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의 소드 마스터-247화 (247/538)

247. 챕터36. 질주하다 (3)

원래 역사에서 평도전은 대마도주가 조선에 보내 귀화시킨 인물.

태종대에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귀화하여, 조정과 대마도를 오가며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었다.

대마도 정벌이 시작되자. 조정은 왜관에 있던 왜인들을 소개疏開시키는 작업을 먼저 진행했는데, 이때 그의 아들인 평망고가 반항하다가 주살됐지.

대마도 정벌 이후에는 유배 혹은 유폐를 당해, 역사에 파묻혀 쓰러졌고.

허나 지금 역사에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거창한 조사의의 난 대신 자잘한 반란을 여러번 겪은 조선군은 원래 역사보다 병력의 수도 많고, 보다 정예화 되어있었다.

그 탓에 왜관의 소개작업이 진행될 때, 왜인들은 반항 대신 순순히 항복했고 평망고 또한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 후 대마도는 연오랑이 개입하면서 무인도가 되었고, 대마도주를 비롯한 가신무사들은 모두 사망. 대마도민들은 전부 포로가 되어 조선으로 끌려왔다.

평도전이 그간 이중첩자의 역할을 해왔든, 조선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했든, 대마도가 없어진 이상 따질 필요가 없잖나.

그렇게 기존 항왜든, 왜관에서 잡힌 포로든, 대마도에서 잡힌 포로든 할 것 없이, 영택별감이라는 임시조직에 속해 공짜노예가 되어 조선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은 왜인포로를 대상으로 조선화교육을 정립 및 진행.

시간이 계속 흐르자 왜인의 정체성이 지워져 조선인으로 변모했고, 왜인포로들은 조선 각지로 퍼져 하나둘씩 정착했다. 지금은 영택별감도 없고, 왜인포로도 없게 된 거지.

원래 역사에서 왜인이 조선에 쉽게 정착하지 못한 건, 그들이 농사보다는 어업과 상업을 중시했고, 조선내부에서의 차별 때문 아닌가.

지금 역사에선 그런 장애물이 없으니, 빠르게 조선인으로 탈바꿈 한 거지.

평도전과 그의 가족도 같은 과정을 겪었고, 칼질에 능숙한 그는 항왜 평도전이 아닌 조선인 평도전으로서 새 인생을 준비했다.

그런 그의 입맛에 딱 맞는 기회가 찾아오니, 바로 신기선군. 해군갑사의 모집이었다.

왜인들은 기마술이 떨어지고 딱히 재산도 많지 않으니, 착호군 및 육군갑사에 지원하는 건 쉽지 않았다.

반대로 물질에 능숙하고 맨몸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해군갑사는 왜인, 그것도 기존 항왜출신에게 딱 맞는 자리였던 것.

그렇게 평도전을 비롯해 수많은 항왜들이 해군으로 몰려왔고, 이들은 조선인,고려인,여진인,요동인과 섞여서 하나가 됐다.

피땀을 흘려가며 모래밭에서 개처럼 굴려졌는데, 출신의 차별이 웬 말인가.

전장에서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건 전우이고, 그런 전우가 왜인인지, 여진인인지 따지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그렇게 그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무려 함장이 되었으니... 왜인출신에게는 훌륭한 롤모델이 되고, 한편으론 조선이 출신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명쾌한 증명이 된 셈.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이 자리에 서서, 조선전함을 타고 장강을 지켜보자... 절로 가슴이 저리고 두근거리는 묘한 감정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함장.”

“...”

“도전.”

“예? 예. 죄송합니다.”

상념에 빠진 평도전은 박무양의 외침을 뒤늦게 듣고서, 얼른 그를 바라봤다.

“측량은 계속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다만 강가에 바짝 붙는 건 아무래도 위험해서...”

“그야 당연하지. 걱정 말게.”

“...”

박무양은 살짝 무안해 하는 평도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줬다.

목포진에서 머물 때도 조선해안을 측량했는데, 그때 배가 좌초될 뻔한 적이 몇 번 인가.

조선의 서해, 남해의 해안선은 지랄 맞아도 너무 지랄 맞은 곳이고, 그 해안선 곳곳에 퍼져 있는 섬만 수천개다.

거기서 목숨 걸고 해도를 만들던 부하들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다.

그렇게 조선해군은 위풍당당하게 장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그간 조선함선이 이따금씩 영파를 오가긴 했지만, 지금처럼 수십척이 떼거리로 몰려온 건 처음이지 않나.

장강하구를 오가는 온갖 장사배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산처럼 거대한 함선을 피하기 위해 지들끼리 부딪치며 난리가 났고, 몇몇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 항구로 가는 이들도 있고, 나룻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온 어부들이 미친 듯이 노를 젓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장강하구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조선함대는, 그들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그저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확실히 속도가 줄었군.”

“예. 장강이 아무리 넓어도 강은 강이지 않습니까. 결국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거니까요.”

“음...”

박무양은 평도전의 말에 이해가 된다는 듯, 가볍게 혀를 차고 말았다.

해군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형전함을 끌고, 한강,두만강,압록강,금강,대동강,낙동강 등의 조선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훈련을 해왔었다.

본래 조운선이 다니던 수로를, 신형범선이 오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지랄 맞은 조선의 강을 떠올려보면, 거대하고 잔잔한 장강은 놀이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느려지긴 했어도 충분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군.”

“그건 그럴 텐데... 과연 육군이 제 시간에 맞춰서 올 수 있겠습니까?”

“글쎄... 얼추 비슷하게 오지 않겠나?”

박무양도 확신을 못해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말았다.

신형전함은 평균적으로 4,5노트, 바람을 진짜 잘 받으면 6,7노트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즉. 아무리 바람을 못 받아도 최소한 하루에 150키로미터 이상씩 이동할 수 있다는 뜻.

중국의 정크선이든, 일본의 쾌선이든, 동남아시아의 범선이든, 신형전함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배는 없지.

그러니 육군보다 한참 늦게 출발했어도 오히려 먼저 도착할 수밖에.

“어차피 첫 번째 작전목표는 남통포구를 파괴하고 봉쇄하는 것 아니겠나. 육군이 조금 늦게 도착해도 전체작전에는 영향이 없을 걸세. 오히려 남통성에 사람을 긁어모으면 그게 더 좋을 지도 모르지.”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그럼. 우리도 2함대처럼 시원하게 공을 세워봐야지.”

“옛!”

군병에게 최고의 영광은 전공을 세우는 거니, 육군이 늦게 오면 해군이 세울 전공이 더 늘어나는 것 아니겠나.

이래나 저래나 아쉬울 건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인지, 함대는 기운차게 장강을 계속 거슬러 올라갔고 한시진 쯤 지나자 슬슬 남통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 앞에, 수많은 장사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둥둥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뭔가 수상쩍다.

거슬러 오를 거면 거슬러 오르던가, 내려올 거면 내려오든가 해야 하는데... 왜 저기에 저렇게 몰려 있는 걸까.

“역시. 통행세를 받는군?”

“어떻게 할까요. 조란탄을 쓸까요?”

“저게 진주광 부하인지, 다른 지방 상인인지 알 수도 없는데 막 쏴대면 되겠나. 그냥 가까이 가서 들이받고 화살비를 먹여줘야지.”

“흐흐. 알겠습니다.”

박무양의 비릿한 웃음은 평도전에게도 전염됐고, 이내 곧 견시병에게도 이어졌다.

“총원 전투준비!”

“전투준비!”

함장. 항해사를 거쳐 장강을 구경하고 있던 병사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견시병의 손도 바빠져 중앙돛대 위에 새로운 신호 깃발이 치솟았다.

“사선진을 유지할 필요 없다. 적당히 흩어져서 각자 정리한다.”

“옛!”

견시병은 박무양의 명령에 냉큼 깃발을 요리조리 갈아 끼웠고, 뒤를 따라오던 함선은 하나둘씩 옆으로 삐져나와 장강을 뒤덮기 시작했다.

박성양이 이끄는 4함대도 마찬가지.

2중 그물을 만들 듯, 박무양이 이끄는 3함대가 먼저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사배들에게 달라붙자, 3함대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가 다른 배들에게 달라붙었다.

신형전함보다 빠른 배가 없는데, 조선해군이 장강에 진입했다고 해서 남통 인근에 있던 이들이 조선해군이 오는 걸 알아차릴 리가 있나.

“어...?”

“뭐야. 저거!”

“온다. 이쪽으로 온다!”

조선해군이야 사냥감을 본 사냥꾼마냥 신나서 달라붙었지만, 사냥감이 된 배들에선 난장판이 펼쳐졌다.

박무양의 예상대로 이들은 진주광의 부하들로, 덩치 큰 누선을 이끌고 장강을 오가는 배에 달라붙어 검문을 하면서 통행세를 걷고 있었다.

장강이 지들 것도 아닌데 뭔 권리로 이렇게 하냐!고 외치고 싶지만, 눈앞에 창칼이 흔들리면 그런 소리도 쏙 들어가기 마련.

그랬기에 진주광은 일부러 병력을 많이 태울 수 있는 누선을 만들어 장강에 띄웠고, 남통 일대에 순시선을 잔뜩 뿌려서 아무도 못 지나가게 막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누선보다 훨씬 큰 신형전함. 조선의 함선이 등장해 다짜고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니 이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닻 올리고 돛을 펴라!”

한 선장이 낯빛이 하얗게 변해 소리치자.

“누구 마음대로!”

“정신 나갔소? 지금 통행료가 문제요? 저거 안 보이쇼?”

그간 겁을 먹던 게 모두 거짓이라도 된 것 마냥, 선장은 진주광 부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높여댔다.

상인 일꾼들도, 검문을 하러 남의 배에 올라탄 진주광의 부하들도. 모두가 어쩔 줄을 몰라서 허둥거렸고, 둘의 말싸움에 더욱더 혼이 나갈 것 같았다.

“에잇. 이거면 되오?”

선장은 자신이 졌다는 듯 대충 돈뭉치를 집어던졌고.

“이. 이 자식이...”

진주광 부하는 묵직하지만 살짝 모자란 무게에 쌍욕을 내뱉으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선창을 뒤지고 있던 부하들은 어느새 죄다 갑판으로 올라와 있었고, 그의 눈치만 슬슬 보면서 빨리 자기 배로 돌아가자고 눈빛을 뿌리고 있었으니까.

“이번 한번만 봐주는 거야!”

“아. 알았다니까. 빨리 떨어지자고! 저기. 배 오는 거 안보여!”

선장은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 하대를 하면서, 길게 그림자를 만들며 다가오는 산처럼 거대한 신형전함을 가리켰다.

멀리서 봤을 때도 기겁할 정도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다리가 후들거린다.

대체 돛대가 몇 개나 되기에, 저렇게 많은 돛을 달 수 있는 걸까? 갑판 위엔 온통 돛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배의 밑바닥은 흘수선 살짝 위로 타르를 발라 검게 칠해져 있었는데, 울렁이는 물살에 따라 보였다 사라지길 반복하니... 선장은 그게 꼭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상어처럼 느껴졌다.

선장뿐만 아니라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 손놀림과 발놀림은 점점 빨라졌지만 부들부들 떠는 터라 어째 평상시보다 더 느려진 모습.

“어...?”

“저건!?”

“피... 피해! 숨어! 화살이다!”

이윽고 조선함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모두가 고개를 치켜들고 조선함선의 갑판을 올려다보기 무섭게... 다시금 난리법석이 펼쳐졌다.

성벽처럼 우뚝 솟아 있는 갑판벽 위로는 화살을 걸고 조준하고 있는 병사들이 새카맣게 몰려 있었으니까.

“발사!”

낯선 조선말와 함께 삐삑!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들리자.

“발사!”

병사들의 복명복창이 하늘을 흔들고, 그 뚫린 구멍으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후두둑. 북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무섭게, 새카맣게 밀려든 화살세례에 시야가 검게 변해간다.

“아악!”

“헙!”

선장과 일꾼들은 자신들에게 쏘는 줄 알고, 맞지도 않았건만 죄다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으나... 이게 뭔 헛짓거리인가.

‘... 살았나?’

선장은 가자미눈을 하고서 힐끔 주위를 둘러봤고, 수하들 모두 죽은 척 연기를 하며 눈만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던 누선에선 진짜로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진주광의 누선이 아무리 크다고 해봐야 대맹선 수준이니, 조선함선이 옆에 서자 어른 옆에 선 아이처럼 보일 따름.

그 위에서 사정없이 화살비를 쏟아내는데, 대체 뭔 수로 버틸 수 있을까.

화살을 맞고 쓰러진 이들, 화살을 맞기도 전에 강으로 뛰어든 이들, 좁은 선창으로 기어 도망간 이들, 박도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입에 화살이 꽂힌 이들 등등.

눈 뜨고 보기도 힘든 지옥도가 펼쳐졌다.

그렇게 3번에 걸친 일제사격이 끝나자 누선 위에는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조... 조선군이 대체 왜?”

“나... 난들 아나.”

선장은 누군가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목청을 높이고선, 벌떡 일어나 죽은 척 하고 있는 수하들을 발로 걷어차 깨웠다.

“일어나! 빨리 노를 저어라! 여기서 빠져나간다!”

“화... 화살 맞으면 어쩌려고요!”

“닥쳐! 보면 몰라! 진주광 놈들만 쏘고 있잖아!”

선장의 외침이 구명줄이라도 된 걸까? 모두는 금붕어마냥 눈만 끔뻑끔뻑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들 옆에 붙어 있던 다른 상선도 멀쩡해 보이고, 저 멀리 보이는 다른 무리 또한 누선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고 힐끔 위를 올려다보니, 조선군은 자신들이 있는 곳은 보지도 않고 죄다 반대편으로 몰려 화살을 쏴대고 있었다.

“조선군이 진주광을 치러 왔어! 뜬소문이 사실이었다고!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에... 옛!”

“넵!”

선장이 직접 키를 잡고 흔들어대자, 수하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죄다 노와 돛에 달라붙었다.

조선군이 청도로 건너왔다는 소문은 이미 오래전에 퍼졌고, 그 조선군이 홍형청을 박살냈다는 소문도 이내 들려왔다.

산동파벌이 박살났다는 소문은 홍형청의 몰락에 묻혀 일반 백성들은 오히려 잘 모를 정도였지.

그 뒤로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조선이 산동을 공략한다느니, 북직례를 공략한다느니, 등등. 하지만 통찰력 있는 혹은 찍어 맞춘 몇몇은 진주광을 처리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

대체 조선군이 왜 저런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숨을 구하면 그만 아닌가.

‘정말로 진주광을 끝장내러 왔어. 우리에겐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선장은 장강을 떠돌던 뜬소문이 사실이라고 스스로 믿으면서, 연신 목청을 높여댔다.

“돛을 올려라! 속도를 높인다!”

“돛을 올려라!”

속도를 팍 줄여서 누선 옆에 달라붙어 화살비를 쏴대던 조선함선들.

두르르 말렸던 돛이 활짝 펴지자 끄응! 거인이 기지개를 펴듯, 육중한 몸체가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들 잘 하는군.”

박무양은 망원경으로 다른 함선들이 진주광의 누선을 박살내는 걸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때. 콰콰쾅! 익숙한 굉음이 들려오자, 냉큼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급적이면 화포를 쏘지 말라고 했는데, 대체 누가 쐈나 하고 살펴보니... 저쪽에서 누선 두 척을 한측면에 몰아넣고 있는 함선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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