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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드 마스터-250화 (250/538)

250. 챕터36. 질주하다 (6)

쿵쿵쿵! 소리가 약간 다른 장군전이 쏘아지자,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결과가 펼쳐졌다.

이들 또한 천진에서의 전투보고서를 보지 않았나. 장군전이 적함을 부수는 데 제격이라는 건 글로 봐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한참 축소된 이야기다.

대맹선 크기의 누선이건, 대맹선보다 더 큰 수송선이건 할 것 없이, 장군전에 얻어맞은 함선은 화약고가 폭발이라도 한 것 마냥 시원시원하게 터져나갔다.

선수와 선미에 제대로 맞은 함선은 선창 바닥까지 뚫고 들어가서, 그대로 물이 차올라 순식간에 배가 기울어질 정도.

딱히 목표를 지정해주지 않았기에 각함은 알아서 목표를 잡고 쏴대고 있던 터라, 적함은 부두에서 빠져나와 신형전함에 달라붙기도 전에 뻥뻥 박살나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확실히 천진보다 방어수준이 약해 보이는데?”

“아무리 진주광이 잘났다고 해봐야 북평부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흐흐. 그야 그렇지. 그럼 일이 쉽게 풀리겠고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시작과 동시에 승리가 결정된 봉쇄작전을 보며, 박무양은 미소를 감추질 못했다.

아예 닻을 강바닥에 심어놓고, 남통포구를 완전히 가둬놓고 일방적으로 포격을 이어가자...

이윽고 백여척이 넘는 누선과 어선이 죄다 박살났고, 포구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 먼지구름이 가득했다.

부두는 아예 온데간데없이 없어져서, 그저 부두였던 나무파편과 부유물만 둥둥 떠다녔다.

화포에 맞아 죽은 건지, 파편에 맞아 죽은 건지, 아니면 그냥 익사한 건지 모를 시체 또한 바글바글 피어올라 부유물에 섞여 물길을 따라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정신을 차린 건지 몇 번의 포격이 날아오긴 했지만, 몇문 되지도 않는 화포로 전함을 무너뜨릴 수가 있나.

오히려 생채기가 난 것에 발끈한 전함은 물량으로 적 포대를 침묵시켜줬다.

그 탓에 부두 뒤에 깔린 성벽은 이가 빠진 것 마냥 군데군데 무너졌고, 포구로 나오는 성문 일대는 산사태가 난 것 마냥 성벽이 무너져 흙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렇게 조선해군은 남통포구를 완전히 봉쇄했고, 연기와 먼지가 가라앉을 때면 이따금씩 남아 있던 건물과 누선을 향해 화포만 쏘기 시작.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남통의 수군은 전멸했고, 조선해군은 못이라도 박힌 것 마냥 포구를 완전히 포위해 닻을 내리고 주저앉았다.

신형무역선만 이리저리 오가면서 보급할 뿐... 조선해군은 이곳에 못 박혀 죽겠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던 상인들의 입을 타고, 조선군의 공성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강남지방으로 퍼져나갔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대충 챙겨서 나와!”

“시간 없다!”

쾅쾅쾅. 나름 차려입은 걸까? 옛 명나라식 찰갑에 비갑까지 껴입은 관병들은 정신없이 발을 놀리며 마을 주민들을 몰아세웠다.

“휴우...”

뜬금없는 난장판에, 마을은 줄초상이라도 난 것 마냥 우울했지만... 별 수 있나.

마을 장정들은 대대로 물려 내려온, 혹은 어디선가에서 구해온 낡은 갑옷과 어설프게 모양만 갖춘 창대를 들고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이와 같은 일을 다른 곳에서도 진행한 걸까.

마을 공터 어귀에는 비슷한 꼬락서니를 한 장정들 수백이 뭉쳐서 눈만 굴리고 있었다.

“휴우...”

“저거 아까워서 어쩌나.”

누군가의 한숨은 전염이라도 되는 건지...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끌려오는 이들이나,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며 황금빛 평야를 굽어봤다.

“추수를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맞네. 맞어.”

누군가의 푸념에 우울함과 서글픔이 배가 됐다.

한 해 동안 꼬박 고생한 결실을 이제야 맺었는데, 이걸 그냥 버리고 가야한다니 발걸음이 떨어질 리가 있나.

남은 사람들끼리 할 수는 있겠다지만, 그래도 가호에 힘을 쓸 장정이 있는 것과 없는 건 비교할 수조차 없다.

이윽고 모두 징집이 끝나자, 이들은 질질 발을 끌며 남쪽 마을로 향했다.

진주광이 남통과 양주부 일대를 장악하면서, 대부분의 마을과 호족은 진주광 밑으로 들어갔다. 말을 안 들으면 다짜고짜 쳐죽이려는 자들인데, 무슨 수로 반항할 수 있을까.

일반 백성들은 그대로 군호에 속해 군역을 치러야 했고, 나름 잘사는 이들은 군역에서 빠지거나 아예 진주광 밑으로 들어가 한자리를 차지했지.

그랬기에 나름 진법훈련도 받고, 대충이라지만 어쨌든 소집훈련도 받고 그랬는데... 남통에서 멀리 떨어져서 오히려 회안부와 더 가까운 양주부 북부 마을과 도시는 그냥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걸로 군역을 회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백성은 귀찮은 일 안해서 좋고, 진주광 부하들은 공돈이나 벌면 됐지... 귀찮게 사람들 모집해서 군사훈련을 하는 걸 좋아했을까.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군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파벌싸움이 벌어져 서로 줄서기에 여념이 없고, 한왕이니 뭐니 내세워도 줄 끊어진 하급무관이나 하급지휘관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었겠나.

그저 자기도 부자가 되고, 호족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면서, 모두의 칭송과 경외를 받으면서 살고 싶은 거지... 딱딱하게 시키는 대로 다해서, 굳이 마을사람들에게 욕먹으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일 잘한다고 해서 위로 올라갈수도 없으니까.

남통에서 멀면 멀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져서, 전형적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군대로 탈바꿈하게 된 거지.

그 안일했던 마음과 행동이 지금은 최악이 되어 다가왔다.

“진짜 조선군이 올까?”

“이미 온다고 소문이 쫙 퍼졌으니 이렇게 소집하는 거 아니겠나.”

“기병만 일만이라고 하던데....”

누군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며 말하자.

“일만? 난 오만이라고 들었는데?”

“아닐세. 윗마을에서 온 사람 말을 들어보면 십만이라고 하던데?”

누군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뱉자,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를 바라봤다.

지금껏 살면서 천이 넘는 기병도 못 봤는데, 기병 십만이라고? 이건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 인터라, 징집병들은 십만 기병대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도 없었다.

십만이면 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일까.

“조용히 해라!”

“입 열어서 힘 빼지 말고 계속 걸어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져서 일까? 타고 다닐 군마도 없어서,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무관들이 몽둥이를 치켜들며 침묵을 강요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 또한 몽둥이를 든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들이라고 뭐 사정이 다를까.

조선군이 정확히 몇이나 오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이 전부 기병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공청과 홍형청이 박살났다는 소문은 이미 퍼지지 않았나.

남의 집 무너지는 걸 흥겹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제 자기 집이 무너지게 생겼으니 절로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게다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무관들은 농부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이들로는 기병의 돌격을 절대 못 막는다고 확신했다.

‘천호소에 속한 병력을 모두 모았다곤 하지만... 성에 박혀 농성이라도 하면 모를까. 이들로 회전을 하는 건 절대 무리다.’

무관 중 한명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암울한 전망을 떠올렸다가, 이내 더욱 암울한 전망에 깔려버렸다.

‘아니지. 이렇게 황금빛으로 물든 논에서 어떤 병사가 회전을 하고 싶을까. 창을 들고 논에 들어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할 거다.’

참으로 악독하고 얄밉게 치고 들어왔다.

추수 때에 맞춰서 군을 일으키건 일반적인 게 아니니까.

‘조선은 병사들을 돌려보내지 않아도 추수하는 데 문제가 없나?’

이런 생각이 문뜩 떠올랐지만, 한편으론 조선의 체급을 생각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을 것 같기도 하니... 외통수에 걸린 것 마냥 그저 속이 답답할 따름.

헌데 그때.

“...?”

무관뿐만 아니라 징집병들 또한 뭔가 이상한 걸 느끼고 말았다. 질질 끌리던 발이 멈추고, 자기도 모르게 사방을 둘러봤다.

벌떼가 우는 것 마냥 웅웅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은데...

“헉!”

“어어억!”

“땅! 땅이 울린다!”

누군가가 정답을 찾아내고 비명을 내지르자, 징집병들을 하나같이 혼비백산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정말로 땅이 잘게 울리며 발바닥으로 얕은 진동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진짜로 조선 기병대가 오고 있다.

“정렬!” “정렬!”

“모두 정신 차려라!”

“도망치면 어차피 다 죽는다! 기병을 두고 뭔 수로 도망치려고!”

무관들은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내지르는 동시에, 두려움에 함몰되어 자기가 뭔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도망치려는 징집병을 몽둥이로 마구 두들기며 본보기를 보여줬다.

그런 징집병들의 약을 올리려는 걸까.

북쪽의 얕은 구릉 위로 검은갑옷을 입은 기병 두셋이 불쑥 튀어나와 빼꼼 살피더니, 어느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정찰병이다!”

“장군!”

열심히 징집병을 두들겨 패며 도망치지 못하게 막던 무관은 저쪽에서 유일하게 말을 타고 있던 인물에게 달려갔다.

“보셨습니까!?”

“뭘 말인가!”

안 그래도 정신없어 죽겠는데, 무관이 되어가지고 분위기 흐리게 경거망동하고 있나.

말 위에 올라 타 있던 무관은 짜증이 확 치밀어 올라, 자기도 모르고 우거지상을 짓고 말았다.

“저... 정찰기병이 보였습니다.”

“...!?”

장군이라 불린 천호장은 믿지 못해서 눈만 끔뻑거렸고, 부하 무관은 냉큼 입을 놀렸다.

“잘못 본거 아닙니다! 검은 두정갑을 입은 기병이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어... 어디서!”

“저기...”

천호장은 부하무관이 가리키는 곳을 자기도 모르게 바라봤고, 이내 곧 먼지구름과 함께 진동이 거세지는 걸 느끼고 말았다.

“적이 이렇게 가까이까지 오는데 몰랐다고? 정찰병은 뭘...”

천호장은 한탄을 하듯 외치다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선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군마가 없어서 정찰병 또한 두 발로 뛰고 있었으니, 조선군 정찰병에게 도망치지도 못하고 사로잡혔을 게 분명하니까.

“여기서 막는다.”

“...”

천호장은 결국 그리 말하고 말았고, 부하 무관도 두려움에 질린 눈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진동이 이렇게 느껴질 정도면 말 그대로 코앞까지 왔을 게 분명. 저 얕은 구릉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이지 먼지구름이 이미 보이지 않나.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밟혀 죽게 될 거다.

“정렬!”

“정렬! 움직여라!”

천호장의 뒤에 있던 깃발병들은 자기 몸집만큼이나 큰 깃발을 열신 휘두르며 무관들과 병사들을 응집시켰다.

방금 전에는 사방팔방 도망치려던 이들이 지금은 또 말을 잘 듣고 한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본능의 신호 때문인지, 어째 전열을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다닥다닥 붙을 정도였다.

“간격 맞춰서 서라!”

“들어가!”

“아까워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라고!”

“창을 세워!”

무관들은 물 먹은 종이처럼 서로 달라붙는 징집병들을 연신 떼어내어 논으로 밀어 넣었다.

허리춤까지 자란 벼들은 황금빛 알곡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여길 다짜고짜 들어가라고 하니 쉽게 될 리가 있나.

자기 목숨이 간당간당한 와중에도, 농부나 다름없는 징집병들은 아까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벼를 짓밟고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억지로 관도에서 떼어내어 논두렁에 의지해 전열을 형성. 하지만 워낙 긴박하게 움직인 터라, 질서정연은커녕 무질서의 표본을 보여준다.

어느 곳은 제대가 다닥다닥 붙어서 뭉쳐 있고, 또 어느 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서 옆구리가 훤히 비어있을 정도.

종대진영에서 횡대진영으로 어설프게 변형해 논바닥에 병사들을 흩뿌려 놓았지만... 두두두. 점점 더 심해지는 진동에 병사들은 홀리기라도 한 듯, 제대간의 간격과 각각의 간격마저도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이건 꼭 여차하면 도망치겠다는 모습과 똑 닮았는데,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제대일수록 그런 경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

“온다!”

“창을 세워라!”

“궁병! 궁병 제대! 움직여라!”

뙤약볕을 머금어 더욱더 짙게 변한 검은 물결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동요는 더욱 더 심해졌다.

애초에 궁병이 몇 되지도 않는데, 궁병을 목청 놓아 찾는다고 튀어나올 리가 있나.

갑작스레 전열을 만들면서 죄다 흩뿌려져 있던 터라, 제대 뒤편에서 벼를 사정없이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궁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천호장은 엉망진창인 주위를 둘러보며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탄을 내뱉고 말았지만...

두두두. 이젠 모두가 느낄 정도로 떨리는 땅울음에 삼켜서, 그의 한탄은 들리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쥐고 있던 창이 덜덜 떨릴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징집병이건 무관이건 장군이건 할 것 없이, 그저 두려움에 발이 묶이고 입이 닫히고 말았다.

모습을 드러낸 조선군은 관도를 따라 쭉 내려오고 있었는데... 차라리 보지 말 걸 그랬다.

그냥 평지였으면 기병이 얼마나 되는지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살짝 구릉진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터라 검은 물결이 끝도 없이 밀려오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었기 때문.

“...”

두두두. 진동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징집병들은 하나같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딸꾹질을 참아냈다.

최고속도로 매섭게 달려오지도 않고, 산보를 하듯 살짝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데...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는지, 어디 하나 튀어나온 이들이 없다.

흠사 한 덩어리로 된 검은 뭉텅이가 꿈틀꿈틀 땅을 갉아먹으며 다가오는 것 같다.

100보쯤 다가오자 검은물결의 세세한 근육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고, 50보쯤 다가오자 검은물결을 구성하고 있는 기병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30보쯤 되자... 하늘을 가리는 검은 장막이 일순간에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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