 해도와 측량을 하면서 남직례의 해안을 따라 영파로 진출.

조선해군의 움직임에 절강의 모든 세력이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지만, 조선해군은 얌전히 영파에 들려서 물건을 내려놓고 반대로 물건을 사고 되돌아갔다.

그렇게 하루걸러 한번씩 조선전함이 영파와 청도를 오가기 시작하자, 경계심은 점점 옅어져갔다.

조선군은 친절하게도 영파의 지시에 잘 따랐고, 심지어 부두에 배를 대지도 않고 항구 앞바다에서 거래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거의 2주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강남지방의 추수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조선군 일만오천의 기병이 일제히 산동경내를 벗어나 남직례를 향해 질주를 시작했다.

남직례의 동부는 말 그대로 끝도 없는 평원.

하늘이 내려준 경작지로, 산동보다 더 심할 정도로 산이 없고 평야만 가득했다.

여기에 남북으로 가로지는 회하의 지류가 동쪽바다로 마구잡이로 흘러들어가니, 그야말로 천연옥토라 할 수 있었지.

그만큼 강도 많고 습지도 많고, 동부 해안가는 수백키로에 달하는 개흙밭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 남직례의 흔하디흔한 마을. 회안부 해안현에선 뜬금없는 난리가 펼쳐지고 있었다.

“거. 빨리빨리 움직여!”

“그 거적때기는 치워라. 길가에 그런 거 두지 말라고 말했지!”

“어서 옮겨!”

동네 주민들이 죄다 나와서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한 흙길을 정리하고, 주변에 있는 나무더미, 갈대더미 등을 가장자리로 열심히 치워댔다.

“단단히 고정해라!”

“제대로 확인해!”

애어른 할 것 없이 죄다 몰려나와 정리하고 있는 길의 끝엔, 회하의 지류 중 하나인 강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강 위에 어설프지만 그럴듯한 배다리가 둥둥 떠 있었다.

말 그대로 나룻배에 판자를 박아 고정시킨 것에 불과하지만, 그 폭이 5미터가 넘어가니... 이 정도면 충분히 다리라 부를 만 하지.

그 배다리 위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다시금 확인하고 있었다.

“음...”

“아까우십니까. 아버님.”

“글쎄다...”

해안현의 터줏대감이자 지주호족인 해안 방가의 가주 방곤은 아들 방회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비록 폭이 백미터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저 배다리를 만들기 위해 방가 및 인근 마을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나룻배를 총동원해야 했다.

저걸 재활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건 한동안은 못 써먹을 게 분명.

게다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진행하는 바람에, 괜히 방가만 욕을 엄청 처먹고 말았지. 며칠 만에 저런 배다리를 만들어낸 게 오히려 대단할 지경.

“대가는 충분히 받았습니다.”

“대가가 문제겠더냐. 시절이 문제지.”

“예...”

방곤의 말에 방회 또한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 방가의 식솔들이야 “이게 뭔 난리야? 쓸모도 없는 배다리를 뭐 하러 만들어?”라고 성질을 내고 있겠지만... 이유를 아는 방가의 주요혈족들은 속편하게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산동과 하남의 경계가 명확히 나눠져 있지 않는 것처럼, 산동과 남직례 북부 또한 경계가 흐릿했다.

산동남부 호족은 남직례 북부 호족과도 인연이 깊고 친분도 있어서, 연초나 큰 잔치 때마다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눌 정도니까.

그러니 자연스레 조선이 청도에 진출한 걸 보고 발작하듯 놀랐고, 공청과 홍형청을 쓸어버리는 걸 보면서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